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62)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62화
로베나 언니가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진심이야?”
“네. 신관들도 지금은 도저히 답이 없대요.”
아룬이 어떤 방식으로 마리아를 정상으로 돌려놓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황궁 최고의 인력들이 동원되어서 살펴주고 있다지만, 마리아는 아크몬이 만들어놓은 가짜 세계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오히려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다.
“기적이 필요해요.”
그리고 나는 기적을 일으키는 방법을 알고 있다.
내 수명을 조금 사용하여 신관들의 치유력을 일깨우면 마리아의 정신세계를 복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로베나 언니는 내 말에 동의해 주지 않았다.
“네가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잖아.”
“세르몬 오빠에 대한 소식을 들었어요.”
“…….”
“언니도 들었죠?”
“입단속 철저히 하라고들 했는데. 도대체 어디서 새어 나간 거야?”
상황이 심각한 사람은 마리아뿐만이 아니었다.
원래 일주일에 한 번 나를 만났던 세르몬 오빠는 마리아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며 발작하다가 이내 자해를 시도했다고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세르몬은 점점 미쳐가고 있다고 했다.
“조금만 늦게 발견했어도 죽었을 거래요.”
“…….”
“단순히 아크몬이 만든 포션으로는 해결이 안 돼요.”
그걸로는 한계가 있다.
마리아가 직접 그 치유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니까 나는 마리아를 낫게 해야 해요. 마리아를 위해서, 세르몬 오빠를 위해서.”
그리고 내가 떠나고 남겨지게 될, 선물이 되어준 많은 사람을 위해서.
마리아를 보면서 확실히 깨달았다.
소설 속에서는 짤막한 한 줄로 서술되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그 한 줄을 설명하기 위한 수많은 삶을 살아낸다.
내 주변 사람들도 그렇겠지.
나는 9년쯤 지나면 이 세상을 떠나겠지만 내 주변의 사람들은 그들의 시간을 살아가게 될 거다.
‘마리아는 남주의 동료였으니까.’
그 능력만큼은 보장된 영웅이었다.
그런 사람이 황궁을 위해 일한다면?
그러면 우리 가족에게도 아주 큰 도움이 될 거다.
“저는 쓸모 있는 아이가 되려고 엄청 노력했어요.”
“…….”
“그런데 쓸모없는 아이여도 괜찮더라구요.”
쓸모가 있든 없든 많은 사람이 나를 사랑해 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게 감사하고 행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더욱 쓸모 있는 아이가 되고 싶어졌어요.”
어차피 떠나게 될 내가 조금 더 오래 사는 것보다는 마리아를 회복시키는 것이 훨씬 쓸모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유리가 함께 연구한다면 아크몬의 포션보다 더 질 좋은 포션을 만들 수 있고.’
그러면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의 영향력은 훨씬 더 확대될 거다.
남겨질 가족들에게 이보다 좋은 선물은 없겠지.
“그때, 그 신관님을 만나게 해줘요.”
“…….”
“나르비달의 낙인을 이용하여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던 노신관님이요.”
생각을 완전히 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기적이 필요해요. 나를 위해서.”
* * *
“안녕하신지요, 저를 소개하겠습니다. 제 이름은 날카로운 북풍과 매서운 혈류의 대현자, 카델리논입니다.”
나는 저 거창한 설명을 듣자마자 푸하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노신관님은 내 웃음에 약간 예민하게 반응했다.
“왜 그러시죠?”
“그거 아니잖아요.”
“예?”
“첨예한 북풍과 차가운 혈류의 대현자잖아요.”
“…….”
나와 함께 온 로베나 언니가 기가 차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그 쓸모없는 걸 외우고 있었어?”
“저절로 외워지던데요?”
노신관님은 크흠, 헛기침을 하고서 다시 수정했다.
“첨예한 북풍과 매서운 혈류의 대현자…… 였죠?”
“아니요! 첨예한 북풍과 차가운 혈류의 대현자요. 왜 본인 이명을 기억을 못 하시는 거예요?”
마치 그냥 당시에 있어 보이는 걸로 급조한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재미있는 사람이다.
“저는 그 이름이 멋있어서 외우고 있었는데. 막상 본인은 헷갈리고 있다니 조금 실망이네요.”
로베나 언니는 더욱 황당하다는 듯 입을 쩍 벌렸고, 노신관님도 눈을 크게 떴다.
“그때 그게 거짓말이 아니었단 말입니까?”
“전 거짓말 잘 못 해요.”
“후후후후.”
노신관님은 한참 웃다가 로베나 언니를 바라보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봤지? 거봐? 진짜라니까? 황녀님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한 거라고?”
“……놀랍게도 그런 것 같네.”
“언…… 아니, 대공님이 틀렸어. 사과해.”
“정체성을 좀 확실히 해주면 좋겠군, 카델리논 신관.”
로베나 언니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사실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저 둘은 예전부터 깊은 친분이 있어 보이니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둘만 아는 둘만의 대화법 같은 거겠지 뭐.
