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83)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83화
여태껏 거의 참관만 하던 용군주가 몇 걸음 앞으로 움직여 이사벨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사벨?”
“…….”
이사벨에게서는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콰지직!
커다란 스파크와 함께, 이사벨과 찰싹 달라붙어 있던 아룬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비아톤이 아룬을 겨우 받아냈다.
“아룬 경을 껴안는 취미는 없는데 말이죠.”
비아톤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팔이 부러졌어.’
튕겨져 나온 아룬의 몸을 받아내느라 팔이 부러졌다.
아셀리아가 말했다.
“결국 빌헬름은, 그대가 만든 체스판 위의 말이었을 뿐인가.”
“…….”
이사벨이 고개를 들었다.
이사벨의 눈동자는 검은색이었다.
얼굴에 생기는 완전히 사라졌고, 검붉은 혈관이 온몸에 돋아났다.
“죽음의 신을 강림시키겠다던 인간의 오만을 이용한 신의 농간이었구나.”
땅바닥으로부터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 곳으로 모여 하나의 형태를 이루다가 이내 빌헬름의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내가…… 살아 있어?”
이사벨이 말했다.
“내 곁을 지키라. 아직 완성되지 못하였으니.”
“……음?”
빌헬름으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이사벨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감히 쳐다볼 수 없을 정도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설마.’
전후 과정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보니 나르비달이 강림한 것 같았다.
“내가! 내가 너를 강림시켰다!”
빌헬름이 크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내게 복종하라!”
그런데 빌헬름의 머리 위에 황금색 관이 생성되었다.
그것이 빌헬름의 머리를 꽉 조이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악!”
여태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고통과 공포를 경험했으나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정신이 산산조각 나는 느낌이었다.
“내 곁을 지키라고 명령했을 텐데.”
빌헬름의 눈에서 안광이 사라졌다.
그는 마치 꼭두각시 인형이 된 것처럼 이사벨 옆에 섰다.
아셀리아가 말했다.
“그러니까, 그대가 원한 대로 그릇을 차지하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아직 완전하지는 못하다는 뜻인가.”
“용군주. 그리고 용들은 여기서 손을 떼주면 좋겠는데. 너희가 말하는 세상의 멸망 같은 건 없을 테니까.”
아셀리아는 사실 세계멸망 같은 주제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나도 깜짝 놀랐는데 말이야. 네 생각보다 아룬이 너무 강했지?”
“…….”
아룬이 튕겨 나가는 순간, 아셀리아는 똑똑히 보았다.
이사벨의 몸을 빌린 나르비달이 이곳에서 벗어나려 했다는 것을.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찰나의 시간 동안, 수십 개의 공방이 오갔다.
“근데 그거 알아?”
“무엇을?”
“아룬이 약해서 네게 밀려난 게 아니야. 네가 그냥 적이었다면 이미 목이 땅에 떨어졌을걸.”
이미 성립될 수 없는 싸움이었다.
나르비달이 이사벨의 몸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우리의 아룬 경은 이사벨을 공격할 수 없는 병에 걸려 있거든.”
* * *
“용들은 이곳의 마력 결계를 더욱 단단히 한다.”
아셀리아가 비아톤과 황자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도 일단은 가만히 있어. 얘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으니.”
“아셀리아 경. 상관에게 예는 갖추셔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아셀리아 경의 상관입니다.”
아셀리아가 피식 웃었다.
“부탁합니다, 비아톤 경. 나르비달의 얘기를 들어봐야, 이사벨을 되찾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러지요. 대기하겠습니다.”
아셀리아는 이사벨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래서? 그대한테도 나쁜 제안은 아닐 텐데?”
“…….”
“힘을 복구해야 할 시간, 혹은 그 몸을 완전히 차지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할 테니.”
영문은 알 수 없었으나 나르비달은 이사벨의 몸을 완전히 차지하고 싶어 했다.
“근데 이사벨의 저항이 만만치 않지?”
“…….”
“그게 인간의 잠재력이다, 오만한 신이여.”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나르비달이 말했다.
이사벨의 목소리였다.
“나는…….”
모두가 입을 다물고 이사벨의 입을 주시했다.
“……죽고 싶다.”
미하엘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 동생 입으로 그딴 말 하면 부숴 버린다!”
하도 난리를 피워대는 통에 세르몬이 미하엘의 목덜미를 내려쳐 기절시켰다.
그러나 미하엘을 말린 세르몬의 눈에도 살기가 가득했다.
“계속 지껄여봐라, 신.”
“너희가 알다시피, 나는 죽음의 신이다. 태초부터 존재해 온.”
이사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용군주를 비롯한 사람들은 약간의 의아함을 느꼈다.
나르비달에게서 적개심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카린의 몸이 움찔했다.
‘마치…… 황녀님을 만나기 전의 나와 같구나.’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지금 나르비달의 상태가, 이사벨을 만나기 이전의 나와 같다는 것을.
‘신이 어째서?’
카린은 이사벨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사벨에게서는 처음 보는 표정이었으나, 카린에게는 너무 익숙한 표정이기도 했다.
‘아…….’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죽고 싶다는 저 말이 거짓이 아니구나.’
죽음의 신은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며 죽음 그 자체다.
그런데 신이라는 이름으로 태초부터 존재해 왔다.
