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56)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56화
김벌꿀은 노골적인 벌꿀오소리였다.
[손길 요구.] [배 만져줘.]이사벨은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고서 김벌꿀의 배를 슥슥 문질러주었다.
기분이 좋은 건지 간지러운 건지 김벌꿀은 네 다리를 공격적으로 휘저으며 기쁨을 토해냈다.
[기쁨]븅븅-
[아주 기쁨 ♩♪]아, 진짜 미친 귀여움이야.
이사벨은 한쪽 손으로 벌꿀이의 배를 만지고, 한쪽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한차례 상봉(?)을 마친 이사벨이 입을 열었다.
크흠.
헛기침을 하고서 마음을 다잡았다.
“김벌꿀. 똑바로 앉아봐.”
븅븅?
[?]그 표정에 다시 한번 입을 틀어막을 뻔했지만 이사벨은 참았다.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혼낼 건 내야 했다.
단호할 때에는 단호할 줄 알아야 하니까.
“앞으로 도둑질은 절대 안 돼. 그건 잘못이야. 알겠어?”
[수전노에게 기쁨을.]이사벨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잘못된 방법으로 기쁨을 주는 건 안 돼. 그건 옳지 않아. 네가 그런 식으로 내게 기쁨을 주려 한다면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을 거야. 알겠어?”
김벌꿀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흐물흐물해져서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잘못했지?”
[…….]다섯 마리의 사자와 싸워도 용맹했던 김벌꿀이건만, 이사벨의 훈계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인정 안 할 거야? 김벌꿀. 똑똑하잖아. 잘못되었다는 거, 알고 있잖아. 속상하게 자꾸 이럴래? 네 보호자인 나를 이렇게 부끄럽게 만들 거야?”
뚝뚝.
김벌꿀의 눈망울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꽤 서러웠는지 눈물 알갱이가 굵었다.
그 모습에 이사벨은 약해지는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김벌꿀에게 ‘김벌꿀’이라는 이름을 준 사람이 자신이니, 확실히 책임져야 했다.
“지금 벌꿀이는 반성하는 모습이 전혀 없잖아. 잘못한 줄 알면서 잘못했다고 인정을 안 하잖아. 저기 가서 벽 보고 손들어. 손들고 생각해 봐.”
김벌꿀은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을 짓고 녹아내릴 것만 같은 자세로 힘없이 걸어가 벽을 보고 앉았다.
궁둥이를 실룩이며 자리에 앉아 팔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보며 이사벨은 가슴이 아팠다.
‘내가 너무 심했나?’
그러나 이사벨은 알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슬퍼 보이는 뒤태와 달리, 김벌꿀이 씨익 웃고 있다는 것을.
김벌꿀의 머릿속에는 아주 강력한 명제가 남아 있었다.
‘귀여운 게 제일 무서운 거란다.’
누가 말해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느새 김벌꿀의 행동강령이 되어 있었다.
김벌꿀은, 지금 자신의 뒷모습이 이사벨에게 어떻게 비칠지 이미 알고 있었다.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투명한 용언을 머리 위로 띄웠다.
[김벌꿀=계략가]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김벌꿀은 돌아앉았다.
[잘못했음.] [도둑질 나빠.]김벌꿀이 손을 내밀었다.
사람만큼 손가락이 길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다시는 안 그럴게.] [약속.]“알겠어. 약속.”
이사벨과 김벌꿀이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솔직히 인정해 줘서 고마워. 용감한 벌꿀오소리네.”
이사벨이 김벌꿀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자 김벌꿀은 븅븅- 소리를 내며 어깨를 움츠렸다.
* * *
같은 시각, 빌로티안 제국에서 제일가는 감정사 마르코 유르미엘은 오늘도 ‘청혼석’을 연구 중이었다.
“응? 빛이 새어 나오고 있네?”
따로 발광물질을 집어넣은 것도 아니고 외부에서 마력을 주입한 것도 아니었다.
청혼석으로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다.
“뭐야, 저건 또?”
그의 작업실 벽면에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전설이 진짜인가?”
청혼석에 맹세하고 사랑이 만개하면 꽃이 잔뜩 핀다는 전설이 있기는 했다.
비록 마르코는 ‘청혼석’을 만든 세바스찬의 직계 후손이었지만, 그래도 전설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또 허무맹랑하다고 치부할 수도 없었다.
눈앞에 증거가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만개까지는 아니고…….”
꽃 몇 송이가 피어 있었다.
전설과는 약간 달랐다.
“근데 이러다가 진짜 다이아몬드가 막 피어오르는 거 아냐?”