나는 노신관님과 30여 분 대화를 나누었다.
“맞아요. 기적이 필요해서요. 저기…….”
마리아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마리아는 지금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 있었다.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입에는 재갈을 물렸고 온몸을 꽁꽁 묶어서 관 형태의 상자 안에 눕혀놓은 상태였다.
“많이 아픈 사람이 있거든요.”
“어디 한번 보겠습니다.”
노신관님이 탁! 손가락을 튕기자 상자의 뚜껑이 둥실둥실 떠올랐다.
응?
마법을 사용하는 신관이라니, 소설 속에서 못 봤는데.
역시 소설 속에는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잔뜩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흐음.”
노신관님은 또 30여 분간 말없이 마리아를 살펴보았다.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군요.”
“회복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일단, 얘기를 좀 더 나눠볼까요?”
“이미 한 시간이나 대화를 나눴는데요?”
“조금 더 얘기를 해봅시다.”
어쩐지 표정이 좀 심각한 것처럼 보였다.
* * *
이사벨이 카델리논과 만나기 전.
이들을 안내하던 어린 신관이 말했다.
“대공님과 황녀님. 그리고 치료가 필요한 당사자 이외에는 출입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룬은 잠시 다른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서 아룬은 명상에 잠겼다.
‘익숙한 마력이 느껴진다.’
용은 용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아룬은 어머니 카델리나의 마력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티를 내면 안 되겠지?’
지금의 아룬은 대공의 아들이고 인간이니까.
아직 아룬은 어린 용이고, 사람의 기억을 온전히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
얼마 후, 이사벨이 카델리논 신관과 함께 그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아룬이 물었다.
“저희 어머니는 어디 가셨습니까?”
“그대 어머니는 여기…… 가 아니라, 잘생긴 그대는 이름이 뭐지?”
아룬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을 뻔했다.
어머니가 좀 허술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어머니가 허술할 리 없지.’
성룡은 완벽에 가까운 존재다.
저런 실수를 할 리 없고, 저건 아마도 여전히 아들인 자신을 떠보기 위한 행동일 것이었다.
“제 이름은 아룬입니다.”
“오, 누구 아들인지는 몰라도 아주 빼어나게 눈부신 외모를 가졌구먼. 눈빛도 아주 맑고 깨끗해. 엄마가 아주 흡족하겠어. 어머니가 누구신가?”
“로베나 대공입니다.”
“허허허. 아주 잘난 아들을 뒀구먼.”
어쩐지 카델리논 신관은 아주 흡족하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아룬을 바라보았다.
아룬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카델리논을 힐끗 보고서는 시선을 돌렸다.
“내게도 따뜻한 시선을 한 번만 줘보게. 황녀님을 볼 때와 나를 볼 때, 온도 차가 너무 크지 않은가?”
“황녀님을 보는 것처럼 신관님을 보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섭섭하구먼.”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카델리논은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하여, 어느정도의 수명이 필요할지 나도 모르네. 직접 해봐야 알 것 같아.”
“대략적으로라도 알 수 없습니까?”
“하루가 될 수도 있고 1년이 될 수도 있지. 기적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데, 어쩌면 남은 수명을 모조리 쏟아부어야 할지도 몰라.”
“…….”
“표정이 무척 안 좋은데. 아룬 공자, 그대 괜찮은가?”
“……저는 황녀님의 뜻을 지지하고 존중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보기에는 주먹을 너무 꽉 쥐었는데?”
아룬은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지금 당장에라도 ‘안 돼!’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 아룬에게는 그런 명분이 없었다.
여기서 지나치게 목소리를 높이면 어머니는 분명 자신을 의심할 테고, 이사벨과 관련한 모든 기억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아룬이 물었다.
“정말로 그걸 원하십니까, 황녀님?”
이사벨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아룬 입장에서는 죽음보다 더한 형벌이었다.
“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남기고 떠나고 싶어서요.”
“제게는…….”
나한테는 그게 하나도 선물이 되지 않아.
나는 그저, 일 초라도, 단 한순간이라도, 네가 내 옆에 더 오래 있어줬으면 좋겠어.
그 말을 겨우 삼켰다.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카델리논이 아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악수나 한번 하지?”
“…….”
악수를 하는 타이밍이 영 뜬금없기는 했지만 아룬은 일단 손을 내밀었다.
혹시 자신이 흔들리는 틈을 타서, 기억을 읽을 수도 있기에 정신 방벽을 단단히 세웠다.
‘응?’
노신관이 힘을 꽉 주었다.
마치 마법사들이 서로의 마력으로 전투를 벌이는 것처럼, 강대한 마력을 이쪽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무슨 속셈이시지?’
아룬 또한 황급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력 대 마력의 싸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주변이 웅웅거리며 떨렸다.
테이블 위의 화병이 땅에 떨어져 깨졌고, 유리 장식장이 와장창 부서졌다.
그리고 카델리논은 깜짝 놀랐다.
그녀(?)의 예상보다 너무 강했다.
‘얘가 왜 이렇게 센 거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