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1)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21화
이사벨은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이번에 만든 마법 술식에 벌꿀이의 마나를 접목하여 작은 마법을 완성했어요. 해석 마법이에요.”
“아, 맞다. 너 마법 배운댔지?”
미하엘도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다.
이사벨도, 미하엘도, 서로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사벨이 태평스레 말을 이었다.
“네. 내가 숨었으면 오라버니도 숨어야 한대요. 설마 오라버니 벌꿀이만 계속 숨게 시킨 거예요?”
“응. 안 돼?”
“그건 비겁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비, 비겁해?”
“네.”
미하엘은 코를 슥슥 문질렀다.
비겁을 깨달았다.
애초에 생각이 없어서 그렇지, 일단 알고 나면 인정과 사과는 빨랐다.
“야, 미안하게 됐다.”
미하엘은 손을 내밀었고 벌꿀이는 그 손을 콱! 깨물었다.
오늘은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지 않고 그냥 물려주었다.
이사벨이 말했다.
“벌꿀아. 잠깐만 이리로 올래?”
이사벨이 의자에 앉자, 벌꿀이는 잽싸게 뛰어 이사벨의 무릎 위에 앉았다.
이사벨의 배에 머리를 비비며 애정을 표현했다.
“야! 나는 맨날 깨물기만 하면서!”
이사벨은 벌꿀오소리의 주변에 흐르는 마나 흐름을 수식에 따라 정돈하기 시작했다.
이사벨의 손에 오색 마나가 깃들었다.
오색찬란한 빛깔이 벌꿀이의 몸을 덮었다.
‘음, 이렇게 하는 건가?’
카린이 말하는 천부적인 직관이 빛을 발했다.
숨을 어떻게 쉬는지 배우지 않아도 아는 것처럼, 이사벨은 자연스레 해석 마법을 발현시켰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너. 싫음.]이 신기한 현상에는 별로 놀라지 않은 미하엘은, ‘싫음’이라는 글자에만 무척 놀랐다.
꽤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왜 내가 싫은데?”
[좋은 거. 다 네 거.] [나쁜 거. 다 내 거.]“나는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어!”
[친구 X.]“친구가 아니면 뭔데?”
[밥 주는 애.]“마, 말이 너무 심한데?”
인정한다는 듯 벌꿀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미하엘도 조금 안도했다.
“그렇지? 다시 기회를 줄게, 날 뭐라고 생각해?”
[양아치.]벌꿀이는 무척 단호했다.
협상의 여지 같은 건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고서 이사벨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벌꿀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벌꿀이의 눈동자에는 이사벨을 향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보호자♡]이사벨은 이 상황이 신기했다.
처음부터 기이한 마나 흐름이 느껴진다 했더니, 이렇게까지 똑똑한 영물일지는 몰랐다.
이사벨은 벌꿀오소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금 이상한 느낌은 있었다.
‘해석 마법이 이렇게까지 효과가 뛰어난 거야?’
물론 아니었다.
동물의 의중을 이렇게까지 해석할 수 있는 마법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학회에서 보았다면 난리가 나고도 모자란 현장일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곳에는 이사벨의 마법을 평가해 줄 사람이 없었다.
‘이 정도는 다들 할 수 있는 건가 봐.’
벌꿀이의 머리 위에 마법 글자가 계속 생성되었다.
[보호자=주인] [주인. 성. 요구.]“성?”
[성. 패밀리 네임.]동물과 상당히 구체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나 미하엘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음…….”
벌꿀 빌로티안.
이건 좀 너무 이상한 것 같았다.
부르기에도 어렵고.
‘그럼 그냥 평범하게…….’
입에 착 붙는 이름을 정해 주기로 했다.
“김벌꿀.”
[콜미. 김벌꿀.]김벌꿀 머리 위에 [♡] 표시가 생겨났다.
제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김벌꿀과 이사벨은 급속도로 친밀해졌다.
* * *
한 달 뒤 돌아온 카린이 이 기현상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벌꿀오소리의 심리를 문자로 표현해 낸 것입니까?”
“네!”
“제가 없는 사이 마법 이론을 완성하여 실제로 적용시킨 것이군요.”
“네, 열심히 노력했어요.”
카린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동물의 마음을 읽어내는 마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단순히 마법 이론과 마법력만 있어서는 될 게 아닌데.’
여러 가지 요소가 추가되어야 한다.
일단 마법 시전자 본인이 동물 혹은 마물들과 교감할 수 있는 천부적인 친화력을 가지고 있어야 했고, 그 친화력의 파장과 상성이 맞는 동물이 있어야 했다.
‘벌꿀오소리가 저토록 지능이 높은 동물이었나?’
인간과 저 정도로 교감할 수 있을 만큼?
‘그럴 리가.’
그렇다는 건, 결국 저건 이사벨의 특수한 힘이 벌꿀오소리의 감정을 증폭시킨 뒤 인간화하여 해석해 냈다는 뜻이 된다.
‘그러려면 마나 증폭 이론도 자연스레 접목돼야 했었을 거고.’
카린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사벨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천재인 것 같았다.
충격 때문에 말을 잃은 카린을 보며 이사벨은 괜스레 불안해졌다.
‘마법의 완성도가 너무 떨어지나?’
