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60)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60화
햇살 황녀님이라든가, 봄이라든가.
저런 낯간지러운 말을 듣고 있자니 조금 민망했다.
그렇다고 ‘저는 햇살도 아니고 봄도 아니에요’라고 굳이 나서서 항변(?)하는 것도 좀 이상한 일이었고.
로베나 언니가 말을 이었다.
“그렇잖아. 넌 살인자도 사랑할 것 같은 아이니까. 넌 네 수명을 빼앗으려고 했던 나한테도 살갑게 굴었어. 난 네가 모두에게 따뜻한 사람인 줄 알았거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모두에게 따뜻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여태까지는 그랬잖아?”
“그야 모두가 저한테 좋은 사람이었으니까요. 잔뜩 사랑해 주고 싶을 만큼요.”
내 주변에 이렇게 좋은 사람이 많아질 줄 나도 몰랐다.
여태까지 만난 사람들은 다 너무 좋았다.
이 세상이 선물로 느껴질 만큼 말이다.
“악한 자까지 사랑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기에는 제 시간이 너무 부족하니까.”
“흐음.”
로베나 언니는 아빠를 바라보았다.
내 옆에 앉아 묵묵히 식사하던 아빠가 로베나 언니와 눈을 마주쳤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입꼬리 올라간 거 다 보이거든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폐하는 착각이 너무 심해요. 아시죠?”
아빠와 마찬가지로 로베나 언니도 중간 과정을 다 자르고 결과만 툭 얘기할 때가 종종 있었다.
아마도 이 세계 절대자들의 공통점인 것 같았다.
대충 아무렇게나 말해도 아랫사람들이 찰떡같이 이해하니까 저렇게 되나 보다.
그런데 아빠와 마주 앉은 아룬이 스푼을 내려놓고 말했다.
“딸아이가 똑 부러져서 뿌듯한 것이 아닙니다. 황녀님이 착하면 착한 대로 뿌듯할 것이고, 똑 부러지면 똑 부러진 대로 뿌듯할 것이고, 밥을 잘 먹으면 밥을 잘 먹는 대로 뿌듯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똑 부러져서 뿌듯하다고 착각하지 말아달라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냥 뿌듯한 거니까요…… 라고 해석해 보았는데 어떻습니까?”
저게 또 저렇게 해석이 된다고?
나는 황당한 얼굴로 로베나 언니와 아빠의 얼굴을 번갈아가면서 쳐다봤는데 아무래도 저 해석이 맞는 것 같았다.
아빠는 확실히 납득한 것처럼 보였다.
“확실히.”
왜 저렇게 완벽하게 납득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때, 하늘섬 소속의 기사 한 명이 우리를 찾아왔다.
“아크몬이 황녀님을 꼭 뵙고 싶다고 전해달랍니다.”
“그게 뭔 개소리야? 그냥 혀를 잘…….”
방금 되게 살벌한 소리가 들린 거 같은데.
로베나 언니는 나를 힐끗 보고서 말을 이었다.
“잘 다독여서 꿀을 먹여봐.”
“……예? 그게 무슨…….”
기사는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내가 들어도 좀 이상한 말이기는 했다.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어라, 뭐 그런 걸로 이해하면 되나?
하늘섬 특유의 문화인가 싶었다.
그때, 좋은 생각이 났다.
“제가 한번 만나볼게요.”
“야. 그 새…… 아니, 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을 줄 알고?”
“언니랑 같이 가면 되죠?”
“…….”
“언니는 하늘섬에서 가장 강하잖아요.”
“크흠, 그건 그렇지.”
로베나 언니는 약간 뿌듯해진 것 같았다.
확실히 검을 다루는 사람들은 강하다는 칭찬에 무척 취약했다.
“언니가 지켜주세요.”
“네 마음이 정 그렇다면.”
나는 차원이격결계도 충분히 익혔고, 혹시 모를 위험은 막아낼 수 있다.
“근데 왜 아크몬을 직접 만나려고 하는 거야?”
“마리아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려면 아크몬과의 대화가 선결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마리아는 식음을 전폐하고 혼절을 이어가는 상태.
결국 마리아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아크몬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았다.
“제가 시작한 일이니까, 제가 해볼게요.”
나는 아크몬과 직접 만났다.
뭐랄까.
미묘하게 황급히 씻기고 깔끔하게 만든 것 같은 모양새였다.
험한 꼴을 많이 당한 모양인데 하늘섬 기사들이 좀 많이 터프한 것 같았다.
꽁꽁 결박된 아크몬은 내게 말했다.
“소문대로, 무척 아름다우십니다.”
“나를 보고 싶다고 했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나는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카메라 앞에서 매일 하던 게 이거라서 이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가면을 쓰는 것에 익숙한지라 다정하게 물었다.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요)?”
* * *
아크몬이 말했다.
“황녀님께 긴히 제안드릴 것이 있습니다.”
“하늘섬의 약재상이 저한테요? 정말 흥미로운데요.”
햇살 황녀라더니 그 말이 딱이었다.
목소리에 따뜻함이 녹아들어 있었고 표정은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았다.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의 실질적인 주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네. 그렇죠.”
“대륙의 유통망은 이미 지배하고 계시지요. 대단하십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제 얼굴에 금칠을 해주시는 걸까요?”
