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33)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33화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화가 너무 많이 나니까 오히려 차분해졌다.
“이게 무슨 짓이죠?”
아레나궁을 입장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저 여자애는 상당한 권력가문의 영애라는 뜻.
나는 여자애를 쳐다보았다.
‘핑크색 생머리와 눈동자. 오밀조밀 귀엽고 예쁜 이목구비. 엄청 화려한 드레스. 형형색색의 보석들로 장식된 목걸이.’
무엇보다도 황궁에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권위를 가진 영애.
소설 전체를 통틀어서 이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은 한 명이었다.
“대답하세요, 레이나 영애.”
“저를 아세요?”
“그럼요. 로스일드 공작의 금지옥엽 외동딸을 어찌 모르겠어요?”
레이나. 금융으로 대표되는 로스일드 공작가의 외동딸.
‘대외적으로는 이사벨의 친구.’
소설 속, 친구가 없던 이사벨의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친구였다.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사벨보다 더 나쁜 캐릭터.’
악녀인 이사벨을 뒤에서 부추기고 이간질했던 사람이 바로 레이나였다.
원작에서 이사벨이 유모인 루루카를 옥에 가두게 만든 사람도 사실은 레이나였다.
「“저는 친구이니까 말씀드리는 거예요. 황녀님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런 말을 전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렇죠?”」
「“유모는 황녀님의 포악한 성정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어요. 황녀님의 유모가 된 것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일이라고 말하는 걸 똑똑히 들었어요.”」
결국 레이나의 이간질에 넘어간 이사벨은 유모를 감옥에 가두게 된다.
유모는 감옥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소설 속 이사벨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나는 이사벨보다 레이나가 더 싫었다.
내가 소설 속에서 싫어하는 캐릭터 TOP 3안에 들었다.
“화, 황녀님. 저는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아.”
음, 일단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지 않도록 해야겠지?
“유모. 초코 우유를 좀 가져다주겠어?”
“초코 우유요?”
“응. 초코 우유 두 잔 부탁해.”
유모가 자리에서 떠났다.
벌꿀이는 여전히 캭캭대며 이빨을 드러냈다.
나는 벌꿀이의 미간을 살살 문질렀다.
“레이나 영애.”
“네, 황녀님.”
“금융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직관을 가진 로스일드 공작의 따님이지요?”
“과찬이십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평가하는 걸 여러 번 들어본 적은 있어요.”
내 말에 레이나의 얼굴에 자부심이 잔뜩 떠올랐다.
아직 어린애라서 그런지 속마음을 못 숨기는 것 같았다.
“다른 공부는 많이 했는데, 예법 공부는 안 했나 봐.”
“……네?”
나는 활짝 웃었다.
“제가 레이나 영애를 알아보았잖아요. 그럼 인사부터 하는 게 예의 아니에요? ‘저를 아세요?’가 아니라, ‘안녕하세요’를 먼저 말해야 하지 않아요? 설마 그걸 모르는 거예요?”
순간, 레이나의 인상이 잠깐 찌푸려졌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사실 레이나는 이사벨을 진짜 황녀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사벨은 빌로티안 검술을 익힐 수 없는, 반쪽짜리 황녀였으니까.
레이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몰랐다면 지나치게 몰상식적인 거고, 알면서 그랬으면 더 나쁜 거고요.”
“…….”
나는 착하게 물었다.
“아! 혹시 허리가 아파요? 다쳤나요?”
“아, 아뇨.”
“아니라니 다행이에요.”
나는 치맛단을 잡고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레이나 영애. 저는 빌로티안 황가의 5황녀, 이사벨 빌로티안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내가 그렇게 하고 나서야 레이나는 마지못해 치맛단을 잡고 똑같이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이사벨 황녀님. 저는 로스일드 공작가의 1공녀, 레이나 로스일드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는 레이나를 방 안으로 들였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앉고 테이블에 앉았다.
“내 방을 찾아온 이유가 뭐예요?”
딱히 정치적인 이유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반쪽짜리 황녀이고, 그다지 힘이 없으니까.
굳이 누군가를 찾아왔다면 내가 아니라 미하엘을 만나러 갔을 텐데.
생각해 보니 오라버니는 또 눈썰매를 타러 갔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어디 야산에서 곰 친구와 레슬링을 하고 있거나.
‘그렇다면 날 찾아온 이유는 하나겠지.’
현시점에서 내게 볼 일이 있다면 하나뿐이다.
“희귀한 장난감이 있다고 들었어요.”
“희귀한 장난감이요?”
“네. 사람 말을 알아듣고 교감할 수 있는 희귀한 동물이라던데요.”
레이나의 시선이 내 다리 쪽을 향했다.
내 무릎 위에는 벌꿀이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앉아 있었다.
