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81)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81화 [S공금]
이사벨 입장에서는 솔직히 의외였다.
‘내가 생각한 빌헬름이라면…… 함정인 걸 알면서도 무리해서 일을 저질렀을 것 같았는데.’
그런데 지금 모양새를 보아하니 함정이라고 생각조차 못 하는 것 같았다.
‘나랑 빌로티안 황실을 무시하는 건가? 아니, 이것마저 함정은 아니겠지?’
어디가 됐든 몸의 일부를 잡아볼 수만 있다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러나 그럴 기회는 주어질 것 같지 않았다.
‘빌헬름 입장에서 괜히 멍청한 척할 필요는 없어.’
이사벨은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얘는 지금 방심 중인 거야!’
어찌 됐든 잘된 일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얻어내기로 마음먹었다.
이사벨은 아룬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것은 움직이지 말아달라는 신호였다.
‘부탁이야. 아무것도 하지 말아줘.’
그 마음을 담아 아룬의 눈을 한 번 바라보았다.
이사벨에 관해서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빠른 눈치를 가지고 있는 아룬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본 빌헬름이 껄껄대며 웃었다.
“그래, 무서울 수 있지. 이해한다.”
빌헬름이 보기에 이사벨이 아룬의 손을 잡은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확실히 겁을 먹은 것처럼 보였다.
빌헬름은 껄껄대며 얘기했다.
“그러나 검술가의 손을 그렇게 잡으면 안 된단다. 움직임에 제약이 많이 생기지 않겠니?”
“…….”
아룬은 지금 당장에라도 검을 뽑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직 아니야.’
이사벨의 마음을 읽었다.
사실 그도 이사벨이 뭘 하려는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이사벨을 믿었다.
‘이사벨이라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을 거야.’
아룬이 보는 이사벨은 늘 그랬다.
아룬 자신의 눈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배울 점이 정말 많은 약혼녀였다.
이사벨이 정말 괴로운 듯 말했다.
“날 왜 이렇게 괴롭히는 거죠?”
* * *
“날 왜 이렇게 괴롭히는 거죠?”
약간 연기가 필요했다.
내가 전문 연기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쪽 연기는 자신 있었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다고?”
정확히 말하면 연기도 아니었다.
그저 과거를 회상하면 되었다.
“나는 그저, 나는 그저 이렇게 태어났을 뿐인데.”
그냥 아팠을 뿐이다.
그냥 엄마 아빠가 없었을 뿐이다.
그때의 나도, 그냥 죽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간 너무 행복했어서 잊고 있던 옛 기억들을 일부러 끄집어냈다.
“나는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많은 축복과 사랑으로 덮여 있어서 하나도 아프지 않았었는데.
막상 떠올리고 보니 가슴이 저릿했다.
“왜 그렇게 나를 미워하지 못해서 안달인가요?”
수많은 사람이 나를 손가락질했다.
언론플레이하면서 사람들의 후원을 등쳐먹는 나쁜 년이라고 했다.
몇몇은 진짜 병원에 찾아와서 진짜 아픈 거 맞냐고 여러 번 확인했다.
볼을 찔러보는 건 예삿일이었고, 몇몇은 맥을 잡겠다며 내 손목을 잡아 보기도 했다.
심장 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내 가슴팍에 귀를 대본 사람들도 있었다.
‘뭐야, 내가 소리 들어보니까 하나도 안 아픈 애구먼, 뭘.’
면전에서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내 세계의 전부나 다름없던 인터넷 공간에서는 나를 감성팔이 사기꾼으로 몰아갔다.
그것은 내가 한국대 입학이 확정되었을 때 극에 달했다.
[몸이 그렇게 아픈데 공부를 어케했누?ㅋㅋㅋ] [쟤 통장에 10억 넘게 있다함ㅋㅋㅋ 에혀, 나도 다음 생에는 쟤로 태어나고 싶다ㅋㅋ] [감성팔이 할 때부터 알아봤다ㅋㅋ 그래도 머리는 좋은 듯 ^^]그런 기억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참고로 내 통장에는 2만 7천 원 있었다.
내가 사람들의 후원 덕분에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었던 건 맞지만, 내 통장에 돈이 들어온 적은 없었다.
병원비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후원되었다고는 했는데 그 돈이 어디 갔는지는 나도 모른다.
빌헬름은 내 반응이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흐흐흐.”
내가 괴로워하는 걸 보며 즐거운 모양이었다.
빌헬름은 여유롭게 말했다.
“네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르니, 마음속에 있는 한을 다 풀어놓으려무나. 그 정도 배려는 해주마.”
혹시 아룬이 발작할까 싶어 조심스러웠는데 다행히 아룬은 그 자리를 가만히 지키고 있었다.
“왜 내 마지막 순간이죠? 나는 아직 3년의 시간이 남았어요.”
“내게 네 몸이 필요하거든.”
아.
빌헬름한테 말은 안 했지만 나는 알약 모양의 녹음기를 삼킨 상태였다.
혹시 빌헬름이 눈치챌까 싶어서 마법이 아니라 과학기술에 가깝게 만들었다.
참고로 이건 유리, 테이슬론 경, 카린 선생님의 합작품이다.
그들 또한 각 영역의 세계관 최강자들이었고 능력이 출중했다.
내가 아이디어를 내자 즉각 마도공학과 결합하여 이런 녹음기를 만들어냈다.
“어째서요? 나는 이제 3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나요?”
아니, 진짜 3년밖에 안 남았는데 빡치네.
말하다 보니 조금 더 열이 받았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내가 뭘!”
화가 나니까 눈물이 좀 났다.
옛날부터 그랬다.
나는 화가 나면 눈물이 줄줄 나는 편이었다.
