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38)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38화
아니나 다를까.
내 돌직구에 당황한 레이나는 펄쩍 뛰었다.
“그, 그럴 리가요!”
사실 레이나만 문제는 아니었다.
대체로 나를 둘러싼 소문이 그랬다.
검술을 익히지 못하니, 차선책으로 다른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내가 올림피아드에 참가하게 된 것도, 사실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거라고.
많은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레이나 영애도, 제가 황녀로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거라고 생각해요?”
“…….”
아이고. 겉으로라도 아니라고 말을 해야지.
그렇게 투명하게 굴면 너한테만 나쁘지.
“제가 왜 그런 이유로 발버둥을 치겠어요? 저에게는 열다섯밖에 남지 않았는데요.”
‘황녀로서’ 살아남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주어진 선물 같은 삶을, 선물처럼 살다 갈 생각이었다.
치열하게 살되, 황녀로서가 아니라 이사벨로서 치열하게 살기로 했다.
“그냥 나는 정말로 즐거워서 참여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바라지 않는 동정의 시선을 보내지 마세요. 그건 저를 모욕하는 거니까.”
“…….”
“다음에도 저를 욕보이면 이렇게 평화롭게 넘어가지는 않을 거예요.”
레이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만큼, 그녀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정말로 즐거워서 참여하는 거군요.”
“맞아요. 정말로 즐거워서 참여하는 것뿐이에요.”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돈을 준다.
그것도 천만 루덴!
이건 내 폭등 로켓이 되어줄 거다.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활짝 웃었다.
비아톤 경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물었다.
“선생님, 그래도 되죠?”
“물론이지요.”
비아톤 경도 나를 보며 웃어주었다. 햇살처럼 밝고 따뜻한 미소였다.
마음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어라?’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레이나가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아, 나는 첫사랑에 빠진 10살 어린애의 질투를 자극하고만 것인가.
‘아이고.’
이걸 실수라고 해야 할지. 미안하다고 해야 할지.
나한테만 저렇게 화사한 표정을 지어주는 비아톤 경을 질책해야 할지.
‘편견은 없는데 편애는 있네.’
힘내렴. 어차피 안 이루어지겠지만.
그냥 예의상 말을 이었다.
“부디 좋은 성적을 거두길 빌게요, 레이나 영애.”
유리에게도 시선을 돌렸다.
왠지,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나는 너무 무섭고 외로웠었다.
얼굴 모를 사람들의 후원마저 없었다면, 나는 20살까지 살지도 못했을 거다.
지금의 유리도 많이 무섭고 힘들 것 같았다.
“유리 언니,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나는 몸이 아파 병실에 누워만 있었다.
나는 그저 후원을 받는 입장이었고, 유리는 후원을 쟁취하는 입장이었다.
돈에 관해서 그토록 엄격한 로스일드의 후원을 계속해서 받고 있다는 건 유리가 그만큼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언니 같은 사람이 정말 강하고 멋있다고 생각해요.”
“…….”
“혹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나를 찾아와요. 빌로티안의 아레나 궁이에요. 언니에게는 늘 열려 있을 거랍니다.”
이사벨의 그 말은, 성적만이 가치를 증명하는 삶을 살아낸 유리에게 처음 닿는 햇살이었다.
* * *
유리는 소녀 가장이었다.
그녀는 공부를 열심히 한 대가로 로스일드 공작가로부터 후원을 받았다.
덕분에 어머니는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동생들도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이게 내 일이야.’
유리는 비록 9살에 불과했지만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수학과 공부는 어느새 그에게 일이 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는 오늘 충격을 받고 말았다.
‘저게는 열다섯밖에 남지 않았는데요.’
유리가 알기로 이사벨은 여섯 살이었다.
저 여섯 살은 자기 죽음 앞에서도 초연했다.
‘그냥 나는 즐거워서 참여하는 거예요.’
하루하루, 죽음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을 텐데. 그걸 두려워하기는커녕, 오늘을 행복해하며 즐기는 것 같았다.
사실 유리도 공부를 즐거워했던 때가 있었다.
‘나도 예전에는 수학이 즐거웠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병을 얻게 된 이후, 수학이 일이 되면서부터, 그는 재미를 잃게 되었다.
즐거움보다는 막중한 의무감이 그를 지배해 왔다.
그런데 이사벨은 달랐다.
‘부디 좋은 성적을 거두길 빌게요, 레이나 영애.’
유리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저토록 눈부시게 빛나는 분이 계시는구나.’
정말로 수학을 사랑하시는구나.
시한부를 살고 있으면서도, 저렇게 빛날 수 있구나.
자신의 끝을 명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저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정말 나와는 다른 분이구나.’
레이나는 늘 이사벨을 욕했다.
유리는 이사벨이 나쁜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직접 만나 본 이사벨은 달랐다.
저 못된 레이나 앞에서도 밝게 웃는, 말하자면 별 같은 사람이었다.
‘혹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나를 찾아와요. 빌로티안의 아레나 궁이에요. 언니에게는 늘 열려 있을 거랍니다.’
이사벨에 대한 적개심이 눈 녹듯 사라졌다.
저 따스한 표정이 그의 마음을 훈훈하게 달구었다.
처음 닿는 햇살에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티 내면 안 돼.’
티를 내면 레이나가 싫어할 것이다.
좋으나 싫으나, 로스일드가 그의 후원 가문이었다.
레이나에게 밉보이면 안 됐다.
