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47)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47화
김벌꿀의 머리 위에는 ‘!’표가 수십 개가 생겼다.
인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용언으로 생성된 마나 문양이었다.
[?!] [!!!] [!!!!!!!] [?!!?!?!?!?!?!]물음표와 느낌표로 이루어진 수많은 문양이 빛살처럼 빠른 속도로 생성되었다가 사라졌다.
김벌꿀은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다.
방금, 창문 너머로 보았던 이사벨의 얼굴은 정말로 행복한 얼굴이었다.
김벌꿀은 벌꿀오소리면서, 보다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사벨의 기쁨=돈]그 지고한 깨달음을 얻은 벌꿀오소리는 조금 더 각성한 채, 본능에 따라 용의 둥지로 돌아갔다.
아룬의 형태로 돌아온 그는 빠른 걸음으로 둥지 안을 활보했다.
“아룬, 왔어?”
어쩌고 흑염룡 카델리나는 아룬의 이름을 여러 번 불러주었다.
아룬은 머리를 몇 번 흔들었다.
용의로서의 자아를 깨우친 그는 무언가를 떠올렸다.
“엄마. 질문이 있어요.”
“뭔데?”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부자?”
용에게 있어서 지나치게 엉뚱한 질문이었다.
용은 마음만 먹으면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될 수도 있는 생물이었다.
“그야 원만한 대화와 합의를 통해서 강탈…….”
크흠.
그녀는 헛기침을 했다.
“인간들 기준으로 부자가 되려면 강해지면 될걸?”
“강해지면 돼요?”
“응, 그러면 될 거야. 뭐든지 싸움 잘하는 게 최고거든.”
“조금 이상한데요?”
“아냐, 엄마 말이 맞아.”
사실 카델리나는 강해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잘 몰랐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설명해 줄 수 없었다.
애초에 용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도 안 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왜 그러니?”
아룬은 카델리나와 눈을 마주쳤다.
동시에 무엇인가를 느꼈다.
‘왠지 솔직히 말하면 안 될 것 같아.’
용으로서의 자아가 각성한 지금, 김벌꿀의 기억이 드문드문 남아 있었다.
온전한 기억은 없지만, 햇살처럼 밝게 웃는 누군가의 표정은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았다.
“음, 이상하게 그런 욕구들이 느껴져요. 갖고 싶고 쟁취하고 싶고 막 그래요.”
“그걸 탐욕이라고 부른단다. 조금 순화해서 욕심이라고도 하고. 지극히 당연한 감정이란다.”
“저희는 그런 걸 못 느끼잖아요.”
“그래서 배우는 거지. 다양한 삶을 경험하면서 말이야.”
“음, 용은 부자가 될 필요가 없죠?”
“그러엄. 그게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그런 것치고는 둥지에 온갖 보물이 널려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카델리나는 빙그레 웃었다.
“그래. 그렇게 다양한 감정들을 간접적으로 느끼고 경험하면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단다.”
“알겠어요. 앞으로도 열심히 해볼게요.”
카델리나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그런데 아룬, 혹시 뭐 다른 것들 기억나는 건 없니?”
“글쎄요.”
기억이 나면 안 된다. 용으로서의 자아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략적인 감정의 이미지만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끔가다가 지나치게 강렬한 경험들을 기억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런 경우에는 어미 용들이 그 기억을 지워주곤 했다.
아룬은 생각했다.
‘너무 솔직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거짓이어도 안 될 것 같은데?’
어머니를 속인다는 것이 영 께름칙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아룬은 김벌꿀의 기억을 잃고 싶지 않았다. 드문드문 떠오르는 그 기억은 너무 눈부셔서,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니까.
“음, 아주 햇살처럼 찬란히 빛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그으래? 구체적으로 어떤데?”
“으으. 모르겠어요.”
아룬은 머리를 감싸 쥐고 열심히 생각하는 척했다.
“모르겠다!”
아룬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카델리나를 바라보았다.
“전 모자란 용인가요? 기억도 못 하는 멍청이예요?”
“아니란다.”
카델리나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그녀는 아들을 꼭 안아주었다.
“아주 좋은 경험들을 하고 있다는 증거란다. 너무 자책하지 말고 행복하게 지내다 오렴.”
“네, 엄마.”
“기억 안 나는 게 너무 당연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말렴. 알겠지?”
“네.”
카델리나의 품에 안긴 아룬은 계략가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한편, 대륙 최고의 감정 술사 마르코는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다.
“오!”
연구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어느 날 밤. 갑자기 청혼석에서 붉은빛이 피어오름과 동시에 꽃이 만개했기 때문이다.
“이럴 수가, 전설이 진짜잖아?”
그는 특제 마도 안경으로 청혼석을 살펴보았다.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어떤 마법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가문 비전서에서 관련 내용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결혼 계약이 성공적으로 완성되면 이런 기적이 벌어진다라…….”
물론 결혼 계약 같은 게 진짜로 이루어졌을 리는 없다. 이 청혼석에 결혼을 맹세한 누군가가 있을 리도 없고.
전설은 그저 전설이며, 이 청혼석이라는 보물에 스토리와 역사를 부여하는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후후, 아무튼 흥미로워.”
데일사 시종장에게 내어주는 1억 루덴이 전혀 아깝지 않은 날이었다.
“어디 보자……. 진심을 다하여 서로의 목숨을 내어놓고, 서로에게 희생하면 청혼석에서 다이아몬드가 쏟아진다라. 설마 진짜겠느냐마는, 그래도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야.”
