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0)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20화
이사벨의 말을 듣는 모든 순간이 충격의 연속이었다.
카린이 단 한 번도 가르쳐 준 적 없는 내용들이 술술 나왔다.
‘다섯 살에 복소수와 복소평면을 이해한다고?’
그녀 역시도 천재 소리를 들었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삼각함수와 계산 또한 완벽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선형대수학이라니.
미로텔 마법 연방의 대학에서나 나오는 개념이었다.
“누가 가르쳐 준 것입니까?”
“네, 네?”
이사벨은 순간 당황했다.
판타지 세상의 천재 마법사 꿈나무들과 스스로를 비교해 본 적 없는 이사벨은 자기가 비교적 평범한 줄 알고 있었다.
혹시 틀렸을까를 걱정했다.
“호, 혹시 제가 틀린 부분이 있나요?”
최종 흑막 앞에서는 실수하면 안 된다.
실수하려면 아예 그냥 대놓고 실수해야 한다.
어쭙잖게 아는 척하다가 실수하면 그건 곧 약점이 되어 돌아올 것이 틀림없었다.
카린이 말했다.
“틀린 부분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누가 가르쳐 주었는지는 꼭 알아야겠습니다.”
“그냥…….”
이사벨은 최종 흑막의 심리를 이해했다.
‘내게 마법에 도움이 될 정도의 깊이 있는 수학을 알려준 사람. 그 사람을 내 편이라 판단했고, 내 편을 제거하려 드는 것일지도 몰라.’
그래야 더 마음 편히 나르비달의 낙인에 대해 연구할 수 있을 테니.
“구냥 쩐쩐부터 알았어요.”
“……네?”
이사벨의 혀가 조금 짧아졌다.
이건 애교 같은 게 아니었다.
그저 생존본능에 입각한, 육체 나이 5살의 몸부림 같은 것이었다.
“쩐쩐부터 알았어요. 왜여? 이사벨 잘못했어여?”
이렇게 말할 때면 카린의 태도는 한결 누그러지곤 했다.
이사벨은 경험으로 이것을 배워왔고, 그 경험은 오늘도 빛을 발했다.
카린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배우지 않고 이해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네에.”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란 말씀이시지요?”
“네에!”
“알겠습니다.”
확인을 완료했다.
‘황녀님은 10,0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가 틀림없다. 천재 중에서도 천재. 천재 위의 천재다.’
그것이 무척 기뻤으나 마냥 기뻐하기도 어려웠다.
‘왜 황녀님에게 나르비달의 낙인이 있단 말인가. 왜 황녀님 같은 분에게 시한부 판정이 내려졌단 말이냐!’
그것이 분했다.
그녀의 눈이 이사벨의 손목으로 향했다.
이사벨은 카린의 시선이 자신의 손목에 닿아 있다는 걸 눈치챘다.
흠칫 놀랐다.
역시 최종 흑막답게 나르비달의 낙인에 큰 관심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왜, 왜요?”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카린은 자신이 이사벨을 애처로이 여기는 마음을 숨겼다.
그것은 카린이 그녀의 방식으로 이사벨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이런 방법밖에 몰랐다.
“부, 분명히 나르비달의 낙인 쪽을 봤는걸요?”
“그냥 조금 관심 있을 뿐입니다.”
“조금 관심이 있어요?”
소설 속에서, 최종 흑막이 ‘조금 관심을 가진 자’들은 모두 학살당했다.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사벨은 다짐했다.
‘절대 황궁을 벗어나면 안 되겠다!’
* * *
카린이 말했다.
“정말 안 가시겠다는 겁니까?”
“네. 저는 황궁에 있을게요!”
카린은 답답했다.
그녀는 이사벨이 말했던 이론 중 특히 하나에 집중했다.
선형대수로 표현된 행렬 계산식.
이사벨은 이를 일컬어 라프라스 정리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현 마법 수식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학회에 직접 발표하여야 합니다. 학술지에 정식으로 게재할 수 있습니다. 이는 황녀님의 큰 업적이자 지적재산권이 되어줄 것입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사벨은 위기감을 느꼈다.
이제야 최종 흑막이 나를 납치하려 하는구나.
“업적 같은 거, 지적재산권 같은 거 필요 없어요.”
“어째서죠?”
“돈 많아요. 우리 아빠 엄청 부자예요.”
태어나면서 황제 수저를 물고 태어났는데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흥, 날 잡아갈 수는 없을 거다!’
이사벨은 납치라면 치를 떨었다.
납치를 당할 뻔했었던 예전의 기억은 그녀에게 트라우마로 작용했다.
“가셔야 합니다.”
“싫어요.”
“이것은 황녀님의 업적입니다. 아주 명예로운 일입니다.”
“괜찮아요.”
카린은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왜 이리도 욕심이 없습니까! 이러다 제가 황녀님의 이론을 도적질하여 제 이름으로 발표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나한테 화내는 거예요?”
“그, 그건…….”
카린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화내지 마세요. 무섭단 말이에요.”
“죄송합니다. 화를 내려고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황족다운 욕심과 야망이 너무 없으시기에, 제 입장에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저한테는 이제 16년밖에 없는걸요.”
이사벨은 최종 흑막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웃었다.
“예.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화낸 건…… 아닙니다.”
카린은 허리를 푹 숙였다. 그러고서 도망치듯 황녀의 방에서 나와 버렸다.
너무 급하게 나오느라 문이 쾅! 닫혀 버렸다.
카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들킬 뻔했어.’
쏟아지는 눈물을 들킬 것 같아서 서둘러서 도망친 것이었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황녀님은 누구보다 황족의 특성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어.’
