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86)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86화
성녀 마리아는 황족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황실의 묘지, ‘검의 무덤’에 안장되었다.
“황실의 정통성에 크게 어긋나는 처사입니다!”
“근데?”
검림학사원의 반대가 있었으나 론이 압도적인 무력으로 찍어 눌렀다.
“이곳은 빌로티안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자가 있다면 검을 들고 앞으로 나서라.”
“…….”
“그 수가 일만이어도 비겁하다 탓하지 않을 테니.”
오만한 말이었으나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비록 죽었으나 마리아에게는 공작의 지위가 부여되었고 수많은 사람이 그녀의 죽음을 기리기 위하여 헌화했다.
황제는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표했다.
“마법 연방은 해체되었다.”
마법 연방을 이끌던 창성 마법사들이 빌헬름의 수족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빌헬름의 가문이 500년 전, 자신들의 야욕을 이루기 위하여 마법 연방을 창설했다는 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국에 비우호적이었던 언론사들은 모조리 제국 편으로 돌아섰다.
“마법 연방이 쫄딱 망한 마당에 제국에 붙어야지.”
“말이야 바른 말이지, 역사가 기록된 이래로 가장 강력한 제국의 시대 아닌가.”
“그래. 얼른 얼른 줄을 갈아 타야 해.”
언론사의 적극적인 협력 아래 빌로티안 제국은 마법 연방을 조금씩 흡수해 갔다.
그 작업은, 전직 귓속말의 수석기자 ‘율리’가 도맡게 되었다.
그녀는 새로이 만들어진 기관인 문화언론부의 장관이 되었고 지위는 후작이었다.
‘내 뜻을 펼칠 수 있어.’
더 이상 스폰서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보다 진실에 가까운 것들을 보도할 수 있게 되었다.
어린 시절 그녀가 꿈꾸었던 것들을 이제는 할 수 있게 되었다.
빌로티안 제국이라는 막강한 힘을 뒤에 업은 채, 그녀는 그녀의 신념대로 살 수 있게 되었다.
‘빌헬름의 더러운 술수. 그리고 그것을 막아낸 빌로티안 영웅들을 기록으로 남겨야 해.’
만약 빌헬름의 수작을 막지 못했다면?
정말 나르비달의 권능을 손에 넣은 빌헬름이 대륙에 활개를 쳤다면?
그랬다면 어쩌면 백성들은 지금 같은 태평성대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빌헬름의 노예가 되어, 빌헬름 밑에서 벌벌 떨며 살아갔겠지.
[……하여, 그 중심에 황실의 봄이 있었다.]빌로티안과 마법 연방의 격돌.
그리고 죽음의 신, 나르비달의 소멸.
그 이야기가 세계 곳곳에 퍼져나갔다.
* * *
한순간에 지도자를 모두 잃게 된 마법 연방의 혼란을 막기 위하여 제국에서도 중요 인사들이 파견되었다.
[마법 연방 출신의 위대한 마법사, 마법을 배신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결국 다시 일어선 불굴의 마법사, 그녀의 이름은 카린이었다.] [시한부 악녀가 죽고 나면>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카린은 마법 연방을 지배하게 되었다.겉으로 보기에 결과는 같았으나 그 속사정은 완전히 달랐다.
‘황녀님이 꿈꾸던 세상을 위하여.’
소설 속 카린은 전쟁광이었다. 전쟁만이 그녀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지금의 카린은 이사벨의 미소를 바랐다.
그녀가 공표했다.
“미로텔 마법 연방의 이름은 버린다.”
마도 왕국 아이사벨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다시피, 이사벨에서 따왔다.
(카린은 원래 이사벨 마도 왕국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었으나 이사벨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실패했다.)
마도 왕국 아이사벨의 초대 왕은 카린이었고, 그녀를 보좌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테이슬론이었다.
“끌끌, 앞으로 많이 바빠질 거야. 아니, 바빠질 겁니다, 전하.”
“테이슬론 경께서 많이 도와주시지요.”
“원래 이렇게 적극적인 사람이었나? 아니, 사람이었습니까?”
“황녀님이 조금 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니까요.”
“나도 어렸을 때에는 그런 세상을 꿈꾸었었는데 말입니다.”
테이슬론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 또한 조금 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꿨었다.
그래서 교류를 연구하고 수많은 사람에게 마도 공학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연구했었다.
그 결과 마법 연방에서 퇴출당하고 수많은 사람에게 손가락질당하게 되었지만.
“내 살아생전에 이런 걸 볼 수 있다니 정말 놀랍기 그지없군요.”
“황녀님이 일으킨 기적이지요.”
“전하는 무슨 말을 해도 결국 끝은 이사벨 황녀로 귀결되는군요.”
“…….”
카린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사벨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다들 그런 병을 앓고 있긴 합니다만.”
그런데 뒤쪽에서 누군가가 걸어왔다.
“그건 병이 아닙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리현상 같은 거지.”
“재수 없는 놈. 너는 제국이나 지키고 있지 여긴 왜 온 거냐?”
