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71)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71화
수많은 사람이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것은 역시 유리였다.
유리는 유리모르 제과를 아예 휴업한 뒤 내 옆에 찰싹 붙어 있었다.
“가끔 보면 유리는 나를 인형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
“실제로도 좀 그래요.”
“뭐?”
“이렇게 예쁜 사람한테 어울리는 옷을 찾아 입혀주고, 머리를 다듬어주는 게 얼마나 재미있고 즐거운 일인데요.”
“……그래?”
정확히 이해하기는 힘든 감성이었지만 아무튼 유리가 정말로 행복해하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거울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예쁘긴 예쁘네.’
수명이 3년도 남지 않은 사람치고는 혈색이 굉장히 좋고 피부에는 탄력이 넘쳤다.
별다른 화장을 하지도 않았는데 피부 결이 하얗고 매끈해서 보기 좋았다.
“오늘은 고급진 웨이브를 넣어볼 거예요. 뭘 해도 아름다우시지만, 오늘은 특히 더 아름다울 거예요.”
“알겠어, 유리 마음대로 해.”
유리는 확실히 손재주가 좋았다.
금손이라서 뭘 어떻게 하든 최고의 결과물을 내놓을 것이 뻔했다.
“황녀님. 지난밤에 아룬 경에 대해서 생각은 좀 해보셨어요?”
“내, 내가 생각하고 말 게 뭐가 있겠어?”
사실 나는 약간 혼란스러운 상태다.
아룬을 볼 때면 괜스레 가슴이 콩닥거리고 눈을 마주치기가 부담스러웠다.
이건 아룬 잘못이다.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설렐 만큼 잘생긴 아룬 잘못.
나는 잘못 없다.
“제가 보기에는 황녀님도 아룬 경을 마음에 두고 계신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아.”
“그렇지 않은 게 아닌 것 같아요.”
“유리.”
솔직히 아룬이 잘생긴 건 맞았다.
흐린 눈을 하고 봐도 잘생겼고, 아마 KTX를 타고 가다 봐도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잘생긴 것도 맞다.
진짜 내 취향이다.
그리고 나를 향한 일편단심과 정성도 안다.
나를 절실하게 원하는 것도 다 안다.
“나는.”
그렇지만 아룬의 마음을 받아줄 수는 없었다.
나는 3년 후면 이 세상에 없다.
유리가 손에 들고 있던 빗을 땅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양손으로 자신의 귀를 막았다.
“에베베베. 안 들려요, 안 들려. 안 들을 거예요.”
“…….”
유리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이내 유리는 땅에 떨어졌던 빗을 주워 들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는데 물의 정령인 방울이를 불러서 빗을 깨끗하게 씻어낸 뒤 다시 빗질을 시작했다.
“황녀님은 오래 살 거라니까요? 제가 어떻게든 그렇게 만들 거거든요?”
이럴 때면 좀 곤란하다.
내 죽음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유리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말하면 나는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모르겠다.
소설로 봤어.
이건 절대 못 바꾸는 거야.
그렇게 말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섣불리 ‘고마워, 나도 그걸 바랐어’라고 말하기에는 헛된 희망을 줄 것 같아서 두려웠다.
“와, 햇살 좋다. 나 창가에 서 있어도 돼?”
“휴우. 알겠어요. 창가에서 마무리해 드릴게요. 그렇지만 3년 뒤에 어떻다느니 하는 무서운 말은 하지 않기로 약속해요.”
“알겠어.”
우리는 창가로 이동했다.
‘어?’
저만치 멀리,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화사하게 웃고 있는 남녀가 보였다.
아룬과 리아였다.
둘의 모습이 마치 청춘 영화의 한 장면 같아서 나는 넋 놓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아룬은…… 잘 웃지 않는다고 했는데.’
아룬은 오로지 황녀 앞에서만 웃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나는 그게 좋으면서 싫었다.
그런데 지금 아셀리아와 함께 걷고 있는 아룬은 굉장히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리아도 평소에는 안 웃는다고 했는데.’
아셀리아는 황궁에서도 유명한 워커홀릭이었고 표정을 찾아볼 수 없는 기계라 불렸다.
그런데 아룬과 함께하고 있는 아셀리아는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행복하게 웃었다.
청량한 광경이었다.
너무 잘 어울려서, 보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그런 광경.
‘근데…….’
너무 보기 좋은 장면인데, 묘하게 가슴이 콕콕 쑤셔왔다.
* * *
아룬은 본래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니었다.
김벌꿀 시절부터 형성된 자아 덕분에 독불장군 같은 면이 상당히 강했고, 이사벨 외에 다른 것은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자랐기에 주변을 잘 돌보지 못했다.
많은 것을 배웠어야 할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황제인 론과 대련하며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경험이 한정적인 편이어서 눈치가 빠르기가 어려웠다.
다만, 이사벨과 관련한 것에 있어서만큼은 눈치가 굉장히 빨랐다.
그것은 그가 진심으로 신경 쓰는 사람이 이사벨 한 명밖에 없어서 그랬다.
매일같이 이사벨의 방을 찾아 이사벨의 호흡 소리 하나하나를 신경 썼다.
덕분에 이사벨의 숨소리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정도였다.
‘이사벨이 날 밀어내려 하고 있어.’
아룬은 이사벨이 왜 그러는지 잘 알고 있었다.
