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77)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77화
다들 깜짝 놀랐다.
용군주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흑염룡 사태 이후로 처음이었다.
“용군주께서 여긴 어쩐 일로?”
“성룡 회의에 용군주가 참여하는 게 이상해?”
다들 침묵했다.
이상한 건 아니지만 이례적인 일인 건 맞았다.
지혜의 용 라비나는 지혜롭게 생각했다.
‘그만큼 용군주 또한 이번 사태를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이겠지.’
흑염룡 사태를 직접 진압한 용군주니까.
그때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는 않겠다는 숭고한 결심이 선 것이리라 판단했다.
“용군주 또한 제2의 흑염룡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시는 거겠지요?”
“무슨 소리야?”
순백룡 아이실라.
그녀가 싱긋 웃었다.
“나는 친구를 지키려고 하는 건데.”
“친구…… 요?”
용군주에게 무슨 깊은 심계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야만 했다.
용군주쯤 되는 이의 말에는 무게가 있게 마련이고, 많은 것이 숨겨져 있을 테니까.
라비나뿐만 아니라 다른 용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실라가 백색 머리카락을 배배 꼬았다.
“용군주로서 명할게.”
용들을 향한 명령.
이것은 오로지 용군주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3,000년 만에 용군주의 명령, 용왕령이 선포되었다.
“현 시간부로, 모든 용은 빌로티안 제국의 수호룡을 자처하도록. 기한은 빌헬름 가문이 완전히 멸족할 때까지.”
그녀의 음성이 세계 각지에 전달되었다.
이사벨과 24시간 붙어 있게 된 아룬에게도.
그리고 흑해에서 수련에 매진하고 있던 누군가에게도.
* * *
아룬에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 시간부로, 모든 용은 빌로티안 제국의 수호룡을 자처하도록. 기한은 빌헬름 가문이 완전히 멸족할 때까지.”
아룡인 아룬으로서는 처음 듣는 목소리였으나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은 용군주가 모든 용에게 내리는 명령이라는 것을.
“아룬? 왜 그래?”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룬이 가볍게 웃으며 이사벨을 바라보았다.
마침 창문을 통해 바람이 불어왔다.
정확히 말하면 아룬이 가벼운 바람을 일으켰다.
이사벨의 기분을 좋게 해주고 싶어서 그런 것이었는데, 덕분에(?) 이사벨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이마에 흘러내렸다.
이것까지 노린 건 아니었지만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머리카락을 만질 수 있겠다.’
아주 좋은 핑계였다.
아룬은 이사벨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별거 아니었지만 이 작은 행동이 행복했다.
“내가 지켜줄게.”
“그 말은 백 번도 넘게 들은 것 같아.”
“이번에는 좀 다른 다짐이야.”
“그 말도 오십 번은 넘게 들었어.”
“용군주에게서 명령이 떨어졌거든.”
“용군주?”
이사벨은 고개를 갸웃했다.
용군주라는 말은 [시한부 악녀가 죽고 나면>을 모두 읽은 이사벨에게도 낯선 것이었다.
결말까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용군주는 또 왜 나선 거야?’
소설의 내용과는 별개로 무려 용군주쯤 되는 존재가 나섰다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빌헬름의 계략이 그만큼 무시무시하고 위험한 것인가 봐.’
세계의 평화를 위협할 만큼 말이다.
이사벨은 이사벨 나름대로 생각에 잠겼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내 삶은 이제 3년도 남지 않았는데.’
빌헬름이 언제 본격적으로 움직일지 알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움직일 수도 있고, 1년 후가 될 수도 있고, 3년 후가 될 수도 있다.
“아룬.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하는 걸까?”
“무슨 말이야?”
아룬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혹시 내가 너를 불편하게 만들어?”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나는 너랑 함께 있는 시간들이…….”
조금 망설였다.
아룬에게 조금씩 스며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사벨은 여전히 그 감정을 조심했다.
너무 큰 상처를 남기고 떠나게 될까 봐.
그것이 두려웠으니까.
“즐겁고 소중하기는 해.”
그 말에 초조해하던 아룬의 표정이 밝아졌다.
평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검은 고래 부기사단장이건만, 이사벨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울고 웃었다.
“아룬은…… 가족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종류의 감정들을 다채롭게 느끼게 해주고 있어.”
“그게 사랑이면 좋겠다.”
“…….”
이사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약혼한 이후로 아룬이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변했다.
예상치도 못한 타이밍에, 해맑고 따뜻한 얼굴로 훅훅 치고 들어오는 것이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매일매일 불안에 시달리는 것도 사실이야.”
빌헬름이라는 적이, 500년을 기다려온 거대한 적인 자신을 노리고 있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나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
“…….”
“아룬도 어쩔 수 없이 약혼하게 되어버렸잖아.”
“그, 그건 어쩔 수 없지 않았어.”
“네 스스로 어쩔 수 없다고 했잖아.”
“그, 그건……!”
아룬은 부정하지 못했다.
아룬이 직접 ‘어쩔 수 없다’라고 여러 번 얘기했었으니까.
“그런 것들이 전부 다 신경 쓰여.”
“…….”
“나는 내 남은 3년을 이렇게 불안해하면서, 초조해하면서, 남들에게 민폐 끼치면서 살고 싶지 않아.”
처음에는 선물이라고만 생각했다.
