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55)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55화
나는 가볍게 웃었다.
“다들 너무 심각해진 거 아니에요?”
이 사람들이 동시에 심각해질 이유는 별로 없었다.
아마도 10년밖에 남지 않은 내 수명과 관련이 있는 거겠지.
“나는 카린 선생님이 얼른 말해주면 좋겠다아. 궁금해서 빨리 죽으면 어떡해.”
“그런 말씀 마십시오.”
나는 나름대로 농담을 던진 거였는데 카린은 늘 그렇듯 엄격하고 진지했다.
농담 두 번 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았다.
“대략 어떤 건지는 알겠어요. 그니까 마음 편하게 가르쳐 줘요. 어쨌든 필요한 거니까.”
“베크사 경의 기록에 따르면 그 마법은 초월 마법의 영역이며 신의 권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신의 권능이요?”
“용들조차도 어쩔 수 없는 신의 입김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입김이라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나는 저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나르비달의 낙인이요?”
용들도 어쩔 수 없는, 신이 내린 저주.
아마도 나르비달의 낙인을 뜻하는 것 같았다.
비아톤 경이 조심스레 말했다.
“황녀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제 어머니 또한 나르비달의 낙인을 받으셨거든요.”
그때가 기억난다.
비아톤 경은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울었었지.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송곳으로 가슴을 찌르는 것만큼 아팠다.
“그래서 그와 관련한 연구를 많이 남기셨습니다.”
비아톤 경의 어머니의 죽음.
그와 관련된 얘기가 나오니, 나도 괜스레 숙연해졌다.
아,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게 이래서였구나.
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내 남은 수명에 관해 얘기를 할 때면 엄숙해지는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했다.
“좋아요. 아무 문제 없겠네요. 저는 용들조차 어찌할 수 없는 신의 입김을 받은 사람이니까요. 아이 정말, 그런 표정들 짓지 마요. 지금 슬퍼한다고 해서 하나도 바뀌는 거 없잖아요.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죠.”
* * *
이사벨은 세 명의 선생과 함께 ‘차원이격결계’라는 마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베크사에 버금갈 정도로 천부적인 마법적 재능과 수학적 이해도가 밑바탕이 되었기에 수련이 버겁지는 않았다.
특히 비아톤과 카린은 이사벨의 천재성에 새삼스레 다시 놀랄 정도였다.
한편, 검은 고래 소속 제1지도관 조헨이 아룬을 호출했다.
“아룬.”
정좌를 한 채 명상하던 아룬이 눈을 떴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죄송합니다, 들어오신지 몰랐습니다.”
현재 그는 검은 고래 소속의 견습 기사.
본래 신분이 아무리 고귀한들, 그런 건 상관없었다.
대공자 아룬은 몰락 귀족 출신인 조헨에게 깍듯이 예를 갖추었다.
“황제 폐하께서 호출하셨다.”
“황제 폐하께서요?”
아룬은 고개를 갸웃했다.
만인지상의 황제가 왜 자신 같은 견습 기사를 부른단 말인가.
조헨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 도대체 무슨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거냐?”
“딱히 사고를 친 기억은 없습니다.”
“네가 무슨 황명을 어겼다는 것 같은데.”
“…….”
아룬은 잠자코 생각해 봤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황명을 어겼는지 알 길이 없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빨리 생각해 봐라. 매도 알고 맞는 것과 모르고 맞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니.”
조헨은 또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사실 그는 아룬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을 줄 알았는데, 검은 고래의 힘든 훈련을 묵묵히 잘 수행해 내고 있었다.
말수가 적고 무뚝뚝하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조헨은 그 모습도 좋아했다.
자고로 기사의 발은 가벼울수록 좋고 입은 무거울수록 좋으니까.
조헨은 견습 기사를 지도하는 지도관으로서 아룬과 함께 고민해 주었다.
‘설마 이건 아니겠지?’
최근 비아톤이 공문을 작성하여 황명을 전달하기는 했다.
그 내용이 무척 우스워서 다들 가볍게 넘겼다.
‘에이, 설마.’
혹시 몰라서 확인은 해봤다.
“최근 이사벨 황녀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나?”
“딱히 대화를 나눈 적은 없습니다.”
그걸 대화라고 해야 하나.
아룬이 생각하는 대화와는 괴리가 있었다.
자고로 대화란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경험을 공유하는, 상당히 고차원적인 지성체의 교류 아니겠는가.
아룬은 저번에 이사벨과 나눈 대화를 대화라고 여기지 않기로 했다.
그걸 대화라고 부르기엔 알맹이가 너무 없었다.
“역시 그렇지? 그럼 대체 뭘까?”
“부딪혀 봐야 답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바로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 * *
“늘 말씀드리지만 싫으시면 안 가도 됩니다.”
비아톤 경이 따뜻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문득, 나는 아쉬워졌다.
“요즘에는 왜 머리 안 쓰다듬어줘요?”
“그야 황녀님은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시니까요.”
비아톤 경은 화사하게 웃고 있었으나 나는 분명 봤다.
방금 비아톤 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틀림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눈동자인걸요?”
“그렇지 않습니다. 함부로 황녀님의 머리를 만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만져도 되는데.”
육체적으로 좀 성숙하기는 했지만 나는 여전히 10살이다.
한국에서 10살이면 아직 어린애라고.
요즘 내 주변의 어른들은 ‘육아’에 대해서 꽤 심도 있게 공부하는 모양이었다.
이를테면 발달 과정에 따라 지켜야 할 수칙이라든가, 조심해야 할 것들이라든가.
