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63)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63화
‘아직 아룡인데…… 너무 지나친데?’
지상 최강의 흑염룡이라 자부하는 카델리나의 어린 시절보다 더 강한 것 같았다.
사실상 아룡의 변신체가 이 정도 힘을 가지고 있는 게 상식적인 일은 아니었다.
성룡에 버금가는, 어쩌면 성룡보다 더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인간의 몸으로 말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카델리나로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다른 용들이 알면 굉장히 경계하고 두려워할 일이었다.
성숙하지 못한 아룡이 지나치게 큰 힘을 갖는다는 건 또다시 세계를 멸망에 몰아넣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제2의 흑염룡이 탄생할 수도 있는 거니까.
원래는 걱정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지만 카델리나는 조금 달랐다.
‘후후, 역시 내 아들이야.’
그녀는 뿌듯해졌다.
‘다른 성룡들한테는 알리지 말아야겠다.’
라비나(로베나)에게 언젠가 들키기는 하겠지만 그때는 몰랐다고 하지 뭐.
* * *
한편, 이사벨은 마력이 부딪치는 현장 속에서도 평온을 유지했다.
둘이 발산하는 마력은 이사벨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것은 카델리논과 아룬이 모두 이사벨에게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벨이 말했다.
“이게 하늘섬 남자들의 인사 방식인가 봐요. 상당히 험악하네요. 잘못했다가는 뼈도 못 추리겠어요.”
그제야 카델리논은 아룬과 맞잡은 손을 내려놓았다.
지진도 함께 멈췄다.
시간이 또 많이 흘렀다.
카델리논은 이사벨에게 여러 차례 다시 생각해 보라 권고했다.
“얼마나 수명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커다란 기적에는…….”
“커다란 기적에는 커다란 대가가 필요하다. 이미 32번 들었어요, 카델리논 신관님.”
“흠흠, 한 7번쯤 말한 줄 알았는데요.”
“아니요. 정확하게 32번이에요.”
“묘한 데서 단호하시군요.”
“숫자는 거짓말 안 하는 법이니까요.”
이사벨은 뜻을 굽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때, 아룬이 말했다.
“신관님. 제가 얘기를 한번 나눠봐도 되겠습니까?”
“흐음. 자네가?”
“예.”
“그러지. 우리 며느, 아니, 황녀님을 잘 설득해 보라구.”
아룬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며느?’
왠지 며느리라고 말하려고 한 것 같은데.
그렇지만 이 또한 어머니의 치밀한 함정일 수도 있으니 내색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윽고 아룬은 이사벨과 단둘이 남게 되었다.
“황녀님. 간곡히 드릴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네?”
아룬이 분위기를 무겁게 잡는 바람에 이사벨은 약간 긴장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룬 공자. 말을 좀 해봐요.”
아룬은 또 한참 동안 침묵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이사벨의 5년을 지킬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사벨.”
“네?”
이사벨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를 이름으로 부르라고 허락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아룬은 입을 다물었다.
말 대신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사벨의 시간, 소중해.]이사벨의 몸이 굳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글자가 너무나 익숙했다.
[오래오래 곁에 있어줘.] [제발.]이사벨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마치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정지해 버렸다.
‘뭐야?’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저 마력 문자에서 이렇게 익숙한 냄새가 나는 건지.
‘왜?’
지금 아룬의 몸에서는 익숙한 체향이 느껴지고 있었다.
김벌꿀의 체향, 달콤한 벌꿀 냄새.
‘뭔데?’
처음에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무슨…… 장난을 치고 있는 거예요, 아룬 공자.”
약간 화가 났다.
나를 상대로 너무 심한 장난을 치는 것만 같았다.
[장난 아님.] [절대 아님.]숫자도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마력도 거짓말하지 않는다.
나는 마력에 무척이나 예민했고, 저 마력이 김벌꿀의 마력과 똑같다는 사실을 이미 느끼고 있었다.
“그럼…….”
몇 가지 이상한 점들이 떠올랐다.
내 방은 7층이다.
벌꿀이는 그 방의 창문을 두드려 들어오기도 했었고, 뛰어내리기도 했다.
그건 미하엘이 맨날 하는 거라서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했지만, 사실 돌이켜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벌꿀이에게 처음 해석 마법을 걸어줬을 때도 생각이 났다.
[보호자 ♡]그때도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해석 마법이 이렇게까지 뛰어난 거였어?
그때보다 마법 실력이 훨씬 늘어난 지금에 이르러 생각해 보면 역시 이상한 일이 맞았다.
당시 내 실력으로 그렇게까지 정교한 해석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김벌꿀은…… 황궁의 보물창고에서 어떻게 도둑질을 할 수 있었던 거야?”
[대도, 김벌꿀.] [아니, 대도 아룬.]나는 홀린 듯이 아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럼 내가 안아줄 때 작아졌다가 평소에 다시 커졌다가. 내가 추워하면 또 커졌다가 다시 작아졌다가. 그렇게 느꼈던 건 전부 착각이 아니었네?”
아룬은 용이다.
소설 설정상 용은 마법의 종주이며, 모든 마법에 능통한 초월적인 존재였다.
만약 김벌꿀이 용의 화신이었다면 그 모든 것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사실 제일 이상했던 게 있었다.
유리 호수에서 정신을 잃기 직전, 나는 기이한 마력의 흐름을 느꼈다.
그것은 아마도 이동 관문과 비슷한 형태의 마법진이었다.
호수 바닥에 그것이 생성되는가 싶었다.
유추하건대, 거기서 벌꿀이가 튀어나왔던 것 같다.
