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46)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46화
“우리가 로스일드의 눈치라도 봐야 한다는 뜻이냐?”
이사벨의 몸이 움찔했다.
뭐랄까, 론이 약간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래도 씩씩하게 대답했다.
“저는 빌로티안의 황녀인걸요.”
정치적인 이슈를 모두 배제할 수는 없다.
아주 사소한 날갯짓이 태풍을 불어오기도 하는 법이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비수가 되어 날아오기도 한다.
“웃기는 소리군.”
“……네?”
세르나가 끼어 들었다.
“크흠,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애가 오해하잖아요.”
세르나는 이사벨 옆에 앉아서 이사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해하지 말렴. 네가 황녀인 것이 웃기다는 것이 아니란다.”
엄마의 다정한 손길에 이사벨은 배시시 웃었다.
“황녀인 네가 로스일드 공작가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가당치 않다는 소리란다. 그렇죠?”
“…….”
이사벨은 세르나의 귀에 속삭였다.
“혹시 아빠 화났어요?”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초인적인 청력을 가지고 있는 론은 그 소리를 다 들었다.
단단한 마음에 약간의 균열이 일었다.
세르나는 자신이 아무리 작게 말해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주 작게 속삭였다.
사실 들으라고 하는 얘기였다.
“아빠가 화난 것처럼 보이니?”
“네. 엄청요.”
“무섭지?”
“조, 조금 무서워요.”
세르나가 웃었다.
반달처럼 휘어진 눈 사이로 눈동자가 살짝 움직였다.
아니나 다를까. 론은 지금 당황해하고 있었다.
세르나는 또 아주 작게 속삭여주었다.
“화난 거 아니란다.”
“정말요?”
“그으럼. 아빠가 능숙하지 못해서 그래. 아빠도 아빠는 처음이라서.”
대대로 빌로티안의 황제들은 자식들을 후계자로만 생각해 왔다.
론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떻게 자식을 대해야 할지 잘 몰랐다.
더군다나 500년 역사상 처음으로 태어난 딸이었으니 그 정도는 더욱 심했다.
“정 무서우면 직접 여쭤보렴.”
이사벨이 주먹을 꼭 쥐었다. 그러고는 용기 있게 론을 바라보았다.
이사벨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마주한 론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물론, 그 미소는 세르나가 아니면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미세했지만 말이다.
이사벨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빠.”
이곳은 사적인 공간이다. 세르나가 론을 일컬어 ‘당신’이라고 부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사벨도 론을 아빠라고 불렀다. 그게 장소와 때를 가리는 예의라고 판단했다.
“화난 거 아니죠?”
“…….”
론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웃기는군.’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저 ‘아빠’라는 말이 왜 저렇게 좋은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사벨 앞에 있으면 너무 유치해지고 감정적이 되어버리는 자신의 꼴이 우스워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화 안 났다.”
“거짓말.”
이사벨이 눈을 흘겼다.
초롱초롱하고 눈동자는 사라지고 의심의 눈길이 론을 향했다.
“거짓말 아니다.”
사실 이사벨은 론이 화나지 않았다는 걸 진즉 깨달았다.
본인 입으로 ‘화가 나지 않았다’라고 말을 한 것은, 정말로 화가 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도 표정 자체는 무시무시했다.
딱히 무서운 표정은 아닌데, 그냥 론이라는 사람 자체가 풍기는 분위기가 살벌했다.
‘검술 제국 빌로티안의 황제로서 가지는 위엄 같은 거랄까.’
저게 사람을 위축시키고 긴장하게 만든다. 소설 속 표현에 따르면 ‘존재감’이라고 명명된 것이었다.
이사벨은 그런 론을 보며 활짝 웃었다.
“따뜻하게 대해 주세요.”
이사벨은 론이 차갑기만 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한 번 피곤하고, 두 번 피곤하고, 세 번 피곤하고, 여러 번 피곤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때의 체온과 아빠의 품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사벨은 저도 모르게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다시금, 그때의 체온을 느끼고 싶었다. 그때의 안정감과 포근함이 간절해졌다.
전생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해서, 절실하게 꿈꾸었던 그 따뜻함이 말이다.
론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이사벨을 안아 들고서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것이냐.’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육체가 자신의 의지와 통제를 벗어난 이 이질적인 감각 때문에 기분이 나빠졌다.
그렇지만 이내 자신의 무릎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딸의 미소에 행복해지고 말았다.
론은 차마 저 햇살 같은 미소를 마주하지 못했다.
저 미소가, 자신보다 먼저 떠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그래서 딸의 얼굴을 끝까지 바라볼 수 없었다.
“너는 걱정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여라.”
론은 그 자리에서 허락했다. 로스일드 공작가가 내친 도둑을 황가에서 품기로 말이다.
이사벨이 걱정스레 되물었다.
“그렇지만 로스일드가에서 문제 삼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정치 관계에서는 아주 사소한 것들도 큰 약점이 된다고 들었어요.”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론이 피식 웃었다.
황제로서 황녀에게 해줄 말은 아주 많았다. 그렇지만 그런 복잡한 얘기는 꺼내지 않기로 했다.
황제로서 황녀에게가 아니라, 아빠로서 딸에게 말해줬다.
“내가 더 세.”
* * *
황후궁, 가장 은밀한 침실.
얇은 비단 잠옷을 걸친 세르나가 침대에 누워 론의 품에 파고들었다.
론 또한 같은 비단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가슴팍에는 귀여운 곰돌이가 수놓아져 있었다.
세르나가 직접 수놓아준 것으로 론이 가장 아끼는 잠옷이기도 했다. 참고로 이 사실은 황궁 1급 기밀로 관리되었다.
