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88)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88화
나는 학교생활이 즐거울 줄 알았다.
그런데 인생이라는 게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
학생들은 나를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으음.’
일종의 유령놀이인 거 같다.
드라마에서나 봤지, 이걸 실제로 당하니까 생각보다 훨씬 서글펐다.
하루 종일 거의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원래 나는 1인 기숙사로 배정받았다가 내 강력한 주장으로 2인 기숙사를 쓰게 되었는데, 별로 의미 없게 되어버렸다.
나는 옆 침대에 누운 룸 메이트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올시아.”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 방에 내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으음, 이거 생각보다 서럽네.”
이불을 덮은 올시아의 몸이 움찔하는 게 보였다.
올시아는 의도적으로 내 눈빛을 계속해서 피해왔는데, 눈빛이 무척 흔들리는 것이 아무래도 자발적인 건 아닌 것 같다.
“올시아. 나는 오늘 이곳에 처음 왔는데, 기숙사 안내라도 좀 해주면 안 될까?”
“…….”
여전히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어.”
나는 그저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을 뿐인데.
1년도 남지 않은 짧은 시간 동안, 평범한 학창 생활을 가져보고 싶었을 뿐인데.
그건 아무래도 큰 욕심인 것 같다.
나는 수업도 혼자 들었고 밥도 혼자 먹었다.
쉬는 시간에도 쭉 혼자였다.
그런데 나 말고도 쭉 혼자인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게 내 룸메이트 올시아였다.
‘으음.’
솔직히 말해 나는 약간 서럽고 아쉬울 뿐이지, 이 상황이 괴롭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올시아는 무척 힘들어 보였다.
나는 친구들의 외면을 받고 있었고 올시아는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요 며칠 동안 나는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겉으로는 평등해.’
집안과 신분의 고하는 상관없는 곳이 바로 대학이었다.
그게 바로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였다.
같은 학년의 모두가 반말을 하고 같은 교복을 입는다.
‘근데 그건 이론적인 거고 실상은 다르지.’
대학은 과정마다 다르기는 해도 보통 4년에서 6년 과정이다.
그 기간을 벗어나면 결국 사회에 나가야 한다.
대학 기간 동안 지체 높은 집안의 자제들에게 찍히기라도 하면 인생 자체가 피곤해질 수도 있다.
결국 대학 내에서도 보이지 않는 권력과 서열이 만들어지게 마련이었다.
‘자세히 보니 올시아의 옷이 다른 애들에 비해 좀 낡았네.’
아마도 올시아는 대학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교복 한 벌만 입는 모양이었다.
다른 애들은 같은 교복이 몇 벌씩 있어서 땀이 조금이라도 나면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몇몇 마법적 처리를 더해서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만들기도 했다.
그런 애들과 비교하면 올시아의 교복은 초라하고 낡았다.
“누가 나보다 먼저 스푼을 들래?”
내가 보기에 올시아의 괴롭힘을 주도하는 사람은 레이나였다.
“내가 낸 돈으로 네가 수프를 먹는 거야.”
“…….”
레이나가 올시아 옆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다른 사람들 다 들으라는 것처럼.
“근데 내가 아직 스푼을 들지 않았는데, 네가 먼저 먹어?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미안해.”
올시아는 레이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발발 떨었다.
“거지가 이 학교에 들어왔으면 알아서 기어야지?”
레이나는 올시아의 식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뭘 하는가 했더니, 바닥에 엎드려서 식사를 하라는 거였다.
“너 같은 애한테는 스푼도 아까워.”
레이나는 올시아의 스푼도 빼앗았다.
올시아는 아무런 저항도 못 한 채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고기반찬도 아깝지.”
“……알겠어. 고기는 먹지 않을게.”
“이제야 말귀를 좀 알아듣는구나.”
레이나는 올시아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그리고 제 강아지에게 말하듯 말했다.
“먹어.”
“……고마워.”
올시아는 바닥에 엎드린 채, 스푼도 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레이나. 좀 너무하는 거 아냐?”
나는 허리를 숙여 올시아의 식판을 들어 올려 테이블 위에 놓아주었다.
그랬는데 올시아는 별다른 반응 없이, 그 식판을 다시 땅에 내려놓았다.
올시아는 여전히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곳의 권력자는 레이나구나.’
다들 레이나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레이나는 부채를 흔들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잘 모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 환청인가.”
그러고서는 유유히 걸어갔다.
내가 기숙사로 다시 돌아왔을 때, 올시아는 이불 속에 숨어서 숨죽여 울고 있었다.
* * *
깊은 밤.
숨죽여 울고 있는 올시아에게 내가 말했다.
“나는 너희가 나를 배척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아.”
저들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름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다.
저들에게는 인생이 걸린 대학이다.
혹독한 시험을 치러서 입학했고, 이곳에서도 치열하게 경쟁한다.
근데 나는 그저 학창 생활을 즐기고 싶다는 이유로 이곳에 입학했다.
존재하지 않는 편입이라는 제도까지 만들어가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이해하지는 않을 거야.”
“…….”
“너희 생각대로, 나는 학창 생활을 즐겨보고 싶었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이 있었어. 그래서 편법을 써서 여기에 입학한 거야. 나는 곧 죽거든.”