이사벨이 또 따뜻하게 대꾸해 주자 아크몬은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그가 보기에 이사벨은 동아줄이었다.
“테이사벨 이동 관문의 전 대륙적 보급. 유리모르 제과의 디저트와 라면의 대량 생산을 통하여, 대량 생산에 대한 노하우도 이미 충분히 축적하셨을 것입니다. 거기에 대륙의 유통은 이미 지배하고 계시지요. 게다가 현 빌로티안의 국력은 마법 연방을 압도할 정도로 강대합니다.”
국력 자체는 늘 마법 연방을 압도했다.
다만, 빌로티안이 지나친 살생과 전쟁을 피해왔을 뿐.
인류의 발전과 상생을 위하여 마법 연방과 공존하는 쪽을 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대륙에 대한 신전의 영향력은 여전합니다. 빌로티안은 미로텔을 무릎 꿇릴 수는 있으나 신전을 굴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요약하자면, 내가 가진 유통망과 대량생산 기술. 그리고 아크몬 경이 만들어낸 신비의 포션을 접목하여, 신전의 영향력을 능가할 수 있을 만큼의 포션 사업을 시작하자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바로 그것입니다! 과연 영재시군요.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아시니, 이것은 빌로티안의 큰 축복일 것입니다.”
“확실히 그럴듯한 제안이네요.”
정말로 신비의 포션을 대량으로 제작할 수 있고, 그것을 전 대륙에 유통할 수 있다면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가 가진 기술을 통해, 황녀님을 대륙 최고의 부호로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달콤한 제안이네요. 진지하게 생각해 볼게요. 그런데 아크몬 경. 그 청사진을 제대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마리아의 존재가 필수적이겠지요?”
“물론 그렇습니다.”
“저는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의 실질적인 대표로서, 마리아와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지금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에요. 무슨 말인지 알고 있죠?”
“예. 알고 있습니다.”
아크몬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금 겪고 있는 고초는 더 큰 도약을 위한 시련처럼 느껴졌다.
나르모르 코퍼레이션과 손을 잡을 수 있다면 훨씬 높은 곳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을 엿본 아크몬이 자신 있게 말했다.
“마리아는 제 말을 무척 잘 듣습니다.”
그렇게 세뇌했으니까.
“제가 말하면 황녀님과의 대화도 어느 정도는 가능해질 것입니다. 마리아를 불러주십시오.”
“그럼, 부탁할게요.”
“맡겨만 주십시오.”
이사벨이 화사하게 웃었다.
평소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지만, 아크몬은 알지 못했다.
* * *
이사벨은 아크몬과의 대화를 끝내고서 호흡을 가라앉혔다.
그자에게서는 마리아에 대한 미안함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을 중독시키고 마리아의 능력을 착취하는 것에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너무 역겨워.’
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사업 얘기를 하면서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복도를 걷던 이사벨이 말했다.
“일이 마무리되면 강력하게 처벌해 주세요.”
“어느 정도로 강력하게?”
“제일 무섭게요.”
“흐음. 그럼 내 동생한테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동생이 있어요?”
“어. 근데 걔가 너를 제법 아끼거든?”
“저를요?”
“그래. 근데 걔가 피아식별이 엄청 확실한 애야. 내 편이면 진짜 든든한데, 적이면 아주 곤란한 타입이란 말이지?”
“전 그런 사람 좋아요.”
“그럼 처벌에 관한 건은 걔한테 맡기도록 할게. 아마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형벌이 될 테니까.”
예전 5년의 수명을 담보로 한 시험 이후, 어쩌고 흑염룡 카델리나는 이사벨에게 마음을 열었다.
‘솔직히 그 정도면 며느리로 인정해야지, 별수 있어?’
‘용한테 며느리가 어디 있냐? 용이면 제발 용답게 사고할 수는 없어?’
‘용다운 게 뭔데?’
‘며느리니 뭐니 하는 건 아무리 봐도 인간의 풍습이잖아.’
‘아무렴 어때. 내가 다 이기는데.’
이사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주세요. 꼭이요.”
이후 며칠이 흘렀다.
그사이, 아크몬이 마리아를 만나 이사벨 황녀님은 좋은 분이다, 착한 분이다, 얘기를 나눠도 될 거다, 그분은 믿을 만한 분이다, 라는 말을 여러 차례 해주었다.
덕분에 마리아는 예전과 같은 극도의 흥분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사벨은 마리아가 머무는 방을 매일 찾아갔다.
“좋은 아침이에요.”
“…….”
마리아는 침대 끄트머리에 쪼그리고 앉아 벌벌 떨었다.
예전만큼 악을 쓰고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이사벨이 두려운 모양이었다.
“마리아. 아직도 내가 많이 무서워요?”
“…….”
둘째 날까지는 대답을 아예 하지 않았다.
셋째 날, 마리아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넷째 날, 마리아는 ‘무서워요’라고 말했다.
다섯째 날, 마리아는 ‘혼자 있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여섯째 날, 이사벨은 마리아를 찾지 않았다.
일곱째 날, 이사벨은 유리가 만든 디저트를 들고 마리아를 다시 찾았다.
마리아는 이사벨 앞에서는 디저트를 먹지 못했으나 다음 날 보니, 포장지가 모두 뜯어져 있었다.
여덟째 날, 마리아가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