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67)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67화
밖으로 나가려던 아룬은 몸을 멈칫했다.
‘응? 잘못 봤나?’
방금, 이사벨의 손가락이 움직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봤지만 손가락은 그대로였다.
‘하아.’
아룬은 다시금 이사벨 옆으로 돌아왔다.
아주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밤을 새우면 폐하께서 노발대발하실 텐데.’
예전에는 ‘어이, 열두 살’이라고 부르더니, 요즘에는 ‘어이, 도둑놈’이라고 부른다.
그는 아무것도 훔친 것이 없는데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황제 론은 아룬이 이사벨의 방에 지나치게 오래 머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뭐, 요즘은 나도 많이 강해졌으니까.’
예전에는 어쩔 수 없이 힘에 굴복해야 했다면 요즘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론에게 이기기는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예전만큼 압도적인 차이는 나지 않았다.
이제는 론도 아룬을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냥 여기서 밤을 새우기로 했다.
‘허락받는 것보다 용서받는 게 더 편한 법이지.’
방금 움직인 것 같았던 이사벨의 손을 꼭 잡았다.
“오늘은 네 옆에 있을게.”
시간이 흘렀다.
아룬은 이사벨의 손을 놓지 않았다.
‘이 기분은 뭘까?’
마치 이사벨의 영혼과 자신의 영혼이 강하게 결속되어 있는 것만 같은 느낌.
김벌꿀 시절에도 그랬지만 그때는 지능이 그렇게 높지 않아서 정확하게 느끼기는 어려웠다.
사람의 모습인 지금 그것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청혼석의 힘이었다.
청혼석에는 인간들의 영혼에 강한 결속을 만들어주는 권능이 담겨 있었으니까.
문득, 아룬은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보석=청혼 선물.] [찜콩 완료.] [계약 성립.] [철회 불가.] [절대 계약.]그때는 몰랐는데, 돌이켜보니 그때 했던 말들은 모두 용언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용언 계약을 일으켰었네.’
당시 청혼석과 용언 계약의 콜라보로 인하여, 황궁 지하에 꽃들이 만개했었다.
아룬은 이사벨의 손을 잡은 채 빙그레 웃었다.
“아하.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였잖아?”
이건 정말로 어쩔 수 없는 거였다.
“우린 결혼해야 할 운명이었네. 용언으로 계약했으니 진짜 어쩔 수 없다.”
이제야 황제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도둑놈이구나.”
그렇게 간단하고도 쉬운 진리를 이제야 깨닫다니.
아룬은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이사벨과의 결혼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큰 선물이었다.
“네가 거부해도 어쩔 수 없어. 우리는 용언 계약으로 맺어져 있고. 결국 계약을 이행해야 해. 너도 그때는 동의했어.”
물론 그때의 계약은 ‘김벌꿀-이사벨’ 간의 계약이었지 ‘아룬-이사벨’의 계약은 아니었다.
엄밀히 따지고 들자면, 그 계약은 김벌꿀의 죽음으로 인하여 이미 끝났다.
‘그렇지만 그런 사소한 것쯤은 무시할 줄 알아야 어른이라 할 수 있겠지.’
“얼른 일어나. 우리, 결혼해야 하잖아.”
문득, 결혼이란 단어를 떠올리자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
이사벨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3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 3년 동안, 어떻게 하면 더 큰 행복과 사랑을 줄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네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좋겠어, 이사벨.”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없는 간절한 마음이 해일처럼 밀려들어 아룬의 마음을 뒤덮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기이한 충동이 들끓었다.
이 간절함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어졌다.
아룬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사벨의 손에 가볍게 키스했다.
“눈을 떠줘, 제발.”
* * *
대륙 제일의 감정술사이자 세공사인 마르코 유르미엘은 대단히 성공한 사람이었으나 매일 밤 잠을 설치는 중이다.
‘데일사 시종장이 청혼석을 내놓으라 하면 어떡하지?’
그건 이미 깨졌다.
그 자리에서 다이아몬드가 퐁퐁 새어 나오고는 있지만, 그게 황가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계약은 계약이다.
그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악마의 형상을 한 데일사 시종장이 나타나 귓가에 속삭였다.
‘연구 자료로 활용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은 비물리적 연구여야 합니다. 쪼개거나 파괴, 혹은 청혼석으로서의 가치를 망가뜨린다면 1,000년 치 대여료를 요구하겠습니다.’
1,000년 치 대여료는 곧 1,000억 루덴이다.
이 사실을 들키는 순간 그는 파산이었다.
그렇다고 다이아몬드를 빼돌려서 비상금을 축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데일사의 눈을 속일 수 없었을뿐더러, 설령 속일 수 있다 하더라도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데일사 시종장은 역대 시종장 중 가장 유능하고 강한 시종장.
전성기의 무력을 회복한 진짜배기였다.
“하아.”
깊은 새벽.
그는 커다란 한숨을 내쉬며 청혼석을 보관한 비밀방을 찾았다.
