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58)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58화
그림자가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사람이라면 저기에 꼬리 형상의 그림자가 보일 리 없잖아?’
꼬리가 양옆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보호자를 만난 강아지처럼.
비록 그림자기는 했지만 분명히 그랬다.
아룬이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방금 분명…….”
다시 한번 그림자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사람의 형태였다.
나는 두 눈을 비벼보았지만 변화는 없었다.
‘분명 김벌꿀의 꼬리였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다.
꼬리가 어떻게 흔들리는지.
어떤 각도로 흔들리는지.
얼마나 세차게 흔들리는지.
그래서 그림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방금 그 꼬리의 형상은 김벌꿀의 형상이 틀림없었다.
‘벌꿀이가 많이 보고 싶은가 보다.’
그러니까 이렇게 헛것이 보이지.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룬이 나와 약간 떨어진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아빠를 대할 때와는 다르게 제법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여 하실 말씀이 있을 때는 언제든 편하게 말씀하세요.”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아빠는 아룬이 못마땅한 듯했다.
“열두 살.”
“아룬입니다, 폐하.”
“내가 너더러 나의 말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라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폐하께서 저보고 폐하의 말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말라 명하신 적도 없습니다.”
와, 말하는 거 보고 있으면 조금 더 정중한 비아톤 경 같았다.
그래서 아룬에게 묘하게 정이 갔다.
잘생겨서 그런 거 아니다, 절대로, 진짜로, 정말로.
“앞으로는 내 말을 해석하지 말도록.”
“명이라면 받들겠습니다만…….”
“받들겠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빠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와, 대단해.
아빠의 표정을 저렇게 나쁜 방향으로 변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비아톤 선생님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한 명이 더 추가되었다.
확실히 남주다웠다.
“무엇이 말이냐?”
“제가 폐하의 의중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구체적으로 구술하면, 황녀님께서도 폐하의 진심을 좀 더 쉽게 헤아릴 수 있을 텐데요.”
만약 비아톤 선생님과 정말 비슷한 성격이라면 아빠도 더 이상 참지 않을 거다.
비아톤 선생님한테 하듯 슬슬 검을 뽑을 때가 됐다.
‘응?’
근데 검을 뽑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수긍하는 느낌이었다.
아룬이 희미하게 웃었다.
“폐하의 진심이 황녀님에게 닿도록 열심히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네 자의로 하는 것이다.”
“물론입니다. 폐하의 진심이 황녀님에게 닿는 숭고하고 고결한 작업에 그 어떤 강압이나 강요가 들어갈 수는 없는 법이겠지요. 저는 순전히 제 자의로, 폐하와 황녀님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부녀의 사랑이 싹틀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아빠는 말 저렇게 길게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짧고 간결하게 탁탁 끊어내는 거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아룬은 아빠를 아직 덜 파악한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아빠의 표정은 무척 매서웠다.
그런데 마력을 통해 전해지는 아빠의 마음이 조금 이상했다.
‘흡족해하고 있어?’
이상한 일이었다.
* * *
아룬이 말했다.
“황녀님은 세르몬 황자님이 밉지 않습니까? 그때, 아주 큰 일이 있었다 들었는데요.”
아룬은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했다.
용의 자아를 깨워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사벨을 영영 못 볼 뻔했다.
전후 관계야 어찌 됐든 김벌꿀에게 있어 세르몬은 원수 그 자체였다.
“그건 오빠 잘못이 아니었으니까요.”
“……굳이 억지로 용서할 필요는 없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엄마, 아빠의 탓이라고 생각해요.”
이사벨은 슬쩍 론의 눈치를 살폈다.
언젠가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화 안 내시려나?’
다행히 론은 묵묵히 이사벨의 말을 듣기만 했다.
이사벨은 조금 더 용기를 얻었다.
“아빠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았고, 엄마는 아들을 방치했었어요.”
“…….”
이사벨은 다시 한번 눈치를 살피며 론에게 물었다.
“제가 너무 무례한가요?”
“아니.”
론은 화가 나지 않았다.
이사벨에게는 화를 낼 수 없는 병에 걸린 느낌이었다.
“속상한 일이지만, 이미 지난 일은 어쩔 수 없고…….”
“…….”
“이제부터라도 아빠가 세르몬 오빠를, 아니, 모두를 사랑해 주면 좋겠어요. 엄마처럼요.”
세르나는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아이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아이들과의 시간을 최대한 보내려 노력 중이었다.
다만, 세르몬은 세르나에게 극단적인 적개심을 보이는 상태.
카만은 그럭저럭 그 사랑을 받아들이려고 했고, 미하엘은 아직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저는 아빠한테 꼭 알려주고 싶었어요.”
“무엇을 말이냐?”
“모든 자식에게는 부모님의 애정과 관심이 필요해요.”
예전에는 이사벨도 용기가 없어서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저 제 한 몸 지키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머리를 기대고 있는 어깨에서 마력이 전해진다.
