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5)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25화
이동 관문.
그것은 마법을 이용하여 순간이동을 실현시켜 주는 일종의 마도 공학 장치다.
만드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유지하는 데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서 황궁 내에도 그리 많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말하자면 이동 관문은 상위 0.01퍼센트의 인류만 누리고 있는 특별한 기술이었다.
이사벨은 너무 신이 난 나머지, 왜 썰매를 타는데 이동 관문까지 이용하는지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으, 추워.’
갑자기 추워졌다.
쌩- 쌩-
찬 바람이 불어왔다.
이사벨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아, 아악!”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사벨이 선 곳은 이름 모를 산의 꼭대기였기 때문이다.
바로 앞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절벽과 장엄한 설경이 펼쳐져 있었다.
본능적으로 비아톤에게 안기고 말았다.
비아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사벨을 안아 들었다.
‘왜, 왜, 왜 이런 위험한 곳에 이동 관문이 있는 거야!’
그건 이곳이 설치 비용이 저렴하고 마나의 흐름상 유지 관리가 쉽기 때문이었다.
이동 관문은 마나 흐름을 이용하는 마도 공학 장치이기 때문에 아무 데나 설치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몇 걸음 까딱 잘못 움직이면 낙사할 만큼 위험한 곳이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중심을 잡기도 힘들었다.
“무, 무서워요.”
“계속 안아달라는 뜻이군요!”
“저, 절대로 놓으면 안 돼요.”
그녀는 자신에게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회귀 전, 일생의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냈기에 고소공포증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극도의 공포감에 휩싸였다.
비아톤은 이사벨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여섯 살이면 한창 안길 때긴 하죠. 후후.”
이사벨은 비아톤의 품에 얼굴을 폭 박은 채 물었다.
“오, 오빠는 써, 썰매를 이런 곳에서 탄단 말이에요?”
“이 정도는 되어야 스릴이 있지.”
이사벨은 잊고 있었다.
미하엘은 8층에서 떨어져도 몸이 멀쩡한 괴물이라는 사실을.
“여기서 썰매 타면 죽어요!”
“왜 죽어?”
“저는 죽어요!”
미하엘이 흐음, 하고 턱을 매만졌다.
그의 검술 교관인 랜서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랜서 경. 쟤 정말로 죽어?”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헐! 거짓말. 세상에 그런 약골이 어딨어?”
약간 억울해진 이사벨은 외치고 싶었다.
보통은 죽는다고요!
그렇지만 너무 무서워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빼꼼,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더니 무시무시한 협곡이 보였다.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랜서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황녀님이 이렇게 무서워하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말입니다.”
“그러게요. 이것 참 아쉬운 일이군요. 하하!”
랜서는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왠지…… 비아톤 경은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비아톤은 황제를 상대하는 부관이다.
눈치가 무척이나 빠르다고 소문난 사람인데, 정말 몰랐을까 싶다는 생각이 좀 들었다.
“이거 참. 난처하군요. 그렇다고 내려드릴 수도 없고. 방금 사용한 이동 관문을 재가동하려면 시간이 좀 지나야 할 테니……. 이런. 정말 어쩔 수 없이 제가 계속 안고 있어야겠군요. 아주 불가피하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렇죠, 황녀님?”
“저, 절대 놓으면 안 돼요!”
“그럼요. 절대 놓지 않겠습니다. 하하하!”
랜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쩐지 기뻐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에이. 내가 사람을 잘못 봤겠지.
황녀께서 겁에 질렸는데 그걸 즐기는 또라이가 어디 있겠어.
그사이, 미하엘은 협곡 아래로 몸을 던졌다.
“야. 김벌꿀, 시합이다.”
누가 더 이 협곡을 먼저 내려가나 자웅을 겨뤘다.
둘의 대결은 무척이나 치열했다.
“캭! 캭!”
벌꿀이는 진심이었고…….
“절대, 안 진다!”
미하엘은 더욱 진심이었다.
결국 이사벨은 썰매를 한 번도 타지 못하고 비아톤의 품에 안겨만 있었다.
절벽 아래에 먼저 도착한 미하엘은 깔깔대고 웃었다.
“패배자 주제에, 무척 도발적인 표정을 하고 있군?”
미하엘은 다시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강풍을 동반한 눈보라가 일었으나 그런 건 미하엘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꼭대기에 다시 도착했을 때 미하엘은 문득 비아톤의 품에 안겨 있는 동생을 발견했다.
‘음…….’
생각해 보니 왠지 조금 미안해졌다.
어떻게 해주면 이사벨도 재미있게 해줄 수 있을까를 잠시 고민했다.
“내가 업어줄까? 안 죽도록 노력은 해볼 수 있는데. 썰매, 탈래?”
“싫어요!”
미하엘은 살짝 시무룩해졌다.
* * *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사벨은 썰매를 못 탔다.
이사벨의 기준으로, 거기서 썰매를 탄다는 건 자살행위였다.
아레나 궁으로 돌아온 이사벨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 덕분에 살았어요. 팔 많이 아팠죠?”
“뭘요. 제 기쁨인걸요.”
“저, 혹시 무거웠나요?”
“무거웠냐구요?”
