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99)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199화
“뭐, 뭐야?”
론이 갑자기 사라지자, 사람들의 머리 위에 강풍이 일었다.
마치 급작스레 불어온 돌개바람 같았다.
그것은 론이 뛰쳐나가면서 생겨난 충격파였으나 일반적인 사람들 눈으로는 론의 움직임을 읽어낼 수 없었다.
론은 머리카락이 붉은 소녀의 손을 잡았다.
“아빠 왔다.”
“…….”
론은 자신의 딸을 안고 있는 아룬을 베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으나 여기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다시 이동하지.”
“알겠습니다.”
아룬, 론, 이사벨의 몸이 다시금 빛에 휩싸였다.
겉에서 보았을 때는 이동 관문을 이용해서 사라진 것만 같았다.
셋이 함께 이동한 곳은 황제의 집무실이었다.
주변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 론은 크게 소리치며 이사벨을 와락 끌어안았다.
“이사벨!”
“아빠!”
이사벨도 론을 안아주었다.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을 이제야 해줄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안 슬퍼해도 돼요. 슬픈데 기쁜 척 안 해도 돼요. 미안해요. 그렇게 무리한 부탁을 하고 떠나서.”
“괜찮다. 다 괜찮다.”
론은 이사벨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었다.
그의 손으로 이사벨을 직접 느껴야 했다.
이게 꿈인지 아닌지.
이사벨이 환영인지 아닌지.
이사벨의 체온과 촉각을 확인해야만 했다.
‘진짜구나.’
이유 같은 건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았다.
이사벨이 돌아왔다는 사실 그 하나가 론에게는 전부였다.
“그리고 그 말은 감동적이었어요. 아빠가 살아온 모든 행복을 더해도, 저랑 함께했던 짧은 시간보다 못하다고 했던 말이요.”
그리고 론의 귀에 속삭였다.
“하지만 엄마가 들으면 서운할 테니까 비밀로 할게요.”
“이사벨……!”
론은 무릎을 꿇고서 딸을 꽉 안고서 딸의 호흡을 느꼈다.
숨을 마시고 숨을 내쉬고.
들숨과 날숨이 느껴졌다.
‘진짜로, 이 아이가 살아 있구나.’
기적이 일어났다.
“아이참, 제 이름 부르는 것밖에 못 해요?”
“…….”
론은 고장 난 사람 같았다.
고장이 나서 아무것도 못 한 채 눈물만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사벨이 눈물을 훔쳐내고서 밝게 웃었다.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용이 마법을 사용해서 얼굴을 바꿔놓았다.
머리카락 색깔도, 얼굴도, 체형도 모두 바뀌었다.
“네가 어디 어느 때에 무슨 모습으로 있든지, 나는 너를 알아볼 것이다.”
“정말요?”
“물론이지.”
“저를 알아보면 어디 어느 때에 무슨 모습으로 있든지, 오늘처럼 꼭 안아주실 건가요?”
이사벨이 화사하게 웃었다.
햇살 같은 그 모습에 론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적에게 심장을 찔렸을 때보다 더 아프구나.’
론이 다짐하듯 말했다.
“꽉 안아주마.”
이사벨을 다시금 꽉 끌어안았다.
그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이제는 절대로 널 잃지 않을 것이다.’
“네가 어디 어느 때에 무슨 모습으로 있든, 내가 가서 닿을 것이다.”
* * *
본래 7명의 왕이 모이는 왕합 회의.
이 왕합 회의에 한 명의 왕이 더 참여하게 되었다.
최근 마도왕이라는 이명을 얻게 된, 마도 왕국의 국왕 카린이었다.
주최자는 당연히 세르나였고, 세르나가 주축이 되어 회의를 이끌어 나갔다.
그런데 회의장에 비아톤이 들어왔고 비아톤이 세르나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세르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오늘의 왕합 회의는 이쯤에서 종료하겠습니다.”
지르델 국왕 발키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황후께서 이렇게 일방적으로 회의를 종료하시다니?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먼.”
그러면서 자신의 오른 팔뚝을 옆자리의 왕에게 댔다.
“살다 보니(살이 닿아 보니)?”
왕들은 발키오에게 익숙해서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대응하면 더 엄청난 것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성왕 라헬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요? 이런 일, 이런 이, 이런 삼까지 하시죠?”
“헐? 그 레퍼토리를 내가 써먹었었나?”
“네, 스물넷 삼십오 번쯤 써먹었습니다, 이쯤 하시죠.”
“삼쯤 하겠네.”
라헬라는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왕들은 왕합 회의가 이렇게 갑작스레 종료될 만한 것이 뭐가 있는지 의논을 시작했다.
“각국의 명운을 위태롭게 할 만큼 커다란 문제가 아니라면 황후께서 이런 반응을 보일 리는 없소.”
“그렇습니다. 온화의 군주께서 저렇게 다급하게 움직이실 일이라면 스케일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되질 않는군요.”
라헬라는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나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그런데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다.
황실의 가장 커다란 정치적 전략무기인 줄 알았던 이사벨은 사실 그런 게 아니었다.
‘온화의 군주도, 어쩌면 그저 평범한 한 명의 엄마일지도 모르지.’
왕합 회의를 멋대로 끝내버리는 건 분명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먼 길을 달려온 왕들을 무시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예법을 중시하는 세르나 황후를 이토록 움직일 만한 것을 생각해 봤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사벨의 귀환 같은 거?’
그는 가장 친한 발키오에게 속삭였다.