* * *
김벌꿀로 돌아가기 전, 아룬은 깊이 호흡했다.
‘기억하자. 다는 못하더라도 기억하자. 나는 아룬이다.’
다 기억하지 못해도 좋았다. 그래도 ‘진짜 나’로서 이사벨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어차피 기억은 못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 끄트머리 아주 작은 조각만큼이라도 기억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의 모습이 점차 작아지더니 벌꿀오소리의 모습으로 변하게 됐다.
아룬이었던 그는 이제 김벌꿀이 되었다.
김벌꿀은 이전보다 더 고차원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무엇?’
김벌꿀의 모습일 때 용의 자아를 떠올릴 수는 없었다.
김벌꿀의 존재로 받아들이기에, 용은 너무 거대한 존재였다. 너무 거대하면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법이었다.
그렇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이사벨, 보고 싶어.’
햇살 같은 그 모습이 보고 싶었다.
김벌꿀은 이사벨의 침실에 숨어들어 조심스레 이불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사벨은 곤히 자고 있었다.
김벌꿀은 아주 조심스레 몸을 밀어 넣어 이사벨의 품에 안겼다.
‘뭔가, 기억해야 함?’
아주 중요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응, 벌꿀이 왔어?”
이사벨은 여전히 잠든 상태였지만 무의식중에 김벌꿀을 꼬옥 끌어안았다.
김벌꿀은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김벌꿀. 인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 꼬리가 움직였다.
여기서 너무 세차게 움직이면 이사벨이 잠에서 깨고 말 것이 분명했다.
‘멈춰. 꼬리.’
그는 이제 꼬리조차 의식대로 조종할 수 있는 벌꿀오소리가 되었다.
다음 날, 이사벨은 비아톤과 함께 황궁을 나섰다.
“비아톤 경이 직접 호위해 주지 않아도 되는걸요.”
“황녀님을 직접 호위해 주고 싶어 안달이 났는걸요.”
마차 안.
비아톤은 빙그레 웃으며 이사벨을 바라보았다.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서 미안한걸요.”
“시간을 선물 받아서 무척이나 기쁜걸요.”
입에 발린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사벨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이, 이 주책바가지! 그만 웃어!’
웃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는데도 잘 안 됐다.
아이의 육체는 솔직하게 반응해서 또 활짝 웃고 말았다.
이내 이사벨의 얼굴이 붉어졌다. 칭찬이나 다정한 말에 지나치게 솔직한 것이 조금 부끄러웠다.
“황녀님은 왜 웃으신 거예요?”
민망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대답했다.
“그야 비아톤 경이 그렇게 다정하게 말해주니까 기분이 좋아서요.”
말을 하다 보니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괜히 제 마음속을 온통 다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유리 언니랑 언니의 어머니는 무사히 여기까지 오겠죠?”
“그럼요. 제 직속 부하들이 갔답니다. 잘 모시고 올 거예요.”
“비아톤 경의 직속 부하들이 갔다구요?”
금시초문이었다.
비아톤은 황제의 부관이고, 그의 직속 부하들은 모두가 손꼽히는 실력자들이었다.
그 정도 실력자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저, 저 그렇게 큰돈 없어요.”
“걱정 마세요. 천만 루덴에 해주기로 했어요.”
“……네? 그게 가능해요?”
“네. 가능하더라구요.”
상당한 수준의 원만한 대화와 합의가 필요하기는 했지만요.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이사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요?”
“네. 그 친구들이 황녀님의 따뜻한 마음씨에 반해 버렸나 봐요. 안 반하고 어떻게 배기겠어요? 황녀님처럼 사랑스러운 분의 부탁인걸요.”
안 반하면 지옥 같은 갈굼, 아니, 훈련이 뒤따를 텐데 지들이 안 반하고 배기겠어요?
그 말을 하지 않은 비아톤은 화사하게 웃었다.
그런데 그때.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차가 크게 흔들렸다.
히이이이잉!
말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비아톤이 재빠르게 마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이야?”
비아톤은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교통사고?”
말들이 사람과 부딪쳤다.
그런데 어째, 사람보다 말들이 아파하고 있었다.
마부는 황급히 내려서 비아톤에게 사과했다.
“부, 부관님 죄송합니다. 제가 부주의하여…….”
“대인 사고잖아.”
누군가와 부딪쳤다.
여자였다.
저 사람을 먼저 살피라는 말이었다.
마부는 겁에 질려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들 앞쪽으로 뛰어가 말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물었다.
“괜찮으…….”
십니까?
하고 물어야 하는데…….
“……시군요.”
너무나 지극히 멀쩡해 보였다.
아파하는 것은 말들이고, 사람은 그냥 멀뚱멀뚱 서 있었다.
키가 무척 크고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었다.
여인이 물었다.
“얘들아, 괜찮니?”
말들은 푸흐으응! 소리를 내며 몸을 털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말들은 없었다.
“그래그래, 놀랐겠다. 착하지.”
그녀는 말들의 목을 톡톡 두드려주며 말들을 진정시켜 주었다.
외성 수비대장 키르엔이었다.
키르엔이 비아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니, 이 좁은 도로에서 사두마차를 타고 다니는 정신 나간 귀족분이 누구실까요? 어쩐지 얼굴이 제가 아는 분과 좀 닮은 것 같은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