“유리 호수에서 날 구하기 위해 마법을 썼던 게 너, 아니, 아룬 공자였어요?”
[인정.] [절대 인정.]모르겠다.
이 감정이.
너무 기쁜 게 맞기는 한데 왠지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너무너무 소중한 친구를 다시 만난 게 맞는데, 또 왠지 너무너무 미웠다.
“왜?”
나는 내게 가까이 다가온 아룬의 가슴을 연거푸 때렸다.
아룬은 아주 뛰어난 기사 견습생 설정이라 내가 때려봤자 아프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아룬은 무척 아파 보였다.
“왜 말을 안 하고 있었어?”
“사과할게.”
“살아 있었으면서, 왜?”
정말 오랜 시간 벌꿀이를 추모하고 추억했다.
그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래도 조금 빨리 와줄 수 있었잖아.
내가 그렇게 슬퍼했는데.
세상을 다 잃은 것만 같았는데.
“나한테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게 해도 됐었잖아.”
어느새 나는 아룬의 품에 안겨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아빠의 품보다 더 포근하고 따뜻했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
“얼른 스무 살이 되어서, 다시 만나기를 기도하고 기대했는데.”
“그래서 이렇게 훌쩍 커버린 거야?”
“몰라!”
나도 내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기쁜 건 확실한데.
정말 너무 복잡하고 오묘해서 무어라 구체적으로 정의 내리기가 힘들었다.
“……아빠나 로베나 언니는 알아?”
“알고 계실걸. 그렇지만 일단은 비밀이야.”
“왜?”
“나는 아룡이니까. 내가 기억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걸 들키면…… 모든 기억이 지워지게 될 거야.”
나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한 번 잃어봤기에, 또 잃을 수는 없었다.
“생김새가 많이 달라졌어도 김벌꿀은 김벌꿀이야.”
“맞아.”
“김벌꿀은 내 제일 소중한 친구야. 이제 절대 안 뺏겨.”
아룬이 나를 꼭 끌어안았다.
“이제는 내가 네 보호자 할게.”
아룬의 마력이, 그의 진심을 내게 전달해 주고 있었다.
나를 지키고 싶다는 굳은 다짐.
나를 잃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
“그러니까 이사벨. 다시 생각해 줘. 네 하루가 내게는 천 일 같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냥,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게 우리에게는 큰 교감이 되었다.
김벌꿀과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다시 만나서 다행이었고, 이제는 헤어지고 싶지 않고, 다시 나타나줘서 고맙고, 그런데 조금 밉고.
정말 오랜 시간, 아주 많은 감정을 나누었다.
이상하게도, 카델리논 신관님이나 로베나 대공 언니가 꽤 오랜 시간 들어오지 않았다.
* * *
내가 장난스레 말했다.
“응. 생명을 써서 기적을 일으킬 거야.”
“……제발, 이사벨.”
“아룬도 고생해 봐.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은 마음을 느껴보라구.”
“…….”
“아니, 아룬. 잘못했어.”
순간 세상에서 제일 슬픈 소년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저 예쁜 눈에 눈물이 그득 담기는 걸 보는 건, 거의 고문에 가까웠다.
“장난친 건데 그렇게 진지해지면 어떡해?”
“그게 어떻게 장난일 수 있어?”
나는 아룬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렇지만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내 하루하루가 소중한 건 맞아. 나는 남은 하루하루를 정말 알차게 쓸 생각이야.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
“그러니까 나는 기적을 일으켜야 해.”
이게 내가 최선을 다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으로 엄마와 아빠를 가지게 되었다.
남들은 다 있는데 나만 없다고 생각했던 가족들이 생겼다.
나를 햇살이라 부르며 따르는 수많은 제국민도 많아졌다.
“이 세상에 태어나 정말 과분한 사랑을 많이 받았어.”
그 사랑을 돌려주고 싶다.
마리아를 회복시킬 수 있다면, 테이사벨 이동 관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축복이 될 거다.
뛰어난 화학자인 유리와 성공한 사업가 나르모르의 협업을 통해 수많은 사람에게 치료 포션도 공급해 줄 수 있을 거다.
“권력가나 부자가 아니면, 신관의 치료를 받는 건 꿈도 못 꾸는 일이잖아. 나는 적어도, 가난을 이유로 죽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어.”
후원을 많이 받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일찍 죽었을 거다.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건 너무 서글픈 일이다.
“그래서 내가 하려는 일은 무척 가치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물론 더 빨리 떠나게 되겠지.”
그렇지만 나는 원래 빨리 떠날 사람이다.
“그만큼 더 오래오래,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 줄 거야.”
아룬이 입술을 꽉 깨무는 것이 보였다.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운 것 같았다.
저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안다.
반대로, 김벌꿀이 이런 선택을 한다고 했으면 나는 도끼눈을 하고서 반대했을 거다.
떠나는 사람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남는 사람은 떠나는 사람을 곱씹어야 하니까.
“이기적인 친구라서 미안해.”
“…….”
결국 나는 결정을 내렸다.
카델리논 신관님도, 로베나 언니도 결국 내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루 뒤.
나는 신전 중앙에 위치한 제단 위에 누웠다.
“잘 부탁드려요. 첨예한 북풍과 차가운 혈류의 대현자, 카델리논 신관님.”
“……그러지요.”
눈을 감았다.
혹시 고통이 심할지도 모르니, 잠을 자기로 했다.
수면 마취 같은 거였는데 이건 로베나 언니의 마법이었다.
‘졸려.’
이왕이면, 수명이 많이 줄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주 작은 수명으로, 큰 기적이 일어나면 좋겠다.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