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8)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28화
비아톤이 씨익 웃고서 말했다.
“황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아톤은 마치 숙련된 연기자처럼 이사벨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우디 카딘 선생님을 어디 못 가게 막아줘여!’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사벨의 발음은 이제 꽤 정확해졌다.
그러나 비아톤의 귀는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기묘한 능력을 지닌 듯했다.
“황녀님께서요?”
“네. 그러니까 잠시 실례를 좀 하죠.”
비아톤은 품속에서 포승줄을 꺼냈다.
포승줄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의 허술한 줄이었다.
힘을 주면 툭! 끊어질 것만 같았다.
어쨌든 비아톤은 그 줄로 카린의 몸을 묶었다.
비아톤은 아주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 황녀님도 도와주세요. 카린 경이 너무 강력해서 저 혼자서는 무리입니다.”
“저, 저도요?”
이사벨은 얼떨결에 줄 뭉치를 받아들었다.
“네. 황녀님은 손목을 맡아주세요.”
“알았어요.”
이사벨의 이성과 달리, 육체는 또다시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소꿉놀이에 진심인 이사벨의 육체는 납치 놀이에도 큰 흥미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이사벨은 작은 손으로 줄을 풀어서 카린의 손목을 결박했다.
제대로 된 매듭법을 몰라서 리본으로 묶었다.
“리본으로 묶었어요.”
“이로써 완벽하게 제압했습니다.”
비아톤이 손을 내밀었다.
그 위치가 조금 높아서 이사벨은 점프하고서 손을 마주쳤다.
잠자코 있던 카린이 물었다.
“왜 이러시는 겁니까?”
“다 들었어요. 빌헬름 못된 아저씨한테 간다고요.”
카린이 비아톤을 찌릿 노려봤다.
눈빛으로 말했다.
도대체 애한테 뭘 말한 거냐고.
비아톤은 이사벨의 작은 몸 뒤에 숨었다.
“별말 안 했습니다. 그냥 카린 경이 빌헬름이라는 아주 나쁜 녀석한테 간다고만 했습니다.”
“…….”
“그랬더니 황녀님이 안 된대요.”
카린이 이사벨에게 시선을 옮겼다. 여전히 눈빛은 차가웠다.
“왜 안 됩니까?”
“그, 그야…….”
이사벨이 알고 있는 카린은 최종 흑막이다. 그리고 그 최종 흑막은 빌헬름 밑에서 탄생했다.
빌헬름과 어떤 관계였는지, 어떤 가르침을 받았는지까지는 자세히 서술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무섭긴 해도 내 옆에 두는 게 제일 안전하잖아.’
게다가 이곳은 보안이 철통같은 황궁 내.
20년 후, 최종 흑막을 바로 옆에서 감시할 수 있는 곳이다.
최종 흑막의 탄생을 막기 위해 빌헬름에게 보내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게다가 그 나쁜 아저씨는 행방불명이라고 했어요. 위험한 냄새가 폴폴 난다구요.”
카린의 시선이 비아톤을 향했다.
빌헬름이 행방불명된 이유는 어디까지나 비아톤 때문이니까.
비아톤은 은근슬쩍 시선을 피하고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위험한 냄새가 폴폴 난다네~ 폴폴~ 폴폴~ 위험한 냄새~”
마법을 응용하여 [♩♪] 음표를 허공에 동동 띄웠다.
이사벨이 말했다.
“그니까 카린 선생님은 아무 데도 못 가.”
“……가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빨리 황녀님을 도울 수 있습니다.
황녀님이 창안한 이론을 공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그래야, 황녀님의 소원을 이루어 줄 수 있습니다.
세상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그 말을 속으로 꿀꺽 삼켰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어요.”
이사벨이 손가락으로 카린의 손목을 가리켰다.
“봐봐요. 예뿐 리본으로 묶었는걸?”
“…….”
리본 모양이 쓸데없이 정교하고 예뻤다.