실제로 여전히 선물이라고 여긴다.
그렇지만 이 선물의 끝이 다가오자 점점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이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
그럴수록, 그녀는 이 시간을 가치 있게 쓰고 싶었다.
“아룬. 나를 도와줘.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을 거야. 우리가 먼저 손을 써야 해.”
“……이사벨.”
이제 겨우 3년 남은 선물을 위하여.
세 번 남은 봄을 위하여.
* * *
마법 연방과 빌로티안 제국의 국경, 마법 연방과 7왕국의 국경들에서 크고 작은 충돌이 일어났다.
마법 연방은 마법사들을 앞세워 파괴력이 막강한 마법들을 사용하곤 했다.
이것은 빌로티안을 향한 경고였고, 일종의 무력시위였다.
그런데 세계 각지에서 용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요, 용이다!”
“지, 진짜 용이다!”
용을 전설로만 접했지,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인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전설 속 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 설마 빌로티안의 수호룡?”
수호룡이 있다는 기록이 있기는 했으나 그것이 실체로 밝혀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용들은 인간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마법을 구사하며, 마법 연방 측 마법 사단을 박살 냈다.
그러자 마법 연방 측은 즉각 성명을 발표했다.
[최근 네프만 지방에 나타난 흑룡으로 인하여 무고한 희생자가 20여 명이나 발생하였다. 빌로티안은 사악한 흑룡과의 계약을 통해…… 하여…… 결국 이 세상을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갈 것이다.]흑룡에게는 사악하다는 프레임을 씌웠다.
[빌로티안은 순수한 백룡을 거짓된 술수로 꼬드겨 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흑룡이 나타나자 애초에 사악한 흑룡이라고 호도했고.
백룡이 나타나자 빌로티안이 백룡을 속였다고 선전했다.
사실 몇몇 용은 자신들이 인간 세계에 이렇게 깊숙이 개입해도 되는 것인지 조금 불안해했다.
용들의 힘은 너무 강력하고, 그들은 세상의 질서와 자연스러운 순리를 바꿔버릴 수도 있었으니까.
몇몇이 용군주에게 이래도 되는 건지 묻자 용군주가 대답했다.
‘그래서? 불만 있는 놈들은 다 나오라고 해. 내 앞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도 용군주에게 불만을 품지 않았다.
* * *
빌로티안 황제의 집무실.
세르나와 론이 대화를 나누었다.
“어떤 용이 나타나든, 어떤 이유를 붙여서든 나쁘게 포장하여 말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아요. 뭐가 어찌 됐든 결론은 빌로티안은 사악하다, 위험하다로 귀결되더라구요.”
“그런 선동전에 많은 자가 놀아나는군.”
많은 사람이 빌로티안의 행보를 두려워했다.
안 그래도 막강한 힘을 가진 제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팽배한 상태.
“어쩔 수 없지요. 저들은 500년간 언론전을 펼쳐왔고, 우리는 500년간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까요. 500년간 축적된 노하우와 전통을 10년 만에 따라잡을 수는 없는 법이잖아요.”
“…….”
“500년간, 빌로티안 제국은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제국이다라는 인식이 새겨져 있어요. 많은 사람이 우리를 두려워하는 것도 사실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에요.”
마법 연방 측에서 아주 천천히, 교묘하게 그러한 프레임을 씌워왔다.
빌로티안은 그런 것들이 다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여 신경 쓰지 않았고.
물론, 전력 자체는 빌로티안 제국이 압도적이었다.
“차라리 일시에 쓸어버리면 편한 것을.”
“그러면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가 너무 많이 발생하잖아요.”
“그렇게라도 해서 빌헬름을 잡을 수만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오.”
세르나도 사실 고민이 많았다.
솔직히 론의 말에 구미가 당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사벨의 어머니임과 동시에 만인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제국의 어머니로서, 중심을 잡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수석 보좌관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본인을 비아톤이 아닌, ‘수석 보좌관’이라고 말했다.
공적인 보고를 하겠다는 뜻이었다.
비아톤은 늘 그렇듯 깔끔하게 잘 다려진 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웃음기를 뺀 채 보고를 시작했다.
“왜 그렇게 무게를 잡지?”
“황녀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비아톤이 말을 시작했다.
“황녀님께서는…… 본인이 위험을 감수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빌헬름을 잡기 위하여 함정을 자처하시겠다 하십니다.”
순간, 론에게서 무시무시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지금 그딴 걸 보고라고 올리나?”
“생각해 보십시오. 황녀님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물론 어린아이만큼 사랑스러우시긴 합니다만.
그 말을 겨우 참았다.
지금은 공적인 보고의 자리였으니까.
“그분은 그분을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자가 불편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헛소리!”
“물론, 누구도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고 있지요.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 또한 황녀님을 위해서라면 제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칠 수 있으니까요.”
“…….”
“그러나 황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에게 남은 마지막 세 번의 봄, 그 봄을 따뜻하게 보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이사벨의 표정과 말이 너무나 간절해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경건해서.
그래서 비아톤은 이사벨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황녀님에게 남은 마지막 봄들을 위하여,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일지도 모릅니다.”
이사벨이 정말로 원한다면.
이사벨이 원하는 것이라면.
론과 세르나, 비아톤은, 그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설령 지옥 불에 뛰어드는 것일지라도.
“자세히…… 얘기해 봐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