“가능성은 무척 낮지만 이사벨이 돌아왔다는 것을 가정해 봐요.”
“그럴 리가 있나?”
발키오도 목소리를 낮췄다.
“근데 그거 말고는 온화의 군주를 이렇게 움직일 사건이 없단 말이죠. 로스일드 공작이 되살아났다고 해도 황후께서 저렇게 행동하실 리가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사벨이 귀환했다는 가정을 세워보고, 이사벨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준비하도록 하죠.”
발키오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라헬라는 인정하고 신뢰하지만 이건 다른 문제였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게 말이 되나?”
“뭐, 됐어요. 나 혼자 준비하죠.”
발키오가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봐, 삼 봐, 사 봐! 같이 가자고!”
라헬라는 오늘도 국제정세를 잘 읽어냈고, 발키오는 어영부영 얻어걸렸다.
* * *
나는 가족들과 눈물의 재회를 나누었다.
눈물샘이 고장 난 것 같았다.
눈물이 자꾸 줄줄 흘러나와서 눈이 퉁퉁 부었다.
미하엘은 나를 놀려댔다.
“왕개구리다아-!”
그렇게 말하는 미하엘의 눈은 나보다 더 심각하게 퉁퉁 불어 있었다.
바늘로 톡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았다.
이제 그만 울려고 했는데 엄마의 품에 안기자 또 눈물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이제 엄마 품에서 절대 안 떠날 거예요.”
다시 한번 안기는 엄마 품은 따뜻했다.
내가 언제든 아이가 될 수 있는 곳, 내가 아이처럼 굴어도 괜찮은 엄마 품에서 나는 한참 동안 어리광을 부렸다.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대략 7일 정도 시간이 흘렀고, 마물 원정을 떠났던 카만 오빠가 복귀했다.
“오빠…… 신발은요?”
거의 속옷에 가까운 차림에 맨발이었다.
아마도 갑옷이고 뭐고 다 집어 던진 다음 복귀한 모양이었다.
“사나이는 신발을 신지 않는 법이지.”
“신발 꼭 신고 다녀요.”
발이 피투성이여서 속상했다.
아무튼 카만 오빠와도 인사를 나눴다.
나랑은 별로 친분이 없던 첫째 오빠로부터 편지도 한 통 도착해 있었다.
[아무튼 네가 살아서 다행이구나. 아니, 너는 살았어야만 했다. 내가 그 미친 광룡에게 당한 것만 생각하면 아주 지금도 치가 떨리는구나.]미친 광룡?
혹시 또 흑염룡 카델리나가 모습을 드러낸 건가?
[성룡들의 권위와 권리를 무참히 짓밟았던 그 폭룡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정말 큰일 날 뻔하였다.아무튼 축하한다. 네가 돌아왔으니 황궁에도 생기가 돌겠구나.
이제 좀 궁금해졌다. 네가 어떤 아이이길래 황궁이 이렇게 네게 미쳐있는지. 용군주마저 네게 그토록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는 건지.
조만간 황궁으로 돌아가마. 많은 대화를 해보자꾸나.]
앞으로는 첫째 오빠랑도 꽤 친해질 수 있을 것만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정도 재회를 마무리한 뒤, 나는 검은 드레스를 꺼내 입었다.
여느 때처럼 유리가 내 시중을 들어주었다.
“검은 면장갑도 준비했어요.”
“고마워, 유리.”
“여기, 검은 모자도요.”
둥근 챙이 달린 검은 모자를 썼다.
그리고 나는 유리와 함께 ‘검의 무덤’으로 향했다.
내가 물었다.
“마리아가 여기 묻힐 때, 검림학사원에서 크게 반대했었던 거 기억나?”
“네.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유리는 입을 가리고 가볍게 웃었다.
“모조리 찍어누르셨죠.”
“유리도 검림학사원을 싫어했어?”
“당연하죠. 사사건건 트집 잡는 게 그들 취미거든요.”
유리와 나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검의 무덤에 도착했다.
역대 황제들을 비롯하여, 황가의 피붙이 중에서도 유명한 업적을 남긴 이들만이 묻힐 수 있는 검의 무덤.
‘검의 무덤’에는 묘비나 봉분 대신 검이 한 자루씩 꽂혀 있었고, 검의 옆면에 기리는 사람의 이름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성녀 마리아, 이곳에 잠들다.]마리아의 무덤.
나는 그 앞에 서서 두 차례 절을 올렸다.
“세 번째 방문이네. 세 번째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마리아를 상징하는 검 앞에 묵념하며 생각했다.
‘마리아가 준 생명이니까.’
이 생명을 허투루 쓰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선물받은 세상을 좀 더 선물답게 가꿔갈게. 약속할게. 제2, 제3의 마리아를 위해 살아갈게.”
검 앞에 국화꽃을 내려놓았다.
마리아를 기리며 내게 다시 한번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다시금 생각했다.
‘함부로 낭비할 수가 없어.’
결코 그럴 수 없는 삶이었다.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친 마리아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아룬을 위해서라도.
일분일초도 아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했다.
“저…… 황녀님, 그…… 얘기는 어떻게 되셨어요?”
“그 얘기라면…….”
“네…… 그…….”
우리 둘 다 침묵했다.
일분일초도 아껴서 살아가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것 같다.
“결혼?”
“결혼이요.”
나한테는 아주 크나큰 이벤트가 하나 남아 있었다.
유리가 진지하게 말했다.
“황녀님이 과연 결혼을……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지 않을까?”
유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정말 그게 가능할까요?”
이 얘기는 하루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