곧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 7년간,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정리한 상태였다.
‘혹여 이사벨이 빨리 떠나게 된다 하더라도 상관없어.’
7년의 시간.
이사벨이 눈 뜨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바라왔던 그 시간이 그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는 지금 이사벨을 사랑하고 있다고.
‘함께하는 시간 동안은 정말로 사랑하고 싶은데.’
마치 내일이 마지막인 사람처럼 사랑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할 거라는 굳은 다짐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이사벨이 자신과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이자 그 다짐이 흔들렸다.
물론 이사벨을 향한 마음 자체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다른 것이 아룬을 괴롭게 했다.
‘내 욕심에, 이사벨을 너무 괴롭게 하는 거 아닐까?’
그가 바라는 것은 그저 이사벨의 행복이다.
이사벨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는 모든 것에 무감하지만, 이사벨이 웃는 것은 즐거웠다.
그 어떤 것도 그에게는 별다른 선물이 되지 못하지만, 이사벨의 미소가 그에게는 선물이었다.
‘나 때문에 이사벨이 괴로워진다면…… 그건 안 되는 일이야.’
적어도 이사벨에 관해서만큼은 눈치가 지나치게 빠른 아룬이기에 마음이 굉장히 복잡해졌다.
그러한 가운데,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셀리아 사무관입니다. 계십니까?”
“예.”
아셀리아가 아룬의 집무실에 들어왔다.
참고로 아룬은 현재 검은 고래 기사단의 부기사단장이었고, 실무의 많은 것을 처리했다.
“이번 주, 보좌관실에서 검은 고래에 요청할 사항들입니다.”
“예. 오전 내로 확인하고 내일까지 회신하죠.”
“오후까지.”
“…….”
아셀리아는 안경을 고쳐 쓰며 아룬을 빤히 바라보았다.
“할 수 있잖아요, 아룬 경.”
오늘만큼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예, 오후까지 해드리겠습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아룬 경.”
으레 있는 일이었다.
아룬과 아셀리아는 3일에 한 번꼴로 이런 기싸움(?)을 벌인다.
목표한 바를 이룬 아셀리아는 몸을 돌렸다.
“아셀리아 경, 말씀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요.”
“말씀하십시오. 부디, 저번 주 요청사항이 누락되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아셀리아가 날카로운 눈으로 아룬을 쳐다봤다.
아셀리아 입장에서 아룬은 별로 좋은 파트너는 아니었다.
아룬은 무력이 지나치게 강대한 나머지, 다른 소소한 것들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어지간한 문제가 생겨도 힘으로 해결하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행정실무를 담당하는 아셀리아 입장에서는 곤란한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럼 무엇입니까?”
“어떤 곤란한 상황이 있을 때, 그래도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낫습니까, 혹은 배려하는 것이 낫겠습니까?”
아셀리아는 아룬을 잠시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마음대로 하실 거 아닙니까?”
“…….”
“평소처럼 힘으로 찍어누른 다음, 나중에 경위서는 나한테 써달라고 하시겠죠. 인권단체 등의 민원은 내가 처리하게 되겠죠. 아룬 경에게 거칠게 제압당한 범법자들이 아룬 경한테는 무서워서 항의 못 하지만, 만만한 사무관에게는 적극적으로 항의하겠죠. 매일 반복되겠죠. 젠장.”
“……그런 것들은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5년째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미안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셀리아는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몸을 돌리고 걸었다.
“황녀님과 관련된 겁니다.”
“…….”
아셀리아가 멈췄다.
“들어보죠. 그러나 저도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면 걸으면서 얘기할까요? 어차피 보좌관실로 걸어서 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죠.”
아셀리아에게 있어서, 아룬과의 대화는 따로 시간을 내기에는 좀 아까웠다.
그나마 이사벨과 관련이 있다고 하니 대화라도 나눠주는 것이었다.
어차피 보좌관실로 가야 하니까 그 시간을 할애해서.
얘기를 나눠보니 아셀리아는 아룬에게서 좋은 점을 몇 가지 발견했다.
“황녀님은 귀여운 동물을 좋아하시는 군요, 메모.”
“뭐 하십니까?”
“기록이요.”
아셀리아가 보기에 아룬은 이사벨을 정말로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사벨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아껴줄 사람처럼 보여서 그게 마음에 들었다.
아룬은 이사벨에 관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황녀님은 말이죠. 생딸기와 생크림으로 만든 케이크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그건 저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네요. 좀 더 고급 정보는 없습니까?”
둘은 대화가 꽤 잘 통했다.
여태껏 사적인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 둘은 이사벨이라는 공통 주제를 가지고 있었다.
‘딱딱하고 재미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은 않네.’
‘일에 미쳐서 감정도 없는 기계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네.’
이사벨의 이야기를 할 때면 둘 다 기분이 좋아져서 은연중에 웃고 말았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저는 이사벨 황녀님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뭘 새삼스레.”
“예?”
“황궁 사람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진노하시기에 다들 쉬쉬하고 있을 뿐.”
“…….”
“그래서요? 뭐가 고민입니까?”
“제가 황녀님께 계속 다가가도 될지. 혹은 먼 발치서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황녀님께 더 이로운 것인지 정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걷다 보니 어느새 보좌관실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아셀리아가 입을 열었다.
“저라면 말이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