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4)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24화
비아톤은 황제를 찾았다.
황제가 궁에 있는 날은 많지 않으나, 오늘은 비아톤의 보고를 받기 위해 황궁에 머물렀다.
론은 비아톤의 얼굴이 성치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얼굴이 좀 다쳤군.”
“폐하께서 보기에도 그렇죠?”
마법에 의한 흉터가 아니다. 빌헬름에게 다친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 상처는…….”
“주먹으로 맞아서 눈탱이 밤탱이가 된 게 틀림없죠?”
“빌헬름의 호위가 무투가였던가?”
“폐하, 여기도 좀 보세요.”
비아톤은 성큼성큼 걸어가 황제 앞에 섰다.
앙탈 부리듯 검지로 제 뺨을 가리키며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얼굴과 얼굴이 가까워지기 전, 론이 차분하게 말했다.
“더 이상 접근하면 벤다.”
“아니, 보세요. 여기 손바닥 자국, 아직도 남아 있죠?”
마치 뺨을 맞은 것 같았다.
손바닥 모양으로 거의 살이 패여 있었다.
론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데일사와 만났나?”
“데일사는 늘 한결같아서 좋아요. 데일사랑 얘기하면 어릴 때 추억도 송송 솟아나기도 하고요.”
“…….”
“몇 대 맞으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안와골절 올 뻔했는데 이거, 고소 가능한가요?”
“그래서…… 임무는?”
론은 비아톤의 부상(?)에는 크게 관심 없어 보였다.
비아톤도 더 이상 장난치지 않고 자세를 바로 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진중한 보고를 시작했다.
“그 새끼. 튀었습니다.”
“튀어?”
“아무리 증거를 찾아도 증거가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비아톤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그래서 일단 잡아 족치려고 했죠.”
황후인 세르나가 들었다면 뒷목 잡을 얘기가 오갔다.
“혹시 아니면 어쩌려고?”
“그럼 진범한테 경고도 되고 좋잖아요. 빌헬름은 어차피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거든요. 그 자식, 선물 수여식에서 황녀님을 보는 눈빛 보셨어요?”
“봤다.”
황제만 본 것도 아니고 비아톤만 본 것도 아니었다.
둘은 같은 것을 보았고 같은 것을 느꼈다.
빌헬름이 황녀를 보며 욕심을 내던 그 눈빛.
두 사람이 동시에 느꼈다면 잘못 느낀 것은 아닐 터.
“눈알을 확 뽑아버렸어야 했는데. 아무튼 도망쳤어요. 죄송해요. 놓쳤다고 보고하러 온 겁니다.”
“……수고했다.”
“욕 안 하세요?”
론은 비아톤의 얼굴을 슬쩍 훑어봤다.
자세히 보니 입술도 좀 터진 것 같았다.
“이미 호되게 당한 모양이라.”
“아 참, 그것도 말씀드려야 하는데. 지하창고가 꽝꽝 얼었습니다.”
마검사인 그의 입장에서 이는 무척이나 놀라운 일이었다.
“제가 보기에는 일부러 그렇게 한 건 아니고, 그냥 어쩌다 보니 마나가 새어 나가서 그렇게 된 것 같거든요?”
원래 마나라는 것이 친숙한 공간을 향해 움직이게 되어 있어요. 찬 성질의 마나는 차가운 곳으로.
그래서 아마 황녀님이 일으킨 마나가 지하창고에 모이게 된 것 같아요.
그런 긴 설명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덜떨어진 마법사의 실수인가.”
“저희 엄마도 어릴 때 그랬대요.”
“몹시 빼어난 재능의 발현이군.”
비아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놀라운 건, 황녀님의 마법인 것 같아요.”
“…….”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당황한 쪽은 비아톤이었다.
“안 놀라세요?”
“어느 포인트에서 놀라야 하는 거지?”
“아니, 일부러 빙결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그냥 어떤 마법에 대한 부작용 때문에 지하창고가 꽝꽝 얼었다니까요? 한여름에요.”
