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37)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37화
데일사는 시종장답게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오늘이 지나면 태양 경매장으로 갈 겁니다.”
“그, 그 역사적 보물을 경매장에 넘겨 판다고요? 제정신입니까?”
“안팝니다.”
“그럼요?”
“마찬가지로 대여해 줄 겁니다.”
“경매장 그 인간들이 그걸 왜 대여하겠습니까?”
“경매장에 이 보물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려져도 그들은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겁니다. 경매를 진행하는 자들에게 최우선인 신뢰를 획득할 수 있지요. 보물을 맡겼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이 보물을 맡긴 자가 제국의 시종장이라는 보증수표까지 획득한 셈이니까요.”
“…….”
“대여료로 1년 1억 루덴은 우스울 겁니다.”
물론 힘이 없는 자들이 이런 짓을 했다가는 경매장에게 빼앗기고 말 거다.
그렇지만 데일사는 빌로티안 황가의 시종장.
감히 강탈을 꿈꾸지는 못할 것이다.
“끄응.”
마르코는 눈 뜨고 코 베이는 기분에 몹시 참담해졌다.
“그러나 이 보물의 역사적 의의와 유르미엘 가문과의 연을 생각하여 당신을 먼저 찾아온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들어보니 조건이 악랄했다.
“계약은 1년마다 갱신하는 걸로 하죠. 대여료는 1년마다 새로이 협상하겠습니다.”
“…….”
말하자면 1년에 한 번씩 대여료를 올릴 수 있다는 얘기였다.
“싫습니까?”
“……좋습니다.”
“연구 자료로 활용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은 비물리적 연구여야 합니다. 쪼개거나 파괴, 혹은 청혼석으로서의 가치를 망가뜨린다면 1,000년 치 대여료를 요구하겠습니다.”
망가뜨리면 1,000억을 내놓으라는 얘기였다.
“싫습니까?”
“……좋습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보물을 가지고 있는 자의 횡포였다.
그러나 마르코는 횡포를 횡포라 말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철저한 을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 보물의 가치를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그러나 그건 또 감정사로서 그의 신념에 위배되는 일이었다.
데일사가 손을 내밀었다.
“……예?”
그는 얼떨결에 그 손을 맞잡았다.
악수라도 하자는 건 줄 알았다.
“뭐 하십니까?”
“악수…… 아닙니까?”
“1억 루덴은 지금 일시불로, 현금으로 받겠습니다.”
“…….”
결국 데일사는 1억 루덴이라는 거금을 받아냈다.
‘황녀님이 기뻐하시겠어.’
괜히 뿌듯해졌다.
돈 때문에 올림피아드에 나간다고 했는데, 아마도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돈을 받은 데일사가 가볍게 웃었다.
“원만한 대화와 합의에 감사드립니다.”
“원만한 대화와 합의…… 좋죠, 하, 하하, 하하!”
역사는 오늘도 반복되었다.
데일사가 떠나간 뒤 마르코는 홀로 중얼거렸다.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치고 지나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1억이 사라졌다.
그는 넋 나간 듯 중얼거렸다.
“시종장이…… 시종장해 버렸다.”
* * *
나는 빌로티안 제국과 미로텔 마법 연방의 경계에 도착했다.
VIP들이 이용하는 이동 관문이어서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나를 수행해 주는 비아톤 경이 수속을 밟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에, 누군가와 만났다.
“어머나, 이게 누구야? 이사벨 황녀님 아니신가요?”
얼핏 들어도 적의가 가득했다.
이렇게 투명하기가 쉽지 않은데, 레이나는 속이 참 잘 보이는 아이였다.
나는 활짝 웃었다.
“레이나 영애. 또 뵙네요.”
레이나 옆에는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어린 소녀가 한 명 서 있었다.
나이는 대략 8살이 되었으려나.
나보다는 언니겠지만, 내가 빌로티안 황가의 육체를 가진 탓에 나보다 어려 보였다.
얼굴에는 주근깨가 가득했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 않았는데, 아마도 레이나와 깊은 친분이 있는 아이 같았다.
“황녀님께서 올림피아드에 참여하신다는 말은 들었는데 정말이네요?”
“레이나 영애도 참가하는 건가요?”
“네. 모르셨어요? 제 얘기도 소식지에 많이 실렸는데.”
“아, 그랬어요?”
솔직히 말해서 별로 관심 없었다.
보나 마나 쟤는 14올림피아드 참가자일 거다.
무슨 말이냐면, 14세 이하만 응시할 수 있는 올림피아드 참가자라는 얘기다.
저건 상금이 300만 루덴이다.
저런 애송이 같은 시험에는 별로 관심 없었다.
참고로 내가 응시하는 건 19올림피아드다.
K-수험생이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정말 모르셨어요?”
“제가 알아야 할 이유라도 있나요?”
레이나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자기는 내 참가에 관심이 있었는데, 나는 자기 참가에 관심이 없었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투명하다, 투명해.’