세르나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허락하실 줄은 몰랐어요.”
“로스일드 놈들이 까불어봤자지.”
이사벨도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 게 있었다.
로스일드가 황가를 무시하는 것 이상으로, 황가 또한 로스일드를 무시한다.
이는 오랫동안 쌓여온 내력이었다.
로스일드가 은연중 황가를 무시한다면, 황가는 대놓고 무시한다. 특히 론처럼 절대적인 무력을 지니고 있다면 더욱 그랬다.
“그건 그래요.”
“혼내지 않는 건가?”
“제가 하늘 같은 황제 폐하를 어찌 혼내겠어요?”
대외적으로 황후는 황제를 혼낸 적이 없다.
황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가끔은, 아니, 종종 혼난다는 기분을 느끼곤 했는데 그게 오늘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빠가 든든한 힘을 보여주었으니, 엄마는 다른 종류의 든든함을 보여주어야겠지요.”
“…….”
“어차피 로스일드에서도 문제 삼지는 못할 거예요. 유리라는 아이가 수도에 입성했을 때부터, 제가 이미 알아봤거든요.”
황후는 이미 모든 것을 파악했다.
누명을 씌웠다는 것도 안다.
“저쪽도 찝찝한 만큼, 제가 발 벗고 나서는 걸 원하지는 않을 거예요.”
어차피 힘없는 어린애 하나를 쫓아내는 사건이었고, 저쪽도 그다지 심혈을 기울여서 증거들을 조작하지는 않았다.
황후가 직접 나서면 유리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다.
로스일드 공작가에서도 그걸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은근한 협박이 담긴 서신 한 장이면 로스일드에도 그냥 묻을 거랍니다. 사실 로스일드 입장에서도 그렇게 큰 사건은 아니니까요.”
왜 유리를 쫓아냈는지도 안다.
레이나의 질투 때문이었다.
복잡한 이권 관계가 얽힌 일도 아니었기에 묻으려면 쉽게 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알았으면 좋겠네요. 그들에게는 무척 사소한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는 걸요.”
그들이 간단하게 내린 사소한 결정이 유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바뀐 삶이 이사벨에게 스며들었다.
“유리에게는 무척 미안하지만, 저는 잘 되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사벨에게 또래 친구가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거든요.”
“…….”
“무턱대고 황궁에 찾아오는 대담함을 가지고 있는 아이예요. 그 아이라면 이사벨의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 거예요.”
세르나가 빙그레 웃었다.
“오늘 우리 딸은,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게 되었어요.”
론은 무심한 듯 커다란 팔로 세르나를 감싸 안았다.
그는 세르나가 자신에게 안겨 있는 이 순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오늘의 나는 좋은 아빠였을까?”
* * *
한편, 이사벨은 손톱을 깨물었다. 다리도 달달 떨었다.
“걱정이에요.”
이사벨의 침구를 정리해 주던 데일사가 물었다.
“무엇이 그리 걱정입니까?”
“생각해 보니까 유리 언니 혼자 오는 게 아니잖아요. 어머니를 모시고 와야 하는데, 그럼 그 비용만 천만 루덴이 넘을 것 같아요.”
상금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데일사는 허리를 펴고 이사벨 앞까지 걸어왔다.
“비용 문제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데일사는 1억 루덴에 관하여 얘기해줬다.
이사벨이 눈을 크게 뜨고 몇 번 깜빡였다.
처음에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하다가, 이내 환호성을 질렀다.
“꺄아악!”
진심 어린 탄성이었다.
마치 비명과도 같은 환호성을 내지르고서 데일사를 와락 안았다.
“시죵장님, 사랑해여.”
이사벨의 육체는 여전히 여섯 살이었다. 이사벨이 긴장을 풀면, 저도 모르게 혀 짧은 소리가 났다.
그게 오늘이었다.
이사벨은 자본의 꿀맛에 풍덩 빠져버렸다.
데일사의 품에 볼을 마구 비볐다.
“……황녀님.”
데일사의 몸이 바짝 굳었다.
“엄텅 엄텅 사랑해여!”
세상에나 1억 루덴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다.
그것도 매년 1억 루덴이라니.
“저 연봉 1억이에여? 아니다, 실수령 1억이니까, 그럼 연봉으로 치면 얼마디? 우와, 아무튼 사랑해여!”
그녀는 아이 같은 발음으로 대단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다.
“……이거 놓으십시오.”
“시러여. 안 놔줄래요. 도망 틸 테면 도망텨 보시지! 헤헤.”
이사벨은 방방 뛰며 기뻐했다.
“시죵장님 최고!”
이사벨은 데일사를 끌어안고 자본의 기쁨을 만끽했다.
“…….”
데일사는 목석처럼 굳어 식은땀을 흘렸다.
데일사가 느끼기에 이곳은 꽃밭이었다.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이 만개한 것 같았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그녀는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녀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녀는 무엇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중얼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돈이…… 답이다.”
* * *
이사벨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 안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유리의 정착도 도와줄 수 있고 폭등 로켓도 쏘아 올릴 수 있을 것이었다.
데일사 덕분에 모든 것이 잘 풀렸다.
“헤헤헤.”
자본 기쁨의 여운은 무척 길었다.
몸을 돌려 이불을 돌돌 말았다.
떼굴떼굴.
말린 이불 사이에 쏙 들어가 있는 자신의 모습이 거울에 보였다.
“소시지 핫도그! 헤헤.”
이불에 싸인 그녀의 모습은 소시지 핫도그 같았다.
그와 상관은 없겠지만 아무튼 세상이 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창밖의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다.
‘응?’
시선을 느낀 이사벨이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창문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