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94)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94화
제국의 신분은 본래 귀족과 비귀족으로 나뉘었다.
극소수의 귀족과 대다수의 비귀족.
500년간 그렇게 구분되어 왔는데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새로운 계급, 중산층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사벨 혁명, 혹은 이사벨 신드롬이라 불리는 대격변의 시대에서, 나름대로 안정적인 부와 자산을 쌓아 올린 이들.
거창한 부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예전처럼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
이제는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 사람들.
“저분이 이사벨 황녀님이시란다.”
루민 상단을 운영하고 있는 루미아는 10년 전까지만 해도 빈민가에서 구걸하며 살았다.
그러나 테이사벨 이동 관문을 통하여 물류혁명이 일어났고, 거기서 운 좋게 기회를 잡아 어엿한 상단을 꾸리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똑똑히 기억하렴.”
“알게쏘. 기억하캐.”
루비는 세 살이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였지만, 엄마의 말을 잘 듣기로 했다.
이사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애하는 제국민 여러분, 저는 이사벨입니다.”
이사벨은 굉장히 떨렸다.
그렇지만 기분 좋은 떨림이었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자신을 위해 나서주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었으니까.
“많은 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며칠 후면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입니다. 죽음이 예고된 삶은 생각보다 더 무섭더군요.”
수많은 군중이 모였으나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몇몇은 벌써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아냈다.
“마냥 두렵기만 했다면 저는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무서운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한 감사가 저를 이 자리에 서게 만들었습니다.”
이사벨은 이 삶을 선물받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죽었어야 했는데, 21년의 삶을 선물받았다.
그것도 아프지 않고 건강한 삶을.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하는 삶을.
소중한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한 삶을.
“예고된 죽음을 통하여 저는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언제 죽을지 알고 있으니까.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생각에 시간이 아까웠다.
“그렇지만 여러분,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언제라고 예정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이사벨의 말대로, 모두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이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합니다…… 라는 고리타분한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사벨이 빙그레 웃었다.
‘이거…… 정말 나쁘지 않네.’
나 진짜 관종인가 봐.
이렇게 수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는 기분이 꽤 괜찮았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렇게 두렵지 않았다.
“그저 고맙습니다.”
이사벨은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막대한 지지를 보내주는 저 수많은 군중이야말로 빌로티안 황가를 지탱해 주는 가장 거대한 기둥이다.
제국민 없는 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부탁합니다. 저는 비록 떠나겠지만 저를 향한 지지를 철회하지 말아주세요.”
떠날 사람은 떠난다.
그러나 산 사람은 계속 삶을 꾸려가야 한다.
“저를 기억해 주세요.”
이사벨의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
이사벨에 대한 지지를 이어가는 것.
그것은 빌로티안 황가를 더욱 굳건히 만들어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기억해 준다면 저는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이사벨이 화사하게 웃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구름이 가득했던 하늘에 구름이 걷히고 밝은 태양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구름 사이로 한줄기 빛이 뚫고 나와 이사벨을 환하게 비추었다.
“실제로 저는 행복했어요. 저는 이 삶을 선물받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이 삶은 제게 가장 큰 선물이 되어주었습니다. 지금 제 앞에서, 저를 위하여 모여주신 제국민들이 그 생생한 증거이지요.”
이사벨이 허리를 숙였다.
“선물이 되어주신 모든 분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
“그리고 여러분의 삶도 선물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너무 이상적인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이사벨은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랐다.
“매일 저녁, 가족들이 모여 함께 식사하는 삶이기를 기원합니다.”
“…….”
“주말이면 친구들과 함께 소소한 티타임을 나누며 일상을 공유하는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맛있는 디저트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정말 소중한 사람이 내 인생에 한 명쯤은 있어 주기를 기원합니다. 잠들기 전에, 오늘도 꽤 즐거웠다고 생각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모두가 외롭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모두가 사랑을 잔뜩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마침내 떠날 때에, 이 세상이 내게는 선물이었구나, 기뻐하며 떠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사벨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런 삶이었다면 떠나는 것이 아쉬울지언정, 끔찍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
“제가 그러합니다. 저는 제가 말한 모든 것을 이루고 갑니다. 그러므로 너무 슬퍼하지 말아주세요. 제가 떠나고 나면 일주일간 빵과 술로 잔치를 열어주세요. 제 죽음을 기쁘게 기억해 주세요.”
“…….”
