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54)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54화
금은화폐를 대용할 수 있는 자산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유력 가문의 인장이 새겨진 금 같은 경우는 일반 금보다 훨씬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
금의 진위 여부를 해당 가문에서 보증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이는 매우 중요한 제도였고, 금에 새겨진 인장을 위조하는 것은 극형으로 다스렸다.
‘왜 황실의 인장이 박혀 있는 건데?’
김벌꿀이 인장을 위조했을 리는 없었다.
“심지어…… 검은색이잖아?”
검은색 인장.
이는 황궁의 감별을 거친 뒤, 단 한 번도 세상 밖으로 출품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빌로티안 황가의 인장을 획득한 금은 황가에 의하여 까다로운 관리를 받는다.
마치 지구의 ‘수표’ 같은 개념이었다.
마도 공학의 접목을 통하여 해당 금괴가 어떻게 이동되었는지, 누구를 거쳐 어떻게 거래되었는지가 모두 기록된다.
이사벨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설마…… 황실 보물창고에서 훔쳐 온 거야?”
김벌꿀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벌꿀은 자신의 행동에 취해 있었다.
[수전노는 맘껏 기뻐해.]그리고 아주 기대하고 있었다. 수전노 이사벨이 행복해할 것을.
하지만 이사벨은 황당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김벌꿀의 마음은 알겠으나 이건 방법이 너무 잘못되었다.
* * *
한편, 이사벨보다 더욱 황당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미, 미친……!”
바로 황실의 수석 창고지기 울론이었다.
그는 24년 차 베테랑 창고지기였으며, 황궁 내에 존재하는 7개 보물창고를 총괄하는 총책임자였다.
“그, 그, 금괴가 빈다……!”
침투의 흔적은 없었다.
그러니 완벽하게 털렸거나, 내부에 도둑이 있다는 소리였다.
이건 비상사태였다. 황실의 보물창고가 털리다니.
‘이 사실이 외부에 전해지면 내 목이 남아나지 않을 거다.’
그렇다고 장부를 조작할 수도 없었다.
그는 24년 동안 창고지기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황실의 보물을 관리한다는 자긍심도 있었다.
그렇기에 거짓을 고할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황후인 세르나를 찾았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의지하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현명한 황후 세르나밖에 없었다.
“6년 전, 황후께서 꼭 한 번은 도와주신다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하여 실례를 무릅쓰고 황후마마를 뵙습니다.”
울론은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세르나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황실의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세르나이건만, 세르나도 뾰족한 수를 내놓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다름 아닌 황제 론이었다.
울론의 몸이 잔뜩 굳었다.
‘서, 설마 내 보고를 들으셨나?’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이번 사태는 수석 창고지기의 책임이었다.
철혈의 황제 론은, 이번 일을 결코 쉬이 넘어가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벌벌 떨었다.
“대략적인 얘기는 밖에서 다 들었다.”
“주, 죽여주십시오.”
“그럴까?”
울론의 몸이 또 잔뜩 굳었다.
론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살기에 그는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원칙대로라면 크게 벌했겠지만.”
론은 살기를 거두었다.
“황후가 너를 한 번 돕겠다 약조하였고, 너는 그 약조를 믿고 황후를 찾은 것이니, 네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 그러니 돌아가서 네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폐, 폐하……!”
“마음 바뀌기 전에 썩 꺼져.”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폐하! 앞으로 창고 관리에 만전을 기하여 실수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론이 고개를 끄덕였고 울론은 서재 밖으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한편, 세르나가 빙그레 웃었다.
“일부러 그리 사납게 말씀하신 거죠?”
“…….”
론은 대답하지 않았으나 세르나는 론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
론은 한 번 용서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뒤끝이 없는 사람이었다.
“폐하는 울론 경이 지나치게 겁먹었다는 것을 아셨어요. 거기서 조곤조곤, 나긋나긋하게 말씀하시면 아마 울론 경은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을 거예요. 그러니까 폐하는 일부러 그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맞죠?”
“…….”
론은 세르나 앞에서만큼은 순한 양이었다. 그렇다고 ‘맞다’라고 적극적으로 동의하기에도 조금 애매했다.
그는 제국민들 앞에서 철혈의 황제였고, 이런 온정 같은 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론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귀여우셔.”
“빌로티안의 황제에게 지나치게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군.”
“그래도 귀여운 건 귀여운 거죠.”
“나는 귀엽지 않소.”
“그럼요?”
“강인한 편이지.”
“귀여운 게 제일 강인한 거예요.”
론의 귓불이 조금 빨개졌다.
얼굴 쪽 체온이 올라간다는 것을 자각한 론은 재빨리 마력을 움직여 체온을 내렸다.
붉어진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이미 들켰지만.
“해당 사건은 내가 알아서 마무리할 것이니, 황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정말요? 요즘 엄청 바쁘시잖아요.”
“도둑이 누군지 대충은 짐작이 돼서.”
“누군데요?”
“확실해지면 말하겠소.”
거기까지 말한 론은 등을 돌렸다.
세르나는 멀어지는 론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 폐하의 기분이 저렇게 좋을 때는 보통 이사벨과의 저녁 약속이 있을 때뿐인데.”
