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87)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87화
사실 이번 생을 선물받으면서, 내가 꿈꾸었던 대부분의 것을 경험했다.
나를 누구보다 사랑해 주는 가족들을 만났고 유리나 아셀리아 같은 친구도 얻었다.
나이 차이는 많이 나지만 비아톤 경이나 테이슬론 경, 카린 선생님도 무척 소중한 내 친구들이었다.
돈도 많이 벌었고 재단과 학교와 보육원들도 설립했다.
도움만 받던 입장에서 이제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다 기적 같다.
“딱 하나, 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건 학교에 다녀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 흔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냥 학교생활이 어떠하겠지 하고 머릿속으로 상상해 볼 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이 내게는 꿈꾸는 이상이었다.
‘그래도 대학교 수업을 한 번은 들어볼 수 있을까 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대학교 수업도 못 들어봤다.
한국 대학교 합격 통지서를 받은 이후 소설 속 세계로 들어와 버렸으니까.
“대학에 가보고 싶어.”
수명은 1년도 안 남았지만 그래도 이 몸은 굉장히 튼튼한 편이었다.
가끔 열이 나고 어지러운 것쯤은 옛날에 비하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대학?”
“응.”
이 세상에도 대학이 존재한다.
대부분은 옛 미로텔 마법 연방, 현 마도 왕국에 위치하고 있다.
아룬은 탐탁지 않은 모양새였다.
“교수로 가겠다는 말이야?”
“교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카린 경이 그러던데. 네 마법 실력은 대학교수를 가뿐히 능가하는 수준이라고.”
“에이, 설마.”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실제의 나보다 더 좋게 봐주는 경향이 있다.
가령 엄마 아빠의 눈에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미녀이자 천재였다.
“진짜라던데?”
“그냥 해주는 말이지.”
나는 푸스스,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지금 보니 아룬은 카린 선생님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얘도 참 팔불출기가 다분하다.
그저 나한테 좋은 말이라면 일단 믿고 본다.
“테이슬론 경도 그렇다던데?”
“나한테는 늘 후하게 점수를 주시잖아.”
아룬은 흐음, 하고서 턱을 매만졌다.
“근데 나도 그렇게 평가해. 너도 알다시피 나도 마법을 꽤 하거든.”
완전무결한 검술가였던 원작 속 아룬과 달리, 지금의 아룬은 어마어마한 마법 실력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내가 중요한 사실을 하나 짚었다.
“그렇지만 대학교수들을 만나본 적 없잖아?”
그러니까 정확한 비교는 어려울 것이었다.
‘그리고 다들 나한테 콩깍지가 씌어 있으니까.’
다들 약간 정신이 온전치 못한 느낌이다.
나는 그걸 충분히 이해한다.
내 삶이 1년도 남지 않았으니까, 다들 얼마나 내가 소중하겠어.
내가 다른 사람들 입장이었어도 그럴 거 같다.
아룬이 흐음, 하고 또 턱을 매만졌다.
“교수가 아니라 학생으로 가보고 싶다는 거지?”
* * *
이사벨은 자기객관화에 엄격한 편이었으나,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쳤다.
정확히 말하면 이사벨은 자기객관화에 실패했다.
그것은 그녀의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일단 그녀의 마법 교사는 카린이었다.
전성기를 훨씬 뛰어넘는 실력을 가지게 된 카린이다.
당연히 대륙에서 한 손에 꼽히는 마법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비아톤의 어머니이자 세기의 대현자인 베크사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라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였다.
카린뿐만 아니라 테이슬론과 비아톤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분야는 다르나 카린과 비슷한 반열에 올라 있었다.
그리고 용군주인 아셀리아-현재는 기억을 지워 평범한 소녀(?)로 돌아왔다지만-와 성룡들을 경험했고, 지금은 용인 아룬이 옆에 있었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모두가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는 절대자들이었다.
그 절대자들이 하필이면 다 이사벨 곁에 있었다.
그래서 이사벨의 기준은 저도 모르게 그에 맞춰져 있었다.
‘내가 그렇게 뛰어난 건 아니니까.’
이제는 왕이 된 카린이 말했다.
“황녀님이 대학을 경험하고 싶다는 말에 놀랐습니다.”
“카린 선생님, 이제 국왕 전하시잖아요. 말씀을 편하게 해주세요. 그래야 저도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이곳은…… 집무실이 아닙니다.”
카린은 집무실이 아닌 자신의 침실로 이사벨을 불렀다.
일과시간이 모두 끝난 저녁 시간에.
“마도 왕국의 국왕 카린 전하는 뛰어난 행정 능력과 공명정대함으로, 왕국민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대요.”
“……네?”
“비아톤 경이 그렇게 말씀하시던데요.”
“그저 제게 용기를 북돋는 말일 뿐입니다.”
이사벨의 기준이 잘못되었듯, 카린의 기준도 잘못되었다.
이사벨은 주변 사람들을 기준으로 잡고 있고, 카린은 이사벨을 기준으로 잡았다.
‘내가 한 것들은 황녀님이 세상에 선물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카린의 모든 것이 이사벨이었다.
이사벨에게 선물 받은 봄을 세상에 흩뿌려야 했다.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나눠주기에, 자신은 아직 너무 부족했다.
“여기, 추천장은 미리 써두었습니다.”
“이게 추천장이에요?”
