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9)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29화
아주 오래전, 비아톤과 론이 함께 고립된 적이 있었다.
둘은 적들에게 포위당한 채 죽음을 각오하고 함께 싸웠고, 운 좋게도 포위망을 뚫고 제국에 복귀했었다.
그때 비아톤은 크게 다쳤었고, 론은 직접 비아톤을 간호했었다.
비아톤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 지 이틀째가 되었을 때 론이 말했다.
“황자의 명령이다. 일어나라.”
그러나 비아톤은 일어나지 못했다.
비아톤이 쓰러진 지 삼 일째.
“훗날, 나는 황제가 될 것이다. 그때 황명을 한 번 어길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 그러니까 일어나라.”
“진짜죠?”
당시 황자였던 론의 극진한 간호 덕(?)에 되살아난 비아톤은 그때 황명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그리고 오늘, 그것을 사용하기로 했다.
“황명을 좀 어겨야 할 것 같습니다, 폐하.”
비아톤은 이사벨과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그러니까 일단은 저 말고, 빌헬름을 추적할 놈을 하나 붙여주십시오. 이왕이면 랜서 경처럼 유능한 사람으로요.”
“…….”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한다.”
“의외로 엄청 쉽게 허락하시네요?빌헬름을 쫓으라는 명령이 최우선일 줄 알았는데요.”
오랫동안 론을 보아온 비아톤이었다.
론이 당연히 역정을 내리라 예상했건만, 그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이사벨의 부탁을 들어줄 날이 열다섯밖에 남지 않아서.”
“…….”
비아톤은 잠시 침묵했다.
“아무튼, 그럼 저는 에르베 산맥으로 이동을 좀 하겠습니다. 이동 관문 이용 허가 좀 해주세요.”
“허가한다.”
“전에 출장 갈 때는 발로 뛰어가라고 시키시더니.”
비아톤은 후우- 하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놓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론의 성질을 돋웠다.
“그래도 제가 명색이 황제의 부관인데, 평소에도 폼 좀 낼 수 있게 도와주면 안 됩니까?”
“…….”
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비아톤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요. 차라리 화내고 있는 게 낫죠.’
이사벨에게 부탁을 들어줄 날이 열다섯밖에 남지 않아서.
비아톤은 그렇게 말하던 론의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다.
평생을 함께해 온 친구의 표정에서 너무 큰 슬픔을 보았다.
그래서 일부러 칭얼거렸다.
“이왕 허가해 주신 김에, 그 있잖아요. 은성 훈장 수여자에게 주어진다는 이동 관문 무제한 사용권. 뭐, 그런 것 좀 주시면 안 돼요?”
“너한테? 그걸 왜?”
“귀엽잖아요. 찡긋.”
비아톤은 검지로 자신을 볼을 콕 찌르며 윙크했다.
론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검을 뽑기 직전이었다.
“그것도 싫으시면 봉급이라도 올려주시든지요! 으아악!”
비아톤이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바닥에 네 바퀴나 굴렀다.
앞머리 몇 가닥이 허공에 휘날렸다.
“아니, 이렇게 막 검을 휘둘러도 됩니까!”
“아쉽군. 목을 노렸는데.”
“제가 뭘 잘못했…… 으악!”
퍽!
론의 주먹이 비아톤의 눈두덩이에 작렬했다.
마나가 실리지 않았기에 큰 부상이나 고통 같은 건 없었지만, 그래도 눈앞이 번쩍! 했다.
비아톤은 아파서가 아니라 다른 의미로 큰 충격을 받았다.
“헐. 검술 제국의 황제가 검을 저기 버려두고 주먹을 휘두르다니. 이거, 다른 사람들이 보면 기절할걸요?”
“너를 기절시켰어야 했는데.”
론은 속이 후련한 듯 주먹을 문질렀다.
“여기 데일사한테 맞은 곳이라고요.”
“…….”
“때린 데 또 때리는 게 제일 나빠.”
“더 때려주랴?”
“제가 맞아야 할 이유를 전혀 모르겠어요.”
그러고 보니 비아톤이 맞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도 비아톤은 명색이 황제의 부관이었고, 검술 제국의 이인자였으니까.
말이 조금 많을 뿐, 맞을 만큼 잘못한 건 딱히 없었다.
론은 적당한 명분을 찾아냈다.
“황명을 어겼잖아.”
“그건 폐하께서 어기라고 했잖아요! 한 번 기회를 준다면서요!”
론이 피식 웃었다.
“근데 안 때린다고는 안 했다.”
* * *
밤이 깊어 왔다.
“황녀님. 오늘도 좋은 밤 되세요.”
유모가 이불을 덮어준 뒤, 내 이마에 가볍게 키스하고 멀어졌다.
나는 유모에게 가지 말라고 칭얼대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도 이제 여섯 살이니까.’
내 육체는 오늘도 누군가가 내 옆에 있어 주기를 바랐다.
나는 육체의 본능을 억누르면서 어두운 천장 쪽을 바라보았다.
‘으음. 오늘도 무사히 지나갔어.’
뭐 잘못한 건 없겠지?
오늘 카린과의 대화를 곱씹어보았다.
