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93)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93화
아룬이 말했다.
“우선 제 부름에 응답하여 주신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대륙에서 가장 큰 신전인 파르테몬 신전에 열 명이 넘는 남녀가 모였다.
“저를 소개하겠습니다. 용군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용군주 권한대리입니다. 현재는 아룬이라는 인간으로 살고 있습니다.”
몇몇 용은 인상을 찡그렸다.
“1년 만에 또다시 용왕령이라니.”
“언제부터 용왕령이 이렇게 헤펐나?”
빌헬름을 상대할 때 함께 싸웠던 용들은 침묵했고, 당시 자리에 없던 용들은 약간의 불만을 표출했다.
“게다가 용군주 권한대리가 아직 성룡도 아니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
“용군주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어린 용에게 권한을 맡겼단 말인가.”
아룬은 불만을 토로하는 용들에게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1년 전에 미리 말씀드렸다시피, 저에게는 용의 심장이 필요합니다. 자발적으로 주시는 분들에게는 약 10프로 수준을 기부받으려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10프로 수준은 50년가량 잠만 자면 자연히 치유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우리가 안다니?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지?”
“용의 심장을 저리 당당히 요구하는 용이 존재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군.”
“용들에게 이리 무례한 요구를 하는 아룡이 어떤 놈인가 궁금해서 와봤을 뿐이다. 네 말에서 성룡에 대한 존중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군. 마치 검은 머리의 어떤 용처럼 말이야.”
검은 머리의 어떤 용.
당연히 세상을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던 흑염룡, 카델리나를 일컫는 말이었다.
용들은 카델리나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꺼려했다.
500년 전의 악몽을 생생히 겪은 세대였으니까.
용들에게 500년은 그리 오랜 옛날이 아니었고, 500년 전의 기억은 아주 생생했다.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최후 종식과 파괴와 투명의 흑염룡의 아들입니다.”
“…….”
“…….”
침묵이 가라앉았다.
“또한, 날뛰던 시기의 흑염룡보다 지금의 제가 더 강합니다. 그것은 작년에 저와 함께해 주셨던 성룡들께서도 인정하는 부분이지요.”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용들 사이에서도 빌헬름과 관련된 사건은 꽤 유명한 사건이었다.
단순히 인간들의 사건이 아니라 ‘죽음의 신’이 결부되어 있는 일이었으니까.
몇몇 용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증하지.”
“나도 보았다.”
“인정할 수밖에.”
아룬이 다시 말했다.
“자발적으로 심장을 떼어주실 분은 이 왼쪽으로 서주시고, 그래도 심장을 내어줄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여기 오른쪽에 서주십시오.”
몇몇은 왼쪽에.
또 몇몇은 오른쪽에 섰다.
“마지막으로 바꿀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변동은 없었다.
그리고 용들 사이에서, 전설로 회자되는 구타 사건이 그날 발생했다.
어쩌면 흑염룡 사태보다 더 끔찍한 일이었다.
* * *
무려 8명의 성룡이 바닥에 뒹굴었다.
대륙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파르테몬 신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곳은 그저 평지였다.
“그, 그만! 이것은 용의 권리를 무참히 짓밟는 행위다!”
푸른색 비늘과 푸른 눈동자를 거대한 용이 바닥에 드러누워 숨을 헐떡거렸다.
인간 형상의 아룬이 말했다.
“근데?”
아룬은 지금 찬물 더운물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그는 이사벨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모든 용과 대적할 각오도 하고 있었다.
“지금 네 행동이 용납될 거 같으냐?”
“내가 더 세잖아.”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멀쩡한 용이 하나도 없었다.
“자발적으로 기부해 주신 분들은 10프로 내외. 그리고 비자발적으로 기부해 주신 분들에게서는 15프로 내외를 받아가겠습니다.”
용들은 외치고 싶었다.
비자발적으로 기부라는 말이 성립은 하는 거냐고.
그게 공존할 수 있는 단어냐고.
그렇지만 그들은 말할 수 없었다.
애초에 죽음에 무관심한 용들이지만, 아룬의 폭력은 죽음을 뛰어넘었다.
그의 폭력은 흑염룡 그 이상이었고 무감했던 용들의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걱정 마십시오. 저희 어머니는 심장의 절반을 떼어냈지만, 여전히 잘 살아계십니다.”
“잠을 자고 있다고 들었는데?”
“500년쯤 지나면 깨어나시겠죠.”
“…….”
용들은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마력을 강탈당하는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인간의 형상으로 모습을 되돌린 용들은 손바닥에 마력을 집중했다.
형형색색의 마나가 몰려와 작은 구체를 형성했다.
아룬은 감사하다고 말하며 그 구체를 받아 들어 조심스레 품에 갈무리했다.
“여러분께서 기부해 주신 이 소중한 심장들을 뜻깊은 곳에 사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룬의 몸이 사라졌다.
용들이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어디서 저런 돌연변이가.”
“내가 경험했던 용 중 최악이군.”
“더 무서운 건 뭔지 아나?”
“…….”
“복수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
“놈은 인간의 형상으로 우릴 굴복시켰다.”
인간의 형상보다 용의 본체가 훨씬 강하다.
마력 소모가 지나치게 크고 비효율적인 몸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강함만 놓고 보자면 본체가 훨씬 강한 게 당연했다.
“광룡의 등장이군.”
“부디 상식적으로 미쳐야 할 텐데.”
