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6)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26화
비아톤 경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저는 기뻤어요.”
“네?”
비아톤 경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나와 눈높이를 맞추고 다정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황녀님이 무서워하는 게 좋았어요.”
저 눈빛이 너무 따스하고 좋아서 나는 화를 내지도 못했다.
“그, 그게 왜 좋은데요?”
“황녀님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걸 하나도 안 무서워하시거든요.”
“제일 무서운 거요?”
“그 앞에서도 담담해서 마음이 너무너무 아팠거든요.”
아, 잠깐만.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요.
이, 이건 반칙이지.
비아톤 경의 눈빛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비아톤 경의 눈에는 눈물도 고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잘못 봤겠지?’
다시 보니 눈물은 없었다.
“너무 속상해서 어쩔 줄 몰랐거든요.”
“…….”
“근데 죽는다고 무서워하셨잖아요. 너무 무서워서, 저한테 안기셨잖아요. 그래서 하염없이 기뻤어요.”
눈물은 흐르지 않았지만 비아톤 경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나는 나도 모르게 비아톤 경의 볼에 손을 대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러자 비아톤 경은 자신의 손으로 내 손등을 덮어주었다.
비아톤 경의 볼과 손바닥 사이에, 내 손이 껴버렸다.
비아톤 경의 볼은 폭신하고 보드라웠지만 손은 크고 거칠었다.
비아톤 경은 여전히 다정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민망해서 입을 열었다.
“손이 껴버렸어요.”
“그러게요.”
“샌드위치 먹고 시푸다. 헤헤.”
비아톤 경은 또 한참이나 나를 쳐다보았다.
눈빛은 분명 따뜻했는데, 이상하게 내 마음이 아파왔다.
“황녀님의 두려움을 좋아하는 걸 보니, 저는 나쁜 선생님인가 봐요.”
“…….”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비아톤 경이 저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황녀님. 진짜 이상한 말인데요. 해도 될까요?”
“하, 하세요.”
“황녀님이 무섭다고 안기는 그 순간이 저한테는 축복이었어요. 황녀님이 내 옆에 살아 있구나, 그렇게 느꼈어요.”
“저, 저는 맨날맨날 살아 있는걸요.”
문득, 들어 올린 오른손 아래로 ‘나르비달의 낙인’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모래가 떨어지고 있었다.
내 마지막 21년을 향해.
비아톤 경이 내 손을 내려주었다.
마치 나르비달의 낙인을 보이지 않게 하려는 듯.
비아톤 경이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맞아요. 우리 맨날맨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훌륭한 어른 안 되어도 좋아요. 19세면 어른이니까, 일단은 어른이 되어주세요.”
“그럼 어른은 될 수 있어요!”
꼬르륵-
배에서 소리가 났다.
이 어린 육체는 왕성한 식욕을 자랑했다.
이런 애틋한(?) 상황에서 많이 민망하기는 했지만, 어린 육체는 본능을 거스르지 못했다.
황궁 근처에 엄청 맛있는 샌드위치 가게가 있다고 들은 게 생각났다.
“샌드위치 사 줄 수 있어요?”
“샌드위치를 사 달라구요?”
조금 부끄러워져서 목소리가 작아졌다.
“저…… 돈이 없어요.”
“네?”
“나, 나중에 갚을게요.”
나는 황녀였고, 미래에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들을 여럿 알고 있지만, 아직 수중에 현금은 없었다.
* * *
다음 날.
랜서는 오늘도 이야기책을 옆구리에 꽂고서 이사벨의 방을 찾았다.
“오늘은 이야기책 말구, 다른 얘기 해요.”
이사벨이 무언가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이사벨의 얘기를 경청한 랜서는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에르베 산맥의 거점들에서 보초를 서는 경비병들을 보았단 말씀이시지요?”
“네. 그래서 엄청 신경이 쓰였어요. 미안하기도 했구요.”
“뭐가 그렇게 미안하셨나요?”
“그분들은 그렇게 추운 곳에서 매일매일 경비를 서고 마물들과 이종족들의 침입을 감시하고 있는데…….”
그런데 오빠라는 사람은 거기서 눈썰매를 타며 벌꿀이랑 내기를 하는 꼴이라니.
무서운 와중에도 민망해 죽는 줄 알았다.
“거기에 있는 보초병들은 이동 관문도 이용하지 못한대요.”
“크흠, 그렇죠. 한 번 가동하는 데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거든요. 그래서 국가적 비상사태에만 이용할 수 있도록 수칙이 정해져 있답니다.”
아주 불합리한 세상이었다.
눈썰매를 타는 황자 미하엘은 이동 관문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보초를 서는 병사들은 에르베 산맥을 걸어서 올라야 했다.
“저는요, 선생님.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크흠…….”
랜서는 조금 고민했다.
옳지 않다는 말에 반박할 수는 없었으나, ‘그게 현실입니다’라고 가르쳐주기도 조금 애매했다.
