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2화
어머니는 나를 보며 미안하다며 훌쩍이곤 했다.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먀먀!”
나는 손을 뻗었다.
“먀먀.”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방긋방긋 웃어 보였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그럴수록 더욱 오열했다.
토닥토닥.
나는 짧고 오동통한 팔을 들어 올려 엄마의 팔을 두드려 주었다.
아, 소시지 팔 무겁다.
“이사벨, 엄마를 위로해 주는 거니?”
끄덕.
말은 할 수 없지만 보디랭귀지는 만국 공용어라고 했다.
그러자 엄마가 깜짝 놀랐다.
“엄마 말을 알아듣는 거니?”
끄덕.
이 신호를 처음 보내보는 게 아니다.
“나우! 마우 아우우 이어오(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요)!”
엄마는 고개를 돌려 내 유모인 루루카에게 물었다.
“이 아이가 정말 내 말을 알아듣는 걸까?”
“저는 그렇게 믿고 있답니다.”
루루카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사실 아무에게도 말은 못 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핀잔이나 들을 것이 뻔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사벨은 정말 우리 말을 이해하는 것 같아.”
“저는 황녀님이 천재라고 생각해요.”
아기의 몸은 투명한 칭찬에 격하게 반응했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꺄하!”
“이거 보세요, 칭찬하면 좋아하신답니다.”
엄마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설령 천재가 아니어도 괜찮단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며칠이 더 흘렀다.
일단 말이 트이자, 발음이 조금씩 정확해지기 시작했다.
* * *
빌로티안 황가에는 전통이 하나 있었다.
‘선택식’이라 불리는 전통이었는데 한국으로 치자면 돌잡이 같은 거였다.
그리고 그게 오늘이었다.
루루카는 내가 말을 이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내게 속삭였다.
“황녀님께서 가장 갖고 싶은 검을 선택하시면 된답니다.”
“웅.”
“사람들이 얼마나 놀랄지 벌써부터 기대돼요.”
루루카의 눈에는 우쭐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열성적인 학부모가 잘난 자식을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연회장의 문을 열겠습니다.”
시종들이 문을 열어주었고 루루카와 나는 연회장에 들어섰다.
악, 눈부셔.
한 살인 나는 눈이 꽤 연약했고 찬란한 광채를 뿌려대는 샹들리에의 빛에는 아직 익숙지 않았다.
저만치 멀리 상석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뒤로는 아버지의 부관이자 절친인 비아톤 경이 서 있었고, 어머니 옆으로는 네 명의 오빠가 주르륵 앉아 있었다.
‘오, 신이시여.’
비아톤 경과 오빠들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여긴 천국이 분명했다.
‘이 빙의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아빠부터 시작하여 부관을 거쳐 오빠들까지. 저 얼굴들을 공짜로 봐도 되는 건가 싶었다.
저 정도면 KTX 타고 지나가면서 봐도 미남들이 확실했다.
세상에 저런 그림체들이 존재한다니…….
유모가 나를 내려주었다.
바닥 촉감이 폭신폭신했다.
‘오오, 레드 카펫!’
내 앞에 기다란 레드 카펫이 펼쳐져 있었다.
레드 카펫 양옆으로는 빌로티안 황가의 기사들이 일렬로 쭉- 서 있었다.
그들은 검을 뽑아 서로 교차하고 있었는데, 마치 검으로 이루어진 숲 같은 느낌이었다.
“오옹.”
멋있어.
근엄한 기운이 넘치는 것이 과연 빌로티안 황가의 기사들다웠다.
‘모델이야 기사야?’
이 세계는 아주 특이한 세계였다.
기사들만 멋있는 게 아니라 시중들어주는 시종들도 다, 내가 아는 평균을 훨씬 웃돌았다.
미남미녀가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미모의 평균치가 상상을 초월하는 세상이니, 21년간 눈 호강이라면 지겨울 정도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붉은 카펫 끝에 검들이 꽂혀 있겠지?’
빌로티안을 상징하는 위대한 검 ‘해일’.
그리고 그 외 자잘한 검 열 자루.
‘대대로 빌로티안의 황자들은 해일을 선택했다고 했지.’
그게 빌로티안의 혈통을 증명한다나 뭐라나.
‘다 좋아. 다 좋은데…….’
문제는 내가 오늘 첫 번째 죽음의 위기를 넘겨야 한다는 것에 있었다.
빌로티안에는 ‘검림원’이라는 기관이 존재한다.
빌로티안 건국에 막대한 도움을 주었던 개국공신 가문의 출신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권력기관이었다.
그들 중에는 빌로티안의 황녀를 인정하지 않는 강경파들도 있었다.
그들은 빌로티안의 검술을 익힐 수 없는 여아가 ‘해일’을 손에 쥐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내가 해일에 손을 대는 순간 암살자가 튀어나오는 시나리오지?’
소설 속 표현에 따르면 ‘운이 좋아서’ 살았다고 되어 있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검이 비껴갔다나 뭐라나.
그런데 나는 소설 속 이사벨이 아니다.
운이 좋아서 살았다는 건, 운 나쁘면 죽는다는 뜻이다.
‘절대 못 죽지.’
