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50)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50화
키르엔은 태어나면서부터 여러 가지 ‘기운’을 잘 느끼는 체질이었다.
그래서 아까 이사벨의 호의를 더욱 체감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특별한 재능을 지닌 키르엔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저 안에서 왜 필사적인 각오 같은 게 느껴져?’
키르엔은 수많은 검투를 치러왔다.
평민 출신의 그녀가 젊은 나이에 흑색검대의 부검대장이 되었다는 것이 그녀의 수많은 실전 경험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보통 이 정도로 필사적인 각오는, 상대를 죽이겠다 결심한 적들에게서 많이 느껴지던 기운이었다.
‘막아야 해.’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키르엔이 지면을 박차고 뛰었다.
순식간에 마차까지 거리를 좁힌 뒤, 그녀의 애검 ‘스파이커’를 꺼내 들었다.
일련의 호흡으로 이루어진 그 모든 과정은 빛살과도 같았다.
“너, 정체가 무엇이냐?”
키르엔의 스파이커가 한 여인의 목젖에 닿았다.
키르엔은 인상을 찡그렸다.
‘뭐지?’
여인은 아주 느릿느릿 움직이며 바닥을 기어서 마차 문 쪽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속임수?’
이런 유의 암살자도 몇 만나봤다.
극단의 배우 뺨칠 만큼 완숙한 경지의 연기로 상대를 방심시킨 뒤, 급작스러운 공격으로 암살을 시도하는 부류들.
뛰어난 경지의 무인들도 그러한 암살자들에게 종종 당하곤 했다.
여인이 아주 느릿느릿 목을 들어 올렸다.
여인의 눈과 키르엔의 눈이 마주쳤고, 키르엔은 깨달을 수 있었다.
‘무인이…… 아닌 것 같은데.’
제아무리 단련된 암살자라고 할지라도 키르엔의 기감을 이토록 완벽하게 속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극한으로 단련된 무인 수준의 필사적인 각오가 느껴져. 일반인이 낼 수 있는 기척이 아니야.’
약간의 인지부조화가 일어났다.
일반인은 이 정도의 기운을 내뿜을 수 없다. 심지어 저렇게 야위고 상한 육체를 가진 자는 더욱 그랬다.
그간 수많은 실전경험으로 단련된 그녀는 방심을 풀지 않았다.
“정체가 뭐냐고 물었어. 대답해.”
“저…… 는…….”
그때, 비아톤이 손가락 끝으로 키르엔의 검을 살짝 건드려서 옆으로 치웠다.
“그냥 지켜봐. 괜찮으니까.”
* * *
나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 마차 앞에 도착했다.
그 안에서 느릿느릿 기어 나오고 있는 아주머니 한 분을 발견했다.
유리 언니가 내게 말했다.
“엄마가…… 꼭 직접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해서요.”
유리 언니는 입술을 꼭 깨물고 있었다.
나는 저 이유를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못 움직이시잖아요.”
유리 언니가 괜히 소녀 가장이겠는가. 유리 언니의 어머니는 희귀병에 걸려 온몸이 마비된 사람이었다.
본래는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느리게나마 움직이고 있었다.
바닥을 기어서 말이다.
“그러니까, 저한테 감사 인사를 하겠다고 이렇게 하고 계신 거예요?”
나는 나도 모르게 마차 계단을 뛰어올라 유리 언니의 어머니를 부축해서 일으켰다.
“그 마음은 충분히 알았어요. 괜찮아요. 유리 언니가 충분히 뛰어난 능력을 가져서 제가 고용한 것뿐이에요.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니까 이렇게 하실 필요 없어요.”
“황…… 녀…… 님.”
유리 언니의 어머니는 말을 하는 것도 버거워 보였다.
아주 힘겹게 움직여서 내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앙상하고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나는 이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 밑에는 다크써클이 가득했고 피부에는 생기가 전혀 없었다. 머리카락도 듬성듬성 빠져 있었는데 머릿결이 굉장히 거칠었다.
‘나…… 이 얼굴 알아.’
내가 전생에 수도 없이 봐왔던 기색이었다.
내가 예전에 이랬다. 어쩌면 이 사람은, 나보다 훨씬 더 아픈 걸지도 모르겠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상태로 움직이지 못했다.
“고…… 마…… 습…… 니다.”
주름이 가득한 손이 내 손을 덮었다.
그 손이 생각보다 너무 차가웠다.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 멍하니, 이 손을 바라보기만 했다.
“정말…… 고…… 맙…… 습…… 니다.”
유리 언니의 어머니는 또 몸을 움직였다.
몸이 삐걱대는 것이 느껴졌다.
‘아플 거야.’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고통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저랬으니까.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 아팠었으니까.
‘근데 어떻게 저렇게 침착할 수 있어?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어?’
나도 남들에게 도움을 받았었다.
그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스무 살까지 버티지 못했을 거다.
분명 너무너무 고마운 도움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가끔 못된 아이이기도 했다.
‘너무 아파서 못 움직이겠어요. 감사 인사는 나중에 할게요.’
나는 나를 찾아오는 기자들이 싫었던 때가 많았다.
감사를 강요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나기도 했다.
너무 아파서 차라리 죽고 싶던 어느 날은 이렇게도 생각했었다.
‘같잖은 동정 같은 건 필요 없어.’
‘내 불쌍한 처지에 연민을 보내면서…… 그냥 나는 안 그렇구나, 나는 정말 다행이다, 하고 자위하는 것뿐이잖아. 다 나쁜 사람들 뿐이야.’