‘응? 이게 무슨 냄새지?’
그런데 복도에서부터 꽃내음이 가득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황급히 자물쇠를 풀었다.
방문을 열어보니 방 안에 다이아몬드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세상에나…….”
대륙에서 제일가는 감정사이자 세공사인 마르코다.
그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꽃은 처음이야.”
자신의 실력으로는 감히 흉내 낼 수도 없을 만큼 아름답게 세공된 다이아몬드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향기가 나지?”
향기가 나는 다이아몬드라니.
이런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저건 또 뭐야?”
한쪽 구석에, 여태까지 다이아몬드가 퐁퐁 새어 나오던 그곳에 오색찬란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헐레벌떡 뛰어가 그쪽을 살펴보았다.
“어?”
어어?
어어어?
어어어어?
그는 영롱한 빛을 띠고 있는 보석 하나를 발견했다.
“청혼석!!!”
어쩐 일인지, 쪼개졌던 청혼석이 그 자리에 있었다.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색채를 띠고 있었다.
“청혼석이 부활하셨다!!!”
그는 청혼석을 꽉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 방을 뒤집어 놓으셨다!!!”
이 현상은 오랜 기록에도 존재하지 않는 기현상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 * *
나는 저만치 멀리 아주 작게 빛나는 별을 향해 계속해서 움직였다.
거기 도착하면 이 어두운 터널이 끝날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걷고 달려도 그 별을 내 손에 닿지 않았다.
오히려 자꾸만 계속 멀어졌다.
같은 자리를 계속 뱅뱅 도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지쳐.’
목소리가 힘을 계속 보태주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결국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좋은 냄새가 났다.
‘꽃향기?’
이 냄새는 예전에도 맡아본 적 있다.
황궁 지하 창고에 꽃이 만개했었을 때, 이 냄새가 났다.
워낙에 향기로운 냄새여서 기억이 난다.
‘뭐야?’
어두운 세상 곳곳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작은 반딧불이들이 무리를 이루어 내게 날아오는 것 같았다.
‘어?’
자세히 보니 반딧불이가 아니었다.
다이아몬드로 만든 꽃 같았다.
세상에 꽃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꽃바람이 불어 내 몸을 감쌌다.
‘원래는 아무것도 안 보여야 하는데.’
이곳은 빛이 없는 공간이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꽃들이 나를 에워싸는 것이 보였다.
마치 정령이 나를 간지럽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나를 한바탕 에워쌌던 꽃바람이 다시 흩어지는가 싶더니 길 하나를 만들어 주었다.
“거기로 가라는 거야?”
다이아몬드 꽃길이었다.
그사이, 또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일어나. 우리, 결혼해야 하잖아.”
“네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좋겠어, 이사벨.”
저 목소리는 도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간절하게 나를 부르는 걸까.
그리고 저 목소리를 들으면 나는 왜 자꾸만 힘이 나는 걸까.
어째서 저 목소리만 이렇게 또렷하게 들리는 걸까.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쩌면 저 목소리와 내 영혼이 단단하게 서로를 꽉 부여잡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길이 보여.’
어둡기만 했던 공간에 빛나는 꽃길이 생성되었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커지지 않던 빛이 점점 커져왔다.
빛이 어둠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도저히 걷히지 않을 것 같던 밤이, 드디어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 빛에 닿았다.
‘눈이…… 부셔.’
눈이 너무 부셔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이 묘한 감각.
나는 예전에도 느낀 적이 있었다.
처음 [시한부 악녀가 죽고 나면> 속에 들어왔을 때 딱 이런 느낌이었다.
현실감이 너무 없어서 꿈을 꾸는 것 같은 이 기분.
‘그럼 이것도 꿈일까?’
아니면 또 다른 빙의?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현실감은 여전히 없었고 그저 몽롱함만 가득했다.
술에 취해본 적은 없지만 술에 취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도 아빠 미모 보고 진지하게 감탄했었는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에 흐릿하게 보이는 형체는, 비록 흐린 눈을 하고 봐도 아름다웠다.
“진짜 잘생겼네.”
뭐야?
왜 목소리가 나오지?
정말 오랜만에 듣는 내 진짜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 또한 꿈을 꾸는 것처럼 도무지 현실감이 없었고, 여전히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흘겨봐도 잘생겼다니.’
솔직히 저 얼굴이면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고 해도 충분한 개연성이 있을 것 같았다.
어지간한 잘생김에는 면역이 있는 나조차도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의 미모였다.
툭.
뭔가가 내 볼에 떨어졌다.
조금 뜨거웠다.
‘뭐지?’
툭툭.
따뜻한 비가 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비가 내 정신을 조금씩 일깨웠다.
‘꿈이 아닌 것 같은데.’
이건 아마도, 저 잘생긴 남자의 눈물인 것 같았다.
시야가 조금씩 또렷해졌다.
‘어딘지 낯이 익은데.’
설마,
“아룬?”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