빌헬름이 어떻게 해석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는 권능의 그릇이 될 것이다. 위대한 신, 나르비달의 그릇.”
알아서 술술 다 말해줬다.
고맙게도.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렇게 되면 나는요? 나는 어떻게 되는데요?”
“걱정 마라. 그분의 권능이 너를 영원한 안식으로 이끌 테니.”
“그건 죽는다는 말이잖아!”
“어차피 죽을 목숨. 위대한 일을 위하여 죽는 것이니 영광 아니겠느냐? 흐흐흐.”
내가 불쌍해 보이면 불쌍해 보일수록 빌헬름은 더 좋아했다.
저 자식 사이코패스가 틀림없다.
나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것처럼 굴었다.
“좋아요. 그럼 나를 어떻게 납치했는지 알려줘요.”
“그건 왜?”
“나도 마법을 익힌 마법사예요. 이 마법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얼마나 고차원적인 건지는 알아요. 마치 공간을 통째로 드러내서 옮겨온 것만 같아요. 죽을 때 죽더라도, 학문적 호기심을 해결하고 죽고 싶어요.”
빌헬름은 턱을 매만지며 흐뭇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발언이 아주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아무리 봐도 미친놈이다.
“마법을 대하는 태도가 훌륭하구나. 조금 더 일찍 발견했다면 내 딸로 삼았을 것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
나는 황녀로 태어났는데 어떻게 딸로 삼는단 말인가.
그냥 자기한테 취해서 헛소리한다 생각하기로 했다.
반응을 보아하니 자기한테 취한 게 틀림없다.
내가 ‘아니! 어떻게 이리 대단한 마법을!’과 같은 반응을 보이자 신이 난 것 같다.
이건 뭐 빌헬름만 그런 건 아니고 마법사들의 종특이기는 했다.
“이 마법은 말이다. 제7차 차원방정식과 두룰마이코 대수학 정리를 응용하여…….”
와, 근데 나도 조금 제정신이 아닌가 봐.
이 상황에서도 저 말들에 흥미가 돋았다.
‘원리는 차원이격결계랑 비슷한 방식이기는 한데…….’
상당히 흥미로웠다.
나도 모르게 눈을 반짝거릴 뻔했다.
‘이 정도면 시간을 충분히 끈 것 같아.’
나는 황실 싱크 탱크와 함께 함정을 팠다.
비아톤 경이 내게 신신당부했다.
가능하면 시간을 오래 끌어주되, 너무 무리는 하지 말아 달라고.
위험할 것 같으면 곧바로 차원이격결계를 사용해 달라고 얘기했다.
참고로 내가 차원이격결계를 사용하면, 그 즉시 내 위치가 노출된다.
아빠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이미 내 위치를 추적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하여 이를 적분값으로 한다. 적분상수의 경우는 소거하여도 무방할 정도의 미비한 오차값을 발생시키므로…… 하여…… 마법 술식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는…….”
“보다 정교한 좌푯값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내 위치를 정확히 특정하기 위해 발동 시간이 좀 늦어진 거고.”
“오, 그렇지. 영특한지고. 마법 연방에서 태어났어야 할 기재로구나.”
빌헬름은 진짜로 기뻐 보였다.
누가 보면 지가 나 키운 줄 알겠다.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서 말했다.
“빌헬름. 나는 제국의 황녀, 이사벨이다.”
“흐음?”
갑자기 반말을 사용하는 것에 의아했는지 빌헬름이 날 바라보았다.
“한 가지만 약속해. 그러면 네게 순순히 협조하지.”
“네가 지금 내게 무엇을 제안할 수 있는 상황이라 보는가?”
어느새, 아룬의 몸에는 황금색 마력으로 이루어진 단단한 링(Ring)이 생성되어 있었다.
빌헬름이 피식 웃었다.
“용조차 제압할 수 있는 마법이다. 이제 너를 지켜줄 최후의 보루마저 사라졌어.”
음, 아닌데.
내가 보기에는 아룬이 금방 뜯어낼 수 있을 거 같은데.
내가 가만히 있어달라 부탁해서 가만히 있는 것뿐인데.
‘원작보다 더 강해진 남주를 뭘로 보고.’
매일 도망치면서 심계만 꾸미다 보니, 현실감각이 좀 떨어지는 거 같다.
내가 다시 말했다.
“나는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내 약혼자는 살려서 돌려보내.”
“눈물겨운 사랑이군.”
“약속해.”
나는 다소 어리석으나 필사적인 사람처럼 굴었다.
빌헬름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나는 무척 안심했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그러고는 아룬의 손을 잡았다.
“아룬. 부디 행복해야 해.”
그리고 그 손을 만지작거리며 눈치를 주었다.
‘아직은 때가 아냐. 조금만 더 기다려.’
다행히 아룬은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내가 몸을 돌려 빌헬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어떻게 하면 돼?”
“테이블 위에 누워라. 이곳이 곧 제단이 될 것이니.”
빌헬름이 계속해서 흐흐 웃었다.
“드디어 500년의 대계가 이루어지는구나.”
내가 테이블 위에 누웠다.
테이블 아래쪽에서 검은 마력이 솟구쳐 올라 나를 뒤덮었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들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그림자가 내려앉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시야가 모두 가려졌을 때, 나는 이때가 마지막 순간이라 판단했다.
‘차원이격결계.’
나를 통째로 다른 차원으로 이격시켜 나를 보호하는 결계.
1초.
2초.
3초.
나를 둘러싼 세상에 쩌적- 쩌적- 금이 가기 시작했다.
차원이격결계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적어도 3분은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빌헬름의 힘이 강력한 것 같았다.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오래 끌지 않았다면, 더 나쁜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쨍그랑-
나를 둘러싼 결계가 깨졌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축제를 시작하지.”
놀랍게도, 리아의 목소리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