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53)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53화
크로플을 오물거리던 나르모르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르 코인?”
“…….”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아직 ‘나르 코인’이라는 이름이 정해지기 전인 것 같았다.
“아, 제가 제멋대로 이름을 붙여봤어요. 로스일드 공작가에 제안했던 거요. 지금 나르 오빠가 구상하고 있는 거.”
“내가 뭘 제안했는지까지 알고 있는 거야?”
“응.”
“……그걸 어떻게 알아?”
“왜요? 내가 알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요?”
“로스일드 공작가에 반드시 비밀로 해달라고 했거든.”
나르모르가 이를 꽉 깨무는 것이 보였다.
자신의 비밀이 새어 나간 것에 화가 조금 난 것 같았다.
약간의 오해가 생기기는 했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허세를 좀 부려보자.’
나르모르를 완벽한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하여 적당한 허세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저는 빌로티안의 황녀고, 오빠 생각보다 꽤 유능해요. 오빠와 로스일드 공작가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오빠가 무엇을 제안했는지, 그런 걸 하나도 모르고서 굳이 오빠를 찾아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음, 이 타이밍에 크로플을 한 조각 딱 여유 있게 먹어주면 그림이 완성될 것 같은데.
‘크로플이 아니라 와인 같은 거?’
그렇지만 내 나이는 겨우 일곱 살이었고 와인을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와인 대신 크로플로 우아한 기품을 흉내 내보았다.
하지만 사람이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고, 포크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는지 크로플 조각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나는 민망해져서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저는 오빠의 가능성을 본 거예요. 오빠만큼 잠재력이 뛰어난 사람은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물론이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 건데?”
소설로 봤으니까요!
그렇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렇게 무심한 척 반짝반짝 눈을 빛내고 있으면 어떡해요? 무슨 칭찬을 해줘야 만족하지?’
겉으로는 무심한 척했지만 이 오빠는 칭찬을 원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쯤 되니 약간 부담스러워졌지만, 또 묘한 오기가 생겼다.
반드시 만족시켜 주고 말겠어! 같은 오기.
“로스일드에게 여러 차례 문전박대를 당하고도 거기를 찾아갔잖아요. 오빠의 아이디어를 가지고서요. 마지막으로 쫓겨났을 때는 엄청 고초를 당했다고도 들었어요. 그렇게 절실하고 필사적인 사람은 뭘 해도 할 수 있다고 믿어요.”
“…….”
“저는 필사적인 사람을 잘 알아보는 눈을 가졌거든요.”
나는 빙그레 웃으며 나르비달의 낙인을 보여주었다.
* * *
“……아.”
나르모르는 솔직히 잊고 있었다.
이사벨이 너무 햇살처럼 밝고 따뜻해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손목에 새겨진 모래시계를 보고 있노라니 이제야 이사벨이 시한부라는 것을 실감했다.
머릿속이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저 귀한 몸으로 나를 찾아와서 이렇게 필사적으로 나를 설득하는 거구나.’
사실 이사벨이 처음 찾아왔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느꼈다.
얼굴에 검댕을 가득 묻히고 있었지만 그것이 이사벨의 귀티를 가리지는 못했다.
미하엘의 귀티는 완전히 가려졌지만 말이다.
이사벨 스스로는 자기가 기품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 나르모르가 보기에는 아니었다.
이사벨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아우라 같은 것이 있었다.
귀엽고 깜찍한 외모 뒤에 숨겨진 기품 같은 것.
그걸 정확히 표현할 말은 없었지만 나르모르는 그것을 그냥 ‘이사벨스러움’이라고 생각했다.
‘저런 사람이 실제로 있었어.’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
누구보다 삶에 진심인 사람.
그래서 누구보다 필사적일 수 있는 사람.
황녀라는 신분을 내려놓고, 사람 대 사람으로 사람을 대해 주는 사람.
‘너무 비현실적이잖아.’
나르모르가 경험했던 사람들과는 너무 다른 유형의 사람이었다.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실존하지 않는 인물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왜 날 이렇게까지 도우려고 하는 건지, 이해가 잘 안 돼.”
여러 차례 매스컴에 노출되었고, 때문에 수많은 대중의 눈치를 살피며 성장했던 이사벨은 눈치가 빨랐다.
나르모르의 심정을 즉각 눈치챘다.
‘이미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설득은 다 했어. 접근을 좀 달리해야 해.’
그래서 말했다.
“로스일드 공작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서요.”
“……응?”
“로스일드에서 쫓아낸 꿈나무가, 언젠가 아름드리나무가 되어서 로스일드에 그늘을 덮으면 얼마나 볼만하겠어요?”
로스일드를 생각해 보니 짜증이 확 치밀었다.
레이나에 대한 분노 같은 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래도 이사벨도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그토록 적개심을 보이는 사람을 마냥 좋게만 볼 수는 없었다.
“……그런 이유라면.”
나르모르가 씨익 웃었다.
그는 한동안 이사벨을 바라보았다.
‘인간적이네.’
비현실적이라고만 생각했다.
현존하지 않는 인물인 것 같았는데, 그건 착각이었던 모양이었다.
지금 보니 지금의 이사벨은 그냥 7살 황녀가 맞았다.
얼굴이 약간 빨개졌고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로스일드를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모양이었다.
‘……귀여워.’
나르모르는 확신할 수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저렇게 귀여운 생명체를 본 적이 없었다.
오늘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는 새로운 사실을 하나 배웠다.