“저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떠나겠습니다. 그것을 꿈꿀 수 있어 다행입니다. 이 땅에 희망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더 아름다운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이사벨이 다시 한번 허리를 숙였다.
“진심으로 경애합니다.”
연설이 끝났다.
몇몇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소리를 내지 못한 채 박수만 쳤다.
어른들은 그저 박수로 이사벨의 축복에 화답했다.
왜인지, 입을 여는 것이 불경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한 어린아이가 크게 소리쳤다.
“항여님!”
거짓말처럼 박수 소리가 멈췄다.
거대한 침묵 가운데 어린아이의 목소리만이, 거인처럼 광장을 그득 채웠다.
“저더 항여님처럼 머싰눈 언니가 될 꼬에여!”
루비는 이사벨이 하는 말들을 잘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루비의 눈에 이사벨은 동화책에 나오는 공주님 같았다.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공주님 같은 느낌이었다.
루비의 어머니인 루비아는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침범하면 안 될 것 같은 신성의 영역에 실수로 발을 들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불경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얘, 루비. 조, 조용히…….”
“고맙쯥니다!”
루비는 이사벨이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어른들이 이사벨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것을 들었다.
당장 어머니인 루비도 이사벨에게 늘 감사하다고 표현했다.
“지짜지짜 고맙쯥니다!”
루비는 엄마에게 들었던 말 중 제일 좋았던 말을 이사벨에게 선물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태어나 져서 고맙쯥니다!”
* * *
태어나 줘서 고맙다.
저 말이 내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내가 잘 살았나 보다.’
아까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더 확실히 느껴졌다.
할 말을 다하고 나니까 속이 후련해졌다.
한 줌 남아 있던 미련도 이제 다 털어낸 것 같아서 오히려 가슴속이 청량했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말을 한 거 같지도 않은데 박수 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나는 저 박수 소리가 싫지 않았다.
‘관종이라 다행이다. 이런 걸로 기뻐할 수 있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주절주절 떠들어볼까?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주어지겠어?
‘철 좀 들자!’
여기서는 멋있게 퇴장하는 것이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일 테니 이쯤에서 내려오기로 했다.
그런데 하늘에서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응? 나팔?’
구름이 모두 걷힌 하늘 위.
태양 빛이 아닌 또 다른 밝은 빛이 뿜어져 파란 하늘을 백색으로 물들였다.
“어? 저, 저기 봐!”
“저, 저기 봐라!”
나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백색 빛으로 물든 하늘에는 빛으로 이루어진 빛의 휘장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휘장을 헤치고 날개 달린 천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 뭐야?’
[시한부 악녀가 죽고 나면> 속에 천사들이 있었다고?그럴 리 없는데.
나팔 부는 천사들 사이로 눈부시게 하얀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하얀, 백색의 사람이었다.
“너를 데리러 왔단다.”
진짜 천사인가?
저 사람은 뭐 신 같은 거고?
‘생각해 보면…… 죽음의 신이 있는데, 다른 신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잖아.’
신기하게도 저 음성은 내 귓가에 똑똑히 들렸다.
나뿐만 아니라 이곳의 모든 사람의 귓가에 스며드는 음성이었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예비하였다. 네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순백의 여인이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너무 밝아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 여인이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느꼈다.
‘아름다워.’
나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여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신기하게도 내 몸이 둥둥 떴다.
허공에 계단이 있는 것처럼, 나는 하늘을 향해 걸어올라 갔다.
“황녀님!”
비아톤 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나는 정신을 번뜩 차렸다.
“아직…… 아직 시간이 남았어요.”
나는 직감했다.
저 손을 잡는 것이 곧 나의 죽음이라는 것을.
‘아직 아닌데…….’
죽음을 거부할 생각은 아니지만 내게도 할 일이 남았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유리의 디저트를 배터지게 먹어야 한다.
떡볶이랑 팥빙수도.
아직은 떠나고 싶지 않다.
‘근데 왜…… 거부할 수가 없지?’
내 의지와는 별개로 나는 자꾸 저 여인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저 빛 속에 숨어서 쉬고 싶었다.
비아톤 경이 나를 낚아채서 안았다.
그리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여인을 노려보았다.
“넌 무엇이냐?”
“저 아이를 사랑하는 자.”
여인이 손을 한 번 휘젓자 빛줄기 수십 가닥이 날아와 비아톤 경의 몸을 속박했다.
“그대는 잠시 쉬거라.”
비아톤 경은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이게 무슨 일이야?’
여인이 내게 다시 손을 내밀었다.
“가자, 아이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