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32)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32화
사람들에게 배척받았고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입었던 테이슬론은 과거엔 극단적인 마음까지 먹었었다.
그랬던 그가 세상 속에서 버틸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반려견 삐삐였다.
유기견이었던 삐삐는 테이슬론의 세상 속에 들어와서, 그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테이슬론과 삐삐는 어딜 가든 늘 함께했다.
삐삐와 함께하면서 테이슬론은 사람보다 동물에 정을 주게 되었고, 어느새 그는 동물 애호가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15년이 흘렀고, 삐삐는 테이슬론의 품에 안긴 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게 2년 전 일이었다.
테이슬론이 말했다.
“털이 얼마나 부드럽길래 엄청 엄청 부드럽다고 하는 거지?”
이사벨은 손가락을 쫙- 펼쳤다.
허공에 손가락을 밀어 넣는 시늉을 했다.
“이렇게 털 속에 손을 집어넣으면 폭신폭신한 구름 속에 넣는 것 같아요.”
“…….”
“손이 막 파묻혀서 하나도 안 보여요.”
“털이 그렇게 풍성하고 푹신푹신하단 말이냐?”
“네!”
“거짓말은 아니겠지?”
“손이 이만큼 들어가요.”
이사벨은 왼손으로 오른 손목을 가리켰다.
손목까지 푹 파묻힌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당장 데려와라!”
비아톤은 화장실이 급한 사람처럼 보였다.
발만 동동거리지 않았을 뿐, 초조한 기색이 전신으로 표현되었다.
“일단 벌꿀오소리를 만나봐야겠어. 그 이후에 널 도울지 말지 결정하마.”
비아톤이 인상을 찡그렸다.
황녀가 직접 찾아온 것을 황송해해도 모자랄 판에, 심부름까지 시키다니.
황제의 부관으로서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이 영감탱이가 영광인 줄도 모르고.”
“넌 벌꿀오소리에 대해 알고 있었나?”
“알고 있었지.”
“근데 왜 말을 안 했어?”
“영감이 안 물어봤잖아.”
“안 물어보면, 말 안 하냐?”
“보통 안 물어본 거에 대답하는 사람도 있냐?”
비아톤은 들끓어 오르는 살심을 참아내고 억지로 웃었다.
“영감과 깊이 있는 친분을 나누고 싶어. 언젠가 뜨거운 우정을 나눠보자. 어쨌든 영감님, 황녀님이 한 번 찾아오셨으니, 영감이 한 번 와야 하는 거 아니겠어?”
“언제 내가 오라고 했냐?”
이사벨이 때 묻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돈도 많이 벌게 해줄게요.”
“내 사는 꼴을 봐라. 돈에 관심 있게 생겼니?”
“하지만 돈을 많이 벌면 불쌍한 동물들을 많이 도와줄 수 있는걸.”
“…….”
테이슬론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어디 한번 가보자. 대신 거짓말이면 절대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다. 털이 아주 많이 폭신폭신해야 할 것이야. 손이 끝까지 파묻혀야 할 것이다!”
* * *
황후 세르나는 귀빈 맞이 준비로 바빴다.
황후가 직접 신경 쓸 정도의 귀빈의 정체는 바로 로스일드 공작과 그 외동딸 레이나였다.
대륙에서 로스일드 공작가의 위세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빌로티안 황가는 무력으로 대륙을 통치하지만, 로스일드 공작가는 금으로 대륙을 다스린다.]이와 같은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 정도였다.
그들은 대륙의 금융을 담당하고 있으며, 제국 2대 공작가 중 하나였다.
세르나가 말했다.
“로스일드 공작은 입맛이 무척 까다로우니 물맛부터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게다가 로스일드 공작가는 전통 있는 명문 공작가였다.
제국의 시작을 함께했던 가문이며, 황궁을 견제하기 위한 기관인 검림학사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말하자면 황가와 공존하며 견제하는 세력 중 하나였다.
* * *
같은 시각.
로스일드 공작 부자를 태운 마차가 황궁의 정문을 통과했다.
로스일드 공작이 말했다.
“레이나. 아빠 말, 잊지 않았지?”
“네에.”
레이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건성건성 대답했다.
“아빠가 뭘 부탁했더라?”
“아레나 궁의 미하엘과 친분을 쌓으라고 하셨잖아요.”
레이나는 로스일드 공작이 45살이 되어서야 얻은 귀한 외동딸이었다.
공작은 레이나를 끔찍이 사랑했고, 레이나는 그 넘치는 사랑 속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
“그래. 역시 잘 기억하고 있구나.”
가급적이면 1, 2, 3황자와 친분을 쌓는 것이 더 좋겠지만, 그들은 현재 아레나 궁에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레이나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검술가들은 무식하고 야만적이어서 싫은데…….”
“너무 무례하게 굴지는 말거라. 그래도 황자니.”
“땀 냄새나면 어떡해요? 너무 불쾌해서 구역질이 나면 어떡하죠?”
“그래도 황궁 안이니 그렇게까지 불쾌한 냄새가 나지는 않을 게다.”
“저기 보세요.”
마침 백마 형상을 하고 있는 분수대를 지나고 있었다.
“정교한 마법 세공도 없고, 품질도 그저 그런 중상급 대리석 마감이고, 바닥재도 그냥 그런 수준이잖아요. 세상에, 이게 제국의 황궁이라니 믿을 수가 없어요.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겠어요?”
열 살의 레이나는 황궁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흔한 명인들의 조각상도 없고, 이름 높은 조경사의 조경작품도 안 보였다.
그녀의 눈에 황궁은 냄새나는 검술가들의 집합소 같은 느낌이었다.
“우아함과 기품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어서 슬퍼요.”