딱히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냥, 조금 귀엽게 거슬리는 수준이었다.
때마침 비아톤 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녀님. 수속 끝났습니다.”
그런데 레이나의 눈이 엄청 커졌다.
레이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상당히 투명했다.
눈에서 하트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응, 이해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저 외모가 개연성이니까.’
아, 그러고 보니.
별로 중요한 게 아니어서 잊고 있었는데 비아톤 경이 레이나의 첫사랑이었다는 설정이 있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첫눈에 반했다나 뭐라나.
‘그러니까 지금 첫눈에 반하는 장면인 거네?’
허허허허, 왠지 할아버지처럼 웃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무리 애여도 잘생긴 건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레이나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안녕하세요, 레이나 영애. 저는 황녀님을 모시는 비아톤이라고 합니다.”
“아, 비아톤 경! 명성은 익히 들어봤어요. 문무를 겸비하여 황제 폐하의 총애를 받고 있는 훌륭한 부관이시라고…….”
“과찬이네요, 감사합니다.”
“아! 저, 저도 올림피아드에 참가해요.”
저 이만큼 똑똑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에요.
그걸 강조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네. 파이팅.”
“비아톤 경께서도 저를 응원해 주시겠어요?”
“방금 파이팅이라고 했는데.”
비아톤 경은 최소한의 예의만 차린 채 대화를 끊어버렸다.
비아톤 경에게 레이나는 철없는 어린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니까.
비아톤 경의 시선이 레이나에 머문 시간은 도합 7초도 안 될 것 같았다.
불쌍한 레이나는 필사적으로(?) 말했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 유리. 인사해. 이사벨 황녀님과 비아톤 부관님이셔.”
“안녕하세요. 유리입니다.”
소녀는 꽤 딱딱한 태도로 내게 인사했다.
성이 없는 것으로 보아 평민인 것 같았다.
‘아, 그 평민 출신의 유리?’
로스일드 공작가에서 후원하는 어린아이. 수학 신동이라고도 불리는 아이였다.
레이나와 한 살 차이니까 지금은 9살이겠지.
작품 내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조연은 아니었지만 간혹 ‘수학 신동’이라는 수식어로 등장하곤 했었다.
‘병든 어머니와 동생들을 책임지기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지?’
로스일드 공작의 후원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아이였다.
문득, 유리가 기특해졌다.
‘9살에 가장이라니.’
괜스레 안쓰러워졌다.
“언니의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어요. 저는 유리 언니를 응원해요.”
“……고맙습니다.”
유리는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레이나가 유리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유리의 태도가 영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그제야 유리는 표정을 굳히고 다시 적개심을 내보였다.
일종의 사회생활이리라.
‘애한테 적개심을 강요하는 건 좀 아니지 않니?’
에휴. 뭐, 쟤도 애니까 그냥 그런갑다 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황녀님께서는 어째서 올림피아드에 참가하시는 건가요?”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재미있을 것 같다구요?”
레이나는 호호호 웃었다.
“검술 제국 빌로티안의 황녀께서 수학에 흥미를 느끼고 계신다니, 이거야말로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군요.”
“새삼 흥미로울 것이 뭐가 있겠어요? 저는 마법도 배우고 있는걸요.”
“아, 맞아요. 무척 실력 있는 마법 선생님도 둘이나 초빙했다지요? 보통은 한 명의 선생님만 두는데, 노력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달리 말하면, 실력이 없어서 물량으로 승부 본다, 뭐 그런 얘기였다.
레이나가 말을 이었다.
“어떤가요? 마법은 재미있나요?”
“네. 즐거워요.”
“아, 즐거우시구나. 검술은 재미없으신 거죠?”
레이나의 의도는 명확했다.
검술 제국의 황녀인데, 검술을 익히지 못한다고 놀리는 것이었다.
“네. 알다시피 저는 빌로티안 검술을 익히기에 적합하지 않거든요.”
“적합하지 않아요? 왜요?”
가소로워서 화도 안 났다.
“빌로티안 검술은 500년간, 남성의 신체와 마력 회로에 알맞게 발전해 왔거든요. 설마 이러한 기본상식도 모르는 건 아니죠?”
“저는 검술에는 문외한이라 전혀 몰랐어요.”
“그래요?”
“제가 실례를 범한 모양이군요. 죄송해요.”
“영애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잘 알고 있어요.”
“네?”
나는 방긋 웃었다.
“어쩔 수 없이 검술을 포기하고, 수학과 마법을 배우는 반쪽짜리 황녀라고 말하고 싶으신 거죠?”
이렇게 자기 생각을 어정쩡하게 숨기고 접근하는 애들한테는 돌직구가 최고다.
보는 사람들이 없으면 또 그냥 허허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럴 수도 없다.
나는 빌로티안의 황녀이고, 황녀로서 얕잡아 보이는 것은 황가의 명예를 실추시킨다.
‘나는 햇살 여주를 하고 싶은 거지, 호구 여주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황녀의 방식으로 이 상황을 풀어 가보기로 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