그렇기에 유리는 고개를 떨구었다.
* * *
올림피아드는 내일이었다.
오늘은 미로텔 마법 연방 측에서 준비해 준 숙소에서 하루 묵게 되었다.
굳이 직접 수행해야 마음이 편하다며 부득불 여기까지 따라온 비아톤은 싱글벙글 웃었다.
“황녀님의 말발, 아, 아니, 품격이 실로 놀랍군요.”
“네?”
이사벨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평민 출신의 어린 여자아이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시면서, 레이나 영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도로 일관하셨잖아요? 여자애한테는 언니라고 꼬박꼬박 불러줬으면서, 레이나 영애한테는 그냥 영애라면서 선을 그으셨죠. 게다가 모욕하지 말라는 마무리까지 완벽했다구요.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겠어요? 아마 엉엉 울고 있을지도 몰라요. 후후후. 정말 우아한 방식으로 짓밟으셨네요.”
사실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고 레이나와 유리에게 다른 태도를 보인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해석된 것 같았다.
비아톤은 후련한 듯 활짝 웃었다.
그 미소를 보며 이사벨은 생각했다.
‘그냥 그런 걸로 하지 뭐.’
비아톤이 말을 이었다.
“황녀님, 말씀만 하세요.”
“네?”
“제가 또 원만한 대화와 합의의 대명사 같은 사람이거든요.”
“원만한 대화와 합의요?”
“로스일드 공작가와 원만한 대화와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어요. 깊고 친밀한 교류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답니다.”
이사벨은 고개를 갸웃했다.
“비아톤 경, 화났어요?”
“화가 나다니요? 저는 그저 심도 있는 친밀함에 목마른 사람일 뿐이랍니다.”
화난 것이 틀림없어.
이사벨은 그렇게 생각했다.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오히려 레이나 영애가 귀엽기까지 한걸요.”
가소로워서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속이 빤히 보이는 어린애. 너무 같잖아서 악당이라고 볼 수도 없는 조무래기.
이사벨에는 그냥 그 정도였다.
“레이나 영애가 비아톤 경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윽.”
비아톤은 몸을 흠칫 떨면서 질색인 표정을 했다.
혼자서 몸을 부르르 떨면서 ‘으, 싫다’라고 말을 했는데 그냥 못 들은 척했다.
“그렇게까지 질색할 일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아이는 황녀님뿐인걸요.”
비아톤은 어린애들을 싫어한다.
그중에서도 칭얼대고 보채는 아이는 더욱 싫어했다.
칭얼대고 보채는데, 레이나처럼 못되게 구는 애는 더욱 싫어했다.
“비아톤 선생님은 저를 좋아해요?”
“그럼요. 엄청 좋아하죠.”
이사벨은 저도 모르게 헤헤 웃고 말았다.
애기 때만큼 갈구하는 건 아니었지만 사랑과 관심은 늘 옳았다.
‘짜릿해.’
이 맛에 빙의 생활한다니까.
“왜 웃으세요?”
“기뻐서요!”
“겨우 이 정도로 기쁘면 곤란한데요.”
비아톤은 손을 좌우로 까딱까딱 흔들었다.
“더 기쁘게 해드릴게요.”
“정말요?”
“그럼요.”
비아톤은 이사벨이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다는 걸 읽어냈다.
마음이 뭉클해졌다.
“저도 선생님이 늘 기쁘고 행복하면 좋겠어요.”
“……네?”
“그러니까 너무 깊이 있는 교류와 친밀함에 집착하지 마세요. 저는 진짜로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비아톤은 결국 감탄하고 말았다.
어찌 이렇게도 속이 깊단 말인가.
“어쩜 우리 황녀님은 마음도 그렇게 넓으실 수가 있어요? 레이나 영애가 먼저 혀로 만든 칼을 휘둘렀는걸요.”
“저는요,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
“저는 남들보다 시간을 조금 가졌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사소한 것쯤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이사벨의 시간은 짧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너무 짧다.
그래서 이사벨은 시간을 아껴 쓴다.
비아톤이 보는 이사벨은 그랬다.
“황녀님.”
“네?”
저는요. 황녀님이 정말 좋아서요, 언젠가 다가올 이별이 벌써부터 너무 두려워요.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홀로 마음을 다잡았다.
‘동정은 하지 말자.’
마음이 아프지만 불쌍히 여기지는 않기로 했다.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이사벨을 진짜로 위하는 방식이라 생각했다.
“왜 그렇게 빤히 봐요?”
“안아 봐도 돼요?”
그의 마음이 간절하고 애틋해졌다.
“저를요?”
헐, 개이득이죠. 백 번 안으세요. 비아톤 경이라면 천 번 안아도 돼요.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속마음을 감춘 채 품위를 잃지 않고 말했다.
“비아톤 경이 원한다면 그렇게 하세요.”
“후후, 황녀님이 좋아하시는 빙글빙글 회전이 태워드릴게요.”
빙글빙글 회전이.
비아톤이 이사벨을 안고 빙글빙글 돌아주는 것을 뜻했다.
마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스릴 있으면서도 안전했다.
이사벨이 무척 좋아하는 놀이이기도 했다.
6살의 육체가 정직하게 반응했다.
‘어떡해, 나 너무 설레.’
이사벨은 ‘빙글빙글 회전이’를 크게 기대했다.
그런데 그때,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캬악!”
이사벨과 비아톤 사이에, 무언가가 끼어들었다.
달콤한 벌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