레이나와 눈이 마주친 벌꿀이는 캬악! 하고 또 이빨을 드러냈다.
“설마 벌꿀이요?”
“이름이 벌꿀이인가요?”
“네. 저와 오라버니가 이름을 주었어요.”
“장난감의 이름이 벌꿀이라니, 재미있네요.”
“벌꿀이는 장난감이 아니에요.”
“그럼 뭔데요?”
“제 친구예요.”
레이나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명백한 비웃음이었지만 나는 딱히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해.’
저 모든 행동이 자신의 치부가 되어 자신을 찌르게 될 텐데.
자기 발목을 잡는 짓을 자기가 하고 있었다.
뭐, 애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친구요? 그런 장난감이 친구가 될 수 있어요?”
“레이나 영애. 장난감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어요. 아니라고 명시했는데, 또다시 장난감이라 언급하는 건 저를 모욕하는 일이에요.”
레이나가 움찔했다. 그리고 이내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알겠어요. 미안해요. 장난감이라고 하지 않을게요. 장난감을 장난감이라고 하는데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나는 화가 난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기본적으로 검림원과 연관된 가문들은 빌로티안 황가를 약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기는 했다.
검술에만 특화된 가문이기에 그 외 다른 모든 것에서 뒤처진다고 여기거나 야만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레이나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건 내가 반쪽짜리 황녀이기 때문일 것이다.
“레이나 영애 눈에도 벌꿀이가 많이 귀여운가 보지요?”
“저는 희귀한 것에 욕심이 많아요.”
“그래서요?”
“그 동물을 저한테 파시겠어요?”
“친구를 파는 나쁜 사람도 있나요?”
“값은 후하게 쳐 드릴게요.”
레이나는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겁도 없이 벌꿀이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면 아플 텐…….”
“꺄아아악!”
레이나는 비명을 질렀다.
벌꿀이가 레이나의 검지를 콱! 깨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왜 함부로 손을 대요? 여러 차례 경고했잖아요. 캭캭대면서.”
레이나의 큰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지금 저를 탓하는 거예요?”
“네. 잘못했잖아요. 벌꿀이한테 사과해요.”
“나는 지금 물렸다고요! 사람을 문 동물은 죽여야 한다고!”
“레이나 영애가 만져서 그런 거잖아요.”
나는 레이나의 손을 슥 살펴보았다.
이빨 자국이 나기는 했지만 상처가 생겼다거나, 피가 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제대로 물면 손가락 절단 났을걸요.”
“뭐라고요?”
“벌꿀이가 봐준 거라고요.”
“그게 지금 할 말이에요?”
레이나는 씩씩대며 나를 노려보았다.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할 거예요!”
그러고서 벌꿀이에게 시선을 옮겼다.
“버릇없는 장난감 같으니라고! 절대 용서하지 않을 테다.”
레이나는 몸을 휙 돌려 걸어 나갔다.
나는 그 등을 향해 작게 중얼거렸다.
“이따 봐요.”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미 알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데일사 시종장이 나를 찾아왔다.
“황제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네에.”
나는 이미 깔끔한 리본이 달린 노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요즘 들어 이렇게 왕 리본 드레스가 당기더라.
미리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내 모습에 데일사가 물었다.
“호출을 예상하고 계셨습니까?”
“네. 그럼요.”
“그렇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데일사 시종장님이 저를 걱정하셨어요?”
“전 걱정 같은 것을 하지 않습니다.”
데일사 시종장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데일사 시종장의 귀가 살짝 붉어진 거 같은데, 착각인가?
나는 벌꿀오소리를 꼭 안고서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안에서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고마워요, 시종장님.”
데일사 시종장이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아버지의 집무실에 들어갔다.
“부르셨어요?”
내 예상대로 그 안에는 아버지와 로스일드 공작. 그리고 레이나가 있었다.
참고로 레이나는 로스일드 공작의 품에 안겨 있었다.
‘우와! 엄살, 대단해!’
레이나의 검지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아빠 앞에서 많이 칭얼댔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아버지는 책상에 앉은 상태로 내게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해 보아라.”
나는 눈을 힐끗 돌려 로스일드 공작과 그 품에 안긴 레이나를 바라보았다.
둘은 비슷한 모양새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한 가지를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엇을?”
사실 레이나가 나를 찾아왔던 그 시점부터, 벌꿀이가 캬악! 거리던 그 시점부터, 나는 이 상황이 펼쳐질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대비하여 레이나와의 대화를 유도했고.
“저를 모욕하고 황가의 명예를 짓밟은 레이나 영애를 추궁하기 위한 자리인 만큼, 로스일드 공작께서는 레이나 영애를 땅에 내려놓으셔야 할 거예요.”
내 나이 여섯 살.
어른에게는 어른의 방식이 있는 법이었다.
“내려오세요, 레이나 영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