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92)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92화
생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엄마, 아빠. 부탁이 있어요.”
요즘 들어 엄마랑 아빠랑 대화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또, 또. 눈물 글썽거리신다.”
특히 엄마는 더 그랬다.
바깥에서야 온화의 군주라고 칭송받는 사람이지만 내 앞에서는 감성이 풍부하고 눈물이 많은, 그냥 평범한 엄마였다.
엄마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콕콕 찍어서 눈물을 닦아낸 뒤 화사한 척 웃었다.
“하품이 났단다. 그래, 이사벨. 부탁이 무엇이니?”
“제 생일 파티는 너무 요란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생일은 내게 주어지는 스무 번째 생일이자, 내 마지막 날이다.
내 생일이자 장례식을 너무 거창하고 화려하게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네가 그걸 원할 줄 알고서 그렇게 준비 중이었단다.”
“정말요?”
엄마는 그랬겠죠.
나는 시선을 아빠에게로 옮겼다.
아빠는 갑자기 천장 쪽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내가 아는 아빠라면, 분명 세상에서 제일 화려한 파티를 계획하려고 했을 거다.
그게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겠지.
엄마가 아빠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그렇죠, 여보?”
“무, 물론이오.”
아빠가 말을 더듬는 건 처음 본다.
“엄마랑 아빠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아요.”
“그러니?”
“네. 엄마랑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군주라고 불리지만 제 앞에서는 그냥 사이좋은 부부니까요. 저는 그게 제일 보기 좋아요.”
내가 꿈꿔왔던 거.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엄마 아빠가 있는 거.
그 꿈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다시 체감되었다.
“저는 제 뜻을 전달했으니까, 제 방으로 갈게요.”
아빠의 내려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도 아룬이 네 곁에 있느냐?”
“네. 약혼자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제 호위기사기도 하고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지는 잘 모르겠군.”
“저를 노렸던 수많은 세력으로부터 절 지켜줬는걸요?”
“하지만 널 빼앗아갈지도 모르…….”
엄마가 아빠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아빠는 여전히 아룬이 마음에 안 드나 보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니 친하게 지내면 좋으련만.
엄마가 내게 말했다.
“어서 방으로 돌아가렴. 피곤할 텐데 푹 쉬고. 불편한 점 있으면 얘기하고.”
엄마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 이마에 입을 맞춰 주었다.
“잘 자렴, 내 아가.”
이마가 간지러웠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가 이내 활짝 웃었다. 그리고 엄마를 꽉 끌어안았다.
“어머?”
“엄마가 아가라고 하면 기분이 이상해요.”
나는 이제 다 컸다.
누가 봐도 어른이다.
다른 사람이 나보고 아가라고 부르면, 진짜 소름 끼칠 거 같다.
근데 엄마가 나한테 아가라고 부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진다.
어쩌면 나는 엄마 앞에서는 늘 어린아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저는 다 컸는데 말이에요.”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 눈에는 아직도 아가야.”
오늘도 기분 좋은 밤이 될 것 같다.
* * *
아빠에게 아직 말은 못 했지만, 나는 아룬과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잔다.
벌꿀오소리였던 김벌꿀을 품에 안고 잘 때처럼 말이다.
나는 아룬의 품에 안겨서 잠을 자는데, 아룬의 품은 마치 요람 같았다.
“아룬의 품은 늘 따뜻하고 포근해.”
아룬이 옆에 없는 날은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였다.
아룬은 빙그레 웃으며 나와 눈을 마주친 채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도 그랬어.”
“응?”
“김벌꿀일 때. 네 품이 세상에서 제일 안락했거든.”
우리는 밤이 되면 이렇게 한참 동안 수다를 떨다가 잠에 빠져들곤 했다.
별다른 얘기를 하지도 않는데 뭐가 그렇게 웃기고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내일 되면 밤이 다시 올 텐데.
이 밤이 지나가는 게 너무 아쉬웠다.
“김벌꿀이었던 나는 머릿속에 온통 싸움 생각밖에 없었거든.”
“호전적이기는 했지.”
“어떻게 하면 나를 두들겨 팬 사자랑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까끌까끌한 턱수염으로 내 얼굴을 문질러대던 테이슬론 경을 어떻게 때려눕힐 수 있을까, 저 곰이랑 싸울 때 어떻게 싸워야 하지? 온통 이런 생각뿐이었거든.”
나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김벌꿀답네.”
“근데 이사벨 품에 안겨 있으면 그런 생각이 하나도 안 들더라고.”
“지금 나도 그래.”
김벌꿀은 나보다 많이 작았다.
그렇지만 이제 아룬은 나보다 훨씬 컸다.
아룬의 품에 안기면, 든든한 요새가 둘러싸고서 나를 지켜주는 것만 같았다.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죽음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느낌이었다.
“고마워, 아룬. 네 품에 안겨서 잘 때가 제일 평온해.”
아룬의 머리 위에 마력 글자가 떠올랐다.
[나는 안 평온하지만.]나는 그걸 확인하려고 고개를 들어 올렸는데 글자가 금방 사라져 버렸다.
“무슨 글자를 띄운 거야?”
“사랑한다는 글자.”
“응?”
괜히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런 말로 장난치지 마.”
“장난친 적 없는데?”
“그렇게 함부로 하는 말 아닌 거 알잖아.”
“함부로 한 적 없어. 이 말을 꺼내기까지 수백 번은 고민해. 조금 더 멋진 말은 없을까, 조금 더 기쁜 말은 없을까, 조금 더 힘이 되는 말은 없을까.”
“…….”
꿀꺽.
아룬의 목젖이 꿀렁거렸다.
“근데 수백 번을 생각해 봐도 이보다 아름다운 말이 생각 나지가 않아.”