‘유모한테 테이슬론과 관련된 책을 구해 달라고 하길 잘했어.’
카린은 상대의 아주 작은 단서로도 큰 약점을 만들어내는 캐릭터다.
그래서 늘 조심해야 했다.
내 행동에 개연성과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다행히 그게 카린에게도 통했다.
‘빙의라는 게 알려지면 절대 안 돼.’
특히 카린에게 파악된다면 그날로 내 평화로운 빙의 인생은 끝난다.
이제 겨우 15년 남은 내 인생이 똥물에 튀겨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정확히는 성기사단이 몰려와 나를 끌고 가겠지.
“으으, 안 돼.”
상상만 해도 온몸의 솜털이 섰다.
성기사들이 나를 잡으러 온다고 생각하자 문득 무서워졌다.
그런데 그때,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았다.
‘차, 창문이 열려? 왜?’
분명히 유모가 안쪽에서 잠가놓았을 텐데.
‘도, 도둑?’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황궁에 도둑이 들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한 번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는 극심한 공포에 빠져들었다.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그러나 아니었다.
휘잉-
바람이 불어왔다.
‘정말로 창문이 열렸어.’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무서워진 나머지,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소, 소리를 내야 하는데.’
목이 콱 막힌 기분이었다.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사삭-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숙련된 암살자의 발걸음 소리 같았다.
바람 소리와 섞인 그 소리는 내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제, 제발!’
이불 속에 숨었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그때, 이불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 이불을 들어 올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어둠 속에서 나를 응시하는 한 쌍의 눈동자를 보았다.
마침 바깥에서 새어 들어오는 달빛에 반사된 눈동자는 마치 흑요석 같았다.
‘응?’
나는 내 방에 침입한 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벌꿀 냄새가 났다.
“벌꿀이야?”
벌꿀이는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저었다.
벌꿀이는 오빠가 지어준 이름을 싫어했다.
“그, 그래. 김벌꿀.”
그제야 벌꿀이는 활짝 웃고 고개를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었다.
“하아.”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서웠던 만큼, 커다란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다행이야.”
나는 벌꿀이를 와락 끌어안았다.
벌꿀이는 그게 싫지 않은 듯 븅- 븅- 하고 귀여운 소리를 냈다.
내 앞에서만 내는 소리였는데, 나는 이게 은근히 자랑스럽기도 했다.
“잠깐만. 해석 마법 걸어줄게.”
마나를 일으켜 마법을 걸어주었다.
아직까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있었는데, 벌꿀이는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내 품에 파고들어 머리를 비벼댔다.
“간지러워.”
벌꿀이의 털은 보드라웠다.
어떻게 야생동물인 벌꿀오소리의 털이 이렇게 부드러운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벌꿀이의 머리 위로 글자가 떠올랐다.
[보고 싶음.] [그래서 방문.]벌꿀이의 눈에는 정말로 벌꿀이 가득 담긴 것 같았다.
꿀이 뚝뚝 흘러내리는 저 까만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나랑 같이 자고 싶어서 온 거야?”
[긍정.] [허가해 줌?]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나는 누군가 내 옆에 있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용감한 벌꿀이, 아니, 김벌꿀이랑 같이 자면 마음이 놓일 것 같아.”
[용감의 김벌꿀.]벌꿀이는 자기만 믿으라는 듯 가슴을 탕탕 쳤다.
나는 벌꿀이의 몸에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나는 벌꿀이의 냄새가 정말 좋았다.
어떻게 동물한테서 이렇게 달콤한 향기가 날 수 있지?
게다가 체온도 따뜻하니 딱 좋았다.
“맨날 같이 자면 좋겠다.”
[동의.] [적극 동의.]용감한 벌꿀이가 옆에 있어준 덕분인지 나는 금세 잠이 몰려왔다.
내게 안긴 벌꿀이도 졸린 건지 눈이 껌뻑껌뻑했다.
‘응?’
벌꿀이의 머리 위에 붉은색 ‘♡’ 모양의 마법 문자가 두둥실 떠올랐다.
그것도 무려 세 개나.
‘해석 마법은 끝났는데?’
작은 하트.
중간 하트.
큰 하트.
세 하트가 동실동실 떠오르는 중이었다.
해석 마법의 글자와는 어딘지 모르게 묘하게 다른 느낌이었지만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해석 마법의 여파가 아직 남았나 보다.’
대충 그런가 보다 했다.
* * *
며칠 뒤, 비아톤 경이 아레나 궁으로 돌아왔다.
“황녀님.”
비아톤 경은 언제나 그렇듯 화사하게 웃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조금 나빠 보였다.
“멋쟁이 어른이 되느라 아주 고생했어요.”
그걸 그냥 콱 죽여 버릴 걸 그랬나.
하는 작은 중얼거림을 들었지만 나는 모른 체했다.
전직 검귀 씨의 마음을 조금 다독여주기로 했다.
“비아톤 선생님은 늘 멋있어요.”
“하긴. 그건 그래요.”
비아톤 경이 진짜로 웃었다.
저 진짜 웃음을 보자 마음이 조금 놓였다.
“황녀님의 말씀대로 테이슬론이란 자를 만나기는 했는데요.”
비아톤 경이 말을 잇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