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69)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69화
봄의 황녀, 이사벨의 이름으로 대규모 특별사면이 이루어졌다.
특별사면은 제국 전체가 다 함께 기뻐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경사가 생겼을 때, 그를 기념하기 위해 시행했다.
참고로 건국 이래 특별사면은 단 다섯 번뿐이었다.
100년에 한 번 꼴이었는데, 그게 이번에 일어났다.
비아톤은 서류 더미에 파묻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진짜 개빡치네.”
1초라도 더 이사벨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하필이면 황제가 이 시점에 특별사면을 내리는 바람에 일이 너무 많아져 버렸다.
“말이 특별사면이지, 이게 쉬운 줄 아나?”
황제가 공식적으로 명령했으니 빨리 하긴 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면이 이루어질 사람들을 분류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아무나 사면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차석 보좌관, 아르미텔이 비아톤과 같은 모양새로 앉아서 서류를 분류하고 있었다.
“그만 투덜대고 일에 집중하세요.”
그녀 또한 다크써클이 턱밑까지 내려와 있었다.
“아니, 차석 보좌관. 우리끼리 있을 때라도 황제 폐하를 씹어야지, 그럼 또 언제 씹지요?”
“전 그런 불경한 짓은 하지 않습니다.”
“어휴, 이제 군인도 아닌데 언제까지 그렇게 딱딱하게 굴 겁니까?”
“상식적으로 구는 겁니다.”
“이건 음모가 틀림없어요. 차석 보좌관도 잘 알고 있을 텐데요?”
“무슨 음모 말입니까?”
“제가 이사벨 황녀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싫어서 지금 이런 수작을 벌이고 있는 거 아닙니까? 황제 폐하는 질투의 화신이니까요. 황녀님이 아빠보다 저를 더 좋아할 것이 두려워서 이러는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눈과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좋은 것만 보십시오, 수석 보좌관님.”
“좋은 게 뭐가 있습니까?”
“이사벨 황녀님의 이름으로 사면이 이루어진다는 건, 황녀님의 햇살이 제국 구석구석 스며드는 것이지 않습니까? 제국민들이 황녀님을 더욱 사랑하고 존경할 것입니다.”
그 말에 비아톤이 본심을 숨기지 못하고 활짝 웃었다.
“그렇게 헤벌쭉 웃지 마십시오. 수석 보좌관의 체통이 무너집니다.”
“그렇게 안 웃었습니다.”
“웃었습니다.”
“안 웃었다니까요?”
아르미텔은 눈동자만 옆으로 힐끗 돌려, 옆자리에 앉아서 서류 작업에 몰두 중인 동생을 바라보았다.
“사무관 생각은 어때요?”
“잘생겼다고 생각해요.”
아르미텔의 동생이자, 원작 소설의 여주 아셀리아는 아르미텔의 추천을 받아 황궁 보좌관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아셀리아는 머리가 굉장히 똑똑하고 셈에 능해서 오히려 아르미텔보다도 훨씬 일을 잘하는 편이었다.
아셀리아가 말을 이었다.
“수석 보좌관님은 웃으면 더 잘생겨지는 병에 걸려 있거든요.”
그 말에 비아톤이 다시금 헤벌쭉 웃었다.
참고로 비아톤은 아셀리아를 굉장히 귀여워하고 아꼈다.
이사벨의 친구이기에 더 마음이 갔다.
언젠가, 아셀리아가 물은 적이 있다.
‘절 왜 이렇게 아껴주세요?’
‘왜요? 이상한가요?’
‘직장 상사가 이렇게 친절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요.’
‘우리 딸아이의 소중한 친구 같은 느낌이라서요. 특별히 애정이 가네요.’
비아톤이 말했다.
“우리 리아 사무관은 역시 유능하군요.”
“별말씀을요.”
아르미텔은 도대체 뭐가 유능하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묵묵히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 * *
보좌관들만 바빠진 것이 아니었다.
아레나궁의 총책임자, 데일사 시종장 또한 매우 바빠졌다.
아레나궁을 찾는 사람이 워낙 많았는데 대부분은 진상이었다.
지금은 최고진상이 찾아왔다.
“어째서 내가 VIP가 아닌 것이지, 시종장?”
“VIP대기표는 1인당 1장으로 배정되어 있습니다, 폐하.”
“내가 이 제국의 황제다.”