약간 삐뚤빼뚤했지만 어쨌든 리본 매듭인 것은 확실했다.
“리본으로 묶으면 못 갑니까?”
사실 힘만 조금 주면 뜯어낼 수 있다. 그렇지만 카린은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다.
“네. 제가 딱 찜콩했거든요.”
* * *
복도로 나온 카린은 포승줄을 조심히 풀어냈다.
마법을 사용해서 이사벨이 만들어준 리본 모양이 유지한 채 손목만 쏙 뺐다.
비아톤이 키득키득 웃었다.
“저는 황제 폐하랑 면담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잘 생각해 봐요. 뭐가 황녀님을 진짜 위하는 건지.”
“…….”
“황녀님은 카린 경이 떠나는 게 많이 싫은가 봐요.”
카린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책상 안에서 공책 한 권을 꺼냈다.
공책은 카린이 최근에 작성하기 시작한 일기장이었다.
[봄의 기록]카린은 이사벨이 묶어준 리본에 마나를 덧씌워 보존마법을 걸었다.
그리고 [봄의 기록] 글자 오른편에 붙였다.
한참이나 리본을 바라보던 카린은 오늘의 일기를 써 내려갔다.
[처음이었다.]황녀는 자신을 필요로 해주었다.
이용 가치가 있는 도구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곁에 있기를 바라주었다.
[황녀님과 만난 이후, 모든 것이 처음이다.]‘찜콩’이란 말도 처음 들어봤다.
처음 듣는 말이지만 무슨 말인지 한 번에 이해했다.
찜콩이라 말하며 웃던 이사벨의 얼굴이 떠올랐다.
카린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주변을 한 번 훑어보았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황급히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황녀님, 찜콩.]그리고 얼른 마법을 사용해 글자를 숨겼다.
엄숙한 표정으로 일기장을 덮고 책상에 넣었다.
이후, 오늘의 의식을 시작했다.
‘사일런스.’
방음을 철저히 했고.
‘프로텍팅.’
혹시 모를 방해자가 올 수 없도록 방벽을 단단히 쳤다.
침대 속 인형은 오늘도 험한 꼴을 당했다.
* * *
황제와의 면담이 끝난 뒤, 비아톤은 다시 이사벨의 방으로 돌아왔다.
루루카는 깜짝 놀랐다.
‘비아톤 경이 왜 또 오셨지?’
비아톤은 개인 시간을 무척 중요시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늘 워라밸을 외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현재 시각은 오후 5시 30분이었다.
‘일과는 5시에 끝날 텐데…….’
왜 또 황녀님의 방을 찾았단 말인가.
야근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지라, 괜스레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그런데 비아톤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유모. 이거 사 왔는데 먹어봐요.”
“이건…… 뭔가요?”
“붕어의 형태를 따서 만든 빵이에요. 붕어빵. 안에 단팥과 슈크림이 들어 있어서 엄청 달콤하고 맛있어요.”
유모는 화들짝 놀랐다.
“이, 이렇게 귀한 것을 어떻게…….”
“출장 보너스 받았거든요. 아무튼 매일 황녀님 케어한다고 고생이 많아요.”
비아톤의 말이 더없이 따사로웠다.
비아톤이 이사벨의 방에서 너그러워지는 것은 사실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원래 비아톤은 황제의 부관이다.
남들은 감히 말을 섞지도 못할 정도의 위치에 있는 높은 자이며, 남들에게 한없이 차갑다고 알려져 있었다.
황궁 내에서도 비아톤과 직접적인 대화를 나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사람이 여기서는 저렇게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저렇게 따뜻한 목소리로.
“황녀님, 유모가 엄청 잘해 주죠?”
“네!”
“유모를 좋아하시나요?”
“그럼요. 저는 루루카 유모 엄청 좋아해요. 비아톤 경은요?”
“저도 유모를 좋아하지요!”
비아톤은 빙그레 웃었다.
