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2)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22화
미하엘이 벌꿀이의 목덜미를 잡아 올렸다.
“이제 집에 가야지.”
벌꿀이는 팔다리를 허둥대며 벗어나고자 했으나 미하엘의 손아귀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다음에 또 보자, 이사벨!”
“알았어요.”
문 앞까지 나가 벌꿀이와 미하엘을 배웅해 준 이사벨은 터덜터덜 되돌아왔다.
약간 시무룩해져서 침대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본 루루카는 저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짓고 말았다.
‘아, 심장 아파.’
서운한 기색이 가득한 이사벨은 오늘도 여전히 귀여웠다.
루루카가 물었다.
“벌꿀이가 돌아간 것이 그렇게 아쉬우세요?”
“응.”
“그래도 금방 돌아온다고 했잖아요.”
“오빠가 또 괴롭히면 어떡해?”
이사벨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루루카는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한 눈길로 이사벨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벌꿀이가 왜 그렇게 좋으세요?”
“벌꿀이는 털이 보드라워서 좋아. 몸이 따뜻해서 난로를 안고 있는 것 같아.”
“여름인걸요?”
“그래도 따뜻하면 좋아. 나 수족냉…….”
“네?”
“아니! 아무것도 아냐요.”
전생의 몸은 총체적으로 문제였는데, 수족냉증도 그중 하나였다.
손발이 차갑다 못해 얼음장처럼 느껴져서 괴로웠었다.
그래서 그녀는 손에 따뜻한 것을 쥐고 있는 걸 좋아했는데, 벌꿀이의 몸이 딱 그랬다.
“뽀송뽀송한 털에 손을 쭉 숨겨놓으면 엄청 엄청 따뜻해.”
“참 신기해요. 황자님한테는 그렇게 사나운데, 황녀님께는 그렇게 순할 수가 없어요.”
사실 김벌꿀은 루루카에게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김벌꿀이 대놓고 호의적인 사람은 이사벨이 유일했다.
“낯을 많이 가려서 그렇지 착한 친구야.”
이사벨은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천장이 A4용지로 보였다.
마법 술식을 어떻게 변형하고 계산해야 할지.
어떻게 하는 것이 벌꿀이의 마음을 조금 더 정확하게 읽을 수 있을지 열심히 생각해 봤다.
“그러고 보니 벌꿀이는 더위를 많이 타는 것 같았어.”
그래서 생각해 냈다.
“차가운 성질의 마법을 익혀봐야겠어. 벌꿀이도 좋아하겠지?”
김벌꿀을 생각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내일은 벌꿀이랑 숨바꼭질해야겠다.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잠들었다.
한편, 김벌꿀은 미하엘의 볼을 사납게 할퀴었다.
몸을 세차게 뒤틀며 미하엘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이 배은망덕한 오소리 놈!”
김벌꿀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미하엘의 품을 벗어나서 달렸다.
“나도 너 할퀼 거다. 거기서 딱 기다려라.”
미하엘은 김벌꿀을 낚아채려 했으나 김벌꿀은 빨랐다.
잽싸게 미하엘을 피해 낸 김벌꿀은 창문 쪽으로 가서 창문을 열었다.
미하엘이 비웃었다.
“흥, 여기 8층인데 뛰어내리시겠다? 어, 어어? 야, 야! 진짜 뛰면 어떡해!”
미하엘이 황급히 창문 쪽으로 뛰었다.
힘이 너무 좋아서 중심을 못 잡았다.
그는 마치 발사된 투석처럼 창문 밖으로 떨어졌다.
“어? 나, 나는 건가?”
새가 날개를 펼치듯 팔을 벌려 보았다.
팔을 펄럭여보았다.
“날 수 있는 건가?”
어림없었다.
쾅!
미하엘은 8층에서 추락했다.
운 나쁘게 머리부터 떨어졌다.
평소보다 조금 더 아프긴 했지만 딱히 부상은 없었다.
“응?”
김벌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우와, 얘 순간이동도 하나 봐.”
불가사의한 일이었으나 미하엘은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오늘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다음에는 안 놓쳐야지.”
한편, 김벌꿀의 몸이 저절로 사라졌다가 어느 거대한 동굴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사삭- 사삭-
김벌꿀은 이곳이 익숙한 듯 동굴 속으로 움직였다.
동굴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룬, 이제 그만 본모습으로 돌아올 때가 되었단다.”
김벌꿀의 몸에서 오색찬란한 마나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 * *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낀 김벌꿀은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벌꿀오소리로서의 자아가 점점 사라졌다.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 차렸니?”
“……아, 어머니?”
김벌꿀은 자신의 이름을 생각해 냈다.
그의 진짜 이름은 아룬이었다.
“오늘도 좋은 배움이 있었겠구나.”
“다녀왔습니다.”
아룬은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벌꿀오소리였던 그는 어느덧 사람의 형상을 갖추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원래 그게 정상이란다.”
깊은 동굴 속.
아룬의 어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검은색 머리카락과 새까만 눈동자를 가진 여인이었다.
“아룬. 네 이름이 뭐라고?”
“방금 가르쳐 주셨잖아요. 아룬이요.”
“앗, 그렇네.”
그녀는 호호- 웃었다.
“용으로서의 자아를 계속 일깨워줘야 네가 너를 잊지 않는단다. 네 이름을 다시 불러보렴.”
“아룬이요.”
아룬은 이제 겨우 100살이 된, 아주 어린 용이었다.