“우아함과 기품이 뭐야? 먹는 거야?”
순간, 레이나는 깜짝 놀랐다.
황급히 손을 뻗어 마차 창문 가리개를 내려 버렸다.
“뭐, 뭐, 뭐야!”
금발의 한 소년이 창문 밖에서 뛰고 있었다.
마차와 속도를 맞춰서 말이다.
표정은 화사했으나 얼굴과 머리카락에는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건 그가 입고 있는 제복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러니, 레이나?”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잘못 봤을 거야.
잘못 봤을 거야.
방금, 도대체 그건 뭐였지.
“뭔가 있었니?”
딸을 극진히 사랑하는 로스일드 공작은 조심스레 가리개를 다시 올렸다.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뭔가 있었는데, 잘못 본 모양이에요.”
“그래.”
로스일드 공작은 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우리 딸 마차를 오래 타서 기력이 약해졌나 보다. 공작가로 돌아가면 곰의 쓸개즙을 먹여야겠어.”
* * *
에르베 산맥을 다 벗어나기도 전에, 나는 체력적 한계를 맞이했다.
“선생님, 저 너무 졸려요.”
“네에. 알겠습니다.”
비아톤 경은 나를 꼭 안아 들었다.
비아톤 경에게 안기면 마치 침대에 누운 것처럼 편안했다.
아마 어떤 마법 같은 것을 사용한 것 같은데 원리까지는 알 수 없었다.
“자아, 황녀님. 아레나 궁에 도착했어요.”
“벌써요?”
“네. 황녀님이 새근새근 잠든 틈에 좀 빨리 달렸어요.”
그런데 테이슬론 경의 꼴이 영 이상했다.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고 우웩! 하고 헛구역질도 했다.
“달려? 그게 달린 거냐? 두 번 달렸다가는…….”
비아톤 경이 테이슬론 경의 입을 틀어막았다.
테이슬론 경의 몸이 스르륵- 무너졌고, 비아톤 경은 테이슬론 경을 자연스레 업었다.
“테이슬론 경도 많이 피곤한가 봅니다. 많이 졸린 듯하니 제가 쉬게 할게요.”
“지, 지금 기절한 것 같은…….”
“아닙니다. 테이슬론 경이 노쇠하여 체력적인 부담을 많이 느낀 듯합니다.”
비아톤 경의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정말이지, 엄청 화사하게 웃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 햇살 같은 미소가 너무 따뜻해서 나도 마주 웃고 말았다.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푹 쉬십시오.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비아톤 경은 나를 침대에 눕혀주었다.
그러고 보니, 방금까지 업고 있던 테이슬론은 어디 갔지.
“테이슬론 경에게 나쁜 짓 하면 안 돼요. 저는 그분과 친구가 되고 싶어요.”
“움찔.”
“말로 움찔하면서 움찔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황녀님의 말씀을 받들어 편안하게 대우하겠습니다.”
“고마워요.”
이불을 덮어준 뒤 내 이마에 가볍게 키스해 주었다.
“오늘도 따뜻한 밤 되시길.”
그리고 그날은 정말로 따뜻한 밤이 되었다. 내 품에 파고든 벌꿀이 덕분이었다.
오랜만에 나를 만난 벌꿀이가 꼬리를 어찌나 세차게 흔드는지 침대가 들썩거릴 정도였다.
“냄새 좋다.”
나는 벌꿀이의 몸에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달콤한 벌꿀 냄새가 났다.
“나 너무 졸려, 벌꿀아.”
벌꿀이의 꼬리가 거짓말처럼 멈췄다.
벌꿀이의 표정이 조금 시무룩해 보였다.
나랑 놀지 못하는 것이 많이 슬픈 것 같았다.
나는 벌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내일 일어나면 뽀뽀해 줄게.”
그러자 벌꿀이의 머리 위에 [♩♪] 표시가 생성되었다.
음, 내가 해석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
이것도 내가 예전에 사용한 마법의 여파 같은 그런 걸까?
그런 걸 깊이 생각하기에 여섯 살의 육체는 너무 피곤했다.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정말 깊게 잤다.
* * *
다음 날, 거의 정오가 다 되어서야 눈을 떴다.
내 배 위에 벌꿀이가 강아지처럼 앉아서 나를 말똥말똥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쩐지 아랫배가 따뜻하더라니.
“좋은 아침.”
벌꿀이의 몸이 흔들렸다.
꼬리가 펄럭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꼬리가 세차게 흔들려서, 몸이 같이 흔들렸다.
“꼬리에 자아라도 있는 거야?”
나는 손을 뻗어 보드라운 털을 만졌다.
그런데 그때, 벌꿀이가 캬악! 하고 이빨을 드러냈다.
사나운 표정이었다.
“왜, 왜 그래? 화났어?”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성 자체가 높지는 않았지만 꽤 뾰족뾰족한 느낌이었다.
“언제까지 날 기다리게 할 참이야?”
“죄송합니다. 어제까지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셔서 많이 피곤하신 듯합니다.”
“어디서 눈을 똑바로 뜨고 말대답이야?”
“약속을 잡지 않고 무턱대고 찾아오신 분은 영애십니다.”
“그래서, 지금 너 따위가 내 무례를 짚는 거야? 나, 몹시 불쾌한데.”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만…… 저는 황녀님을 모시는 유모로서, 할 수 있는 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벌꿀이를 꼭 안은 채,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도대체 누가 우리 착한 유모를 괴롭히는 있는 거람.
“꼭 이런 것들이 있어. 제 주제를 잘 모르고 함부로 설치다가 혼쭐이 나야만 분수를 파악하지.”
나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보았다. 핑크색 머리카락을 가진 한 아이가 유모의 정강이에 발길질을 하는 모습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