난 절대로 안 죽어.
주먹을 꽉 쥐어보았다.
저 얼굴들 두고 내가 억울해서 어떻게 죽냐?!
‘밀키스는? 마카롱은? 고기는! 떡볶이는!’
너무 억울하다.
나는 21년을 최대한 알차게 즐길 거다.
‘변수를 만들어야 해.’
그러니 소설과는 조금 다른 진행을 해야 한다.
변수가 많을수록 상황은 바뀔 테니까.
아장아장.
아직 걷는 것은 무리라서 열심히 기어갔다.
‘변수!’
중간중간 마정석이라는 작은 돌덩이들이 보였다.
건드리면 작은 폭발을 일으키는 트랩들이었다.
선택식에 참가하게 된 아기들은 이 트랩을 잘 피해서 목적지까지 가야 했다.
“에베베. 지지.”
저런 것들은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치기로 했다.
이윽고 나는 열 자루가 넘는 검이 꽂혀 있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선택식에서는 이곳을 ‘검의 전당’이라 불렀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을 선택하여라.”
나는 잠시 자리에 앉아 생각해 보았다.
‘검을 잡는 순간, 암살자가 튀어나오겠지.’
응. 안 잡어.
해일을 집으면 암살자가 나온다.
해일 말고 다른 검을 집으면 황녀로서의 자격이 없다.
‘이럴 때는 클리셰지.’
여기서 초대 황제의 검을 집으면 그건 로판이 아니다.
로판이라면 응당 저 차갑고 도도한 아버지를 선택해 줘야 한다.
황가를 상징하는 검이고 뭐고 난 잘 모르겠고!
귀여운 딸은 멋지지만 무서운 아버지를 선택한다-는 클리셰를 성취해보기로 했다.
명분도 나쁘지 않았다.
아버지야말로 제국 제일검이니까.
“응아아!”
그런데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언제 튀어나올지 모를 암살자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암살자는 일단 잊어야 해.’
아기의 육체는 한 번에 하나의 생각밖에 못 했다.
암살자를 생각하니 무서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거메, 스풀, 지나서어웅. 어응, 어응, 기어서웅.”
검의, 숲을, 지나서, 가자. 엉금, 엉금, 기어서 가자.
아기의 육체는 하나에 신경 쓰면 또 다른 하나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노래를 부르니 공포를 잊을 수 있었고 그제야 움직일 수 있었다.
‘와, 계단 완전 높아.’
어른들에 맞추어 설계된 이 계단은 너무 높았다.
다행히 암살자는 등장하지 않았다.
“으버! 으버버!”
‘나는, 오른다, 정상에!’
샘솟아라, 용기야.
뒷다리에 힘을 줘봤다.
합!
계단 한 칸을 올라섰다.
바둥바둥!
오른 다리가 허공에 떴다.
왼팔과 오른팔에 힘을 줘봤다.
끙차.
한 칸 정복에 성공했다.
‘해냈다!’
무려 한 칸의 계단을 혼자서 올랐다.
‘아, 힘들어.’
어디 보자, 앞으로 21칸 정도 남았다.
‘좀 쉬어야겠어.’
너무 큰 힘을 쓴 탓일까.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거 좀…… 너무…… 졸린……데?’
시야가 흐려졌다.
* * *
쿨, 쿨.
잠에 빠진 이사벨을 보며 선택식에 참여한 검림원의 검림학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황후인 세르나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상태였다.
‘이를 어째…….’
선택식에 어른은 관여할 수 없다.
이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다들 멀뚱멀뚱 이사벨을 바라보기만 했다.
론은 감정 없는 눈으로 낮잠에 빠진 딸을 바라보았다.
그는 마력을 이용하여 그의 부관인 비아톤에게 작은 음성을 전달하였다.
[여아는 저러한가?]빌로티안에서는 여아가 태어난 적이 없다.
무려 500년간 그랬으니, 여아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비아톤은 빌로티안 황가 내에서 황제를 제외하면 적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강인한 검술가였다.
어려서부터 절친이었으며 여전히 형제처럼 지내고 있다.
론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아까 기이한 음을 중얼거리던데, 그건 무엇이지?]비아톤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본능적으로 외우는 마법 영창일 가능성이 높겠군요.]엉금, 엉금, 기어서 가자. 검의, 숲을, 지나서 가자.
분명 일정한 운율과 음계를 지닌 음성이었다.
[한 살짜리 아이가 마법 영창을 외운다고 주장하는 것이냐?] [희귀하지만 분명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미로텔 마법 연방에서는 저러한 현상을 일컬어 태생영창이라 부릅니다.] [헛소리.] [당장 제 어머니도 저 나이 때 태생영창을 불렀는데요?] [무척 흥미로운 현상이군.]비아톤의 어머니는 뛰어난 마법사였고, 어릴 적부터 론을 잘 챙겨주었던 사람이었다.
론 또한 비아톤의 어머니를 제2의 어머니처럼 모셨다.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론도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래도 완전히 납득이 된 건 아니었다.
[저 아이는 빌로티안의 피를 이었다. 검술 제국의 황녀가 어찌 태생영창을 외운단 말이냐?]그랬더니 비아톤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