역사상 최악의 용인 흑염룡을 뛰어넘는, 광룡이 등장한 순간이었다.
* * *
아룬은 카델리나가 잠든 유리관을 내려다보았다.
카델리나는 깊은 잠에 빠져든 상태였다.
“어머니. 작별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당연히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십여 명의 용으로부터 1.5개 분에 해당하는 심장을 기부받았어요. 황궁 인사들과 연구한 바에 따르면, 완전한 용의 심장 1개면 이사벨을 살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카델리나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렇지만 심장을 이식하는 과정에서 마력이 많이 손실될 거예요. 사실 마음 같아서는 한 명의 용으로부터 심장을 완전히 빼내고 싶기는 했어요.”
조각조각 난 용의 심장들을 합친 것보다, 한 덩어리의 완전한 심장이 훨씬 유리했으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한다면 이사벨이 기뻐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조각조각 난 여러 개의 심장을 모아 하나로 뭉쳤다.
효율이 많이 떨어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조각난 심장의 기운들을 하나로 합치려면, 또 거대한 기운이 필요하거든요.”
그건 자신의 심장으로 할 거다.
다른 용들로부터는 끽해야 10~15퍼센트 내외에 해당하는 마력을 기부받았다.
“저도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거의 절반에 가까운 심장을 꺼내야 할 거 같거든요.”
그러면 안정권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저는 어머니처럼 오래 잠에 빠져들 생각이 없어요. 그때의 세상에는 이사벨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잠들어서 몸을 회복하는 것 대신 이사벨과의 삶을 선택하고 싶었다.
“이사벨이 없는 일만의 시간보다, 이사벨과 함께하는 일백의 시간이 더 소중하거든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인사드리러 온 겁니다.”
카델리나는 여전히 잠든 상태.
아마도 어머니를 보는 마지막이겠지.
“그동안 감사했고, 사랑했습니다.”
아룬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아룬은 자리를 떴고, 얼마 후 눈을 감은 카델리나가 중얼거렸다.
“그놈의 사랑한다는 말 듣기 더럽게 힘드네.”
유리관의 뚜껑이 열렸다.
카델리나가 땅에 내려섰다.
발가락이 땅에 닿는 촉감이 괜스레 신선했다.
“역시 내 아들이란 말이야.”
아까 아룬이 말했다.
이사벨이 없는 일만보다, 이사벨과 함께하는 일백이 더 좋다고.
그건 카델리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룬이 없는 영생보다, 아룬이 있는 일생이 좋았다.
“나도 마지막 유희를 즐기러 가보실까.”
* * *
제국령 모든 집에 노란색 깃발이 걸렸다.
지체 높은 귀족가로부터 골목 구석의 빈민가까지.
이사벨을 상징하고 기리는 노란색 깃발이 물결처럼 바람에 나부꼈다.
이사벨의 스무 번째 생일이 3일 앞으로 다가왔다.
거리 곳곳에 이사벨 찬가가 울려 퍼졌고, 수많은 사람이 신전으로 나와 기도를 올렸다.
“부디 이사벨 황녀님을 데려가지 말아주시옵소서.”
“황녀님의 햇살이 오래도록 제국에 닿게 하소서.”
수많은 사람의 염원이 모여 파르테몬 신전이 완전히 박살 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신께서, 사람들의 기도에 감동하여 응답하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 땅에, 아직 황녀님이 필요합니다.”
“제국의 봄이, 제국을 떠나지 않게 하소서.”
신전뿐만이 아니었다.
풀밭에, 강가에, 광장에, 평야에.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라면 모두 삼삼오오 모여 기도를 올렸다.
제국 수도.
본래는 마르셀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거대한 광장.
이곳은 이제 마르셀리가 아니라 햇살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곳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 노란색 깃발을 흔들며 이사벨 찬가를 불렀다.
그곳을 내려다볼 수 있는 몽마르아 언덕에도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몽마르아 언덕을 둘러싸고 흐르는 세린 강가에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인파가 모여 이사벨을 기리고 있는 가운데, 마차 한 대가 햇살광장에 들어섰다.
이토록 많은 이가 모였으나 마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깔끔하게 유지되었다.
모두가 질서를 지키며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
마차 안에는 비아톤과 이사벨이 타 있었다.
“이사벨을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겁니다.”
“……나는 떠날 준비를 했는걸요.”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다.
전생에서도 많이 느꼈던 거라 낯설지는 않았다.
마치 이사벨의 말을 듣지 못했다는 듯 비아톤이 빙그레 웃었다.
“오늘은 첫 연설이니까요,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다음에는 더 유려하게 연설하실 수 있을 거랍니다.”
다음은 없어요, 비아톤 경.
이사벨은 그 말을 하지 않았다.
“떨려요.”
“실수하셔도 돼요. 괜찮아요.”
“근데 기분은 좋아요.”
수많은 사람이 이사벨을 위해 이곳에 모였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많은 마음이 모여 한 사람을 위한다는 건 정말 가슴 벅찬 일이었다.
‘마지막이야. 하고 싶은 말을 남기자.’
미리 준비된 단상 위로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다.
겨우 이거 걸었다고 숨이 가빠오고 어지러웠으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노란색 물결이 바람에 나부꼈고, 이사벨의 등장과 동시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엄숙한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경애하는 제국민 여러분, 저는 이사벨입니다.”
이사벨의 마지막 연설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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