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84)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84화
이사벨이 잠들어 있던 7년.
그 7년간 세상은 크게 변화했다.
학자들은 입을 모아 7년의 변화가, 500년의 변화보다 더 크다고 얘기했다.
그만큼 세상은 대격변을 겪었다.
그리고 그 이상의 대격변을 경험한 사람이 몇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사람은 역시 론과 아룬이었다.
둘은 서로의 좋은 경쟁자고 라이벌이었다.
처음에는 3일 밤낮으로 검을 맞대었고, 아룬의 실력이 급성장함에 따라 둘은 30일 내내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그 과정은 론과 아룬 모두를 급격히 성장시켰다.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말이다.
32일간의 전투가 끝난 어느 날.
만신창이가 된 론이 말했다.
“도둑.”
“아룬입니다, 폐하.”
“네놈은 검술의 다음 경지가 무엇인지 아느냐?”
아룬은 잠시 침묵했다.
이다음 경지가 있으리라는 어렴풋한 생각은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폐하께서는 이미 검의 끝에 다다르시지 않았습니까? 그 너머가 존재합니까?”
“존재한다.”
“……그것은 깨달음의 영역이겠군요.”
그리고 1년 뒤.
38일간의 전투가 끝난 어느 날.
론이 또 말했다.
“도둑놈.”
“아룬입니다, 폐하.”
“다음 경지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검을 초월한 영역.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검의 영역이다.”
“검이 어떻게 사람을 살립니까?”
그리고 다시 1년이 흘렀을 때, 아룬도 그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어렴풋이 보이기만 할 뿐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둘의 경지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던 건 성녀 마리아가 빌로티안에 합류한 이후였다.
“제가 조금은 도울 수 있지 않을까요?”
성녀 마리아의 도움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난쟁이족 마도명장 히르덴도 빌로티안에 검을 선물하고 싶다고 찾아왔다.
난쟁이 마도명장 히르덴은, [시한부 악녀가 죽고 나면>에서 남주 아룬에게 뛰어난 무구들을 선물하는 인물.
원작 속 빌로티안 황가를 무너뜨리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하는 조연이었다.
“아주 오래전, 비아톤이 나의 물건을 훔쳐 간 적이 있었소. 그걸 이사벨 황녀가 직접 찾아와 사과하더군.”
그때부터 히르덴은 이사벨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세상이 변화하고 이사벨 찬가가 울려 퍼지는 걸 보면서 그는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내 마지막 역작을 빌로티안에 남기고 싶소.”
성녀 마리아.
난쟁이족 마도명장 히르덴.
둘이 협력하여 새로운 검을 만들었다.
검의 이름은 ‘이사벨’.
빌로티안 제국 유일 황녀의 이름을 딴 그 검은, 히르덴의 명작이자 유작이었다.
“이러한 보물을 남길 수 있게 되어 영광이오.”
그는 만족스레 웃으며 눈을 감았다.
그 검을 쥐고서 론은 아룬과 대련에 임했다.
어느 날.
론이 아룬의 배를 찔렀다.
검 ‘이사벨’이 아룬의 배를 뚫었을 때, 아룬은 기이함을 느꼈다.
‘안 아프다?’
오히려 몸에 활력이 도는 것만 같았다.
마치 마리아의 성력이 몸에 깃든 것만 같았다.
“어떤 느낌이지?”
“충격은 있습니다. 제가 아닌 일반적인 기사들이 맞았다면 그 충격으로 사망했을 겁니다.”
“…….”
“그러나 그 이후,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기운이 제 몸속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생명력이 충만해지는 그런 기분인데 이건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론이 아룬에게 검 ‘이사벨’을 넘겨주었다.
“너 또한 이 경지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그 검이 너를 도울 것이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뭐?”
론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주는 거 아니고 빌려주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고 난 이후 반납하도록.”
그리고 그날부터 약 72일간 전투가 벌어졌고, 결국 아룬도 새로운 경지에 진입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이 검의 경지를 일컬어 ‘생검’의 경지라 불렀다.
* * *
죽음의 신, 나르비달.