“…….”
애들은 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사실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나르비달의 낙인’이라는 건 이제 세상에 태어나지 않게 됐다.
‘잘은 모르겠지만…… 나르비달의 낙인을 가진 마지막 사람이 나겠지?’
그나마 세상에 ‘나르비달의 낙인’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는 했었는데, 이번 빌헬름의 음모 때문에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혹자는 나르비달의 낙인이 허구의 이야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나르비달의 낙인은 분명 존재하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런 말도 안 되는 게 어디 있냐고 얘기했다.
나는 그것도 이해한다.
미디어가 그렇게 발달했던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나보고 꾀병 아니냐고 그런 병이 어딨냐고 의심하던 사람이 그렇게 많았었는데.
여기선 더 그렇겠지.
“백 번 양보해서 나한테는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고 해. 그렇지만 네게 하는 행동들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아.”
“…….”
올시아는 내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아마도 레이나를 비롯한 생도들이 너무 무서운 모양이었다.
“내가 이곳을 경험하게 된 건, 어쩌면 그저 내 추억을 위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어.”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봤지 이런 걸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이런 괴롭힘이 진짜로 있겠나 싶었는데 진짜로 있었다.
“나는 너무 밝은 곳에서만 자라왔거든.”
이 세상은 내게 선물이 되어주었다.
그만큼, 내게 너무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렇지만 이 ‘마법 학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똑똑히 알려주었다.
이 생태계는 사회의 축소판이겠지.
“그렇지만 마냥 밝지는 않네.”
“…….”
“나는 너랑 친해지지 않을 거야. 나는 어차피 떠날 거니까.”
“…….”
“근데 나는 지금 기분이 무척 나쁘거든.”
“…….”
“그래서 화를 좀 내려고.”
여태까지는 잘 참아왔다
내 마지막 추억이 일그러지는 게 싫어서.
그리고 레이나에 대한 마지막 동정 같은 게 있었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레이나를 봐왔어.”
그 철부지였던 시절부터.
“나는 그때부터 레이나에게 아량을 베풀어왔거든.”
김벌꿀을 내놓으라 윽박지를 때도.
내 소중한 친구가 된 유리에게 누명을 씌우고 쫓아냈을 때도.
올림피아드 대회 때 나를 그토록 무시했을 때에도.
이후, 지르델 왕국에서 나를 같잖다는 눈으로 내려다볼 때도.
우리 집안을 야만적이라 무시할 때에도.
나는 레이나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왜냐하면 레이나는 어렸으니까.”
어린아이들은 많은 것을 배우며 자란다.
그들은 그들의 잘못에 큰 책임을 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아직 어리니까.
아직 배울 것이 너무 많으니까.
“그렇지만 이제 레이나는 어리지 않아. 어른이야.”
아이의 때에는 지지 않아도 되었을 책임을 이제는 져야 한다.
어른이니까.
* * *
다음 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레이나의 기분이 조금 나빠 보였다.
그리고 화풀이 대상은 늘 그렇듯 올시아였다.
레이나는 부식으로 나온 과일주스를 올시아의 머리에 쏟아부었다.
“내가 과일주스 먹지 말라고 했지. 너 같은 거지들 때문에 내 학비가 비싸지는 거 아냐!”
나는 마음속으로 영창을 읊조렸다.
올시아의 몸에 흐르던 과일주스 방울져서 공중에 둥둥 떠올랐다.
그리고 이내 레이나의 몸에 뿜어졌다.
물 싸대기, 아니, 주스 싸대기가 어떠냐.
“가, 감히……!”
사실 이거 진짜 어려운 마법인데 안타깝게도 레이나는 이게 얼마나 고난도 마법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마법을 써서 생도를 공격해? 감히!”
잘 몰랐는데 이거 교칙 위반이란다.
내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 마법, 내가 썼는데? 다시 보여줄까?”
손가락을 까딱 흔들었다.
영창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으니 재구성은 쉬웠다.
레이나를 흠뻑 적신 주스가 다시 허공에 방울졌다.
‘주스 싸대기!’
그리고 다시 주스 싸대기를 선물해 줬다.
무척 화가 난 레이나가 정체 모를 마법을 사용해서 나를 공격하려고 했다.
근데 마법의 수준이 너무 조악해서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마법이지?’
아니, 저게 마법인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마법 발동을 취소시켜 버렸다.
그리고서 주스 싸대기를 한 대 더 선물해 줬다.
촤악-!
이번에는 마력의 감응도를 높였다.
아마 조금 더 아플 거다.
“아아아아악!”
근데 저렇게 아플 정도는 아닌데.
겨우 이거 맞았다고 저렇게 눈물이 글썽글썽하다니?
‘이상하다.’
그래도 체내의 마력이 어느 정도 고통을 줄여줄 텐데.
겨우 이걸로 저렇게 아파하는 건 좀 이상했다.
그런데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이 학교의 교장, 루겔터 교장님의 목소리였다.
헐레벌떡 이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올시아가 그렇게 괴롭힘당할 때는 아무도 없었는데, 갑자기 누가 있네. 타이밍이 정말 좋기도 하여라.’
이건 우연일까?
나는 아마도 아니리라 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