이사벨은 카린 외의 마법사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이 세계에서 천재 마법사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비교 대상이 전혀 없었다.
때문에 자기가 해낸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에 대한 이해도가 전무했다.
‘마법도 더 이상 가동이 안 되네.’
이상한 일이었다.
카린과 만난 벌꿀오소리의 머리 위에는 더 이상 마법 글자가 생성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마법이 실패해 버렸다.
이사벨은 이사벨 나름대로 합당한 추론을 할 수 있었다.
‘벌꿀이가 본능적으로 최종 흑막을 알아본 게 틀림없어.’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카린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무덤덤하게 말했다.
“제가 없는 동안 꽤 노력하셨군요.”
“네. 많이 노력했어요! 잘했나요?”
“예. 준수하였습니다.”
“정말요? 칭찬해 주시는 건가요?”
이사벨이 활짝 웃었다.
따뜻한 가을 햇살이 방 안을 가득 메우는 것 같았다.
카린이 보기에는 그랬다.
당장에라도 이사벨을 껴안고 볼을 부비고 싶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카린은 마음을 다잡았다.
긴장을 놓는 순간 헤벌쭉 웃어버리고 말 것 같았다.
사랑받아본 적 없는 그녀는 사랑을 주는 방법도 잘 몰랐다.
“앞으로를 더욱 기대하겠습니다.”
* * *
카린은 데일사 시종장을 찾았다.
“언니.”
“지금은 일과 중이니 시종장이라 불러.”
“또 딱딱하게 그러신다. 언니가 정감 있고 좋잖아요.”
“…….”
“저한테 처음 생긴 언니인데 이 정도는 봐주세요.”
카린은 고아원 출신이었고 그곳에서도 괴롭힘을 받아왔다.
그녀에게 있어서 처음 생긴 ‘언니’는 데일사였다.
만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카린은 데일사에게 깊은 호감을 품었다.
데일사도 그런 카린이 그리 싫지 않았고.
“그래서. 무슨 일이지?”
“저는 또 학회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오늘 복귀하지 않았나?”
“황녀님이 또 어마어마한 걸 보여주셔서요. 진짜 놀랐어요.”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는 것 같은데?”
카린은 무언가를 참고 있는 것처럼 주먹을 오므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무언가를 외치고 싶은 것 같았다.
“황녀님이 귀여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하아! 말하니까 살 것 같다.”
“막상 황녀님 앞에서는 그렇게 냉담하더니.”
“어쩔 수 없잖아요. 전담 교사가 둘인데, 하나는 반쯤 미쳐 있으니까요.”
데일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아톤이 황녀를 어떻게 대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교사 중에 미친 인간이 하나 더 있어.”
“네?”
“있어. 소꿉놀이에 진심인 인간.”
“그게 누구……?”
데일사는 고개를 저었다. 언급도 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둘은 대화를 이어갔다.
“황녀님의 재능은 거의 악마 수준이에요.”
“그 정도란 말이냐?”
“네. 까딱 잘못하는 순간 스스로를 잡아먹을 거예요. 그러니 저라도 옆에서 중심을 잡아야 해요.”
자신이 황녀를 냉담하게 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이후, 카린이 말을 이었다.
“이번에 황녀님이 창안한 마법 술식도 정식으로 학회에 등록할 거예요. 이번에도 제 이름으로 등록해 놓고, 황녀님이 12세가 되는 해에 자동으로 지적재산권이 넘어가도록 별도조항을 둘 거예요.”
“절차가 꽤 복잡하다고 들었는데.”
“제가 빌헬름의 입양 딸이라서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카린은 차마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
데일사도 그 사실을 굳이 짚지 않았다.
카린의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다.
“제가 만약 황녀님 정도의 재능을 가졌다면 아주 큰 야망을 가졌을 것 같아요.”
“아주 큰 야망?”
“이를테면 세계정복 같은 거요.”
“…….”
“그런데 황녀님은 아무런 야망이 없어요.”
“빌로티안의 황족에게 실례되는 말이다.”
“그저 황녀님이 원하는 거는…….”
카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제 칭찬 한마디를 원하고요.”
손으로 그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다.
황녀가 바라는 건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와 아빠가 피곤하길 바라고요.”
“…….”
“제멋대로인 벌꿀오소리 한 마리와 깊이 교감하길 원해요.”
“…….”
“제가 황녀님이었다면 많이 비참했을 것 같아요. 운명을 저주했을 거예요. 나만 죽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나만 죽느니, 모조리 다 죽이고 싶었을 것 같아요.”
“…….”
카린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근데 황녀님은 맨날 웃어요.”
“…….”
“그게 너무 따뜻해요.”
이사벨은 카린의 세상을 많이 바꾸어놓았다.
“햇살 같아요. 그래서 너무 이상해요.”
이런 말랑말랑한 마음을 처음 가져봤다.
너무 이상하고 어색했다.
데일사는 모든 말을 묵묵히 듣기만 했다.
얼마 후, 그녀는 천천히 걸어가 카린을 토닥여 주었다.
“이상하게 생각할 거 없어.”
카린은 데일사의 체온이 싫지 않았다.
어린애처럼 언니의 품에 안겼다.
“그냥, 네게도 봄이 오고 있는 거야.”
이사벨이라는 봄이.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