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3)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23화
늘 그렇듯, 랜서 경은 내게 검술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데일사 시종장님이 언제 들어올지 몰라 조마조마해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책들을 읽어주곤 했다.
나는 랜서 경의 무릎에 앉았다.
“자, 오늘은 수호룡 이야기랍니다. 옛날 옛날에 아주아주 무서운 흑룡이 살았답니다. 흑룡의 이름은 카델리나였어요.”
“무, 무서워요.”
소꿉놀이에도 진심일 만큼 어린 육체를 가진 나는 이런 얘기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꼈다.
오소소.
한기가 일었다.
왠지, 진짜로 흑룡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이렇게까지 무서울 때는 거의 없는데…… 이상하네. 꼭 진짜 주변에 흑룡이 있는 것 같잖아?’
나는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이야기를 들었다.
카델리나는 무시무시한 용이었다.
특이한 건 이름이 아주 많은 용이라는 것이었다.
“최후 어쩌고 흑염룡. 종식 어쩌고 흑염룡. 파괴 어쩌고, 투명 어쩌고. 별명이 아주 많았어요. 그만큼 다양하고 무서운 일을 많이 했다는 뜻이겠죠?”
“지, 진짜 무섭다.”
“어쩌고 흑염룡하면 카델리나를 뜻하게 되었답니다.”
“어쩌고 흑염룡은 지금도 있어요? 지금도 막 나쁜 짓 하고 그래요?”
“걱정 마세요. 용감한 용사님이 나쁜 흑룡을 혼내줬어요. 용사님은 흑룡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어요.”
“무슨 약속을 했는데요?”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용사님을 돕는 착한 용이 되겠다고 약속했어요.”
“우와아.”
나는 오늘도 자존심이 상했다.
이런 이야기책이 이렇게 즐겁다니.
‘아냐. 이 또한 현실인걸. 자존심 상하지 말자.’
이제는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이의 몸에는 아이의 즐거움이 있는 법이었다.
세상에 즐거운 게 많다는 건 행복한 일 아니겠어?
랜서 경이 동화책을 덮었다.
“황녀님. 그거 아세요?”
“네?”
“여기 나오는 용사님이 바로 빌로티안 제국의 초대 황제셨어요.”
“에이, 거짓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론 랜서 경의 이야기가 재미있는 건 맞지만, 그래도 적당히 해야지.
나는 이 소설의 독자였고, 소설 속에서 수호룡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다.
“진짜예요. 수호룡이 되어서 비밀리에 황실을 지켜주고 있어요.”
“황실을 지키는 건 우리 아빠예요!”
랜서 경은 무언가를 굳게 다짐한 듯했다.
무언가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처럼 홀로 중얼거렸다.
“데일사! 딸이야, 답은 딸이라고!”
복도로 나가서 데일사 시종장님을 향해 ‘답은 딸이야! 딸이라고!’를 외치는데, 나로서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 * *
다음 날.
나는 작은 마석을 하나 챙겼다. 미세하게 찬 바람이 솔솔 나오는 마석이었다.
그걸 가지고 미하엘의 방으로 향했다.
미하엘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내가 노크하기도 전에 문을 벌컥 열었다.
“오? 그게 뭐야? 먹는 거야?”
미하엘은 내 손에서 마석을 빼앗아가더니 입에 넣고 꽈드득 씹었다.
이게 무슨 아이스크림쯤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퉤, 뱉었다.
“으, 딱딱해, 맛없어.”
“오, 오라버니. 이빨, 아니, 치아…… 괜찮아요?”
분명 꽈다닥 소리가 났다.
“박살 낼 뻔했어.”
“……보통은 박살 날 뻔했다고 말해요.”
“왜 박살이 나는데?”
“그건 딱딱한 돌이니까요!”
미하엘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히죽 웃었다.
“내 이가 더 딱딱해.”
미하엘은 오늘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이게 뭔데? 내 선물?”
“아니요.”
이건 벌꿀이를 위해 만든 것이었다.
차가운 성질을 지니고 있는 시베룬 마석에, 내가 만든 초보적인 마법 술식을 덧입혔다.
“이렇게 마나를 불어넣으면요. 차가운 바람이 솔솔 나와요.”
내가 마나를 불어넣자 시베룬 마석에서 푸른빛이 깃들었다.
이내 차가운 냉기가 새어 나와 주변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다.
현대로 치면 에어컨 같은 거였다.
“우와. 이거 엄청 신기한데?”
“그렇죠?”
마법 공부를 하면서 나는 안타까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 마법이 엄청나게 발전한 것이 맞기는 했다.
손짓 한 번에 성벽을 파괴하고 번개를 부르는 무시무시한 마법들도 존재했다.
그러나 실생활과 관련된 마법은 별로 발달하지 못했다.
‘평화로운 세상이 아니니까.’
지구와는 달랐다.
이곳의 인간들은 여전히 마물들과 생존권을 놓고 싸우고 있고, 대륙 곳곳에서 전쟁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그래서 실생활에 관련된 마법보다는 전쟁이나 전투에 관련된 마법들만 급속도로 발전했다.
“이런 사소한 마법들을 연구해 보고 싶어졌어요.”
진짜 마법사들은 전쟁과 관련된 마법을 연구하느라 여념이 없을 테니, 이런 사소한 마법들은 내가 연구해 보기로 했다.
마침 나는 시간도 많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방법들을 알고 있으니까, 소소한 마법을 공부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다.
“응, 그래라.”
오빠는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캭!”
다행히 벌꿀이는 내가 만든 마법석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잘 때는 마법석을 껴안고 자기까지 해서 무척 뿌듯했다.