“저는 이 궁의 총책임자입니다. 황녀님을 보필해야 할 최우선 순위를 가진 자이지요. 그리고 그 권리는 황제 폐하께서 주셨습니다. 잊으셨습니까?”
“…….”
데일사는 론을 똑바로 쳐다봤다.
전성기의 무위를 회복한 데일사는 론의 기세에 크게 밀리지 않았다.
황후 세르나가 인자하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그러지 말고, 한 장만 더 주면 안 될까요?”
“따뜻하게 말씀하셔도 안 됩니다. 황후마마께도 분명 VIP대기표를 드렸습니다.”
VIP대기표란, 이사벨과 일대일로 독대할 수 있는 대기표를 뜻했다.
이사벨과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부득이 이런 대기 시스템을 만들었다.
“일반 대기표밖에 드릴 수 없음을 양해하여 주십시오.”
시종장 데일사만 바쁜 게 아니었다.
그간, 부시종장으로 승격된 유모 루루카 또한 아주 바빴다.
시종장이 각종 진상(?)을 상대하는 동안 아레나 궁의 실질적인 총책임자는 루루카였다.
보통 황궁의 부시종장이 되려면 고귀한 가문 출신이거나, 데일사처럼 막강한 무위와 명예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유모가 부시종장까지 올라간 것은 루루카가 처음이었다.
새로 고용된 몇몇 시녀는 루루카를 무시하기도 했다.
“우리 부시종장, 평민 출신이라 안 했어?”
“얘, 부시종장이 뭐니? 부시종장님이라 해야지.”
“아니, 그래도. 우리가 평민 출신 부시종장한테 고개를 숙이는 건 좀 그렇잖아.”
“이사벨 황녀님을 키우신 분이셔. 그러니까 부시종장까지 올라갔지.”
이사벨을 키워냈다는 것은 아주 위대한 훈장이었다.
수많은 시종, 시녀가 부시종장 루루카에게 순종했다.
한편, 유리는 내내 탄성을 내뱉었다.
“저는 황후마마를 따라, 사교모임에도 많이 참여했었거든요. 그런데 황녀님만큼 아름다운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어쩜 이렇게 아름다우실 수가 있어요?”
“유리, 그만해. 그거 콩깍지야.”
“콩깍지 아니에요!”
유리는 진심이었다.
“이렇게 뽀얗고 생기 넘치는 피부는 처음 봐요. 눈처럼 하얗고 호수처럼 맑아요. 기적의 성녀께서 매일같이 성력을 불어넣은 효과가 있었나 봐요.”
“매일 그랬어?”
“네, 매일매일요.”
“내가 잠들어 있던 사이…….”
“네?”
“아니, 아무것도 아냐.”
내가 잠들어 있던 사이 주접이 많이 늘었다.
이사벨은 이 말을 굳이 하지는 않았다.
각종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통해 주접이란 주접은 다 겪어본 이사벨이었으나 유리는 그 정도가 과했다.
“황녀님의 눈동자에 취해버릴 것 같아요.”
“…….”
“황녀님은 웃지 않는 연습을 하셔야 해요. 황녀님의 미소에 모두가 녹아내리고 말 테니까요.”
이거…… 괜찮을까?
이사벨은 조금 걱정될 지경이었다.
“아참, 30분 후에는 세르몬 황자님이 찾아오시기로 되어 있는데, 괜찮으시죠?”
“괜찮고 말고가 어디 있겠어?”
이사벨은 세르몬이 완전히 회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버지인 론과 어느 정도 관계를 회복했고, 세르몬도 세르몬 나름의 행복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한 상태였다.
“저는 세르몬 황자님이 어딘지 모르게 무섭거든요.”
“무서워할 거 없어, 그래도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야.”
그리고 30분이 흘렀다.
* * *
세르몬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세르몬 오빠?”
나는 깜짝 놀랐다.
다 큰 줄 알았는데. 키가 더 컸다.
세르몬의 눈이 부채꼴처럼 휘어졌다.
“이사벨. 잘 잤어?”
목소리가 어쩐지 나른하게 느껴졌다.
말하는 속도가 조금 느려서 그런 것 같았다.
“네, 덕분에요.”
“좋은 꿈 꿨지?”
세르몬이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다리가 워낙 길어서 천천히 오는 데도 성큼성큼 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깨어난 것을 직접 확인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다가 이마에 손을 댔다.