테이슬론은 다가오는 남자, 비아톤을 보고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저라고 여기 파견 오고 싶었겠습니까? 황녀님 옆에 있고 싶지.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란 걸 좀 해주면 좋겠는데요.”
“내가 기회가 온다면 네놈의 혓바닥을 삐이- 해버릴 터인데.”
“할 수 있다면 해보시지요. 그 삐이- 는 내가 먼저 할 테니.”
둘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에르베 산맥에서 처음 만났을 때 이후로 늘 있는 일이라 카린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두 분의 협력을 기대하죠. 수석 보좌관님, 차석 보좌관님.”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가 카린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비아톤이 재빠르게 말했다.
“잘 부탁합니다, 차석 보좌관님.”
“무슨 소리입니까, 차석 보좌관님. 제가 수석 보좌관인데.”
“저는 제국에서부터 수석 보좌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수석 보좌관인 게 맞지요, 차석 보좌관님.”
“마도 왕국 사정에는 제가 더 밝습니다. 애초에 그쪽처럼 반쪽짜리 마법사가 아니고 진짜배기 마법사지요. 제가 수석이고 그쪽이 차석인 게 맞지 않겠냐? 이 박쥐 같은 놈아!”
카린이 말했다.
“이곳은 마도 왕국이니, 수석은 테이슬론 경, 차석은 비아톤 경이 맡아주시면 좋겠는데요.”
“후후후.”
테이슬론은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비아톤은 승복할 수 없었다.
“납득할 수 없습니다. 테이슬론 경의 밑으로 들어가라니요? 이건 제국 수석 보좌관인 저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황녀님이 그렇게 부탁하셨습니다.”
“완벽한 인사 행정이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국왕 전하. 그리고 수석 보좌관님.”
* * *
나르비달 사건 이후로 벌써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정말 엄청난 변화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그런대로 잘 굴러가는 느낌이었다.
‘햇살이 엄청 좋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렇게 따뜻한 햇살을 맞는 것이 좋았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 사소한 행복이 소중해졌다.
‘이제 1년도 안 남았네.’
요즘은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이 밀려들기도 하고 갑자기 고열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제 내 삶이 1년도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막 엄청 아픈 건 아니라서 다행이야.’
많이 아파봐서 안다.
아픈 건 정말 서럽다.
이 정도 아픈 건 그냥 조금 불편할 정도였다.
‘세상이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아.’
나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새로운 삶을 선물받았으니, 그 삶을 최대한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
어차피 내 운명은 바뀌지 않을 테니까.
신이 죽었는데도 내 낙인은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이제 더 이상 나르비달의 낙인을 가진 아이도 태어나지 않고 있고.’
나르비달이 소멸하면서 저주를 지니고 태어나는 아이가 없게 되었다.
내 대에서 저주가 끊어졌다.
그것도 참 다행인 일이었다.
“내가 언제 죽을지 알고 살아간다는 건 되게 무섭고 슬픈 일인 것 같아, 아룬.”
어느새 내 옆에는 아룬이 서 있었다.
우리는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붙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룬이 내 옆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1년 전.
우리는 모두의 축복 속에-비록 아빠와 오빠들이 매서운 눈으로 아룬을 노려보기는 했지만-성대한 약혼식을 치렀다.
아무튼 시간이 흐르면서 아룬이 내 옆에 있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잠깐 안 보인다 싶을 때,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아룬은 늘 내 옆에 서 있었다.
“무섭고 슬프지 않을 거야. 나는 반드시 이사벨을 살릴 거거든.”
“…….”
아룬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고마워, 아룬.’
저 마음이 무척 고마웠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2년 동안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이제 1년이 채 남지 않았다.
나는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남은 사람들이 아프지 않게 잘 떠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진짜로, 고마워, 아룬.’
아룬이 옆에 있어줘서 나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저 내 옆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내 손을 통해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어느새 우리는 손 잡는 것이 익숙해졌다.
‘예전에는 마력을 통해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는데.’
나르비달을 몸에 받아들이고 난 이후 그 능력이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마력을 통해 상대의 감정과 마음을 읽어낼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때보다 더욱 강렬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룬의 손에서 전해지는 체온이.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가득 담긴 애정이.
나를 향한 모든 말과 행동들이.
나는 아룬을 통해서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이게 사랑받는다는 기분이구나.
이게, 이렇게 찬란한 거구나.
죽음마저 빛을 바라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사랑인 것 같았다.
“아룬. 부탁이 있어.”
지난 2년간, 나도 살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이 소중한 시간들을 더 누리고 싶다는 욕심을 가져봤다.
정말 치열하게 알아봤다.
나뿐만 아니라 제국의 날고 기는, 원작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게 된 사람들이 나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렇지만 역시 방법 같은 건 없었다.
이제는 정말로, 죽음을 담담히 준비해야 할 때가 왔다.
“무슨 부탁인데?”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었거든.”
죽기 전에라는 말은 뺐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내가 꿈꿨던 많은 것 중, 하나는 꼭 해보고 싶었다.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