참 다행이었다. 안 죽여도 돼서.
혹시 이사벨의 입에서 나쁜 말이 나왔다면 유모의 끝은 처참했으리라.
“비아톤 선생님. 근데요, 저 고민이 있어요.”
“고민이요?”
“저는 카린 선생님이 떠나는 게 싫은데, 그래도 카린 선생님의 뜻은 이해하고 있거든요.”
“네에.”
“그래서 빌헬름 말고 더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면 어떨까 싶어서요.”
“그런 사람을 알고 계세요?”
“음, 예전에 책에서 봤는데요, 미로텔 마법 연방에서 쫓겨난 괴짜 마도 공학자가 있다고 했어요.”
“음, 네에.”
이름은 ‘테이슬론’.
아주 뛰어난 마도 공학자였고, 훗날 남주 아룬의 동료가 되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 에르베 산맥으로 쫓겨났다고 했어요.”
남주의 동료였던 만큼 설정이 꽤 자세했다.
미로텔 마법 연방은 괴짜이자 제멋대로인 테이슬론에게 금제를 걸어 에르베 산맥으로 퇴출시켰다.
그러나 사실 테이슬론은 금제에 걸리지도 않았고, 일부러 에르베 산맥으로 간 것이었다.
거기서 마음 편하게 마도 공학을 연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훗날 남주 아룬과 뜻이 맞아 함께 하게 되고, 아룬에게 큰 도움을 주게 되는 마도 공학자였다.
“그 사람이라면 저와 카린 선생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렇군요.”
편견 없는 비아톤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흐음. 에르베 산맥이라…….’
에르베 산맥은 광활한 산맥이다.
그렇기에 그곳에서 사람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비아톤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 사람 데려오면 되겠죠?”
“책에서 봤는데요, 고집이 엄청 세대요.”
“깊이 있는 교제 앞에 꺾이지 않는 고집 못 봤습니다.”
“나쁜 방법은 안 돼요.”
남주의 동료다.
괴짜이기는 하지만 정의롭고, 자신의 정의에 벗어나는 자들에게 결코 마음을 주지 않았다.
“때리면 안 돼요.”
“아, 안 때립니다. 깊이 있는 교제를…….”
“협박도 안 돼요.”
“저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닙니다.”
“깊이 있고 친한 교제를 나누는 것도 안 돼요.”
“……예?”
비아톤은 하하하! 웃었다.
‘순화해서 말한다고 말했는데 황녀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구나.’
왠지 나쁜 어른이 된 것 같아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렇지만 그는 얼마든지 나쁜 어른이 될 각오를 하고 있었다. 이사벨을 위해서라면 말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테이슬론을 잡아다가 황녀에게 바칠 생각뿐이었다.
“비아톤 선생님은 멋있는 어른이잖아요.”
“…….”
“그렇죠?”
“그, 그렇죠. 음하하핫!”
“그니까 저랑 약속해요.”
“네에. 약속!”
비아톤은 이사벨과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나쁜 어른은 되지 않기로 했다.
‘난폭한 방법은 배제해야겠어.’
이사벨이 시베룬 마석을 건네주었다.
“이거랑요.”
책상으로 걸어가 편지지 한 장을 건네받았다.
“이거를 테이슬론 경에게 전해 주세요.”
“저만 믿으십시오.”
비아톤은 이사벨이 술식을 새겨넣은 시베룬 마석과 편지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에르베 산맥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황제 론을 찾았다.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던 론이 힐끗 눈동자를 돌려 비아톤을 바라보았다.
“웬일로 야근이군.”
“꼭 올려야 할 보고가 있어서요.”
비아톤의 표정이 굉장히 진지했다.
론은 검을 갈무리했다.
오랜 세월 함께해 왔던 만큼, 비아톤이 진지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말해봐라.”
비아톤은 잠시 침묵한 뒤 입을 열었다.
“황명을 좀 어겨야 할 것 같습니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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