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51)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51화
결론적으로 유리는 새로운 재능을 꽃피웠다.
그녀 스스로도 몰랐던 재능이었다.
그녀가 수학의 영재였다면, 디저트 만드는 것에는 천재였다.
어지간한 천재들이 자괴감을 느낄 정도의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6개월간 매일 이사벨이 좋아할 만한 디저트가 무엇일까를 고민했더니, 그녀는 어엿한 파티시에가 되어 있었다.
황궁 최연소 파티시에였다.
‘황녀님이 좋아해 주시면 좋겠는데…….’
치익-
하고 달콤한 내음을 머금은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검지 손톱을 깨물면서 생지가 다 익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와플이 고운 자태를 드러냈다.
이사벨이 눈을 크게 떴다.
“서, 설마 이, 이건……!”
이사벨은 오늘도 행복해지고 말았다.
유리는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오늘 선보인 디저트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와플 팬에 크루아상 생지를 넣고 구워봤어요.”
이사벨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SNS로 보기만 했지, 실제로 먹어본 적은 한 번도 없던 그 디저트였다.
“와플의 형상이기는 하지만 겹겹이 여러 층을 쌓아 올린 구조라서 황녀님이 무척 좋아하실 식감으로 구현해 봤는데요.”
유리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사벨은 디저트에 진심인 편이었다.
유리가 만든 빵을 세상에서 제일 맛있고 즐겁게 먹어주는 사람이 바로 이사벨이었다.
그 이사벨에게 신상 디저트를 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해보았어요.”
“유리 언니. 나 부탁이 있어.”
“말씀만 하세요.”
“여기에 생크림 추가해 줘.”
옆에서 지켜보던 루루카가 한마디 거들었다.
“황녀님. 이미 설탕 시럽이 잔뜩 뿌려져 있는걸요.”
루루카는 이사벨이 단걸 너무 좋아해서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꼭 자제를 시켜야겠다고 판단했다.
“유모. 이래 봬도 나 빌로티안의 육체를 가졌는걸.”
“…….”
“적어도 스물한 살까지는 엄청 튼튼하니까 걱정 마. 오라버니들은 맹독을 먹어도 멀쩡한데 뭐.”
루루카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기야, 검술을 익힐 수 없다 뿐이지, 이사벨이 빌로티안 황가의 피를 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이사벨은 진심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말했다.
“동물성 생크림이어야 해!”
“네.”
유리는 기쁜 마음으로 생크림을 준비해 주었다.
그녀만의 레시피로 달달하게 만든 우유 생크림이었다.
으음, 으음, 진짜 너무너무 맛있어.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와플은 처음 먹어봐.
이사벨은 순수하게 감탄하며 신상 와플을 먹었다.
유리는 그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나는 이러려고 태어났나 보다.’
유리가 말했다.
“이 디저트의 이름은 무엇으로 할까요?”
“내가 이름을 지어줘도 돼? 파티시에가 지어야 하는 거 아냐?”
“저는 단 한 명만을 위한 파티시에인걸요.”
“헤헤.”
이사벨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크로플!”
빌로티안 제국에 새로운 간식, 크로플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
유리는 생계를 위해 수학에 몰두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수학의 천재라 불렸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즐거워하는 일을 찾았다.
이건 단순히 천재의 영역이 아니었다.
천재 위의 천재.
가난하여 디저트를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그래서 파티시에라는 직업을 알지 못했던 한 소녀는 이제 파티시에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이것은 이사벨이 만들어낸 작은 변화였다.
그런데 이사벨이 일으킨 변화는 유리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변화는 나르모르에게도 일어났다.
* * *
나르모르. 열아홉 살.
그는 빌로티안 수도 빈민가의 허름한 집에 누워 게으름을 피웠다.
“멍청한 기득권 놈들.”
불과 3년 전까지, 그는 꿈과 열정이 가득했던 소년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게으름뱅이가 되어 있었다.
“에휴, 됐다. 게으름이나 피우자.”
그는 성공한 사업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었다.
하지만 그 꿈이 로스일드 가문에 의해 처참하게 박살 났다.
이것이 바로 이사벨이 쏘아 올린 작은 날갯짓이었다.
몇 개월 전, 여전히 열정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던 나르모르는 매일같이 로스일드 가문을 찾았다.
그건 이사벨 때문이었다.
시한부임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이사벨의 소식에 나르모르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포기하지 말자!’
그래서 로스일드를 계속해서 찾아갔다.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포기하지 말고 될 때까지.
‘이사벨 황녀처럼, 포기하지 않고 아름다운 과정을 만들어 가는 거야.’
[시한부 악녀가 죽고 나면> 속에는 없던 내용이었다.이사벨에게 자극받은 나르모르는 더 큰 꿈과 열정을 불태웠다.
‘계속 찾아가야 해. 두드리다 보면 길이 보일 거야. 내 열정을 보여주는 거야.’
하지만 그때쯤이 바로, 로스일드의 심기가 무척 불편했을 때였다.
로스일드의 금지옥엽 외동딸 레이나의 기분이 나빴을뿐더러, 빌로티안 황가가 로스일드 공작가를 무시하는 사건-도둑인 유리를 황녀의 시녀로 들였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 분노의 불똥이 여기저기 튀었는데, 그중 커다란 불똥이 나르모르에게 튀었다.