“다음에는 더 시원한 걸로 만들어 줄게!”
카린이 옆에 없으면 벌꿀이에게 적용된 해석 마법은 잘 작동했다.
벌꿀이는 나한테 이름을 불리는 걸 굉장히 좋아했다.
[호명. 부탁.]“벌꿀이.”
[그거 X. 완전 X.]“응?”
벌꿀이는 ‘벌꿀이’라는 이름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았다.
연거푸 엑스 표를 띄웠다.
“그럼…… 음…….”
벌꿀이가 왜 싫지? 귀엽고 좋은데.
하지만 나는 벌꿀이의 기대 가득한 눈망울을 외면할 수 없었다.
“김벌꿀?”
[정답.] [매우 정답.] [♡]벌꿀이랑 김벌꿀이랑 뭐가 그렇게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벌꿀이는 나한테 하트를 보내줬고, 나는 벌꿀이의 미간을 슥슥 문질러주었다.
* * *
루루카는 콧노래를 부르며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오늘은 얼음을 동동 띄운 초코 우유를 드려야겠어. 황녀님이 좋아하시겠지?”
루루카는 즐거운 마음으로 이사벨의 간식을 준비했다.
초코 우유는 준비되었다. 지하창고의 냉동고에서 얼음만 꺼내면 되었다.
“……응?”
그런데 지하창고에 뭔가 이변이 일어난 것 같았다.
“에구머니나. 이게 뭐야?”
창고 벽면에 성에가 가득 끼어 있었다.
싸늘한 냉기가 느껴져 손이 무척 시려웠다.
“이게 무슨 일이람?”
지하창고에 있는 이 작은 냉동고는 굉장한 사치품이다.
일반 백성들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마법 공학의 산물.
“얼음들이 왜 이렇게 꽝꽝 얼었지?”
이상한 일이었다.
한여름에 벌어진 일치고 너무 기괴해서 그녀는 데일사 시종장에게 보고를 올렸다.
“시종장님. 지하창고에…….”
데일사도 황급히 지하창고로 내려가 보았다.
루루카의 말대로 지하창고 안에는 마법의 기운이 가득했다.
지하창고는 황궁 내에서도 꽤 은밀한 곳에 속했다.
이곳에 이렇게 마법이 침투할 정도면, 다른 곳에도 얼마든지 침투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미지의 세력이 모의실험을 한 거라면…… 큰일이다.’
지하창고에 마법이 침투할 수 있는지, 침투할 수 없는지 일단은 살상력이 없는 마법으로 실험을 해본 것일지도 모른다.
데일사는 큰 불안을 느꼈지만 그녀 또한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알 수는 없었다.
‘이래서 황궁에도 마법사들을 상주시켜야 한다고 누누이 건의했건만.’
검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한 검림원의 검림학사들은 황궁에 마법사를 들이는 것을 극도로 반대했다.
‘고지식한 늙은이들 같으니라고.’
그녀는 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빠르게 걸었다.
황족들의 궁전인 아레나 궁내에서 일어난 일이니 긴급한 보고였다.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걷고 있는데 누군가와 마주쳤다.
“데일사 시종장님, 안녕?”
“비아톤 경?”
미로텔 마법 연방으로 출장을 떠났던 비아톤 부관이었다.
“안뇨옹.”
“…….”
“방가방가!”
“…….”
사용한 지 십여 년도 더 지난 인사말이라 데일사는 괜스레 창피해졌다.
데일사는 주변을 훑어보았다.
“여전히 체통이라고는 없군요.”
“나 목숨 걸고 임무 수행하다 왔는데 그렇게 차갑게 굴 거야? 비아톤 상처 받아또.”
“…….”
데일사가 어려워하는 사람이 세상에 딱 두 명 있었다.
남편도 아니고 황제도 아니다.
바로 비아톤과 미하엘이었다.
둘은 다른 의미로 데일사를 힘겹게 했다.
“함께 전장을 누비던 장렬하고,웅장하고, 비장했던 전우애를 벌써 잊어떠?”
“닥치세요.”
“요만 붙인다 뿐이지, 굳이 존대는 왜 하는 거야?”
“닥치라고 했다.”
“그래. 이래야 데일사지. 가면 쓰고 살면 제 명에 못 산다? 나는 내 친구가 오래 살면 좋겠단 말이야.”
“내가 일찍 죽는다면 사인은 고혈압과 스트레스일 것이다.”
“헐? 데일사,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아? 남편 때문에 그래?”
“…….”
데일사는 비아톤과의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대화는 포기했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고 비아톤을 지하창고로 데려갔다.
황제에게 보고를 올리기 전에 지하창고에서 벌어진 괴현상을 조금 더 면밀하게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내가 마검사라는 건 안 잊은 모양이네.”
“외부 침투의 흔적이 있어?”
“아닌 것 같은데.”
비아톤은 벽에 잔뜩 낀 성에를 손가락에 묻혀 맛을 보았다.
“음. 딱히 위협적인 마나는 아니……. 음?”
비아톤은 다시금 성에를 맛봤다.
한 번. 두 번. 여러 번 맛보았다.
“나, 이 마나의 주인 알 거 같은데?”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너무나도 익숙하고 그리운 이 느낌.
이 마나의 주인은 비아톤이 무척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이었다.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은, 그 햇살 같은 아이가 떠올랐다.
“누군데?”
데일사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감히 황궁에 허락하지도 않은 마법으로 얕은 술수를 부려 놓은 것이 누구란 말인가.
비아톤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건 말이야.”
그리고 화사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안 알랴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