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30)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30화
비아톤은 에르베 산맥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던 중, 상급 마물인 오우거의 서식지로 유명한 곳에서 인위적인 마나의 흐름을 느꼈다.
‘마법 결계?’
오우거는 육체의 능력이 매우 뛰어난 마물이다. 그러한 마물이 마법을 다룰 수 있을 리 없다.
이건 사람의 흔적이다.
‘게르마 고원에 둥지를 튼 미친 인간이 있단 말이야?’
오우거들이 득실거리는 이곳에 터를 잡은 인간이 있을 리 없다 생각하면서도 비아톤은 마나의 흔적을 찾아 걸어 들어갔다.
도중에 수많은 마법 트랩을 마주했다.
불덩이가 날아들고 독침이 날아드는 건 아주 사소한 축에 속했다.
“젠장!”
비아톤이 검을 휘둘렀다.
14방향을 점하고 날아드는 검기 서린 칼날에 목이 베일 뻔했다.
“어떤 미친 자식이야!”
결국 그는 오두막 하나를 발견했다.
오두막 주변에도 위험천만한 마법 트랩이 잔뜩 깔려 있어서 조심해야 했다.
“마검사인가 보군.”
오두막 앞에는 노인이 한 명 서 있었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는데 체구가 왜소하고 수염이 굉장히 길었다.
“영감님. 나를 알아요?”
그게 테이슬론과의 첫 만남이었다.
테이슬론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는 기다란 눈썹을 까딱 들어 올리며 비아톤을 힐끗 쳐다보았다.
“나는 인간이 싫어.”
비아톤과 대화하는 척하던 테이슬론은 사실 속으로 마법 영창을 외우고 있었다.
비아톤의 머리 위에 녹색 마법진이 생겼고, 거기서부터 오두막보다 더욱 거대한 바위가 떨어져 내렸다.
쾅!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는 껄껄 웃으며 몸을 돌렸다.
“왜 남의 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와? 그러니까 뒤지지.”
오두막으로 들어가려던 그는 멈칫했다.
‘응?’
사악-
귓가를 간지럽히는 소리가 났다.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거대한 바위가 두 동강 나 있었다.
“내가 조금만 멋없었어도 영감은 죽었어.”
비아톤의 연녹빛 눈동자가 조금 짙어졌다.
살기 때문이었다.
살기는 무척이나 탁한 기운이었으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그리고 테이슬론은 또 다른 마법 영창을 준비했다.
검술 제국의 이인자는 그 꼴을 더 이상 봐주지 않았다.
보법을 펼쳐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그는 테이슬론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대었다.
“얘기를 좀 하자. 다짜고짜 공격 좀 하지 말고.”
“난 검술가 놈과 할 얘기 없다!”
그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싫어했지만 검술가는 더욱 싫어했다.
“나 검술가 아니고 마검사인데.”
“그게 더 싫어.”
“왜?”
“마법을 익힐 거면 마법을 익히고, 검술을 익힐 거면 검술을 익히지, 어중간하게 발 걸친 박쥐 같은 놈!”
비아톤은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죽일까.
고민했지만 자신에게 멋진 어른이라 말해주던 이사벨의 얼굴이 떠올라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순간, 테이슬론의 목덜미에서 작은 마나 탄환이 쏘아졌다.
“크하핫! 물속에서도 불타는 백린화마탄이다!”
비아톤의 몸에 하얀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테이슬론은 꼴 좋다는 듯 깔깔 웃었다.
비아톤이 한 차례 마나를 끌어올렸다.
비아톤의 검에 검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그는 가볍게 검을 휘둘러 검기를 흩뿌렸다.
불길에 파고든 검기가 불길을 산산조각내듯 베어내자, 불길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냐?”
“빌로티안 제국 제1 수석보좌관 비아톤.”
비아톤의 음성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의 인내심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평범한 놈은 아닐 거라 생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한 거물이 왔군.”
“이제 대화를 좀 해볼 의향이 생겼어?”
테이슬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비아톤은 검을 갈무리했다.
그때, 테이스론이 말했다.
“힝! 속았지!”
비아톤의 머리 위에 거대한 바위가 또 떨어졌다.
바위만으로는 부족해서 7번 낙뢰가 이어졌다.
“이 영감탱이가!!”
그들의 전투는 12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12시간 후, 테이슬론이 헉헉댔다.
“헉…… 헉……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네놈은 내 손에 죽었다.”
비아톤의 호흡은 비교적 멀쩡했으나 옷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깨끗하고 깔끔했던 그의 제복은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고, 옷의 색깔보다 피부색이 더 많이 보였다.
그리고 정상적인 대화를 시작하기까지 또다시 4시간이 필요했다.
“좋아. 영감이 인간을 싫어하고, 검술가를 싫어하는데, 마검사는 더더욱 싫어하는 걸 잘 알겠어. 나도 영감이 싫어. 영감 혐오증 걸릴 것 같아.”
“그럼 썩 꺼져.”
“그렇지만 황녀님께서 당신에게 이걸 전달해 달라고 해서.”
“황녀? 빌로티안에 황녀가 있나?”
“소식지도 안 봐?”
“여기 소식지가 있겠냐?”
비아톤은 인내심을 발휘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시베룬 마석과 편지도 전해 주었다.
테이슬론은 믿지 않았다.
“여섯 살이 어떻게 이런 마법 수식을 만들고 인버팅 이론을 접목하여 냉풍 마석을 만든단 말이냐?”
“카린 알아?”
“모르지.”
“미로텔 마법 연방에서도 촉망받는 뛰어난 마법사인데, 그녀가 말하길 일만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랬어.”
“일만 년 아직 안 지났는데?”
