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39)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39화
세상에, 이렇게 날쌘 벌꿀이는 처음 봤다.
뭐라고 해야 할까.
단순히 몸이 날랜 것을 넘어서서 마법을 써서 뿅 나타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벌꿀이?”
벌꿀이는 내가 그토록 설레하는 빙글빙글 회전이를 못 타게 막았다.
벌꿀이의 머리 위에 마법 글자가 생성되었다.
평소보다 훨씬 크고 굵은 글자였다.
뭐랄까. 소소하게 위협적인 글자랄까.
[스킨쉽 과도.] [불가.]“응?”
[차단.]벌꿀이의 표정은 전에 없이 엄숙하고 진지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와 있는 거야?”
[밀행.] [마차.]마차에 몰래 타서 여기까지 왔다는 소리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마차를 이끄는 말의 갈기 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나 뭐라나.
“말의 갈기 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구?”
여기까지 오는데 3일 정도 걸렸다.
그런데 3일 동안 벌꿀이를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3일 내내 갈기 속에 숨어 있었다는 뜻이 된다.
[미. 낮잠 고수.]비아톤 경이 흐음, 하고 턱을 매만졌다.
“황궁의 말들은 철저히 훈련받은 명마들이라 당신 같은 이물질을 배척할 텐데요.”
벌꿀이가 씨익 웃었다.
손가락으로 말을 가리켰다.
[친구.]움찔.
내 착각일까. 방금 저 커다란 말의 몸이 움찔한 것 같은데.
상당히 위축되고 겁먹은 것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원만한 대화.] [좋은 합의.]부르르.
이것도 내 착각일까.
몸을 부르르 떤 것 같은데.
‘에이. 아무리 그래도 덩치 차이가 저렇게 나는데 설마 벌꿀이가 말 친구를 괴롭혔겠어?’
비아톤 경이 말했다.
“아무튼 김벌꿀 당신, 큰 실수하는 겁니다.”
[이해 불가.]“황녀님은 제 빙글빙글 회전이를 아주 좋아하시거든요. 당신은 황녀님이 좋아하는 걸 막은 불청객이란 뜻입니다.”
위풍당당하던 벌꿀이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그러면서 저 깨끗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데, 아, 이건 진짜 반칙이지.
저런 눈으로 보면 내가 어떻게 벌꿀이를 싫다 할 수 있겠어.
진짜 귀여움이 다했다.
“다음에 꼭 해주세요, 비아톤 경!”
“……포기하시는 겁니까?”
“포기랄까, 그냥 양보하는 걸로 해요.”
나는 가볍게 웃었다.
벌꿀이의 귀여운 질투가 별로 싫지 않았다.
나만 바라보는 강아지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양보요?”
“시샘하는 게 귀엽잖아요.”
“저런 옹졸함이 귀여울 수 있다니 충격이군요.”
비아톤 경은 ‘어떻게 하면 나도 귀여워질 수 있지?’ 하고 중얼거렸지만 나는 못 들은 걸로 하기로 했다.
비아톤 경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황녀님은 지나치게 배려심이 깊고 착합니다.”
“……네?”
방금 전에 레이나를 짓밟았다느니 뭐니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양보는 좀 덜 해도 괜찮다는 뜻입니다. 아시겠죠? 저는 황녀님이 행복이 제일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비아톤 경도 내게 회전 비행기를 꼭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비아톤 경은 내가 즐거워하면 행복해하는 사람이니까.
‘너무 좋다.’
내 행복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 좋았다.
진짜 축복받은 빙의 인생인 것 같았다.
* * *
올림피아드 당일.
시험장에 들어서기 전, 레이나는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유리. 이사벨 황녀를 본 적 있어?”
“못 봤어요.”
유리는 그 말을 하면서도 눈치를 살폈다.
본래는 ‘못 봤어요’라고 말하면 안 된다. 후원자 가문의 외동딸이니까.
‘못 봤어요’가 아니라 ‘알아볼게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맞는 대답이었다.
그렇지만 시험이 코앞이라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못했다.
다행히 레이나도 그것을 트집 잡지는 않았다.
“이상하네.”
각 시험장에는 시험에 응시하는 자제들의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그 어디에도 이사벨의 이름이 없었다.
“쳇. 왜 안 온 거야?”
레이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사벨 황녀는 꼴도 보기 싫지만, 비아톤 부관은 보고 싶었다.
그 얼굴을 보면 없던 힘도 솟아날 것 같은데.
‘아무튼 도움이 안 되는 황녀라니까.’
레이나가 말했다.
“자기 주제를 깨닫고 참여를 포기한 거겠지?”
“…….”
“지레 겁을 먹은 게 틀림없어. 유리도 그렇게 생각하지?”
“……네. 그런 것 같아요.”
유리가 본 이사벨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감히 레이나의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할 수는 없었다.
레이나의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그럼 그렇지. 빌로티안의 황녀가 무슨 올림피아드야.”
기분이 좋아진 레이나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러나 시험까지 즐겁지는 않았다.
‘뭐가 이렇게 어려워?’
그녀가 알아볼 수 있는 건 숫자가 유일했다.
숫자와 이상한 기호들이 가득 나열되어 있는 괴이한 시험지였다.
‘하. 모르겠다.’