그 마력 안에는, 말로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예전에는 아빠가 무서워서 이렇게 말하지 못했어요. 그때는 매일매일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쓸모 있는 아이가 되려고 노력했어요.”
“…….”
“그렇지만 이제는 달라요. 아빠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껴지거든요.”
“…….”
평생 검만을 수련해 온 론은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잘 몰랐다.
그냥 침묵을 지키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니까 오빠들한테도 사랑을 조금만 나눠주세요.”
이사벨이 방긋 웃었다.
“그래도 역시 저를 제일 많이 사랑해 주면 좋겠지만요.”
“…….”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룬은 희미하게 웃었다.
아룬의 세상 속에서 이사벨은 오늘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평생 지켜주고 싶을 만큼.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던 론이 입을 열었다.
“나는 그런 게 어색하고 어렵다.”
솔직히 자신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사랑 넘치는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또한 어린 시절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가 이렇게 변한 것은 이사벨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이사벨이 론의 변수였다.
그러니 그 변수 앞에서만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내 평소의 모습이 일상이고, 너를 대할 때의 내 모습이 비일상이다.”
론은 제 스르로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물론 이사벨의 말대로 노력은 해보겠지만 그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네가 그들을 많이 아껴주면 되지 않겠느냐?”
론 자신이 천만 번 노력하는 것보다, 이사벨이 한 번 웃어주는 것이 더 나았다.
세르몬도, 카만도, 미하엘도.
아버지인 자신과 함께 있을 때보다 동생인 이사벨과 함께 있을 때 훨씬 행복해 보였다.
이사벨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제가 계속 함께 있을 수는 없잖아요.”
이사벨의 시간은 이제 10년도 남지 않았다.
“그러니까 부탁할게요, 아빠.”
쿵!
론은 심장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 * *
맹렬한 한기가 불어닥쳤다.
하늘섬의 주인, 북부대공 로베나였다.
“아니, 황제 폐하, 제정신입니까?”
“뭐가?”
아룬이 이사벨 앞에 섰다.
로베나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냉기를 막아주기 위함이었다.
“하얀 고래 직속 엘리트를 30명이나 하늘섬에 풀었다면서요?”
“그래, 통보했잖아.”
“저는 허락한 적 없는데요?”
“보통 통보에 허락을 구하던가?”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 부딪혔다.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일의 전말은 이러했다.
1. 이사벨이 찾고 싶은 사람이 있다. (물론, 그 이유는 황당했지만 론에게 그다지 상관없는 듯했다.)
2. 론은 이사벨을 돕고 싶었다.
3. 그래서 황궁 직속, 하얀 고래 기사 30명을 하늘섬에 투입했다.
4. 이후 로베나에게 통보했다.
로베나가 말했다.
“이거 외교적으로 엄청 큰 문제라는 거 알죠?”
하얀 고래 기사단은 황궁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정보집단…… 이라고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정보를 취급하는 황궁의 대표 단체인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적진에 몰래 파고들어 요인 암살하거나 적의 치명적인 약점을 캐거나, 적진까지의 공격로를 미리 확보하는 무력집단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들은 한 명 한 명이 군사 전략자산이었다.
그런데 무려 30여 명이 하늘섬에 투입되다니, 하늘섬의 주인 입장에서는 화가 나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사적인 행사다. 신경 안 써도 돼.”
“사적인 행사에 하얀 고래 기사단을 투입한다고요? 아룬, 너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냐? 폐하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네가 곁에 있었으면 말렸어야지.”
아룬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뜬금없이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어머니, 한기는 조금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뭐?”
“황녀님이 추워합니다.”
“…….”
로베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 분노도 사그라들었다.
“그니까 지금 뭐가 중요한지 모르겠느냐?”
게다가 황녀는 전혀 추워하고 있지 않았다. 그냥 너무 멀쩡한 상태였다.
“한기를 거두어 주십시오.”
아룬의 눈빛이 너무 단호해서 로베나는 마력 방출을 멈추었다.
그제야 아룬이 다시 말했다.
“정말로 사적인 일이 맞습니다. 하늘섬에 대한 어떤 정치적ㆍ군사적 공작이 없을 것입니다.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보증 함부로 서면 큰일 나. 네가 아무리 내 아들이라도 말이야.”
“알고 있습니다.”
“하아.”
로베나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좋아요. 어찌 된 일인지 사정을 좀 자세히 들어보죠.”
얘기를 들은 로베나는 허- 하고 웃었다.
“설마하니, 진짜 꿈 때문에 이 짓을 했다고요? 꿈에서 본 걸로 만든 몽타주 하나만 덜렁 가지고요?”
“그렇다.”
“황실 최고의 고급 인력들을 풀어서요?”
“그래.”
“그런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 하늘섬에 있었으면 제가 못 찾았을 것 같아요?”
“…….”
“그런 사람이 하늘섬에 있을 리가 없잖…….”
그때, 하얀 고래 기사단장 ‘가일롭’이 모습을 드러냈다.
“찾았습니다, 폐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