“네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엄마가 좀 살펴봐도 되겠니?”
“네에.”
아룬의 어머니는 아룬의 머리에 손을 대고 아룬의 기억을 읽어보았다.
아룬에게는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김벌꿀? 무척 재미있는 이름이구나.’
벌꿀오소리로서의 기억을 모두 읽은 아룬의 어머니는 빙그레 웃었다.
“좋은 경험들을 하고 있구나.”
“제가 무슨 경험을 하고 있나요?”
“그건 네가 어른이 되면 스스로 깨닫게 될 거야.”
아룬은 터덜터덜 걸어갔다.
몇 걸음 옮기자, 미하엘의 방보다 더 으리으리한 공간이 나타났다.
분명 깊은 동굴이었으나 이곳은 황궁보다 더 깔끔한 곳이었다.
바로, 용의 둥지였다.
용들은 인간과 생활양식이 무척이나 비슷했다.
그들은 보통 인간의 모습으로 지냈다.
‘인간의 모습’일 때에 마나 소모가 가장 적어 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아룬이 폭신폭신한 소파에 앉았다.
“근데요, 엄마. 왜 이런 귀찮은 짓을 해야 해요?”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지.”
“이런 짓을 안 하면 나쁜 어른이 돼요?”
“그럴 수도 있단다.”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아주 옛날에 말이야. 자신을 최후 종식과 파괴와 투명의 흑염룡이라 부르던 흑룡이 있었거든.”
“뭐가 엄청 많네요?”
“멋있지 않니?”
아룬이 고개를 휙휙 저었다.
“저 어린애 아니에요.”
“응?”
“그런 해괴망측한 이름을 멋있다고 느끼는 애들은 50살 먹은 애송이들밖에 없을걸요?”
“……그, 그래?”
“근데 흑염룡이 뭐예요?”
흑룡은 알아도 흑염룡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자기를 흑염룡이라고 불렀어.”
“엄청 이상하다.”
“어쨌든, 최후 종식과 파괴와 투명의 흑염룡은 너무너무 심심했어.”
용은 태어나면서부터 포식자로 태어난다.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것들 위에 군림했으며, 자연스레 마법 영창을 읊고, 용언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존재였다.
“그 무료함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랐대.”
어느덧, 100살 먹은 아기용 아룬은 엄마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래서요?”
“힘을 과시하고 다녔단다.”
최후 종식과 파괴의 투명의 흑염룡.
카델리나는 세계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흑염룡은 파괴를 그만두었단다.”
“왜요?”
“귀여운 인간이 나타났거든. 반지를 주면서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대.”
“인간이 용을 어떻게 행복하게 해줘요?”
“그러니까 말이야. 웃기지도 않는 녀석이지. 아무튼 흑염룡은 그 인간을 꽤 귀여워했다나 봐. 가소로운 맛이 있었다고나 할까.”
“그렇구나.”
“그러다 보니까 차츰 심심함이 줄어들었고 학살을 멈췄대. 그러니까 멸망을 막은 건 귀여움이었던 거지.”
그녀가 가볍게 웃었다.
“귀여운 게 제일 무서운 거란다.”
“으음, 그렇구나.”
아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아들이 무척이나 귀여운 듯, 그녀는 아룬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고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 사건을 계기로, 결국 용들도 자신들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완전하지 않은 존재가 완전에 가까운 힘을 갖게 되면 어떤 위험이 초래되는지도 알게 되었단다. 그래서 아룬처럼 어린 시기에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하도록 율법이 정해졌어.”
다른 동물들로 변하여 생활해 보는 것이 어린 용들에게는 필수가 되었다.
다른 종족의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해 봐야 했다.
다만, ‘완전한 경험’을 위해 용으로서의 자아는 모두 지워야 했다.
김벌꿀이 용의 변신체가 아니라 진짜 벌꿀오소리로 생활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걸요?”
“그 경험들이 네 영혼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단다. 지금 모든 것을 기억나게 하면, 용으로서의 자아가 흔들릴 수 있어. 그래서 변신체의 기억을 봉인하는 거야.”
“아아. 그렇구나.”
아룬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요, 엄마.”
“응?”
“김벌꿀이 뭐예요?”
그녀의 몸이 흠칫, 놀랐다.
“그런 말은 어디서 들었니?”
“모르겠어요. 그냥 기억이 나요.”
그건 기억나면 안 되는 건데…….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용으로서의 자아를 각성했는데, 김벌꿀의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아룬에게 ‘김벌꿀’이라는 이름을 준 소녀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엄마도 몰라요?”
“글쎄. 잘 모르겠네. 나중에 또 생각이 나는 것이 있으면 말해주렴.”
흑룡. 카델리나는 온화하게 웃었다.
검은색 눈동자가 파충류의 그것처럼 가늘어져 있었다.
“근데 아들. 그 이름이 진짜 별로야?”
“최후 어쩌고 흑염룡이요?”
“응. 최후 종식과 파괴와 투명의 흑염룡.”
“완전 구려요.”
“그럼 흑염룡 대신 암흑룡은 어때?”
“더 최악이에요.”
“그, 그렇구나.”
“왜요? 혹시 아는 흑룡이에요?”
“그, 그럴 리가! 그런 애송이 같은 녀석을 내가 어떻게 알겠니?”
* * *
같은 시각.
이사벨의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그녀의 검술교관(?) 랜서가, 설화 속 흑룡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