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85)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85화
마리아에게는 작은 오두막이 세상의 전부였다.
창문 대신 쇠창살로 가려진 그 어두운 곳.
그곳을 벗어나면 자신을 괴물 취급하는 괴물들이 가득했다.
그녀는 단 한 발자국도 오두막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곳만이 그녀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안락한 공간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녀에게는 아빠가 있었다.
언제부터 아빠가 되어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어떤 것들은, 떠올리려 하면 머리가 아파와서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빠가 빨리 오면 좋겠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아빠가 자신을 보러 와주는 날.
몸 여기저기를 살피기도 했고 피를 뽑기도 했다.
그녀는 ‘아빠’가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누군가 내 옆에 사람이 있다는 건 분명 축복이었다.
“가지 마세요. 무서워요.”
보통 그는 하룻밤을 지내면 다시 어딘가로 떠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마리아는 빌고 또 빌었다.
저 사람이 떠나고 나면 또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서.
제발 혼자 두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게 그녀가 살아온 세상의 전부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어두운 오두막에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마리아는 빛조차 두려웠다.
그 빛도, 결국은 자신을 악마라며 손가락질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자신이 가진 능력은 악마의 힘이 틀림없었으니까.
그러나 아니었다.
빛은 어둡지 않았다.
늘 차갑기만 했던 봄은 어느새 따뜻해져 있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능력은 악마의 능력이 아니었고, 그녀의 ‘아빠’는 아빠가 아니었다.
그녀의 인권을 유린하여 돈을 벌기 바빴던 장사치였을 뿐.
빛과 봄을 되찾은 마리아가 이사벨을 꼬옥 끌어안았다.
“황녀님께서 내 빛이 되어주셨고.”
마음 같아서는 이사벨 찬가라도 부르고 싶을 지경이었다.
“내 첫 봄이 되어주셨습니다.”
그 좁고 작은 오두막을 벗어나 봄이 가득한 세상에 발을 내디뎠다.
이제 아무도 그녀를 괴물로 보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성녀라 부르며 좋아해 주었다.
그녀는 그것이 기뻤다.
나르비달에게 육체를 빼앗긴 이사벨은 그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나르비달에게 부탁했다.
‘나르비달. 마리아를 안아줘요.’
내면의 목소리를 들은 나르비달은 팔을 들어 올려 마리아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마리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마리아는 무엇을 하려는 걸까요?’
죽음의 권능 때문인지, 마리아의 마음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르비달이 말해주었다.
‘그녀가 가진 힘으로 나를 죽이려고 하는…… 아니.’
나르비달은 그와는 조금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대를 살리려고 하는 것이다.’
나르비달이 소멸되어야 이사벨이 산다.
마리아가 가진 힘은 생명의 힘.
오로지 그 힘만이 나르비달을 안식으로 인도할 수 있었다.
마리아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는 그 봄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녀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어준 햇살이었다.
처음 만난 삶이었다.
“말을 취소할게요. 저를 기억하지 말아주세요.”
꼭 기억해 주세요. 제가 황녀님을 경애하였다는 것을.
그 말을, 이사벨이 기억하지 못하기를 바랐다.
‘저는 이곳에서, 기쁜 죽음을 맞이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살아갈 황녀님이 걱정됩니다.’
나르비달을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그녀 또한 목숨을 바쳐야 했다.
‘그것이 황녀님을 괴롭게 할 테니까요.’
저분은 그런 분이니까.
다른 사람 손가락에 박힌 작은 가시조차도 외면하지 않는 분이니까.
그녀는 힘주어 다시 말했다.
“저는 황녀님을 위해 이 길을 택한 것이 아니에요. 이건 저를 위한 선택이에요. 이렇게 해야, 제가 살 것 같아요.”
자신을 구원해 준 이 햇살이 저무는 걸 볼 수 없었다.
봄이 없는 세상에 혼자 살아갈 염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고, 이사벨을 살리기로 결심했다.
“다시 말할게요. 이건 저를 위한 일이에요. 그러니 가슴 아파하지 마세요. 그건 제 죽음을 모욕하는 일이니까요.”
비록 저는 죽겠지만 황녀님은 살기를 바라요.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마리아에게는, 황녀님이 필요해요.
황녀님은 누군가에게 다가가 또 다른 봄이 되어주시겠지요.
‘저만, 황녀님을 기억할게요.’
그리고 그녀는 그녀가 가진 모든 힘을 개방했다.
악마의 힘이라고 알고 있었던 이 힘.
그녀 스스로도 저주했었던 이 힘.
이 힘을 가지고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마지막으로 경애를 담아 고백했다.
“당신이 나의 여왕이었습니다.”
거대한 빛의 장막이 펼쳐져 이사벨과 마리아의 몸을 뒤덮었다.
그것은 인류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거대하고 밝은 빛이었다.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기적의 권능이 펼쳐졌다.
따스하고 온화한 기운.
인위적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이적의 빛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이사벨이 고개를 들어 올려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것이 인간의 잠재력인가.”
용군주의 말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조금씩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많은 폐를 끼쳤다.”
