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73)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73화
이사벨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아룬의 제안을 수락했다.
“한 번만…….”
“응?”
“딱 한 번만이야.”
아룬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조급한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알겠어, 어차피 VIP대기표도 하나밖에 없어.”
아룬이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에스코트할게.”
이사벨이 조심스레 그 손 위에 자신을 손을 얹었다.
아룬의 손을 통해, 아룬의 떨림과 설렘이 전해졌다.
정말 기분 좋은 설렘이어서 이사벨의 마음까지 들뜨게 만들었다.
‘어딜 가는데 이렇게 설레하는 거야?’
테이사벨 이동 관문을 사용하여 이동했다.
“여긴…….”
분명 와봤던 곳인데 상당히 많이 바뀌어 있었다.
아주 오래전, 김벌꿀과 미하엘이 눈썰매로 경쟁하던 그곳이었다.
산맥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끼얏호!!!”
이사벨은 어렵지 않게 목소리의 주인공을 깨달을 수 있었다.
“미하엘 오빠가 여기 있어?”
“응. 여기 스키장이 생겼거든.”
정말이었다.
척박한 산지였던 에르베 산맥에 스키장이 생겼다.
이것이 바로 이사벨 신드롬, 혹은 이사벨 효과라 불리는 것이었다.
“다 이사벨 덕분이지, 뭐.”
여행과 관광은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일반 백성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사치와 향락의 세계.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제국민들의 삶의 수준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면서 수많은 산업이 발달했다.
“특히 테이사벨 이동 관문과 이사벨릭 시스템 덕분에 이런 것들이 가능해졌어. 레저를 즐기는 제국민들이라니. 7년 전만 해도, 이런 건 꿈도 꾸지 못했을 거야.”
아룬은 가볍게 웃었다.
신기해하는 이사벨의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귀여워.’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주변을 둘러보는 이사벨의 모습은 마치 아기 천사 같았다.
적어도 아룬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나는 아내가 무척 자랑스러워.”
“뭐?”
“뭐가?”
“방금 뭐라고 했잖아?”
“이사벨이 자랑스럽다고 했는데?”
“분명히…….”
아룬은 순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그리고 무해한 얼굴로 화사하게 웃었다.
로판 남주다운 청량한 미소였다.
아룬은 이사벨을 자꾸만 추억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 모든 것은 철저한 계산 속에 이루어졌다.
‘아주 조금씩 다가가자.’
이사벨이 자신을 밀어내고 있다.
그러면 이사벨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천천히 다가가면 된다.
‘가랑비에 옷 젖는 걸 모르게.’
자연스럽게 천천히 다가가서 이사벨에게 스며들고 싶었다.
“그때 나는 눈썰매 타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어.”
“나는 엄청 두려웠는데?”
지금이야 이렇게 난간도 있고 계단도 있지만 그때는 정말로 산꼭대기였다.
“그때는 철이 없었던 것 같아.”
“그때는 벌꿀오소리였으니까.”
“맞아.”
[♪♬]추억을 회상하며 아룬이 밝게 웃었다.
이사벨이 살짝 고개를 돌리고서 말했다.
“그거 마법 문자 좀 그만 띄우면 안 돼?”
“왜? 보기 싫어?”
“보기 싫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다 큰 어른이 머리 위로 그런 글자를 띄우는 건 좀 이상하잖아.”
“김벌꿀의 자아가 나한테 너무 큰 영향을 끼쳤어.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하잖아.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면 이런 게 생겨. 마치 김벌꿀의 꼬리처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내 마음이 표출돼.”
“…….”
“그렇지만 이사벨이 정 싫다고 말하면 고쳐볼게.”
티를 내려 하지 않지만 약간 시무룩해진 표정이었다.
혼이 났을 때의 김벌꿀 같은 느낌이었다.
“아, 아냐. 그 정도까진 아냐.”
그 말에 아룬이 다시 활짝 웃었다.
이 또한 다분히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라는 사실을, 무해하고 아름다운 미소 속에 감추었다.
[♩♬] [♡]‘♡’표시는 금방 사라졌다.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이사벨이 눈치챌 수는 있는 시간이었다.
모든 것이 정교하게 계획되었다.
* * *
에르베 산맥에는 전설적인 병장이 한 명 있었다.
평민이자 병사 출신.
아르미텔과 같은 걸출한 능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부사관의 자리에 오른 인물.
그의 이름은 루카인이었다.
약 5년 전, 병장이었던 루카인은 ‘이사벨 찬가’를 만들어 전군에 보급한 공로를 인정받아 무려 상사까지 진급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사벨 찬가는 루카인 작곡, 루카인 작사였다.
그는 유명 작곡, 작사가들에게 ‘이사벨 찬가’를 의뢰했었으나 영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이사벨을 찬양하는 그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밤낮없이 작곡/작사 공부에 매진했고 결국 그만의 이사벨 찬가를 만들어냈다.
상사로 진급한 그는 다시금 에르베 산맥 초소로 복귀하여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예전에는 진짜 힘든 곳이었는데.’
난방은 꿈도 못 꾼다.
한번 들어오면 가족들과 생이별 해야 할 각오를 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상점도 많아졌고.’
이 험난한 산맥에 상점이 많아질 줄이야.
게다가 스키장 내에 호텔까지 생겼다.
모든 것이 갖춰진 곳이 되었다.
‘내가 근무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곳이 되었구나.’
이 모든 것이 이사벨의 고귀한 정신 덕분이라 생각했다.
이사벨로 인한 지난 10여 년의 변화의 폭이, 그간 100년의 시간 동안 변화한 폭보다 훨씬 컸다.