“그런데?”
“그냥 새어 나간 게 이 정도면 진짜 어마어마한 거예요. 아레나 궁 지하창고 규모 기억 안 나세요? 뛰어난 마법사가 대놓고 빙결 마법을 써도 그렇게 얼리기는 쉽지 않아요.”
“그래서?”
“그러니까 황녀님께서 타고난 마나의 격과 양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뜻이죠. 쉽게 말해, 천재라고요! 그것도 상상을 뛰어넘는 천재!”
론은 잠자코 비아톤을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론과 함께했던 비아톤은 이내 론의 눈빛을 읽어낼 수 있었다.
“설마, 황녀님이니 그 정도는 당연하다, 뭐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론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내 딸은 원래부터 천재다. 태어날부터 잘났다. 뭐, 이렇게 생각하고 계신 거죠?”
“…….”
론은 흠칫 놀랐다.
비아톤이 속마음을 정확하게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완전히 티 내기에는 조금 민망한 구석이 있었다.
그런데 비아톤의 반응이 약간 의외였다.
“하아. 전 아직 멀었네요.”
그는 깊이 반성했다.
황제는 황녀를 이미 믿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런 사소한 것에 놀라지 않아. 왜냐하면 딸이 대단한 걸 이미 마음속 깊이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지. 나는 아직도 한참 멀었구나!’
“왜 황녀님이 저보다 폐하를 더 좋아하는지 알 것도 같군요.”
비아톤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 * *
겨울이 되었다.
내가 맞이하는 다섯 번째 겨울이었다.
이곳은 지구와 똑같이 1년을 12개월로 계산했고, 오늘은 12월의 첫날이었다.
‘다섯 살도 거의 끝나가는구나.’
다섯 살의 마지막 달이었다.
시간이 무척 빨랐다.
나는 요즘도 굉장히 바빴다.
카린 경의 복귀가 늦어지는 바람에 나는 여러 가지를 독학했다.
특히 마법 수식과 마법 이론이 제일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공부하는 중이다.
문득, 비아톤 경이 생각났다.
‘몇 달 전에 비아톤 선생님이 황궁에 왔다 가셨다던데…….’
얼굴이라도 좀 보고 가지.
뭐가 그렇게 급한지 비아톤 경은 또 어디론가 출장을 떠났다고 했다.
비밀 임무를 받았다나, 뭐라나.
‘그러고 보니, 빌헬름이 행방불명 됐다던데, 그거랑 상관있는 건 아니겠지? 양아버지의 실종 때문에 카린의 복귀도 늦어지는 건가? 혹시 카린이 뭔가 수를 꾸미고 있다거나…….’
나는 고개를 휙휙 저었다.
이렇게 즐거운 마법 수식 문제들을 앞에 놓고 무슨 불길한 생각이람. 앞으로 살날도 길지 않은데.
일단은 현재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이사벨!”
쾅! 쾅!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투박하기 그지없는 노크였지만 저것도 많이 발전한 것이다.
처음에는 노크를 아예 안 했었다.
처음 노크를 시작했을 때에는 문을 여러 번 부쉈다.
그나마 이제는 힘 조절이 돼서 노크라는 문명 행위가 가능해진 것이었다.
똑도도 똑똑.
“나랑 썰매 타러 갈래?”
“썰매요?”
“어. 나 엄청 재미있는 곳 알아.”
썰매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설레고 말았다.
소꿉놀이도 좋고, 그림 동화책도 좋은데, 심지어 썰매라니.
“저 썰매 한 번도 안 타봤어요.”
“까짓 거, 별로 어렵지 않아. 오빠만 믿어.”
“진짜요?”
“그러엄!”
“같이 눈사람도 만들 거예요?”
“특별히 그래 주지.”
아주 오랜만에 엉덩이가 덩실거릴 뻔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눈을 맞아본 경험도 거의 없다.