이사벨의 몸을 빌려서 죽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태초부터 존재해 온 신도 그렇게 판단했다.
그러나 그 판단이 틀렸다.
“너희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나를 이끄는구나.”
이건 단순히 저 인간의 힘만은 아니었다.
반드시 죽음이 필요했던 나르비달은 최후의 직전까지 자신의 계획을 바꾸지 않았다.
오로지 이사벨의 몸을 빌린 최후만이 그녀에게 죽음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강림 직후 만난 용들과 많은 인간.
그들이 상황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
그 이후, 론의 검이 기적을 일으켜 나르비달의 권능을 상당히 약화시켰다.
“하나하나의 마음이 모여 기적을 만들어가는 것인가.”
거기에 마리아의 성력이 더해져 기적이 벌어졌다.
그 기적의 빛에는 생기가 가득해서 죽음의 권세를 완전히 없애버릴 것만 같았다.
나르비달도 드디어 끝을 맺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나…… 조금 부족하다.”
그러나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역시 이걸로는 안 되는 것인가.’
나르비달은 씁쓸하게 웃었다.
“여전히 부족하다.”
인간의 잠재력은 무한에 가까웠으나 결국 신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마리아가 펼친 빛의 장막이 조금씩 옅어졌다.
마리아가 급속도로 늙기 시작했다.
죽음의 권능에 잠식당한 것이었다.
나르비달이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인간들의 기적도 결국 신을 폐위할 수는 없는 것인가.”
나르비달은 여전히 소멸하지 않았다.
마리아가 풀썩 쓰러졌다.
그녀의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마리아의 희생만으로는 나르비달은 죽이지 못했다.
나르비달은 실망했다.
‘여기서 끝이구나.’
인간들에게 큰 기대를 걸었으나 결국에는 실패한 것 같았다.
완전히 소멸하지 않으면 이윽고 부활하게 된다.
결국 이사벨의 몸을 빌려 소멸하는 방법밖에는 남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하나 또다시 내 상상을 뛰어넘는구나.”
나르비달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가슴을 찌른 검을 보았다.
아룬의 검이었다.
* * *
론은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이사벨에 너무 집중하고 있느라 아룬이 나타난 것도 몰랐었다.
아룬이 급히 달려가 자신의 검으로 이사벨을 찔렀다.
그리고 론은 직감했다.
‘아룬이…… 나를 뛰어넘었다.’
그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론은 마리아와 마도명장이 함께 제작한 검이 있어야만 생검을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룬은 그런 무구의 도움도 없이 생검을 사용했다.
연거푸 이어진 기적에, 나르비달도 드디어 자신의 소멸을 직감했다.
“인간들이여.”
“…….”
“너희가 꾸려갈 세계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구나.”
나르비달은 처음으로 죽음이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저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인간의 몸으로, 자꾸만 불가능을 개척해서 나아가는 저 모습들에 흥미가 생겼다.
“너희의 삶을, 너희가 만들어갈 세계를, 너희의 기적을, 응원한다. 부디 다가올 모든 봄이 따뜻하기를.”
이사벨의 몸 위로 오색 찬란한 가루가 피어올랐다.
죽음의 신, 나르비달이 완전히 소멸했고 이사벨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아룬이 이사벨을 안아 들었다.
“이사벨!”
론이 황급히 뛰어왔다.
“괜찮습니다. 호흡은 멀쩡합니다. 잠시 기절한 것뿐입니다.”
“…….”
“안정을 취해야 하니 제가 안고 있겠습니다.”
“…….”
“제 욕심으로 안고 있겠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황녀님의 안정을 위해서입니다.”
론이 이를 악물었다.
“도둑놈이 작정을 한 모양이구나.”
론은 인상을 찡그린 뒤 무릎을 꿇고 마리아를 향해 절을 올렸다.
그러고서 말했다.
“나는 그대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대 말대로, 그것은 그대의 죽음을 모욕하는 것이므로.”
얼굴에 생기는 사라졌고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았으나, 마리아는 웃고 있었다.
“다만, 그대의 죽음에 경의를 표한다.”
론은 마리아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만약 론이 마리아였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말이다.
론이 마리아의 몸을 안아 들었다.
“그대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 내가, 제국민들이 그대를 기억하겠다. 그리고 제국의 황제로서. 아니, 이사벨의 아비로서. 그대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그리고 아룬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사벨의 손목을 확인해 봐라.”
나르비달이 사라졌으니, 나르비달의 낙인도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사벨의 몸은 힘없이 축 늘어진 상태.
아룬이 이사벨의 오른 손목을 살펴보았다.
“……폐하.”
아룬이 인상을 찡그렸다.
“더 이상 말하지 말거라. 내 눈에도 똑똑히 보이니.”
“…….”
론의 눈에도 보였다.
나르비달의 낙인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수많은 사람의 마음이 모여 죽음의 신을 소멸시키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죽음의 신이 뿌려놓았던 죽음의 씨앗마저 사라지지는 않았다.
나르비달의 낙인은 여전히 이사벨의 생명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