죽음이 계속해서 살아왔다는 모순이 발생해 버린다.
‘저 신은, 소멸되기를 원하는 거야.’
그러나 신은 자연적으로 소멸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르비달의 낙인을 만들어 뿌렸다.’
그건 나르비달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죽음의 권세’를 조금만 나눠서 뿌려도 인간은 21년 만에 사망하니까.
그리고 빌헬름이 그 힘을 정제하여 이 공간을 만들었다.
죽음의 기운이 가득해서 죽음의 신을 일시적으로나마 불러올 수 있는 공간을 말이다.
‘이사벨 황녀님의 몸에 들어가서 완전한 죽음을 맞고 싶은 거야.’
스스로 죽을 수 없으니까.
이사벨을 통해서 죽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림 직후, 아룬 경과의 공세에서 너무 많은 힘을 써버렸어.’
그래서 나르비달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사벨의 몸에 완벽히 동화될 수 있는 시간이.
완전한 소멸을 위해서 말이다.
“그대들에게 선택지는 없다. 나는 그대들을 주시해 왔다. 그대들의 검으로, 과연 이사벨을 벨 수 있는가?”
나르비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희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너희라면 나를 소멸시켜 줄 수 있겠지.”
안광이 사라진 빌헬름이 이사벨 앞에 섰다.
이동 마법을 위하여 마력을 일으켰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때는 부디, 나를 죽여다오.”
* * *
빌헬름은 이동 마법을 시전했다.
‘일단은 네년의 말을 듣도록 하지.’
머리 위에 씌워진 금관이 주는 고통은, 인간으로서는 감히 항거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누구 마음대로 죽어?’
이제야 겨우 나르비달을 강림시켰다.
이를 위하여 얼마나 많은 준비와 고생을 했단 말인가.
‘저 힘을 조금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도!’
그러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저 콧대 높은 빌로티안도 자신의 발아래 무릎 꿇게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일단은 나르비달에게 협력하며 기회를 엿보기로 했다.
‘틈이 있군.’
용들이 펼치고 있는 마력 결계도 결국 완벽한 건 아니었다.
저들 또한 아까의 전투로 인하여 피로감이 많이 쌓인 상태였고, 뚫고 지나갈 틈이 보였다.
‘이동.’
* * *
론은 어딘지 모르게 초조해 보이는 모습으로 말했다.
“너무 지나치게 대비한 것 아닌가?”
“지나치게 대비하는 것이, 안일하게 대비하는 것보다 만 배는 낫습니다, 폐하.”
“데일사. 나는 우리가 빌헬름 그놈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기분이 든다.”
“과대평가하는 것이 과소평가하는 것보다 만 배는 낫습니다, 폐하.”
데일사는 허공을 계속해서 응시했다.
그녀 또한 론 못지않게 초조했다.
‘슬슬 나타날 때가 지난 것 같은데.’
예전, 론이 데일사에게 약속했었다.
빌헬름의 목은 데일사에게 양보해 주겠다고. 남편의 복수를 하게 해주겠다고.
‘그러나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빌헬름을 직접 처치할 수는 없다고 해도, 이곳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결국 저쪽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뜻이니까.
그렇다면 이사벨을 위협하는 요소가 사라져 버린 것일 테니까.
데일사는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응?’
그런데 마력 파동이 느껴졌다.
테이슬론과 카린을 통해 여러 번 연습하고 느껴보았던 그 마력 파동이 틀림없었다.
“이동 마법입니다.”
“결국 여기로 왔군.”
빌로티안 측 전략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빌헬름을 압박하고 궁지에 몰아넣으면 결국 도망을 치게 될 것이다.
퇴로를 일부러 열어주었다.
더 완벽한 함정에 몰아넣기 위해서.
이중, 삼중으로 덫을 놓았다.
마법진을 통해 빌헬름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놈들은……!”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언제 뽑았는지, 데일사는 검을 갈무리하며 말했다.
“제게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빌헬름의 몸을 덮고 있던 로브가 반으로 갈라졌다.
예전, 론이 약속했었다.
데일사가 직접 빌헬름을 베게 해주겠다고.
오늘, 그 약속을 지켰다.
투드득.
뼈가 무너져 내렸고, 빌헬름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허망한 최후였다.
이사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분명 이사벨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사벨의 얼굴이었다.
낯빛이 무척 어둡고 검붉은 핏줄이 돋아나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사벨이 틀림없었다.
“제발 저를 놓아주세요.”
“…….”
데일사도 멈칫했다.
둘로서는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부탁이에요. 저를 놓아주세요. 혼자 있고 싶어요.”
“…….”
“쉬고 싶어요.”
“……이사벨.”
론이 이사벨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이사벨의 손을 잡아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사벨을 올려다보았다.
다행히 별다른 부상은 없어 보였다.
“몸은 괜찮은 것이냐?”
“네, 저는 정말 괜찮아요. 당분간만 혼자 있고 싶어서 그래요.”
“…….”
이사벨의 간절한 부탁에 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렇게 말을 한다면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지 않느냐?”
“고마워요.”
이사벨이 힘겹게 웃어 보였다.
몸을 돌려 어딘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데일사가 비명 지르듯 소리쳤다.
“폐하! 이, 이 무, 무슨!”
론의 검이 이사벨의 몸을 꿰뚫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