그게 무슨 소리인고 하니, 천재인 테이슬론 자신이 태어난 지 아직 일만 년이 안 지났다는 소리였다.
“하아…….”
비아톤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냥 두들겨 패고 데려가고 싶은데 그러면 황녀님께 혼나겠지?”
“뭐?”
“아무것도 아냐.”
“아무튼 나는 싫다. 난 여기가 좋아.”
테이슬론은 시베룬 마석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
그도 마음이 동하는 건 사실이었다.
“정 나를 원하면 직접 오라 그래.”
“야. 초상화 안 봤어?”
“봤지.”
“여섯 살의 그 귀여운 분이 여길 어떻게 와? 여기가 어딘지 잊었어?”
“내 알 바냐?”
테이슬론은 끝까지 철두철미했다.
비아톤과 일대일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그는, 대화하면서 이동 마법을 준비했다.
공격 마법에 비해 훨씬 은밀하게 준비할 수 있었고, 비아톤이 이사벨의 초상화에 정신 팔린 틈에 마법을 구동했다.
비아톤의 몸이 점점 사라졌다.
잘은 모르겠지만 오우거들의 서식지 중간으로 이동되는 느낌이었다.
“이 미친 늙은이!”
“흐흐흐.”
“내가 여길 다시 오면, 내가 사람 아니고 오크 새끼다!”
테이슬론이 손을 흔들었다.
“다신 보지 말자. 혐오 조건의 집합체여!”
* * *
비아톤 경은 늘 그렇듯 깨끗하고 단정했다.
그러고 보니 피부도 참 맑았다.
“황녀님. 그 영감은 글러 먹었어요.”
“하지만 저는 테이슬론 경이 꼭 필요한걸요.”
“경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그런 거창한 호칭 같은 건 붙일 수 없는 끔찍한 인간 말종이랍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테이슬론이 필요했다.
하긴. 남주도 테이슬론을 만난 초반에는 꽤 고생했었지.
“그렇게 몰상식한 인간과 황녀님을 만나게 해드릴 수 없답니다.”
“혹시 직접 찾아오라고 하지는 않았어요?”
비아톤 경이 움찔 놀랐다.
슬쩍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러지 않았는데요.”
“비아톤 선생님!”
나는 비아톤 경과 눈을 마주쳤다.
비아톤 경의 연녹빛 눈동자는 참 예뻤다. 그리고 저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는 것도 발견했다.
“저는 거짓말하는 선생님 싫어요.”
“그, 그것이…….”
내가 다시 물었다.
“혹시 다퉜어요?”
“…….”
나는 결국 비아톤 경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들을 수 있었다.
내 생각보다 비아톤 경이 더 많은 고초를 겪은 모양이었다.
그걸 생각하니 조금 미안해졌다.
“너무너무 고마워요. 너무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저는 선생님의 은혜를 절대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진짜요?”
“네!”
“영원히요?”
“네!”
비아톤 경이 씨익 웃었다.
마음이 조금 풀린 모양이었다.
“최소 16년 이상은 기억해 주셔야 해요.”
나는 비아톤 경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비아톤 경과 보내는 시간 동안엔 아무것도 안 해도 재미있었다.
그냥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즐거웠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내가 말했다.
“저는 욕심쟁이인가 봐요. 자꾸 욕심이 나요.”
이제 겨우 15년 남았다.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세상에 무언가를 남기기에는 촉박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기 위해선 남주의 동료였던 대마법사 테이슬론의 도움이 필요했다.
“15년 후에도, 25년 후에도, 사람들이 이사벨의 이름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저를 좋은 사람이라고 기억해 주면 좋겠어요.”
“…….”
“도와주세요, 선생님.”
“…….”
“네?”
결국 비아톤 경은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대신 한 가지는 꼭 약속하셔야 해요. 절대 저한테서 떨어지면 안 됩니다. 에르베 산맥은 위험한 곳이거든요.”
“알았어요.”
나는 비아톤 경의 품에 쏙 안긴 채 에르베 산맥으로 이동했다.
* * *
난생처음으로 외박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밤에 들려오는 마물들의 소리에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캠핑하는 것 같아서 즐거웠다.
병원에서 막연히 꿈꿔왔던 로망 같은 거였는데 얼떨결에 이루었다.
타닥타닥.
나는 타들어 가는 모닥불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빨간 불길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밤하늘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가득했다.
“선생님. 봐봐요! 밤인데도 구름 흘러가는 게 보여요!”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왔다.
풀벌레 소리가 주변에 가득했다.
밤공기는 무척 상쾌했고 비아톤 경이 끓여준 매콤 수프는 눈물이 쏙 나올 만큼 맛있었다.
‘라면 국물이 이런 맛이려나?’
전생에서 라면 같은 거 먹어보지도 못했지만, 왠지 이런 맛이 아닐까 싶었다.
비아톤 경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아톤 경의 눈에는 사랑이 가득했다.
모든 것이 너무 좋았다.
가슴속이 간지러운 기분이 들어서 그 기분을 입 밖으로 꺼냈다.
“문득 행복해졌어요.”
“매일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비아톤 선생님을 만나서 너무 좋아요.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아이예요.”
비아톤 경은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손길이 무척 다정하고 부드러워서 잠이 쏟아졌다.
“아뇨. 진짜 운이 좋은 건 접니다. 황녀님이…….”
비아톤 경이 뭐라고 말한 것 같은데, 너무 졸려서 제대로 듣지 못했다.
* * *
며칠 뒤.
비아톤 경과 나는 허름한 오두막을 하나 발견했다.
끼익-
오두막의 문이 열렸다.
수염이 덥수룩한 할아버지 한 명이 보였다.
그가 씨익 웃고 있었다.
“오크 새끼, 왔는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