죽음이 있었던 그 모든 순간부터 존재해 왔던 신.
그가 이사벨의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
죽음의 신은 누구보다 죽음에 가깝지만, 반대로 또 죽음과 가장 먼 존재기도 했다.
“이것이 죽는다는 느낌일까?”
이사벨(나르비달)이 행복하게 웃었다.
드디어 모든 것에서 해방되는 것만 같은 청량감이 밀려들어 왔다.
나르비달이 말했다.
“나를 조금 더 찔러줄 수 있겠어? 아직 부족한데.”
“…….”
론이 다시금 검을 들어 올렸다.
“네가 평온한 꼴은 못 보겠는데.”
“응?”
“네 사정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누구보다 죽음을 원하며 괴로워했을 나르비달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 딸을 괴롭혀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론은 분노를 잘근잘근 씹으며 나르비달을 노려보았다.
만약 나르비달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더라면 최대한 괴롭게 죽일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얼굴이 이사벨이라서 그러지도 못했다.
“그러나 너를 소멸시켜야 내 딸이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지.”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그동안 인간이 단 한 번도 닿지 못했던 경지, ‘생검’의 묘리를 담아.
나르비달이 눈을 질끈 감았다.
“고맙구나.”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그 시점.
검 ‘이사벨’이 부서졌다.
죽음의 신 나르비달의 권능이 결국 검의 생명을 모조리 앗아간 것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나르비달이 눈을 크게 떴다.
드디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평안한 안식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검의 매개체인 ‘이사벨’이 부러져 버렸다.
론도 적잖이 당황했다.
검 ‘이사벨’ 없이 생검의 능력을 사용할 수는 없었으니까.
“방법을 찾아라, 위대한 인간이여.”
나르비달은 신이었다.
존재에 깊은 상처가 나기는 했지만, 곧 회복될 것이었다.
그것이 신의 권능이니까.
“그렇지 않으면, 결국 너는 네 손으로 네 딸을 죽여야 할 것이다. 나는 나의 소멸을 포기하지 않을 테니.”
여기서 소멸시키지 못한다면 결국 이사벨의 몸을 빌려서 죽는 수밖에 없었다.
데일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폐하. 무슨 방법이라도……!”
“나도 찾는 중이다.”
입술을 깨물었다.
나르비달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24시간이다. 24시간이면 나는 이 몸을 완전히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는 그보다 훨씬 짧았었다.
그러나 생검에 의하여 나르비달의 존재가 다쳤고, 덕분에 24시간의 시간을 벌게 되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을 테니, 부디 나를 죽여다오.”
* * *
마력 결계를 유지하던 용 중 한 명이 아셀리아에게 다가갔다.
“용군주라 불러야 합니까, 아셀리아 사무관이라 불러야 합니까?”
“편한 대로 해. 아니다. 난 기억 지울 거니까 아셀리아 사무관이라 불러.”
그 용은 남색 머리카락에 하얀 피부를 가진 남자였다.
론과 모습이 꽤 닮아 있는 그의 이름은 르슈아.
흑해에서 수련에 매진하던 중, 용군주의 명령을 듣고 합류한 용이었다.
현재 신분은 빌로티안의 1황자.
“그러도록 하지, 아셀리아 사무관.”
아셀리아가 방긋 웃었다.
“네, 말씀하세요, 1황자님.”
“곧 우리가 유지하던 마력 결계도 풀릴 것이다.”
“수고했어요. 그래도 역시 황자님 능력이 제일 출중하긴 하더라. 그나저나 황자님이 합류할 줄은 몰랐는데. 흑염룡 사태 이후로 처음 보는 거잖아.”
르슈아는 고리타분한 용이었다.
용들은 르슈아를 일컬어 원칙의 용이라고 불렀다.
원칙을 깨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고룡이었고, 인간의 모습일 때에는 철두철미하게 인간으로 살아가는 성격이었다.
그 용이 기존의 철칙을 버리고 용군주의 명령에 응했다.
“아셀리아 사무관이 용왕령을 발동해서 어쩔 수 없었지.”