“…….”
이사벨은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그녀 앞에서는 에르베 산맥의 칼날 같은 바람조차 그 예리함과 한기를 잃고 말 것입니다.그녀의 숨결은 얼음장보다 더 혹독한 북풍을 녹여낼 것이고, 그녀의 미소는……중략…… 하여, 이사벨 황녀의 입학을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바이며, 귀 대학에도 무궁한 영광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건 추천장이 아니라…….”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이사벨은 이 추천장을 선뜻 정의 내리기 어려웠다.
어찌 보면 이사벨 찬가와 결이 비슷하면서도, 또 은근히 헨켈 대학의 교장을 압박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대단하신 분을 안 데려갈 거냐? 후회할 텐데? 라는 내용 같은데…….’
카린이 대답했다.
“많이 추리고 줄인 내용입니다.”
“……이게요?”
“예. 이걸 가지고 헨켈 대학으로 가시면 됩니다. 연락은 미리 해두었습니다. 추천서는 요식행위일 뿐이니 그리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 * *
헨켈 대학, 마법 학과에 한 가지 소식이 전해졌다.
“레이나, 그 소식 들었어? 이사벨 황녀가 여기로 편입한대.”
나르모르 코퍼레이션에 크게 밀리기는 했어도, 로스일드 공작가의 금력은 여전히 막강했다.
로스일드 공작가는 헨켈 대학의 두 번째로 큰 후원자였고 로스일드 공작가의 외동딸인 레이나는 헨켈 대학에 기부입학 전형으로 몇 달 전에 입학했다.
레이나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입학 기간이 아니잖아?”
헨켈 대학은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
엄격한 규칙과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규율을 굉장히 중요시했다.
입학 기간이 아닌 기간에 입학한 학생은 500년을 통틀어 단 한 명도 없었다.
편입이란 제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입학시험 점수는?”
“입학시험도 안 쳤다나 봐.”
레이나는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입학시험도 안 치르고, 입학 기간도 아닌데, 헨켈 대학에 입학한다고? 그럼 기부금이라도 많이 냈어?”
“소식지를 찾아봤는데 그런 내용은 없더라고.”
레이나 기준에서, 그렇다면 기부도 안 한 거다.
만약 기부를 했다면 비밀리에 했을 리는 없을 테니까.
‘여태까지 이사벨이 그랬듯 방방곡곡에 소문을 다 냈겠지!’
물론 이건 레이나의 착각이었다.
이사벨은 별로 소문낸 적이 없다.
베푼 것이 너무 많아서 극히 일부만 세상에 알려졌을 뿐이었다.
레이나 기준에서 과하게 많이 베풀고 선전한 것이, 사실 이사벨 기준에서는 별거 아닌 친절에 불과했다.
기준과 그릇이 서로 많이 달랐다.
“정식 입학은 아니고 체험 같은 건가 봐.”
“아, 소꿉놀이를 하시겠다?”
레이나는 기분 나쁜 티를 숨기지 않았다.
“누구는 꿈과 미래를 걸고 여기서 매일 밤을 새워가며 치열하게 공부하고 있는데, 누군가는 황녀라는 이유만으로 여길 그냥 들어온다고? 그것도 재미 삼아서?”
그렇게 말을 하는 레이나의 몸에서는 어제 마신 술 냄새가 아직 다 가시지 않았다.
“그, 그렇게까지 생각할 거 있어? 그분이 해낸 일이 워낙 많고, 그분의 입학이 헨켈 대학에도 자랑스러운 일이라서 특별 승인이 떨어진 거 아닐까?”
“뭐? 그분?”
레이나가 주먹을 꽉 쥐었다.
“언제부터 우리가 신분으로 학생을 나눴어?”
“그, 그건…….”
“비천한 상인 가문 출신인 네가, 나와 이렇게 눈을 마주치고 같은 위치에서 얘기할 수 있는 건, 여기가 대학이기 때문이야. 잊었어? 이 교실 안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해.”
“…….”
교실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아무도 레이나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레이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사벨이 오면 인사도 해주지 말고, 얘기도 나누지 마. 알겠어?”
“…….”
“우리는 지성인이야. 감히 신성한 대학을 소풍처럼 여기고 들어오려는 걸 가만히 눈 뜨고 볼 수는 없어. 그 잘난 황녀의 이름도 여기서는 먹히지 않는다고. 여기는 대학이지, 황실이 아니잖아.”
모두가 레이나의 생각에 동의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레이나의 말대로, 황녀는 이들과 오래 생활하지 않을 거다.
정확한 기간은 정해지지 않았으나 짧으면 몇 주, 길어봐야 몇 달.
정말 아무리 길어도 1년 이내다.
레이나와는 4년 이상 붙어 있어야 하지만 이사벨과는 금방 헤어진다.
어느 쪽에 붙어야 할지는 불 보듯 뻔했다.
“알겠어.”
“……알았어.”
다들 레이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나는 다시 한번 씨익 웃었다.
“굳이 괴롭히거나 그럴 필요 없어. 그냥 유령처럼 대하기만 하면 돼. 그것이 우리가 학생으로서 정당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우리의 권리를 행사하는 거야.”
이번에야말로 큰코다치게 해주겠어.
그리고 며칠 뒤, 이사벨이 입학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사벨이라고 해요. 모두 반가워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