* * *
복도를 걷던 론은 저만치 멀리서 반가운 기운을 느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단련된 무인인 그의 기감에 확실히 잡혔다.
황궁 안에서 이처럼 강렬하고 따뜻한 기운을 내뿜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이 모퉁이를 지나서.’
그의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다음 모퉁이를 돌면 이사벨이 있겠구나.’
다시 걸음이 느려지고 표정이 사라졌다.
마치 이사벨과의 만남 같은 건 한 번도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폐, 폐하!”
“여긴 어쩐 일이냐?”
이사벨의 앞머리가 조금 헝클어져 있었다.
론은 이사벨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검지로 앞머리를 정돈해 주었다.
이마에 땀에 송골송골 맺혀 있었는데, 그마저도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 그게요…….”
“꼴을 보아하니 도둑질을 하다가 주인에게 들켜 황급히 도망친 애송이 같구나.”
이사벨의 몸이 움찔했다.
그 투명한 반응에 론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웃음을 감추기 위해 얼른 몸을 돌렸다.
“일단 따라오너라.”
론이 앞장서서 걸었다.
딸의 걸음이 너무 느린 탓에 그는 자신의 걸음걸이에 정말 열심히 신경 쓰며 걸어야 했다.
‘보법을 익히지 못해서 그런가. 걸음걸이가 영 형편없군. 하는 수 없지. 내가 같이 걸어주는 수밖에.’
일부러 손을 뒤로 보냈다.
보통 이렇게 걸으면, 이사벨이 뒤에서 손을 잡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손을 잡지 않았다.
론은 그게 조금 아쉬웠지만 이미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어라? 폐하께서 웬일로 집무실에 오셨어요?”
황제의 부관 비아톤이었다. 그의 눈 밑에는 다크써클이 가득했다.
사실 그가 생기 넘치는 시간은 이사벨을 가르치는 시간뿐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그는 혹독한 야근 때문에 저런 얼굴이었다.
“황제가 황제의 집무실에 오는 게 이상한가?”
“그러니까요, 이상하면 안 되는데 이상하네요.”
비아톤이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다크써클 보이죠?”
“못생겼군.”
“다크써클이 못생길 수 있어요?”
“…….”
론은 그냥 못생겼다고 말하고 싶은 듯했다.
론이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처럼, 비아톤도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이게 어디 사는 어느 위대한 분이 모든 일을 저한테 떠넘기고 검술 수련에만 매진하는 바람에 이렇게 됐어요.”
비아톤은 황제 뒤에서 빼꼼 얼굴을 내민 소녀 한 명을 발견했다.
“아니, 폐하, 이게 어쩐 일이죠?”
“뭐가 말이냐?”
“폐하도 아시다시피 황녀님은 특유의 사랑스럽고 밝고 따뜻한 기운을 뿜뿜 내뿜는 분이시잖아요. 그런데 오늘은 제가 그걸 못 느꼈어요. 이건 폐하께 주눅 들어서 그런 게 틀림없습니다. 폐하의 기운에 완전 억눌려서, 제가 황녀님의 기운을 못 느꼈다고요! 설마 황녀님 구박했습니까? 그런 겁니까? 막 욕하고 화내고 그랬습니까?”
“그랬다면?”
“그럼 배신각이죠.”
“대놓고 역모냐?”
비아톤이 주먹을 꽉 쥐었다.
황제를 노려보다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엄마한테 이를 겁니다.”
“…….”
“그건 좀 무섭다고 생각했죠?”
비아톤은 은근슬쩍 이사벨의 눈치를 살폈다.
사실 그가 약간 과장된 목소리 톤으로 시답잖은 농담을 내뱉고 있는 건, 이사벨의 긴장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싶어서였다.
이사벨은 지금 겁먹은 아기 참새 같았으니까.
“저는 잠시 볼 일이 있어 나가보겠습니다.”
황제에게 인사한 뒤 이사벨을 스쳐 지나갔다. 이사벨을 향해 싱긋 웃어 보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아톤의 노력 덕택에 이사벨은 조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론은 이사벨을 조심스레 안아 집무실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본인은 책상에 걸터앉아 말했다.
“자. 그럼 나를 찾아온 이유를 말해 보아라.”
“제가 폐하를 찾아온 이유는요…….”
이사벨이 얼굴을 푹 숙였다.
황실의 보물창고를 턴 것은 중죄였다. 어쩌면 김벌꿀에게 큰 벌이 내려질지도 몰랐다.
“……해서요. 정말 죄송해요. 이건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제 잘못이에요. 저를 혼내주세요. 금괴는 모두 가져왔어요. 돌려드릴게요.”
솔직한 말로 이사벨은 무서웠다.
그녀는 아빠를 가져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았다.
크게 혼이 날 것이라 생각했고, 그 생각이 점점 커져서 실체 없는 공포가 되었다.
일곱 살의 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그것은 미움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기도 했다.
“잘못했어요.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그녀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큰 눈망울에 눈물이 그득 담겼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미움받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묻는 것이다.”
“그, 그게…… 말씀드렸다시피…….”
론이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그건 내가 네 선물로 준비한 것이었는데.”
“……네?”
“마침 오늘이 네 생일이 되기 딱 72일 22시간 24분 15초 전이라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