보통 에르베 산맥에서 경계를 서는 자들은 평민 중에서도 무척 가난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평민이고, 황자님은 황족이니까요. 같은 선상에 두고 비교할 수는 없답니다.”
이사벨은 다시금 이곳이 다른 세계라는 것을 직감했다.
신분과 계급이 확실한 세상.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저러한 생각이 이 세상의 상식이고 법칙이라면, 랜서의 대답이 특별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었다.
“저는 황족들이 에르베 산맥으로 향하는 이동 관문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게 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
신분과 계급이 확실한 세상이다.
그렇기에 각 신분과 계급에 맞는 행동과 생각이 있다.
황족은 많은 것을 누리지만, 또한 많은 것을 짊어져야 한다.
“에르베 산맥을 직접 경험하고, 그곳에서 제국의 평화와 안녕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고 헌신하는 병사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라는 의미일 거예요. 오빠처럼 썰매 타라고 만들어 놓은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랜서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황녀님은 이제 겨우 여섯 살인데.’
이사벨의 나이는 이제 겨우 여섯이었다.
조숙하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황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가 알기로도 본래 의도는 그러했다.
처음 황족들이 에르베 산맥으로 향하는 이동 관문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설정한 이유였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흐르고 의미는 퇴색되었다.
보통은 책을 통해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동 관문이 설치되었다’라고 짧게 배우고 넘어갔다.
‘책에 있는 내용을 보지 않고 스스로 깨달으셨군요.’
랜서는 저도 모르게 감탄하고 말았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말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 * *
학회로 떠났던 카린이 복귀했다.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양아버지인 빌헬름의 실종에 대해서는 딱히 언급하지 않았다.
카린은 늘 그랬듯 냉담한 태도로 이사벨을 대했다.
‘평소에도 무서웠지만 오늘은 더 무서운 것 같아.’
그렇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간 느낀 것들에 대해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제 삶이 선물이라고 했던 거, 혹시 기억하세요?”
“기억합니다.”
“그게요. 떠나기 전에 저도 선물을 남기고 싶어서요.”
“…….”
“음, 아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요, 사람들이 저를 기억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요.”
이사벨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괜히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좋은 추억으로 저를 기억해 주면 좋겠어요.”
“…….”
카린은 심장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으나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얘기를 더 들어 보았다.
“그게 말이에요. 오라버니랑 눈썰매를 타러 갔는데요.”
에르베 산맥에서 병사들을 본 얘기를 해주었다.
“그래가지고요, 저는 그 사람들이 이동 관문을 자주자주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어졌어요.”
“마음은 무척 따뜻합니다만 현실성은 없는 얘기군요.”
그게 가능했다면 진즉에 마법사들이 그렇게 했을 것이었다.
“저는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현재 기술과 이론으로는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벌꿀이에게 해석 마법을 걸어주었을 때와 비슷한 마나 흐름을 느꼈어요.”
또다시 ‘직관’이었다.
배우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는 기이한 힘.
이사벨이 품 안에서 시베룬 마석을 꺼냈다.
“그래서 이것도 만들어 보았어요. 선생님이 이걸 봐주실 수 있어요?”
“시베룬 마석이군요. 냉풍이 나오도록 설계가 되었…….”
그녀는 깜짝 놀랐다.
“제가 가르쳐 드리지 않았던 마도 공학 이론까지 접목하셨군요.”
“서, 선생님이 안 가르쳐줬어요?”
“제가 가르쳤던 것들은 기본개념과 마나 이론이었을 뿐입니다.”
황녀님은 그 이론들을 공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스스로 깨달으셨군요.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칭찬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기특해 죽겠는데, 그 마음을 숨기기 위해 더 냉담하게 굴었다.
그녀 또한 제대로 된 칭찬과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카린은, 그녀가 그토록 혐오하는 빌헬름과 저도 모르게 닮아 있었다.
“계속 말해보십시오.”
“제가 생각한 건요.”
이사벨은 한국 대학교 수리논술 합격자면서, 공과대학. 그중에서도 전기공학에 입학 예정이었다.
공부가 취미였던 그녀는 대학교 수준의 이론 정도는 이미 예습이 완료된 상태였다.
“마나의 흐름을 직류에서 교류로 변환시켜 사용하는 건데요.”
“직류에서 교류로 변환이요?”
카린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기본적으로 모든 마법은 직선적인 흐름을 기본으로 한다.
그것이 세상의 상식이었다.
‘내, 내가 자, 잘못했나?’
카린은 깜짝 놀라서 인상을 찡그린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사벨은 카린이 최종 흑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때문에 카린의 표정에 약간 겁먹고 말았다.
‘평소에도 무섭긴 했지만 이렇게 인상까지 찡그린 적은 잘 없는데.’
평소의 카린보다 더 무서웠다.
카린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직선의 흐름을 변환한단 말입니까?”
“그, 그건…….”
검술 제국 빌로티안의 역사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