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35)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35화
평소라면 날카로운 발톱으로 할퀴었을 것이다.
“캬악! 캬악!”
김벌꿀은 싫지만 가만히 있었다.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용맹함을 자제했다.
“오홍홍홍!”
테이슬론은 김벌꿀을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동물이 있을 수 있다니.
그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의 얼굴을 김벌꿀의 얼굴에 마구 비볐다.
“캬악!”
김벌꿀은 테이슬론을 피해 도망쳤다.
“오홍홍! 이리 오거라! 맘껏 사랑해 주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었겠지만 테이슬론은 무사(?)했다.
역시 이사벨의 부탁 덕분이었다.
김벌꿀은 이사벨의 품에 쏙 안겼다.
“어때요? 이제 저를 도와주실 수 있겠어요?”
“매일 벌꿀이와 30분씩 놀게 해주면.”
이사벨은 김벌꿀을 바라보았다.
김벌꿀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김벌꿀은 테이슬론이 별로였다.
이사벨이 말했다.
“15분이요.”
“20분.”
“15분. 그 이상은 안 돼요.”
“20분! 나도 양보 못 한다.”
“그래요?”
이사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는 테이슬론의 도움이 간절했지만, 테이슬론은 그 이상으로 절실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
“15분! 그래! 15분!”
“좋아요.”
김벌꿀은 15분도 싫어서 온몸의 털이 삐쭉 솟았다.
이사벨은 김벌꿀의 등을 쓰다듬으며 작게 말했다.
“이따 뽀뽀해 줄게.”
김벌꿀의 털이 금세 부드러워졌다.
김벌꿀의 머리 위에 마법 글자가 새겨졌다.
[뽀뽀=결혼.]그 글자는 평소와 달리 황금색으로 번쩍이다가 저절로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한 건 아무도 그 글자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테이슬론은 정식으로 이사벨의 스승이 되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흐른 뒤, 이사벨은 소식지에서 즐거운 소식을 하나 발견했다.
‘드디어 발견했다!’
기대하고 기대하던 날이 다가왔다.
[미로텔 마법 연방 주최 수학 올림피아드.] [우승 상금 : 1,000만 루덴]“저도 여기 참가할 수 있어요?”
“추천서가 있어야 한다만…….”
“카린 선생님이 써주실 거예요.”
“그래. 카린, 그 무서운 여자라면 가능하겠지.”
실제로 카린이 추천서를 써주었다.
“황녀님은 어째서 올림피아드에 참가하고 싶으신 겁니까?”
“돈 주잖아요.”
카린은 저도 모르게 컥, 하고 헛기침을 내뱉고 말았다.
고귀한 황녀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무학(武學)의 황가 빌로티안의 혈족에게서 나올 말은 절대로 아니었다.
“돈이…… 필요합니까?”
“네.”
“얼마나 필요합니까?”
“많이요. 아주아주아주 아주우우우 많이요.”
“어째서죠?”
“부자 되고 싶어요.”
“왜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로스일드 그 재수탱이가 우리 집안 깔보지 못하게 만들고 말 테다.
이사벨이 방긋 웃었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남기고 떠날 거예요.”
아무도 보지 못했지만 카린의 손끝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 * *
나는 레이나의 눈빛과 표정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미안하다며 손을 내밀던 그 태도는 결코 진심이 아니었다.
‘여전히 반쪽짜리 황녀인 나를 무시했고…….’
더 나아가 그들은 우리 집안을 은연중 무시하고 깔봤다.
‘칼만 잘 쓰고 야만적인 괴물들. 그 정도이려나.’
레이나야 어린아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로스일드 공작에게서도 그러한 눈빛을 느꼈다.
만약 아빠의 무력이 조금 더 약했다면 로스일드 공작가는 검림원과 합심하여 새로운 황제를 세웠을 것이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아니, 들어간 후로도 그 꼴은 못 보지.’
어느 세계에서든 돈은 곧 권력이다.
빌로티안 황가는 대대로 검술에만 매진해 왔고 제국의 무력을 담당해 왔다.
그게 전통이었다.
‘전통! 부순다!’
야만적이고 교양 없고, 실제로는 가난한 빌로티안.
소설 속 로스일드 공작가는 늘 그렇게 평가해 왔다.
생각해 보니 열이 확 뻗쳤다.
‘우리가 왜 야만적이고 교양이 없어?’
우리 엄마만 봐도 얼마나 교양이 넘치고 우아한데?
따스한 미소. 어진 인성. 몸에 배어 있는 품위와 교양.
어?
그리고 우리 아빠는…… 음.
‘그래. 잘생겼잖아.’
그 정도 잘생김이면 교양이 있는 거다.
그리고 우리 오빠는…… 음.
‘넘어가자.’
다른 오빠들은 아직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 또한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소설은 남주 아룬에게 거의 몰빵한 소설이고 빌로티안 황가는 남주에게 박살 나는 집안이니까, 아주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집안은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거야 그냥 설정이지!’
로스일드가 우리를 무시하는 설정은 참을 수 없지만, 우리 집안의 설정은 넘어가기로 했다.
‘아무튼 나는 돈을 벌어야 해.’
소식지에는 지난주에 벌어졌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개중에는 로스일드 공작가를 찾았다가 매질을 당하고 쫓겨난 소년의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이름은 나르모르.
