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70)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70화
지난 일주일간, 나는 어쩌면 세상에 다시 없을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가족들, 그리고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걸 다시금 실감했고, 덕분에 마음이 아주 풍성해졌다.
‘정말 정신없었어.’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매일 누군가와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특히 몇몇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아빠의 급작스러운 방문이었다.
아주 늦은 밤이었다.
나는 자고 있어서 정확한 시간은 몰랐다.
아마도 새벽 2시쯤 된 것 같았다.
“쉿.”
“아빠……?”
왜 멀쩡한 문을 놔두고 창문으로 잠입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도둑으로 오해했을 것 같았다.
“보고 싶어서.”
“……문으로 오시면 되잖아요?”
“깐깐한 여자가 있어서 말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여기서 깐깐한 여자라 함은 데일사 시종장님이나 루루카 유모, 아니, 루루카 부시종장을 뜻하는 것 같았다.
“네가 자야 할 시간이라고 어찌나 어깃장을 놓던지.”
“그래서 창문으로 들어오셨다구요? 여기 7층인데요?”
예전에 김벌꿀이 하던 짓인데 이제는 아빠가 이러고 있으니 뭔가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제 황제 폐하나 아바마마보다 그냥 아빠라는 표현이 훨씬 익숙해졌다.
아빠는 매일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낮에는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이렇게밖에 짬을 낼 수밖에 없다나 뭐라나.
그래서 나는 새벽 2시가 무척 기다려졌다.
어린 시절 아빠랑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었다.
아빠의 마력을 통해 아빠가 날 사랑한다는 사실은 느끼고 있었지만 행동이나 대화로 그걸 체감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처음에는 15분만 대화해도 정적이 찾아왔었는데, 이제는 1시간을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아빠가 이렇게 수다쟁이인 줄 처음 알았다.
요 며칠 사이, 아빠가 엄청 편해졌다.
“아빠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말해보아라.”
“완전 공식 석상을 빼고는 그냥 아빠라고 부르면 안 돼요?”
아빠는 흐음, 하고 턱을 살짝 매만졌다.
이제 다 큰 황녀가 채신머리없이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조금 곤란한 것 같기도 했다.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지 않잖아요. 떠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부르고 싶어요.”
“…….”
“왜냐하면 아빠 앞에서는 늘 아이이고 싶고든여.”
전생에 해보지도 못한 어리광도 맘껏 부리고 싶었다.
내가 잠든 사이 몸이 훌쩍 커버려서 이제는 완연한 성인이 되었지만, 그래도 부모님 앞에서는 아이이고 싶었다.
“엄마는 허락해 줬는걸요?”
“황후가?”
아빠는 왠지 약간 안도하는 모양새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하여라.”
아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 손길에서 봄 햇살 같은 다정함이 느껴졌다.
어쩐지 엄청 좋아하는 거 같기도 하고?
나중에 엄마한테 얘기를 듣고 나서야 전후 사정을 알 수 있었다.
“그이는 줄곧 아빠라고 불리고 싶어 했어. 그걸 이사벨에게 강요하고 싶어 할 정도로 말이야.”
“그런 걸 강요하려고 했다구요?”
“잔뜩 혼을 냈지 뭐니. 등짝을 몇 대 맞으니까 그런 억지는 안 부리시더라고.”
“그럼 제가 아빠라고 불러도 되냐고 했을 때 곤란한 표정을 지었던 건……?”
“그래. 내 눈치를 보신 걸 거야. 황제 폐하는 누구의 눈치도 살피지 않는 대신에 내 눈치를 극단적으로 많이 살피는 병에 걸렸으니까.”
아무튼 이게 내게 있어서 인상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황제 폐하를 맘껏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것과 사실은 아빠가 굉장한 수다쟁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그리고 아주 인상적인 만남이 하나 더 있었다.
“리아!”
“황녀님!”
원작 여주 아셀리아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처음 만났을 때 입을 쩍 벌리고 아무 말도 못 했을 정도였다.
‘근데…….’
내가 생각하는 ‘로판 여주’답지 않은 구석이 조금 있었다.
피부가 약간 푸석푸석한 편이었고 다크써클이 꽤 짙었다.
일에 한껏 찌든 직장인 같았다.
“황궁 보좌관실에서 사무관으로 일하고 있다고?”
“네, 처리할 일이 너무 많아서 어제도 한숨도 못 잤어요.”
아셀리아는 약간 아르미텔 언니를 닮아 있었다.
조금 더 딱딱해졌고 원칙과 규칙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나한테도 꼬박꼬박 존대하며 예의를 지켰다.
그게 조금 서운한 한편, 기이한 느낌도 받았다.
‘원작 여주 아셀리아는 자유분방한 편인데…….’
남주 아룬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으며, 약간의 민폐캐 역할도 겸비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아셀리아는 완전 딴판이었다.
“일을 잘한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그렇지 않아요.”
“황궁 곳곳에서 리아를 스카우트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대. 내가 분명히 들었어.”
“비아톤 경이 많이 예쁘게 봐주셔서 일을 빨리 배울 수 있었을 뿐이랍니다.”
로판 여주가 워커 홀릭이라니?
내가 로판 여주였으면 띵가띵가 놀면서 남주랑 리치 해피 라이프를 즐길 텐데.