‘저렇게 똑똑하고 기품이 넘쳐도, 귀여운 건 귀여운 거구나.’
그 어떤 가치로도 귀여움을 가릴 수는 없었다.
오늘 그게 확실해졌다.
‘그 와중에도 크로플을 포기하지 못해서 우물거리고 있는 게 다람쥐 같기도 하고.’
나르모르도 크로플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설탕과 빵에 진심인 나르모르는 다시금 천국을 맛보았다.
“좋아요, 황녀님.”
나르모르는 존대를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의 작은 신호였다.
이제부터 이 자리는 단순한 ‘사석’이 아니라는 신호.
“제가 뭘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이왕 한 번 사는 인생, 최선을 다해 살아주세요. 저를 대신해서 돈도 많이 벌면 좋겠어요.”
나르모르는 방향만 잘 잡아주면 스스로 잘 성장하는 캐릭터였다.
지금 잠시 봉인되었을 뿐, 나르모르는 본래 어마어마한 수전노.
돈을 갈퀴로 쓸어담는 대부호가 될 자질을 가진 자였다.
그렇기에 이사벨은 괜히 이래라저래라 간섭하고 싶지 않았다. 나르모르가 자생할 수 있도록 후원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왕 한 번 사는 인생, 최대한 빈둥거리며 살아보려고 했는데요.”
사실 그건 로스일드 때문에 열정이 꺾여서 그런 것이었다. 본래는 이사벨이 말한 것처럼 살려고 했었다.
사그라들었던 불씨가 다시금 불타기 시작했다.
“한번 최선을 다해 볼게요. 황녀님이 저를 후원하겠다고 한 거, 후회하지 않도록 만들어 드릴게요.”
“고마워요!”
이사벨은 속으로 ‘됐다!’를 외쳤다.
진심으로 기뻤다.
보장된 폭등 로켓이 발사대에 올라섰다.
‘수익률 123억 4,567만 퍼센트!’
사실 숫자는 의미 없었다.
그냥 대충 큰 숫자를 생각했다.
뼛속까지 이과였던 그녀는 구체적인 숫자를 생각하자 더욱 행복해졌다.
나르모르는 그 모습을 보며 심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나 같은 놈이 뭐라고 저렇게 행복해할까.’
저 표정은 진짜였다. 가식이나 연기로 꾸며낼 수 없는 진짜 표정.
이사벨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밝고 환한 기운이 이곳 전체를 밝게 물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기운에 물들어 나르모르 자신도 기분이 좋아졌다.
꽃향기가 이 방에 가득 찬 것 같았고, 마치 술을 마신 것처럼 기분이 몽롱해졌다.
이사벨에게는 그런 힘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10대 초반이지만…… 황녀님은 이제 겨우 7살이야.’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7살에게 너무 얹혀갈 수만은 없지.’
로스일드 공작에게 제안했던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7살 황녀에게 도움만 받을 수는 없었다.
‘돈 벌어야겠다.’
원작에서 나르모르는 약간 느긋한 편이었다. 그랬던 나르모르의 마음이 조금 더 절실해졌다.
‘졸X 많이.’
나르모르는 원작보다 빨리 각성했다.
* * *
나르모르가 내 후원을 수락하고서 며칠이 흘렀다.
나는 아주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븅븅-
세상에 저렇게 귀여운 소리를 내는 벌꿀오소리는 김벌꿀밖에 없을 거야.
“김벌꿀! 어딜 갔다가 이제 온 거야!”
사실 ‘벌꿀이’라는 이름이 더 좋았지만, 벌꿀이가 ‘김벌꿀’이라는 이름을 더 좋아하니까 그냥 ‘김벌꿀’이라고 불렀다.
벌꿀이의 꼬리가 풍차처럼 휭휭 돌기 시작했다.
‘응?’
내가 해석 마법을 걸지도 않았는데 벌꿀이의 머리 위에 마법 문자가 생성되었다.
[낭만 모험 떠났음.]“모험이라니?”
벌꿀이는 당당한 표정을 짓고 두 발로 허리를 세워 일어섰다.
[이사벨의 기쁨=돈] [이사벨=수전노]글자만 보면 나를 욕하는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건 해석 마법의 오류 같은 거였다.
벌꿀이는 실제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벌꿀이의 생각과 감정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보니, 이렇게 직관적으로 표현될 때가 종종 있었다.
……라고 믿어도 되겠지?
[낭만 김벌꿀은 모험을 떠났어.] [수전노를 위한 모험.]어쩐지 해석 마법이 조금 더 진화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찌 됐든 벌꿀이에게 나쁜 의도 같은 건 없었다.
꼬리 힘이 너무 강한 나머지, 엉덩이까지 덩실거리는 벌꿀이는 내게 쪼르르 달려와 캑캑대기 시작했다.
“왜, 왜 그래?”
겉으로 보면 괴로워 보였는데 머리 위에 [♩♪] 표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캑! 캑!
[수전노에게 기쁨을.]캑! 캑!
벌꿀이가 무언가를 토해냈다.
“응?”
벌꿀이가 토해낸 것은 금괴들이었다.
“이, 이게 뭐야?”
[금 나와라. 뚝딱!] [수전노. 기쁨?]벌꿀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덩실덩실 춤을 추길 바라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왠지 춤을 춰야 할 거 같아서 부담스러웠다.
“근데…….”
나는 정말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금괴에 어떤 표식이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걸 도대체 어떻게 가져온 거야?”
내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크, 큰일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