황녀는 누구보다 황녀답게 행동하고 있다.
데일사 시종장은 이사벨 황녀가 지나치게 조숙하다며 걱정까지 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황녀의 자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이사벨이, 이상하게도 명예로운 업적에는 욕심이 없었다.
‘그것은 죽음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고,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겠지.’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가 죽음 앞에서 너무 초연했다.
오늘도 선물 같은 삶을 살고 있다며 웃고 있었다.
이사벨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말았다.
‘학회에 다녀오는 몇 주의 명예로운 시간보다, 오늘 유모와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훨씬 더 소중한 거야.’
눈물을 모두 닦아낸 카린은 조심스레 다시 노크한 뒤 이사벨의 방에 들어갔다.
지나치게 예의 없이 나가 버린 것에 대해 사과부터 하려 했다.
그런데 이사벨이 먼저 말했다.
“많이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요, 선생님.”
“…….”
카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또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잘못은 내가 했는데, 왜 황녀가 사과한단 말인가.
“아닙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황녀님께 화내지 않겠습니다.”
이사벨이 새끼손가락을 내보였다.
“약속!”
“약속.”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그 손가락이 무척 작고 소중했다.
카린이 말을 이었다.
“그럼 제가 대행하여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일단은 대리자인 제 이름으로 발표될 것이나, 훗날 이사벨 황녀님의 업적으로 전환하는 절차를 밟고 오겠습니다. 이 정도는 허락해 주셔야 합니다.”
“고마워요.”
“라프라스 정리가 아니라 이사벨 정리로 게재될 것입니다.”
“네에.”
납치의 위험에서 벗어난 이사벨을 밝게 웃었다.
그 밝은 웃음을 마주한 카린은 또 속이 쓰렸다.
그녀의 눈이 나르비달의 낙인으로 향했다.
‘반드시 비밀을 알아내겠습니다.’
역사가 기록된 이래로 ‘나르비달의 낙인’의 저주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건 신이 내린 형벌이었고, 모든 인류가 나르비달의 낙인을 사형선고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카린은 달랐다.
‘저는 황녀님을 살릴 겁니다, 제 목숨과 맞바꾸어서라도.’
저 햇살 같은 미소를 지켜줄 것이다.
그게 전쟁이 삶의 이유였던, 최종 흑막 카린의 현재 목표였다.
* * *
카린은 미로텔 마법 연방으로 길을 떠났다.
그리고 이사벨에게 숙제를 하나 남겨주었다.
이번에 만든 마법 수식을 벌꿀오소리에게 적용해 보라는 것이었다.
똑똑.
8층에 위치한 미하엘의 방 앞에서 노크했다.
마침 미하엘은 방 안에 있었다.
“들어와.”
이사벨은 미하엘의 방에 들어간 뒤 의아함을 느꼈다.
“오라버니.”
“응?”
“오늘 궁 밖으로 한 번도 안 나갔죠?”
“응. 안 나갔는데, 왜?”
“그런데 어떻게 얼굴이 흙투성이일 수가 있어요?”
“응? 몰라?”
“그게 되네요?”
“그러게, 이게 되네? 히히.”
미하엘은 늘 그렇듯 오늘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뭐 하고 있었어요?”
“숨바꼭질하고 있었어.”
“혼자서?”
“쯧, 혼자서 어떻게 숨바꼭질을 하냐? 숨바꼭질은 혼자서는 못해, 바보야.”
미하엘의 태도는 마치 인생의 진리를 설파하는 수도승 같았다.
미하엘은 검지를 까딱까딱 흔들었다.
“벌꿀이랑 했어.”
벌꿀오소리에게 벌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미하엘의 주장에 따르면, 벌꿀오소리와 미하엘은 무척 친해졌다고 했다.
지금은 숨바꼭질을 같이할 정도로 친해졌다고 주장했다.
벌꿀이는 장롱 속에 숨어 있었다.
“으하하! 네가 숨어봤자 내 손바닥 안…… 으악!”
벌꿀이는 미하엘의 손을 와작! 깨물었다.
“으아악! 야! 치사하게 방심하고 있는 틈에 공격을 해? 왜? 네가 깨물어놓고 왜 날 노려봐? 나도 확 깨물어 버린다?”
미하엘과 벌꿀이는 한동안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했다.
세상에서 제일 겁 없는 동물인 벌꿀이는 미하엘에게 이빨을 드러내고 캬악! 캬악! 소리를 내며 위협했다.
미하엘이 다섯 마리의 사자를 손들고 무릎 꿇어! 하고 혼냈던 기억 같은 건 모조리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깨물 수 있으면 깨물어보래요.”
“……응?”
“자기 가죽은 아주 질기고 단단해서 오빠의 이빨 같은 건 간지럽지도 않대요.”
“그래. 매서운 이빨 맛을 보여주지!”
미하엘이 벌꿀이를 붙잡으려 했다.
벌꿀이는 날쌔게 미하엘의 손길을 피했다.
숨바꼭질이 아니라 술래잡기로 변질되었다.
“캬악! 캬악!”
“오라버니는 이기적인 생명체래요.”
“그게 뭔 소리야?”
“왜 자꾸 자기만 숨냐고 억울하대요.”
미하엘의 눈이 이사벨에게 향했다.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런데 재미있는 건, 벌꿀이의 눈도 이사벨을 향했다는 것이었다.
눈동자가 물음표로 변한 것처럼 보였다.
벌꿀이도 이사벨의 말을 이해한 것처럼 보였다.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