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59)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59화
“그런 자가 진짜 있었단 말이야?”
로베나 언니는 자기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
“폐하, 저도 같이 가게 해주시죠?”
“싫다.”
“왜요?”
“그냥.”
이유는 없어 보였다.
아빠는 로베나 언니가 그냥 싫은 것이 틀림없었다.
“왜요? 제가 딸과의 데이트를 방해하…….”
로베나 언니의 말을 듣지 못한 나는 아빠 손을 꼭 붙잡았다.
아빠 손을 잡은 아주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었고 그냥 잡아봤다.
나이를 더 먹으면 이것도 어려울 거 같아서.
“아빠. 로베나 언니랑 같이 가면 좋지 않겠어요?”
“좋다.”
이렇게 갑자기 허락해 주는 건 나도 예상 못 했던 건데.
“이유도 안 듣고요?”
“좋다.”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이걸 기분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래도 나는 일단 논리적으로 얘기를 꺼내기는 했다.
“여기는 아빠 얼굴은 모르는 사람 많아도 로베나 언니 얼굴 모르는 사람은 없잖아요. 같이 가면 여러모로 유리하고 편할 거예요. 그게 훨씬 효율적이고요. 하늘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과 함께하는 건 우리한테도 좋잖아요?”
아빠는 내 논리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제대로 듣지도 않고 그냥 좋다고 했다.
로베나 언니는 어이없다는 듯 허- 웃었다.
“뭐가 그렇게 좋다는 거예요?”
“좋다.”
“그러니까 뭐가요? 제가 동행하는 거요? 아니면.”
로베나 언니의 눈길이 내 손에 닿았다.
“어휴. 말을 말자.”
아무튼 우리는 가일롭 경의 안내를 받아 이름 모를 산맥으로 향했다.
거의 길이 없다시피 할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단 말이야?
진짜로?
……라고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구석진 산골이었다.
가일롭 경이 앞장서서 걸으며 약간 설명해 줬다.
“하얀 고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해당 마을이 생긴 지는 불과 1년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마을은 아니리라 짐작됩니다.”
“계속 해봐.”
“마을의 형태를 띠고는 있으나 하나의 종교집단이라 보시면 이해하기 편할 것 같습니다. 로베나 대공의 탄압을 피해 깊은 산으로 도망친 것 같습니다.”
“내 탄압?”
“예. 1년쯤 전에 사이비로 규정했던 마리안교의 교도들입니다. 기억나십니까?”
“글쎄. 그런 놈들이 워낙 많아서. 억울한 경우던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 사이비로 규정했지?”
“그것이…….”
가일롭 경은 내 눈치를 살폈다.
열 살인 내가 듣기에는 조금 혐오스러운 내용이 있다고만 표현해 줬다.
잘은 모르겠지만 정말로 괴상한 사이비 종교일 것이다.
미디어가 그렇게 발달했던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사이비 종교들이 있었는데, 여기는 훨씬 더 심하다.
정말 산골 오지의 사람들은 마법사를 보면 신인 줄 아는 경우도 있다.
이 세상은 정보의 빈부격차가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니까.
“됐어. 듣지 않아도 알겠군.”
로베나 언니는 더 이상 보고를 듣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곧 도착합니다.”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 * *
우리가 도착한 마을은 인구수가 100명도 안 되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 광장.
그곳에 밧줄로 결박당한 수십 명의 사람이 마구 소리치고 있었다.
“천벌을 받을 것이다!”
“신이 두렵지도 않느냐!”
내가 물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건가요?”
“너무 극렬히 저항하여 일단 묶어놓았습니다.”
“왜 저렇게 저항하는데요?”
“저들의 교주인 아크몬을 체포했기 때문입니다.”
로베나 언니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크몬이라면, 내가 아는 그 약재상?”
“예. 맞습니다.”
“꽤 영향력 있는 녀석이잖아. 걔가 왜 여기 있어? 걔가 교주라고?”
“예. 약초로 주민들을 중독시켰습니다. 그리고 이 작은 세상에서 교주 노릇을 하고 있었고요.”
나는 사람들을 한 번씩 살펴봤다.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악을 쓰고 있었는데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황녀님께서 찾고 싶다던 마리아는 저곳에 있습니다.”
가일롭 경이 나를 안내했다.
통나무로 지은 작은 집이…… 아니라, 감옥이었다.
창문 대신 쇠창살이 달려 있었다.
입구는 아주 작아서 허리를 숙여서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빛도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대낮인데도 집 안에는 촛불이 켜져 있었다.
‘저 사람이 마리아?’
구석에 벌벌 떨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머리는 산발이었고 몰골은 꾀죄죄했다.
손목과 발목에는 쇠로 만든 구속 도구를 차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마리아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두 손을 싹싹 빌며 엎드렸다.
나는 천천히 마리아에게 다가갔다.
“제발, 제발 오지 마. 사, 살려줘. 나, 나는 악마가 아니에요. 나, 나는 착해요.”
“괜찮아요. 아무도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
그러나 마리아는 내 말을 듣지 못했다.
손톱으로 벽을 벅벅 긁으면서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하고 소리쳤다.
극도의 공포에 젖어 있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다가가지는 못했다.
우리는 일단 통나무집 밖으로 나왔다.
“일단 자세한 얘기를 들어볼게요, 가일롭 경.”