훗날 이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호가 될 사람이며, 로스일드의 뒤를 이을 신흥 재력 가문, 비르토가를 이끌게 될 수장이었다.
나르모르 주식 삽니다, 사요!
“폭등 열차 뿌뿌!”
“……엥?”
개인 교습 때문에 나를 찾은 테이슬론 경은 고개를 갸웃했다.
“폭등 열차? 뿌뿌? 그게 뭐냐?”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육체는 다 좋은데 가끔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게 되더라.
아마도 정신의 성숙도와 육체의 성숙도 사이에 괴리가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올림피아드 준비는 잘 되어가는 거냐?”
“그럼요.”
“돈 때문에 참가한다지?”
“네. 엄청 부자 될 거예요.”
“그거 천만 루덴 번다고 부자 못 된다. 수도 집값이 얼만지 알아? 그 돈이면 코딱지만 한 집 한 칸도 못 사. 부자 절대로 못 된다, 꿈 깨.”
“동심을 파괴하는 악의 침략자.”
“현실적인 스승님이지.”
“그냥 시드머니가 필요할 뿐이거든요.”
“내가 동심을 파괴한 거냐, 애초부터 동심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거냐? 여섯 살의 입에서 시드머니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게 맞는 거냐? 이게 옳은 세상인 거냐?”
“후원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내 부자는 내가 키운다. 폭등 열차, 아니, 폭등 로켓 발사할 거다.
“후원? 그런 거면 네 아빠한테 달라고 그러지?”
“황궁의 돈으로 후원하고 싶지 않아요.”
“왜?”
“검림원에 휘둘리고 싶지 않아요. 황궁의 후원 말고, 이사벨 개인이 후원하고 싶은 거예요.”
나는 몰랐다. 이 대화를 벌꿀이가 주의 깊게 듣고 있다는 것을.
* * *
김벌꿀은 본래의 집인 용의 둥지로 돌아왔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를 보냈니?”
“네. 기억은 잘 안 나지만요.”
“기억이 안 나서 섭섭해?”
“네. 섭섭해요.”
김벌꿀.
진짜 이름은 ‘아룬’인 그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어요.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인데 기억이 안 나서 슬퍼요.”
“무척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증거란다.”
아룬은 자신의 침대에 누웠다.
온갖 마법이 걸려 있어 무척이나 편안한 침대였다.
‘기억이 날 것 같은데.’
본래는 기억나지 않아야 할 것들이 희미하게나마 기억이 났다.
잘은 모르겠지만 돈이 필요한 것 같았다.
아룬은 둥지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곳은 ‘용의 영역’이었고, 용이 허락하지 않은 생명체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한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는 산책을 하다가 빨간 돌을 하나 집어 들었다.
“비싸 보인다. 헤헤.”
이게 뭔지는 잘 몰랐다.
수많은 돌멩이 중 하나일 뿐이었지만, 아무튼 이 돌멩이에서는 심상치 않은 마력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뭐 하니, 아룬?”
“예뻐서 보고 있었어요.”
“그게 예뻐?”
“예뻐요. 이거 저 주실 수 있어요?”
“그럼. 이 영역의 모든 것은 네 거란다. 그런데 그걸 어디에 쓰게?”
“그냥 갖고 싶어요.”
카델리나는 무척 기뻤다.
아들에게서 다양한 감정들이 느껴졌다.
지금 아들이 느끼고 있는 건 분명한 소유욕이었다.
벌꿀이로서의 경험들이 아들의 자아 형성에 여러 가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았다.
“가지렴.”
“고맙습니다!”
아룬은 품속에 빨간 돌을 넣었다.
카델리나는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아, 생각났다. 그거 200년 전쯤에 강탈, 아니, 선물 받은 거야.”
“선물이요?”
“응. 뭐라더라. 세바스찬인가 뭔가 하는 조무래기, 아니, 인간이 열심히 세공한 거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 기억났다. 당시 빌로티안의 황제가 갖고 있었어.”
사실 중요한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냥 아들이 ‘우와! 엄마 고마워요!’ 하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게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자꾸 까불길래 꿀밤…… 아니, 원만한 대화와 합의를 통해 받아오기는 했는데. 막상 가져오니 흥미가 떨어져서 둥지 밖으로 던졌었다.”
아룬이 주운 것은 돌멩이가 아니라 보석이었다.
200년 전 인간 명장 세바스찬이 세공한 ‘붉은 눈물’ 시리즈 중 하나.
“어디 가니?”
“황궁에요!”
“엄마랑 좀 더 있지 않고?”
“얼른 많은 경험을 해야죠!”
아룬은 벌꿀오소리로 변해서 둥지를 벗어났다.
카델리나는 조금 섭섭했지만 이내 웃고 말았다. 아들이 그만큼 다양하고 즐거운 경험을 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근데…… 저거 빼앗아올 때 뭔가 있었는데.”
200년 전, 빌로티안의 황제가 절규했던 게 기억이 났다.
인간들의 영혼에 강한 결속을 만들어주는 ‘청혼석’이라나 뭐라나.
하지만 자칭 종식 어쩌고 흑염룡이었던 카델리나는 대충 흘려들었다.
어차피 인간들 기준에서야 대단한 거지, 무려 위대한 흑염룡인 자신에게 딱히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모르겠다. 그래봤자 딱히 중요한 건 아니겠지.’
그녀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저런 돌멩이 같은 건, 세계 멸망 같은 것에 비해서는 아주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