“고룡들은 용군주의 명령을 무시할 수 있을 텐데요?”
“전 대륙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동생의 일이라서 말이야.”
그는 원칙의 고룡답게, 인간사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인간의 몸으로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나’였다.
그래서 황실에 복귀하지 않고 오로지 수련에만 매진했다.
황제인 론은 르슈아가 진짜 제 자식이 아니라 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르슈아에게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았었고.
르슈아가 아룬에게 다가갔다.
“아룬 경. 내 아버지와 비교하여 그대의 능력은 어느 정도지?”
“아직은 제가 조금 약할 겁니다.”
“그렇군.”
르슈아는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인간의 모습으로 나는 그 한계를 느끼고 싶었다. 마수들이 득실거리는 흑해와 미지의 숲에서 수련에 수련을 쌓아왔지. 나는 아버지를 뛰어넘고 싶었다.”
“…….”
“그런데 그대조차 뛰어넘을 수 없겠구나. 아룬 경. 내 수련 방식이 틀린 것이냐?”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대와 나의 차이가 무엇인가?”
“지켜야 할 소중함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이의 차이입니다.”
아룬은 자신이 왜 강해졌는지 안다.
그것은 이사벨 때문이었다.
이사벨의 존재 자체가 그의 도움이었고, 이사벨의 존재가 그를 단련시켰다.
이사벨을 위해서, 그는 강해졌다.
“그렇군.”
르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와 내 동생들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구나. 모두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해졌으니.”
“아버님을 만나시면 더욱 확신하실 겁니다.”
“아버님?”
“황제 폐하요. 저는 황녀님과 약혼했으니 황제 폐하가 제 아버님 아니겠습니까?”
르슈아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고서는 말을 이었다.
“아버지를 만나 뵈어야겠다.”
“곧 길이 열릴 겁니다.”
겉으로는 여유로이 말하고 있으나 아룬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폐하께서 어련히 잘 마무리하셨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됐다.
1초라도 빨리 이사벨을 만나고 싶었다.
아셀리아가 말했다.
“길이 열렸어.”
아룬이 곧장 이동마법을 사용하려고 했으나 아셀리아가 말렸다.
“죽음의 권능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어.”
“…….”
“아룬 경이 아니라 마리아가 먼저 가는 것이 좋겠다.”
아룬은 아니라고, 내가 먼저 가겠다고 주장하고 싶었으나 입술을 깨물고 뒤로 물러섰다.
용군주의 판단을 존중했다.
“아룬 경의 존재감은 너무 크니까. 이사벨을 만나고자 하는 의지도 너무 강해. 아룬 경이 통과하면 그대의 존재감 때문에 길이 또 꽉 막혀 버릴 거야.”
1황자 르슈아가 마리아를 안아 들었다.
“이사벨을 향한 마음이 가장 약하고 적은 내가 성녀를 데리고 이동하는 것이 제일 나은 선택이겠지.”
모두의 동의하에, 르슈아가 마리아와 함께 가장 먼저 이동했다.
그의 발밑에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이내 둘의 눈에 론과 데일사. 그리고 이사벨의 모습이 보였다.
이사벨이 가부좌를 틀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버지.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론 대신 데일사가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그렇다면 나르비달을 소멸시킬 방법을 24시간 내에 찾아야 한다는 것이군요.”
“이제는 17시간입니다.”
얘기를 모두 듣고 난 마리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이사벨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저는 어쩌면 방법을 알 것 같아요.”
그 말에 나르비달이 눈을 천천히 떴다.
“그대는 성녀로군.”
“잠시 일어나 주시겠어요?”
나르비달이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리아는 공손히 허리를 숙인 뒤 무릎을 꿇고 이사벨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당신께서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세상의 전부였던 그 작은 오두막에서 꺼내준 사람이 이사벨이었다.
빛을 보게 해준 사람이 이사벨이었다.
마리아는 천천히 일어서서 이사벨을 정성스레 껴안았다.
“꼭 기억해 주세요. 제가 황녀님을 경애하였다는 것을.”
그 모습은 마치 마지막 말을 남기는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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