“오빠, 손이 왜 이렇게 차요?”
“글쎄. 다른 사람들보다 체온이 좀 낮다나 봐.”
그리고 다시 씨익 웃었다.
세르몬의 붉은 눈동자가 요사하게(?) 빛났다.
오빠한테 요사하다는 말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요사하다는 말 말고 다른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유리가 세르몬을 어려워하는 이유도 알겠다.’
내 이마에 닿은 세르몬의 손을 통해, 세르몬이 얼마나 큰 호감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냥 눈으로만 봤으면 조금 무서울 뻔했다.
뭐랄까, 약간 숨 막히는 느낌이었다.
언제 목덜미를 물어뜯을지 모르는 사나운 맹수 한 마리가 앞에 있는 것 같은 느낌?
마치 발톱을 숨긴 살쾡이 같았다.
“오빠는 많이 멋있어졌네요. 이제는 어른 같아요.”
“네 오라비로서 부끄럽지는 않아야 하니까.”
세르몬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웃었네요?”
“응, 요즘은 꽤 잘 웃어.”
“잘 웃는다고요?”
“삐이- 하고 삐이- 할 놈이 많거든.”
“삐이- 하고 삐이- 요?”
방금, 손길을 통해 무시무시한 살기가 전해진 것 같은데.
착각인가?
세르몬은 다정한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삐이- 하면 많이 웃어. 사실 네가 깨어났을 때 선물을 주고 싶었는데 마련하지 못했지 뭐야.”
“선물이요?”
세르몬의 손에는 자석이라도 달린 것 같았다.
이미 쓰다듬을 만큼 쓰다듬은 것 같은데, 내 머리에서 손을 떼어낼 생각을 안 했다.
‘엄청 설레하잖아?’
무슨 선물이길래 이렇게 생각만 해도 저렇게 설레하는 건지.
엄청 좋은 선물인가 보다.
“네가 깨어나면 빌헬름의 목을 삐이- 해서 선물하려고 했거든.”
아니, 왜 이 타이밍에 혀로 입술을 핥아요!
“도무지 삐이- 삐이- 삐이- 하기가 어렵네.”
방문이 열렸다.
“나도 이사벨과 인사할 거야!”
금발의 남정네 하나가 들어왔다.
나는 어렵지 않게 저 남자가 미하엘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와…….”
내가 기억하는 미하엘은 여기 없었다.
정말 극단적인 변화였다.
꼬맹이 미하엘은 사라지고 어른 미하엘만 남아 있었다.
“미하엘. 삐이- 되고 싶지 않으면 꺼져주겠어?”
“형 VIP대기표 쓴 거 아니라면서?”
“…….”
“그러면 여럿이서 만날 수 있잖아.”
미하엘은 다짜고짜 나한테 달려들어서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오래 기다렸잖아.”
미하엘은 내 어깨에 손을 얹고서 세상에서 제일 해맑게 웃었다.
몸은 훌쩍 컸는데 아직 어린아이 같은 구석이 있었다.
“오빠도 이제 어른이네요.”
“응, 이제 다 컸어.”
어른이 되기 싫어 성장을 거부했던 아이.
그 아이가 어른이 되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이사벨을 지켜주려면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
“그, 그래요?”
어쩐지 사람들의 모든 말들이 기승전내가 되는 것 같은 오묘한 느낌이 있는데.
나는 본투비 관종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싫지는 않지만, 이게 맞나 싶은 느낌은 있었다.
내가 7년 동안이나 의식을 잃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거겠지?
사실 나도 엄청 소중한 가족이 7년이나 누워 있었으면 저럴 거 같기도 했다.
또 다른 목소리도 들려왔다.
“깼군.”
“카만 오빠?”
세르몬 오빠는 동생들이 끼어들었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다.
아주 살벌하고 무서운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는데, 미하엘과 카만의 기세도 만만치 않아서 서로 중화되는 느낌이 있었다.
‘평화롭네.’
다시 만난 카만도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중2병은 아직 안 고쳐진 것 같았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그다지.”
“제가 깨기를 기다렸어요?”
“별로.”
참고로 나는 카만과 악수를 하고 있다.
카만의 마음이 전부 다 느껴진다.
이건 뭐야.
마력이 꽃밭에서 손에 손잡고 엉덩이춤을 추고 있는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