“요즘 왕사탕 많이 먹어가지고요.”
조금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나를 엄청 오래 안고 있었던 것 같은데.’
팔이든 목이든 허리든 어디든 많이 아팠을 것 같았다.
비아톤은 늘 그렇듯 화사하게 웃었다.
“제가 아직 미하엘 황자님보다 힘 더 셉니다.”
아. 맞다. 여긴 초인들의 세계였지.
괜한 걸 물어본 것 같아서 괜스레 민망해졌다.
“왕사탕쯤은 백 개, 천 개 먹어도 하나도 무겁지 않답니다. 자, 방까지 안내해 드릴게요.”
비아톤이 자연스레 손을 내밀었다.
이사벨도 팔을 들어 올려 그 손을 잡았다.
‘비아톤 경의 손은 늘 따뜻하네.’
일반적인 체온보다 더 높았다.
그건 비아톤이 일부러 마나를 운용하여 손을 따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비아톤은 이사벨과 보폭을 맞추어 아주 천천히 걸었다.
“근데 있잖아요, 선생님.”
“네에.”
“이동 관문은 유지 보수가 엄청 엄청 힘들고 돈이 많이 들잖아요.”
“그런 것도 알고 계세요? 대단하신걸요!”
무슨 말만 해도 칭찬 세례가 쏟아진다.
‘아, 자꾸 이러면 곤란한데.’
이 뻔한 칭찬이 이사벨을 흥겹게 만들었다.
‘예전부터 알고 있기는 했지만, 이 육체의 디폴트는 관종이 틀림없어.’
그녀는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근데 왜 그런 척박한 산지에 이동 관문이 있어요?”
“그걸 짚어내셨단 말입니까?”
뭐야? 나 또 칭찬받는 거야?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다.
아까의 공포감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네. 너무 이상해서요. 효용 가치가 별로 없잖아요.”
“그건 말이죠, 황녀님. 그곳이 에르베산이어서 그래요.”
“아! 나 거기 알아요!”
에르베 산맥은 대륙 북쪽 끝단에 위치하고 있는 아주 거대한 산맥이다.
북쪽 위로는 인간이 점령하지 못한 땅이 나온다.
에르베 산맥의 북쪽 너머는, 이종족들의 제국 뮤탄티온이었다.
“에르베 산맥을 알고 계시나요?”
“뮤탄티온과 국경을 맞댄 국경지대! 맞죠?”
“어떻게 아셨어요?”
“열일곱…….”
너무 신이 나서 열일곱 번이나 책을 정독했다는 말을 할 뻔했다.
황급히 말을 돌렸다.
“책에서 봤어요!”
“우리 황녀님은 책도 많이 읽으셨으니, 커서 정말로 훌륭한 어른이 될 거예요. 꼭 훌륭한 어른이 되기로 약속해요.”
비아톤은 허리를 숙이고 이사벨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이사벨은 그 손가락을 그냥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으음.”
“왜 약속 안 해주세요?”
이사벨은 잠시 고민했다.
‘아, 이거 내 입으로 말하기 쫌 부끄러운데.’
괜히 발끝으로 땅을 톡톡 쳤다.
그래도 상대가 비아톤이니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저는 선생님을 정말 좋아해서요.”
“……네?”
“그래가지고요, 선생님이랑은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고 싶어요.”
어른이 되면 죽는다.
그러니까 훌륭한 어른이 되겠다는 약속은 해줄 수 없었다.
나는 어른이 되면 죽을 테니까.
어차피 정해져 있는 것이니 덤덤하게 말했다.
이사벨은 미안한 듯 웃었다.
“그래서 새끼손가락 못 걸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은 비아톤은 심장이 멎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황제와 데일사 앞에서 얄밉게 입을 놀려대는 비아톤이었지만, 지금은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사벨의 담담함이 대못으로 변해 심장에 쾅! 쾅! 박히는 것 같았다.
“아 참! 이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다른 얘기가 있나요?”
“네.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비아톤은 얼른 마음을 추슬렀다.
황녀 앞에서 침울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마나를 운용했다.
마법적 효과를 일으켜 눈앞에 반짝이를 연출하며 애써 밝게 말했다.
“얼른 얘기해 주세요. 저 엄청 집중하고 있답니다.”
노란색 불빛이 깜빡깜빡했다.
이사벨은 그 불빛에 정신이 팔려서 할 말을 잊어버릴 뻔했지만 이내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비아톤 선생님한테 서운해서요. 서운한 게 있으면 솔직히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순간, 깜빡이던 노란 불빛이 까만색으로 변했다.
이내 팍! 팍! 소리를 내며 사라진 뒤 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뭐, 뭐가 서운하십니까?”
“선생님은 별거 아니었겠지만 저는 정말 정말 무서웠단 말이에요. 그런데 비아톤 선생님은 엄청 좋아만 했죠?”
“그, 그건……!”
이사벨의 말은 사실이었다.
많이 웃었고 많이 귀여워했다.
이사벨이 자신에게 안긴 것을 즐거워했었다.
“제 생각과 감정은 하나도 배려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속상했어요.”
비아톤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비아톤이 입을 열었다.
“황녀님. 저는요.”
이사벨로서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말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