오늘따라 아룬이 조금 이상했다.
평소보다 숨이 더 가쁜 것 같았고, 몸에서는 열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평소보다 더 붉은 것 같기도 했다.
“그냥 나는, 이사벨을 사랑하고 있어.”
스륵,
아룬은 몸을 슬쩍 내리더니 나와 눈을 마주쳤다.
아룬의 커다란 눈망울이 보였다.
그 눈망울 속에는, 아룬이 말한 사랑이 가득가득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눈을 피하고 말았다.
“이제 네 생일이 30일 남았잖아?”
“……29일.”
0시 넘었으니까 29가 맞다.
30이랑 29는 아주 큰 차이다.
나는 괜히 민망해서 아무 말이나 해댔다.
“30은 2진수로 표현하면 11110이구.”
“나와 결혼해 줘.”
“29는 11101인…… 응?”
“나와 결혼해 줘.”
나는 정신을 퍼뜩 차렸다.
약혼까지는 그렇다 치고.
결혼은 또 다른 문제였다.
솔직히 결혼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울림이 없던 건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아룬과의 결혼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걸 내색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이제 곧 떠나.’
아룬의 운명 상대는 원래 아셀리아였다.
최근 아룬과 아셀리아의 사이가 상당히 각별해진 걸로 알고 있다.
나라는 변수가 사라지고 나면, 아룬과 아셀리아는 원작대로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알다시피 나는 한 달 뒤에 죽어. 미안해, 아룬.”
그와 동시에 아룬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똑 떨어졌다.
그 눈물이 베개에 닿았고, 아룬은 한참이나 울었다.
나도 알고 있고 아룬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서로 직접적으로 얘기한 적은 처음이라서 그런 거 같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아룬이 말했다.
“청혼 선물로 용의 심장을 구해올게. 너를 고칠 수 있을 거야.”
아니, 도대체 뭘 어쩌려고 그래.
“그때는 반드시 나와 결혼해 줘야겠어.”
아룬이 몸을 일으켰다.
지금은 새벽 2시다.
“어디 가?”
“조금만 기다려줘.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올게.”
그 말을 끝으로 아룬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나는 아룬이 없는 밤을 지새워야 했다.
‘무서워.’
아룬이 사라지자, 아룬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다가왔다.
아룬 때문에 쉽사리 다가오지 못했던 죽음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무서워.”
내가 말을 하면 아룬이 돌아올 것 같았는데 아룬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아무에게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애썼는데, 혼자 남게 되니 겁이 났다.
29일 후에 죽는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다.
“황녀님.”
누군가 내 방에 들어왔다.
유리였다.
“아룬 경이 가보라고 해서 왔는데…….”
잠을 자다 일어난 건지 유리는 잠옷 차림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이 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어떻게 울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났다.
유리가 ‘괜찮아요. 제가 옆에 있어요. 혼자 아니에요’라고 말하면서 내 등을 토닥여줬던 것만 기억이 난다.
딸꾹, 딸꾹.
나는 딸꾹질을 하고 있었다.
“정신이 좀 드셨어요?”
유리는 여전히 하늘색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앞섶이 다 젖어 있었다.
“그…….”
“괜찮아요. 빨면 돼요.”
유리는 티슈를 뽑아서 내 코에 가져다 댔다.
“코도 팽! 하세요.”
“…….”
지난밤 일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어린애처럼 유리에게 칭얼거렸다.
술도 안 마셨는데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말이다.
“…….”
와, 진짜 숨고 싶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아룬이 사라졌다는 상실감이 잠시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거 같다.
“아룬 경이 꼭 황녀님을 살리겠다고 약속하고 떠났어요.”
“……혼자 있고 싶어졌어, 유리.”
숨고 싶다.
격하게 혼자 있고 싶다.
평생 부릴 진상을 어제 다 부린 거 같다.
“혼자 계시면 또 갑자기 무서워질지도 몰라요. 울어도 친구 앞에서 우는 게 낫지 않을까요?”
“…….”
“생각해 보세요. 혹시 세르몬 황자님 앞에서 우시면 어떻게 되겠어요?”
“어떻게 되는데?”
“황녀님을 울린 자를 색출하여 삐이- 하시겠죠. 혹시 그런 자가 없다면, 만들어서라도요.”
붉은 눈이 요사하게 빛나는 세르몬 오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왠지 단도를 핥고 있을 거 같다.
“카만 황자님이 보면요?”
“기사단을 대대적으로 움직여서 일의 원흉을 찾겠지…….”
“미하엘 황자님이 보면요?”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가 많이 부서졌을 거 같아.”
“맞아요. 비아톤 경, 황제 폐하, 황후 마마. 다 생각해 보세요.”
“…….”
“제 앞에서 우는 게 낫죠?”
유리는 언제 준비했는지 달달한 레몬티를 내 앞에 놓아주었다.
그걸 먹으니 마음이 좀 안정되었다.
“저는 아룬 경이 아주 오래전부터 황녀님을 살리기 위한 준비를 해온 걸로 알고 있어요.”
“…….”
“어느 순간, 황녀님은 살기를 노력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떠날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게 옳다고 생각했어.”
나는 떠나면 그만이지만, 남은 사람들은 나를 기억해야 하니까.
내 죽음은 내 몫이 아니라, 남은 사람들의 몫이니까.
“그래서 아룬 경은 티 내지 않고서 최선을 다해 황녀님을 살릴 방법을 강구했어요. 저는 아룬 경을 믿어요. 분명 방법을 찾아냈을 거예요.”
그리고 3주가 흘렀다.
“금방 돌아올 거라고 약속했으면서.”
아룬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내 삶은 이제 1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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