‘죽이지만 말고 쫓아내 버려! 여기가 어디라고 사기꾼 같은 놈이 감히!’
나르모르는 온갖 매질과 고초를 당한 뒤 로스일드에서 쫓겨났다.
그 과정은 꿈과 열정이 산산이 부서질 만큼 혹독했다.
큰 꿈이었던 만큼 더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
원작보다 훨씬 더 크게 절망한 셈이었고, 그건 나르모르의 자존감과 꿈을 모조리 박살 내 버렸다.
그나마 그를 지탱해 주는 건 이곳에 와서 새로 사귄 친구였다.
그보다 훨씬 어린 철부지이기는 했지만 그 친구와 함께 있을 때는 그냥 마음이 편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도 꽤 괜찮았고.
“로켓그네 타자.”
“또 그네 박살 내려고?”
“헤헤. 이번에는 힘 조절할 거야.”
빈민가에서 새로 사귄 친구의 이름은 미하엘. 괴물 같은 육체를 가진 녀석이었다.
이 녀석도 부모님이 없는 건지, 행색이 아주 더럽고 지저분했다.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심심할 때쯤이 되면 나타나는 신기한 녀석이었다.
“저번에도 힘 조절한다며. 근데도 그네 부숴 먹어서 찰스 아저씨한테 엄청 혼났잖아.”
“다음 날 보니까 고쳐져 있던데?”
“그러니까 찰스 아저씨가 얼마나 힘들었겠어?”
“찰스 아저씨가 고친 거 아닌데?”
“그럼 누가 고쳤겠냐?”
“내가!”
“퍽이나.”
나르모르는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킥킥대고 웃었다.
“이름은 황자랑 똑같아서 하는 짓은 천둥벌거숭이가 따로 없…… 응?”
그는 이미 날고 있었다.
미하엘이 그를 들고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야, 야, 야, 자, 자, 잠깐만!”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이미 그네에 앉아 있었다.
미하엘이 활짝 웃으며 외쳤다.
“폭주 로켓! 쏩니다!”
미하엘은 진지해졌다.
“가자, 하늘로!”
그네가 하늘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그네가 아주 튼튼해져 있었다.
아주 좋은 재료로 새로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 * *
나는 입을 쩍- 벌렸다.
“새로 사귄 친구의 이름이 나르라구요?”
“응. 못생겼어.”
잊고 있던 기억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소설 속 내용이 아니라, 작가님이 잠깐 공개했다가 비공개로 돌렸던 설정집에 나와 있던 얘기였다.
[이름 : 나르모르(나르)] [어린 시절, 아주 잠깐 방황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그는 나르라는 가명을 썼다.]소설 속에서 다뤄지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래서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나르’라는 이름을 듣자 불현듯 떠올랐다.
‘이름을 바꿨구나.’
내가 기억하는 나르모르는 대단히 성공한 사업가였다.
빈민가에서 뒹굴거리고 있는 ‘나르’를 떠올리지 못했다.
‘이러니 비아톤 경도 못 찾았지!’
나는 오빠에게 말했다.
“나르를 만나게 해주세요.”
“왜? 걔는 싸움도 못하는데.”
“만나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어요.”
“싸움도 못하는 애랑?”
“이거 줄게요.”
오빠를 구워삶기란 아주 쉬웠다.
유리가 만들어준 크로플 한 조각을 우물거린 오빠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소개해 줄게. 근데 옷 갈아입어야 돼.”
“네?”
“거기 규칙이야.”
나는 고급 드레스를 대신 까끌까끌한 면 소재의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었다.
최고급 가죽 샌들 대신 맨발로 걸었다.
“헤헤.”
오빠는 손으로 내 뺨을 문질렀다.
손에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내 뺨은 오징어 먹물을 뿌린 것처럼 시꺼메졌다.
“……이게 되네요?”
“신기하지?”
마법사도 아닌데.
“몸에서 독극물 나오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시험 삼아 벌꿀이한테 발라봤어.
“네, 네?!”
“걱정 마. 멀쩡했어.”
“벌꿀이는 연약한 동물이잖아요!”
“걔 왕 코브라 마물의 맹독도 먹어.”
“……네?”
“뭐, 잠깐 기절하기는 했는데.”
“뭐, 뭐라고요?”
“다시 일어나서 또 맛있게 먹더라.”
“……맹독을요?”
“나라면 기절도 안 했을 텐데. 아무튼 가소롭다니까.”
나는 오빠와 상식적이고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것은 포기했다.
아무튼 나는 오빠와 함께 빈민가에 도착했다.
수도 내에 이런 환경의 마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약간 놀라웠다.
‘내가 정말 고급에 너무 익숙해지기는 했구나.’
가난에서 너무 멀어진 삶을 살게 되었다.
그래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있었다.
‘이런 곳이…… 있었구나.’
그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어린아이가 다 해진 옷을 입고 벽면에 기대어 앉아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퀭한 눈을 하고 있었는데, 배가 많이 고파 보였다.
그때 오빠가 내 손목을 잡았다.
“걸음이 왜 이렇게 느려 터졌어?”
오빠가 나를 반쯤 강제로 끌고 걸었다.
나는 딸려가면서 오빠의 얼굴을 쳐다봤다.
“오라버니?”
오빠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