그런데 척 봐도, 이 사람이 나보다 아프면 아팠지, 덜 아프지는 않을 것 같았다.
병원에서의 나보다 혈색도 훨씬 나빴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몸을 움직여서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나는 이분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잘은 모르겠어. 그렇지만 엄마의 위대한 마음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
정말 힘겹게 움직여서 내 구두에 입을 맞추었다.
뚝. 뚝.
내 구두 위로, 저 사람의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입술을 꽉 깨물어서 눈물을 참아보려고 했는데 참아지지 않았다.
왜 우느냐고 묻는다면 정확히 무어라 대답하기는 어려웠다.
그냥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몸이 굳어버렸다.
“유리…… 에게…… 혼…… 자가…… 아니라고…… 알려…… 주어서…… 고맙…… 습니…… 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와서 옆을 보니 유리 언니가 고개를 푹 숙이고 울고 있었다.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것을 보아 눈물을 최대한 참아보려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머릿속에서 무엇인가가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으아아아아앙!”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서러운 울음을 토해내고 말았다.
이사벨의 몸으로 태어난 이래로 가장 많이 울었다.
그녀의 야윈 몸을 안아주었다.
내가 키가 훨씬 작은데도, 이 사람을 꼭 안아줄 수 있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냥 안아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 이런 거였어.’
나는 오늘에서야 겨우 깨달았다.
‘이게 남을 돕고 싶은 마음인 거였어.’
나를 도와주었던 수많은 사람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불쌍한 나를 바라보며 그냥 자기 자신을 위로했던 게 아니었을 수도 있겠구나.
‘그냥……. 그냥이었어.’
그냥 돕는 거였다.
물론 모두가 다 같은 마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지금 나와 똑같은 마음으로, 전생의 나를 도와주었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그 말을 꾹꾹 삼켰다.
‘내가 받았던 것들 절대 잊지 않을게요. 오늘을 꼭 기억할게요.’
오늘 내가 배운 것을 잊지 않기로 다짐했다.
* * *
유리는 이사벨의 공식적인 시녀가 되어 아레나 궁에 입성했다.
며칠이 흘러, 유리가 말했다.
“저에게도 일을 주세요. 황녀님.”
“언니는 수학 공부 열심히 하면 된다니까?”
“그렇지만…… 그건 시녀의 업무라고 볼 수는 없잖아요.”
이사벨과 유리의 관계는 완전한 친구 관계라고 볼 수는 없었다. 황녀와 시녀의 관계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황녀인 이사벨은 반말을 했고, 시녀인 유리는 존댓말을 사용했다.
“저도 황녀님께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어요.”
“음…….”
그 모습이 너무 진심인지라 이사벨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면 부탁이 하나 있어.”
“말씀만 하세요!”
부탁이 있다는 말에 유리는 활짝 웃었다. 제 몫의 일이 주어진다는 사실이 기뻤다.
“얼마 후면 아레나 궁에 나르모르라는 사람이 찾아올 거야.”
“네! 네!”
“그 사람이 달콤한 디저트를 좋아한다고 했거든. 그러니까 달콤한 디저트를 부탁해.”
“알겠어요. 고맙습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게요!”
그리고 또 며칠이 흘렀다.
루루카는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유리를 발견했다.
“유리.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니?”
“설탕을 녹이고 있어요.”
“왜?”
“당류는 섭씨 200도 정도로 가열하면 녹으면서 끈끈한 성질을 가진 갈색 액체로 변하거든요.”
“그걸 누가 몰라?”
“여기에 탄산수소나트륨을 섞을 거예요.”
“뭐, 뭐라고?”
“음, 베이킹소다요.”
“그, 그걸 왜 하는 건데?”
“가열된 설탕에 탄산수소나트륨을 넣으면 설탕이 저분자 포도당으로 분해되고…… 이렇게…… 여기서 발생한 이산화탄소가…… 해서…… 하거든요. 그래서 이런 간식은 어떨까 구상해 본 거예요.”
다시 이틀 뒤.
유리가 직접 만든 수제 간식을 선보였다.
이사벨이 양 허벅지를 두 주먹으로 탁!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 설마, 이거 다, 다, 다, 달고나?!”
이사벨의 눈이 세상에서 가장 초롱초롱한 별보다 더 반짝이고 있었다.
최근 들어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으음, 으으으음, 으으음, 맛있어! 달아! 달다고!”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행복했다.
전생에서는 한 번도 못 먹어본 걸 여기서 먹게 되다니.
양 볼에 양손을 대고 눈을 감은 채, 혀를 살살 굴려 달고나를 맛보았다.
역시 빙의하길 잘했다.
행복한 인생이 틀림없었다.
‘이게 이런 맛이구나!’
행복감에 잔뜩 젖은 이사벨은 검지로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진실의 미간이 나와 버렸지 뭐야? 유리 언니 최고! 진짜 너무 좋아!”
이사벨의 아주 격한 반응에 유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괜스레 심장이 콩닥거리고 기분이 좋아졌다.
“또, 또 해드릴게요.”
“같이 먹자. 유모도 여기로 와. 같이 먹어요!”
이사벨은 처음 맛보는 달고나의 위력에 행복한 감탄사를 연발했다.
“쏘 스윗, 쏘 스페셜, 엄청 베리 막 쏘 딜리셔스!”
이거면 폭등 로켓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겠어!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만사 일이 모두 자신의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나르모르를 찾지 못한 채 6개월의 시간이 지나 버렸다.
어느덧, 이사벨은 7살이 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