* * *
가일롭 경은 아빠의 눈치를 살폈다.
분위기로 보아하니 아빠는 이미 모든 보고를 받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이 마을에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졌던 것 같았다.
“아빠. 저도 알고 싶어요. 저도 이제 열 살인걸요.”
“…….”
아빠 눈에 나는 아직도 어린아이고, 어린아이에게 이 끔찍한 세상을 알려주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이럴 때에 아빠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카드가 내게 있었다.
“자꾸 그러면 저 그 말 할 거예요.”
“무슨 말?”
“저 열 살이라니까요?”
“…….”
“제가 아빠보다 훨씬 더 어른이거든요?”
“…….”
“왠지 알아요?”
“알고 싶지 않다.”
아빠는 내 말을 유추한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아빠보다 어른이라고 한 건, 내가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았기 때문이다.
아빠는 아마 한 100살까지는 살 테고, 아직 절반도 살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더 어른이다…… 라는 논리였다.
내가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럼 나한테도 알려줘요. 마리아를 찾고자 한 사람은 저잖아요. 상황을 알아야 마리아를 데려가든 말든 하죠.”
결국 가일롭 경이 내게 이런저런 얘기를 다 해줬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자기 몸에 악마의 피가 흐른다고 세뇌당한 거죠?”
“그렇습니다.”
“밖으로 나가면 성기사들에게 체포당해 죽을 것이라고도 세뇌당했고요.”
“예.”
“이 마을 사람들은 사실 주민들이 아니라 마리아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일종의 파수꾼들이고요.”
“예. 그렇습니다.”
마을이 인위적으로 조성되었다더니 사실상 마리아 한 명을 감금하기 위한 감옥이었던 셈이었다.
“이걸 만든 사람은 하늘섬의 유명 약재상 아크몬이란 자고요.”
“예.”
“그리고 뻔뻔하게 여기 들어와서 마리아의 유일한 편인 척 다정하게 대해주었고요? 사실은 마리아가 가진 치유력을 홀로 독차지하고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그런 거 거라고요?”
마리아를 세뇌하고 감금한 것도 모자라서, 거기에 기만과 능욕까지 했다.
“마리아는 자기가 가진 힘이 진짜 악마의 힘인 줄 알고 두려움에 빠져 살았고요. 자기를 구해주고 숨겨준 아크몬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요.”
“모두 맞습니다.”
얘기를 듣다 보니 내 머릿속이 피폐해지는 느낌이었다.
사실 가일롭 경도 내 나이에 맞춰서 최대한 순화하고 있는 걸 텐데도 말이다.
소설 속에 이렇게까지 자세한 내용은 서술되어 있지 않았었다.
아마 전체 연령가라서 그랬던 것 같다.
“일단 저들과 마리아를 안전한 곳으로 옮길 수 있을까요?”
* * *
로베나 언니는 투덜거렸다.
“안전한 곳이 왜 우리 집이죠?”
“하늘섬에서 그보다 안전한 곳이 있나?”
“집주인인 제 의사는요?”
“그 집주인은 아량이 매우 넓고 풍족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더군.”
“누가 그래요?”
“내가.”
로베나 언니는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비아톤 녀석과 친구가 아니라니까.”
로베나 언니가 내 머리를 아주 살짝 콩! 쥐어박았다.
“네 말이니까 들어주는 거야. 대공저가 무슨 보육원도 아니고.”
“헤헤.”
“웃지 마. 정들어.”
퉁명스레 말을 하고는 있지만 언니는 딱히 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수십 명의 사람을 데리고 이동하는 것에는 시간이 꽤 걸렸다.
그나마 테이사벨 이동 관문이 설치된 구간이 있어서 생각보다는 빨리 대공저에 도착했다.
로베나 언니가 말했다.
“여기서부턴 우리 애들이 관리할 테니까 그 살벌한 흰 고래 친구들은 황궁으로 돌려보내죠?”
“하얀 고래다.”
“아무튼요.”
하얀 고래 기사분들이 아빠에게 경례했다.
호화롭다 호화로워.
정말 잘생김의 세계구나.
나도 모르게 약간 흐뭇한 얼굴이 된 것 같았는데, 두 남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빠랑 아룬이었다.
“왜, 왜요?”
“아무것도 아니다.”
아빠는 어딘지 모르게 약간 불편한 모양새였고.
“아룬 공자는요?”
“예?”
“방금 저 봤잖아요.”
“안 봤습니다.”
아룬 공자는 평소보다 조금 무뚝뚝해 보였다.
둘이 싸웠나?
아니, 애초에 싸움이 성립되지는 않을 테니까 음, 아빠가 또 괴롭혔나.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또 이유를 모르겠지만 하얀 고래 기사들은 임무 중 보안을 위하여 하얀 가면을 쓰는 규칙이 생겼다.
조금 아쉽지만 보안을 위해서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얼마 후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오래간만에 정말 잘 차려진 음식들을 대접받았다.
식사가 끝나고 간단한 티타임을 가졌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로베나 언니가 말했다.
“강력하게 처벌해 달라고?”
“네. 정말 엄청 강력하게요.”
“의외네. 내가 아는 햇살 황녀님이라면 악당의 숨겨진 속사정을 헤아릴 줄 알았는데. 흐음. 아주 흥미로워. 우리 봄 님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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