“뭐? 황녀님이 오신다고?”
루카인 상사는 직접 전 초소를 돌며 병사들을 독려했다.
“방송 장비를 점검하라! 아직 가사를 제대로 숙지 못한 자들은 가사를 확실히 숙지하도록!”
이사벨이 도착했다.
늘 그렇듯 거창한 행렬 같은 건 없었다.
검은 고래 부기사단장인 아룬 경과 함께였다.
루카인 상사를 비롯한 에르베 산맥 초소의 수많은 경계병이 한 번에 이사벨 찬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방송 장비가 있는 초소에서는 볼륨을 가장 크게 높였고, 방송 장비가 없는 초소의 병사들은 목청이 터져라 이사벨 찬가를 불렀다.
고귀하신- 황녀님의 뜻을 따르라!
고결하신- 황녀님의 기개를 배우라!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그 길을!
사! 명! 다! 해! 함께 걸으라!
김벌꿀과의 추억에 잠겨 이런저런 기억을 떠올리며 아룬과 대화하던 이사벨은 깜짝 놀랐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처음에는 군 경계초소에서 으레 들리는 군가인 줄 알고 신경 안 썼는데 어쩐지 자꾸 ‘이사벨’이라는 이름이 들리는 것 같다.
제국의- 자랑스러운 보배를 지키라!
제국의 봄이 되신 그분을 모시라!
우리의! 제국을! 따스하게! 비추는!
이! 사! 벨!을 늘 기억하라!
점차 가사들이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예 스키장의 마력 방송 장치에서도 이 노래가 틀어졌다.
이사벨은 부끄러워서 숨고 싶었다.
“아, 아룬. 이게 뭐야?”
“이사벨 찬가. 최근 가장 크게 히트한 노래야.”
“히, 히트를 했다고?”
“멜로디가 간결하고 가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려서 인기가 폭발적이었대. 군가 중에서 제일 유명할걸?”
“저, 저게 군가란 말이야?”
이사벨은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저런 노래가 군가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한 무리가 보였다.
“하낫! 둘! 하낫! 둘!”
수백 명의 군인이 오와 열을 맞추어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척! 척!
절도있는 모습으로 이사벨 앞에 섰다.
“전체 차으려어어엇!”
목청을 높이는 선임자의 이름은 루카인.
이사벨도 루카인을 알아봤다.
“루, 루카인 병장?”
“고결하신 봄께 대하여 경례으에에엣!”
그들은 모두 미약하게나마 마력을 익히고 있었다.
“고! 겨으어어얼!”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
그들은 오른손으로 이사벨에게 경례한 채 한참을 기다렸다.
아룬이 이사벨의 귀에 속삭였다.
“인사를 한 번 받아줘야 저들이 손을 내릴 거야.”
“어, 어떻게 받는 건데?”
“그냥 웃어주거나 손 한 번 흔들어줘.”
손을 한 번 흔들어줬더니 군인들은 그제야 손을 내렸다.
“전체, 쉬엇!”
루카인이 이사벨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루카인 병장, 이게 다 무슨 일이에요?”
루카인은 자기가 이제 상사라는 말을 굳이 하지는 않았다.
이사벨이 그렇다면 그런 거니까.
“황녀님께서 에르베 산맥을 찾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뛰어왔습니다. 황녀님의 존귀하신 얼굴을 직접 뵈오니 저희 모두의 진실된 영광일 것입니다!”
“…….”
스키장의 사람들도 이쪽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황실의 봄께서 행차하셨다는데?”
“뭐? 이사벨 황녀님께서?”
“저기 봐봐. 빛나는 한 쌍의 남녀가 보이지 않아?”
아룬과 이사벨은 가만히 있어도 돋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우, 우리도 가자.”
이사벨 앞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황실의 봄께, 만세!”
몇몇이 엎드리자,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함께 엎드리기 시작했다.
이사벨은 이 상황이 적응되지 않았다.
수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사벨을 둘러싼 채 무릎 꿇었다.
어떤 이들은 기쁨의 눈물을 줄줄 흘렸다.
군인들 또한 똑같이 무릎 꿇고 이사벨을 경배하다가, 이내 이사벨 찬가를 다시 목놓아 부르기 시작했다.
메가히트한 군가답게, 일반 백성들도 이사벨 찬가를 따라 불렀다.
‘어, 어지러워.’
이럴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곤 아룬이 유일했다.
“아, 아룬.”
괜스레 아룬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기고 아룬의 뒤에 섰다.
물론 뒤쪽에도 제국민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별 의미는 없는 행위였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룬은 저도 모르게 씨익 웃었다.
자신의 옷자락을 잡은 손길이 너무 좋았다.
‘이왕이면 내 손을 잡아주면 좋았겠지만.’
그거까진 너무 과한 욕심이었다.
‘좋아, 계획대로 되고 있어.’
자신과 이사벨이 이곳에 올 거라고 루카인에게 흘린 사람이 아룬이었다.
추억여행을 통해 감성을 자극하고.
그리고 이사벨 찬가를 통해 고난(?)을 설계한다.
이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룬밖에 없었다.
아룬은 아주 자연스레 이사벨을 한쪽 팔로 끌어안았다.
사심이 있어 보인다기보다는 이사벨을 보호하려는 행위처럼 보였다.
물론 사심이었지만.
“너무 부담스러워서 그래?”
“으, 응.”
이사벨의 귀가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겠다. 괜찮지?”
“으, 응.”
이사벨은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었다.
“어쩔 수 없네.”
이사벨은 ‘딱 한 번만이야’라고 말했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였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아룬이 남몰래 웃었다.
모든 것이 전략가 아룬의 계획대로 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