눈동자를 힐끗 돌려 저만치 앞에서 문제를 풀고 있는 유리를 바라보았다.
유리는 열심히 풀어내고 있었다.
‘이걸로 빌로티안 황가와 우리 가문의 격차가 증명되겠지!’
유리는 로스일드 공작가가 후원하는 아이. 유리의 성적이 곧 로스일드 공작가의 성적이다.
참고로 빌로티안은 오로지 검술에 재능 있는 아이들만을 후원했고, 올림피아드에서 입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유리, 네가 잘해야 할 거야.’
이사벨이 도망친 시험이다.
이 시험에서 유리가 뛰어난 성적을 거두면 이사벨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그렇게 믿었다.
* * *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이사벨 황녀님이 오셨군요.”
시험장의 안내를 맡은 남자가 깜짝 놀랐다.
이곳은 19올림피아드 시험장이었다.
대륙의 내로라하는 천재 중에서도, 살아남은 천재들이 응시하는 시험.
‘여섯 살이 19올림피아드에 참여하다니.’
물론 외양으로 보면 10살에 가깝기는 했지만 아무튼 놀라운 일이기는 했다.
비아톤이 말했다.
“안내를 잘 부탁합니다. 저희 황녀님이 조숙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여섯 살이니까요.”
이사벨이 예의 있게 인사를 했다.
“잘 부탁드려요.”
그 기품이 여섯 살짜리 어린아이 같지 않았다.
안내인은 이사벨에게 특히 신경을 써주었다.
“시험 잘 보십시오.”
이사벨은 시험장에 앉았다.
‘우와, 내가 학교에 왔네!’
이곳은 미로텔 연방의 아카데미 중 하나였다.
지구로 치면 학교와 비슷한 곳이었다.
‘이게 책상이고 의자고.’
이사벨은 수능시험을 볼 때와 논술시험을 볼 때를 제외하면 학교란 곳에 가본 적이 없었다.
병실에서 그녀는 평범한 학교생활을 꿈꾸기도 했었다.
또래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야자도 해보고, 선생님 몰래 엎드려서 잠도 자보고.
남들에게 평범했던 일상이 이사벨에게는 로망이었다.
‘설레네?’
19올림피아드 시험장이라서 책상과 의자가 큼지막했다.
발을 앞뒤로 휘적휘적 휘저어 보았다.
다리가 땅에 닿지 않았다.
이사벨은 그것마저도 즐거웠다.
“올림피아드를 시작하겠습니다.”
시험지를 전달받았다.
이사벨은 시험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응?’
올림피아드라 그래서 조금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쉬웠다.
‘내가 예전에 풀어봤던 문제네?’
이사벨은 지구의 올림피아드를 생각했었다.
지구의 올림피아드는 그녀에게도 꽤 난해한 구석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곳의 올림피아드는 대학교 수리논술 시험 정도의 난이도였다.
문제는 총 다섯 문제였는데 이사벨이 이미 풀어본 경험이 있는 문제였다.
‘옛 기법의 적분 방식으로 시작해서.’
아주 옛날 방식.
적분의 개념이 제대로 잡혀 있기 전의 방식.
현대개념에서 보자면 원시적인 방법을 유도하여 적분값을 구해 내는 방식이었다.
[=⅓x³+C₁]‘그다음은 구분구적법을 활용해서 그 값과 비교하고.’
아니나 다를까.
그 값은 아까 구했던 답과 일치했다.
그리고 그다음은 현대개념의 적분법.
아주 쉬웠다.
대한민국 이과생이라면 누구나 쉽게 풀 수 있는 x²의 적분이었다.
역시 답은 같았다.
‘운이 엄청 좋았네.’
한 번 풀어봤던 문제라서 무척 쉽게 답을 구할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난이도가 훨씬 쉬운 것도 사실이었고.
‘빨리 내야지.’
만약 성적 점수가 동점일 경우, 먼저 낸 사람이 우승하게 되어 있었다.
어차피 문제의 흐름 자체가 검산까지 완료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으므로 별다른 검산 절차는 필요하지 않았다.
‘역시 될 놈 될인가 보다.’
시한부라는 것만 빼면 모든 것이 완벽에 가까운 빙의 생활이었다.
하필이면 문제도 풀어본 게 나올 줄이야.
“벌써 다 푸셨습니까?”
“네.”
“……그렇군요.”
시험장의 모두가 생각했다.
이사벨 황녀는 그냥 재미 삼아 올림피아드에 도전해 보았다고.
몇몇은 기분 나빠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진중한 학문인데, 빌로티안 황가의 황녀에게는 그저 심심풀이 놀이 같은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언짢을 수밖에.
소식을 전해 들은 레이나가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지가 머리를 써봤자지!”
왜 이사벨이 19올림피아드에 도전했는지 알 것 같았다.
어차피 한 문제도 못 풀 거면, 14올림피아드보다는 19올림피아드에서 망신당하는 게 훨씬 나을 테니까.
머리를 쓴다고 썼는데 그게 더 같잖았다.
“황녀의 꼴이 아주 우습구나. 이럴 거면 차라리 응시를 하지 말지.”
오래간만에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올림피아드 결과 발표는 한 달 뒤였다.
그리고 한 달이 흘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