그런 걸 따로 공부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중에는 스킨십을 조심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는 것 같았다.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였다.
“쓰다듬어줘도 돼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쓰다듬어주는 건 당연히 싫다.
상대가 비아톤 경이니까 좋은 거다.
“알겠습니다. 고려해 보지요. 아무튼, 오늘도 가시렵니까?”
매주 화요일.
나는 세르몬의 방을 찾아서 세르몬과 일정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갈 거예요. 그리고 선생님, 나 이제 세르몬 오빠를 그렇게 미워하지 않아요.”
당시 세르몬은 블라독 공작의 혈술에 의해 조종당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세르몬을 용서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세르몬이라도 미워하지 않으면 나는 벌꿀이를 잃은 슬픔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나한테는 벌꿀이를 잃어야만 했었던 어떤 이유가 필요했었다.
“그럼 가시죠.”
나는 비아톤 경과 함께 세르몬의 방으로 향했다.
세르몬은 현재 황궁 내에서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한 ‘미로 궁전’에 갇혀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궁 외부가 미로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다.
혹시 황족이 대피해야 할 일이 발생했을 때 도망칠 수 있도록 설계된 곳이다.
지금은 세르몬의 감옥처럼 쓰이고 있다.
백치가 되어버린 세르몬이 함부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말이다.
“저 왔어요.”
세르몬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내가 없을 때의 세르몬은 무감정한 인형처럼 멍하니 밖만 바라본다고 했다.
시녀라든가 누가 가까이 다가오기만 해도 적의를 드러낸단다.
덕분에 세르몬의 식사를 책임지는 사람도 일정 수준 이상의 기사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세르몬의 기세에 짓눌려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다나 뭐라나.
“또 누구 괴롭히고 그런 건 아니죠?”
“너만 기다리고 있었어.”
안타깝게도 세르몬의 양 팔목과 발목에는 강철로 만들어진 구속 도구가 채워져 있었다.
일어나기는 했지만 더 이상 내게 가까이 다가오지는 못했다.
“구속 도구는 안 불편해요?”
“불편해. 그렇지만 이사벨이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고 했잖아.”
무슨 말이냐면, 세르몬은 때때로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린다고 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면 누군가 귓속에 ‘죽여라’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마음을 억누를 수 없어서, 강제로 구속 도구를 채웠다.
“한 명도 안 죽였어.”
“잘했어요.”
세르몬이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내가 옆에 와서 앉아주기를 바라는 모양새였다.
나는 여전히 세르몬의 옆이 무서웠지만, 그래도 그 옆으로 갔다.
일주일 내내 멍하니 있다가 딱 한 시간 활력을 되찾는 시간이다.
“오빠는 왜 이렇게 이 시간만 기다려요?”
“이 시간만 소중하니까.”
“다른 시간들은요?”
“의미 없어.”
일주일.
168시간 중 단 1시간만이 소중하다고 했다.
그게 하필이면 나를 만나는 시간이란다.
“저랑 만나는 시간은 왜 의미가 있는데요?”
“이사벨을 좋아해.”
“…….”
나는 나를 좋아한다는 저 말이 그리 기쁘지 않았다.
이건 정상적인 호감이 아니었다.
내가 정말 좋아서 좋은 게 아니라, 세상에 나쁜 것들이 너무 많아서 상대적으로 내가 좋아진 느낌에 가까웠다.
좋은 걸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
지난 몇 달간 생각해 왔다.
세르몬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아빠와 엄마도 나름대로 방법을 찾고 있지만…….’
결국 1년이란 시간 동안 수확은 없었다.
‘나는 세르몬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
나도 최근에야 떠올린 생각이었다.
[시한부 악녀가 죽고 나면>에 등장하는 성녀 마리아.마리아라면 세르몬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마리아는 소설 중반부 이후에 등장하는 캐릭터이고, 소설 속 흐름으로 살펴보자면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뒤에나 활약하는 인물이었다.
아룬과 합류했을 당시 나이가 44세였으니 지금은 대략 20대 후반 정도일 것 같았다.
‘지금은 힘을 감추고 살아가고 있겠지.’
지금 시점에서는 아무도 마리아의 존재에 대해 모를 거다.
오직, 독자인 나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하늘섬 어딘가의 작은 산골에서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을 거다.
자신의 능력을 철저히 숨긴 채.
“다음에 또 올게요.”
“응, 기다리고 있을게.”
“너무 기다리지는 말고 오빠도 오빠 할 일을 해요.”
“내 할 일은 이사벨을 기다리는 거야.”
“…….”
세르몬은 나를 보며 활짝 웃어준 뒤 고분고분 침대에 들어가 누웠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눈에는 또 생기가 하나도 없었다.
인형처럼 일주일 내내 누워 있을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또 저릿했다.
‘지금 시간이면 연무장에 계시겠지?’
나는 곧바로 아빠의 개인 연무장으로 향했다.
‘어라? 없네?’
혹시 몰라 집무실로 가보았다.
“어? 아바마마가 집무실에 계시네요?”
“……황제가 집무실에 있는 것이 이상한 것이냐?”
생소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이상한 건 아니었다.
“근데 진짜 이상한 부분이 있기는 하네요. 왜 여기 아룬 공자가 있어요?”
황제와 견습 기사가 왜 독대하고 있는 건지?
신분상 둘이 한자리에 있기는 어려운 일인데.
‘아룬은 약간 곤란한 모양새인데?’
나는 아룬에 대해 꽤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아룬은 절대 괴롭히면 안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혹시 아바마마가 아룬 공자를 괴롭히고 있는 상황인가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