이 소설의 여주는 다크써클이 턱밑까지 내려올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아룬을 본 적 있어?”
“아룬이요?”
아셀리아는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리아에게 있어서 ‘아룬’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키워드인 듯했다.
“네, 먼발치에서 본 적 있어요. 무척이나 아름다운 외양을 지니셨던데요.”
“그게 끝이야?”
“그가 아름답다고 해서 제 서류 작업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원작 속 아셀리아는 아룬을 떠올릴 때면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고 했다.
로판 여주한테 미안하기는 한데 지금은 약간 동태 눈알 같다.
‘아룬을 떠올릴 때면 사랑스러움에 물들어 주변을 화사하게 밝힌다고 했는데…….’
지금은 사랑스러움에 물든 여인이 아니라 일에 미친 워커 홀릭이었다.
왠지 월화수목금금금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마저 느껴졌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쩐지 아셀리아는 아룬을 굉장히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룬이 네게 말을 건 적도 없고?”
“일이 일이다 보니, 공적인 대화는 자주 나누는 편입니다. 그러나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은 없습니다. 별로 대화를 나누고 싶지도 않고요. 그런데 왜 그러세요?”
“그, 왠지 리아랑 아룬이 엄청 잘 어울릴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 말을 하는데 괜스레 마음이 불편해졌다.
리아가 강하게 부정해 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도 있었다.
“저는 그런 자와 어울리고 싶은 생각이 일절 없습니다.”
리아는 약간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 말에 약간은 기쁜 것 같기도 했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제가 보기엔 황녀님과 아룬 경이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요.”
“에, 에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룬 경은 이미 황녀님께 청혼한다고 했다가 황제 폐하와 7일 밤낮으로 싸웠던 적도 있습니다. 모르시나요?”
“그, 그랬어?”
“수도가 박살 날까 봐 외곽에 버려진 땅에서 싸우셨다고 합니다. 덕분에 거기서 살아가던 무시무시한 마물들이 터전을 잃고 모두 도망쳤다던데요? 그래서 수비대장 키르엔 경이 골머리를 앓았다고 하고요.”
그러고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또 열받은 것 같다.
“제반되는 모든 서류 작업은 제 몫이었죠.”
바, 방금 이 갈리는 소리 난 거 같은데. 착각이겠지?
“어쨌든 전 황녀님과 아룬 경이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황녀님이 너무 아깝긴 합니다만.”
“그, 그런 거 아냐. 우리는 친구야.”
아, 얼굴 화끈거린다.
내가 모태솔로라는 것이 이제야 체감이 되었다.
저런 말을 듣는 게 너무 낯설었다.
“리아는 그럼 연애에는 관심 없어?”
아셀리아는 안경을 고쳐 썼다.
무서운 안경 선배 보는 것 같다.
“연애에 관심을 두기에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일 얘기 하니까 얼굴이 조금 밝아지기 시작했다.
이제야 좀 화사해지는 것이 로판 여주답다.
“저는 커리어에 욕심이 많아요. 연애처럼 사사로운 감정놀음에 허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아, 물론 남들의 연애를 제가 폄훼할 생각은 없어요. 저한테만 해당되는 얘기이니, 황녀님께서는 마음껏 연애를 즐기셔도 됩니다.”
“……일이 그렇게 재미있어?”
리아 뒤로 꽃이 만개하는 것 같았다.
“재미있습니다. 언젠가 비아톤 경처럼 훌륭한 수석 보좌관이 되는 것이 제 목표예요.”
리아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 손을 통해, 또 온전한 호감과 사랑이 잔뜩 느껴져서 기분이 좋아졌다.
“먼 미래에, 제가 황녀님을 보좌할 수 있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노력 많이 해서 황녀님에게 어울리는 수석 보좌관이 될 테니까요. 약속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때 저를 황녀님의 보좌관으로 임명해 주시겠다고.”
나는 차마 그러겠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손을 통해 전해지는 감정이 너무 절실한 진심이어서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 * *
미로텔 마법 연방.
비밀리에 창성 회의가 열렸다.
지난 7년간, 창성 마법사의 숫자는 열여섯으로 늘어났다.
열여섯 전원이 모인 회의였으나 대외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다.
커다란 원탁에 열여섯 명의 마법사가 앉았다.
“얘기를 시작하지.”
그들은 모두 같은 표정과 같은 목소리로, 똑같이 입을 열었다.
“이사벨이 깨어났다는 첩보를 입수하였다.”
“이사벨이 깨어났다는 첩보를 입수하였다.”
“이사벨이 깨어났다는 첩보를 입수하였다.”
기괴한 장면이었다.
“나르비달의 낙인을 지닌 애들은 많이 준비되었다.”
“나르비달의 낙인은 지닌 애들은 많이 준비되었다.”
정상적인 회의가 아니었다.
그저 모두가 같은 표정과 같은 목소리로 똑같은 말을 내뱉는 일종의 의식 같았다.
“이제는 이사벨 차례다.”
“이제는 이사벨 차례다.”
그들이 계속 말했다.
“우리에게도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에게도 시간이 많지 않다.”
열여섯 명의 마법사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새어 나왔다.
마치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대계를 시작하지.”
“대계를 시작하지.”
그들의 몸이 검은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