내 손으로 눈을 만져본 기억도 없었다.
“저 신나도 돼요?”
“당연하지!”
“그럼 오라버니만 믿을게요.”
나의 정신은 미하엘을 귀엽게 느낀 반면, 나의 육체는 미하엘을 더없이 믿음직스럽게 느꼈다.
정신으로 보는 미하엘은 어린애였지만, 육체가 받아들이는 미하엘은 강인한 오라버니였으니까.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랬다.
그렇지만 데일사 시종장님에게 오빠는 전혀 미덥지 못한 사람인 듯했다.
“보호자 없이는 외출 허가 못 해 드립니다.”
랜서 경이 자신을 가리켰다.
“보호자는 나! 나 있잖아.”
“아?”
“있잖아요.”
“요?”
“있지 않습니까?”
랜서 경은 매일같이 같은 지적을 받는데, 매일 저러는 걸 보면 일부러 저러는 것 같기도 했다.
“랜서 경은 미덥지가 못합니다.”
“이래 봬도 이 몸은 황궁의 검술 교관이란 말입니다.”
“안 됩니다.”
나는 안 된다는 말에 무척 실망할 뻔했다.
그런데 구원자가 나타났다.
“저는 어떻습니까, 내 친구 데일사 시종장?”
“이 개자…… 아니, 비아톤 경?”
나는 비아톤 경을 발견하고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저번에 못 봐서 그런지 더욱 반가웠다.
“선생님!”
비아톤 경에게 쪼르를 달려갔다.
“황녀님, 엄청 귀여워지셨는걸요? 아니, 예전부터 귀여웠지만 더욱 귀여워지셨어요.”
비아톤 경이 나를 안아주었다.
내 몸이 공중에 떴다.
비아톤 경은 역시 내 취향을 아주 잘 알았다.
나를 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6바퀴쯤 돈 것 같았다.
‘하, 짜릿해.’
이 빙글빙글 도는 맛은 아주 일품이었다. 놀이기구보다 더 재미있었다.
아, 물론, 놀이기구를 타본 적이 없긴 하지만.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답니다, 황녀님.”
비아톤 경은 나를 꽉 안았다.
그 포옹에 따뜻한 사랑이 가득가득 담겨 있어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
햇살이 나를 보듬는 것 같았다.
하, 역시, 빙의하길 잘했어.
“저도 비아톤 선생님이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정말요?”
“저번에 인사도 없이 그냥 가서 엄청 서운했단 말이에요.”
“으윽!”
비아톤 경은 심장을 부여잡았다.
실제로 심장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마법으로 연출한 ‘심쿵 소리’였다.
이런 비아톤 경을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겠어.
“그런데 황녀님, 이 생명체는 무엇인가요?”
비아톤 경은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커다란 입이 비아톤 경의 머리를 통째로 꽉 깨물고 있었다.
입이 무슨 뱀처럼 크게 늘어났다.
“악! 김벌꿀! 그러면 못 써!”
미하엘은 이러나저러나 상관없는 듯 ‘우와, 저게 되네? 나도 벌려볼까?’라면서 입을 크게 벌려 보았다.
자기도 저렇게 입을 크게 벌릴 수 있는지 없는지 궁금한 것 같았다.
“이 버릇없는 녀석은 황녀님의 친구인가요?”
“네. 친구예요.”
“하마터면…….”
죽일 뻔했네.
그 말이 들린 것 같아서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 말았다.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데일사 시종장님. 비아톤 경과 함께라면 외출을 허락해 주실 건가요?”
결국 나는 외출 허락을 받았다.
전생과 이생을 통틀어서 처음으로, 썰매라는 것을 타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설렜다.
하아. 썰매라니.
내 인생 첫 썰매라니.
첫 눈사람이라니.
‘근데…….’
썰매를 여기서 타는 줄은 몰랐지.
나는 우리 4황자님을 얕봐도 너무 얕본 것 같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