서로를 위하여 희생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다이아몬드가 샘물처럼 솟아오른다고 했는데.
“에이 설마. 아니겠지, 내가 도대체 무슨 허무맹랑한 상상을 하고 있담?”
* * *
아빠가 내게 감동을 주었고, 또 내가 벌꿀이를 크게 혼낸 지 벌써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시간 진짜 빠르다.’
하루하루가 아쉬운 느낌이었다.
어쨌든 나는 내 손에 들린 이동 관문 모형을 보며 활짝 웃었다.
“드디어 됐어요!”
“그렇구나. 진짜 됐네.”
“테이슬론 할아버지도 웃을 수 있네요?”
“뭐?”
“매일 고약한 표정만 짓고 있어서 못 웃는 병에 걸린 줄 알았어요.”
테이슬론 할아버지는 또다시 인상을 찡그렸다.
“세상에 그런 병이 어디 있냐?”
“그러니까요. 웃으니까 좋잖아요. 그쵸? 또, 또, 고약한 표정 나오려고 한다.”
테이슬론 경은 인상을 찡그렸지만 그래도 입가의 잔잔한 떨림은 숨기지 못했다.
“그래도 평생 연구해 왔던 교류 전달 방식을 활용해서 실제적인 모델을 만든 날이잖아요. 솔직하게 기뻐해도 돼요. 헤헤.”
“…….”
테이슬론 경이 이론으로만 가지고 있던 것을 실체화된 모델로 발전시켰다.
상용화 단계까지 가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쨌든 이를 활용하면 기존 이동 관문의 효율성을 훨씬 더 높일 수 있을 것이었다.
“엄마랑 아빠한테 브리핑해야 할 것 같아요. 아니다, 그 전에 비아톤 선생님한테 먼저 발표 연습을 해야겠어요.”
나는 비아톤 경의 소매를 붙잡고 질질 끌었다.
“얼른요. 얼른 봐주셔요.”
“황녀님, 언제 이렇게 힘이 세지셨어요?”
나보다 키도 훨씬 크고 힘도 센 비아톤 경은 내게 질질 끌려왔다.
비아톤 경은 나를 보며 화사하게 웃고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나는 테이슬론 경과 함께 만든 이 이동 관문 모델에 관해 설명했다.
“……해서요. 이렇게 해서 진일보된 형태의 이동 관문을 만들어 봤어요.”
짝! 짝! 짝!
비아톤 선생님은 뭐가 어찌 됐든 좋다는 듯, 그저 박수를 쳤다.
“브라보! 그저 브라보! 입니다.”
“에이, 선생님. 조금 더 엄격하게 평가해 주세요.”
“엄격하게 평가한 겁니다. 저 성질머리 고약한 영감님을 다독여 이런 걸 만들어 내시다니. 역시 황녀님은 대단하시군요.”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테이슬론 할아버지가 또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어? 들렸어요? 미안합니다, 들으라고 한 소리는 아닌데.”
테이슬론 할아버지는 비아톤 선생님을 한 차례 노려봤지만 이내 시선을 피했다.
비아톤 선생님을 상대하면 본인만 지친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은 모양이었다.
“오늘은 좋은 날이잖아요. 두 분 싸우지 마세요. 싸우면 앞으로는 달고나 안 줘요.”
“…….”
“안 싸울게요, 황녀님. 화해합시다, 친애하는 테이슬론 경!”
아무튼 나는 이 모형을 가지고 테이슬론 할아버지와 함께 엄마의 집무실로 향했다.
데일사 시종장님이 미리 언질을 준 까닭에, 엄마의 집무실에는 아빠도 함께였다.
“어마마마랑 아바마마께 이것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기뻐요.”
나는 비아톤 경에게 설명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설명했다.
“요 작은 구슬을 사람이라고 가정하구요, 요기 이동 관문에서 저기 이동 관문으로 이동시킬 거예요. 이에 사용되는 마력은 요 작은 마정석으로 대체할 거예요. 짜자잔. 이렇게 구슬이 저기로 이동했답니다. 이걸 어떻게 한 거냐면요…… 해서요…… 하게 됐어요.”
순수 검술가인 아빠는 원리는 이해하지 못한 듯했고, 엄마는 어느 정도 이해한 것 같았다.
엄마가 되물었다.
“마도 공학적인 지식이 부족하여 정확히 이해는 어렵지만, 결과론적으로 네가 무엇을 하려는지는 알겠구나. 그러니까 마력의 전달 방식을 직류에서 교류로 바꾸고, 네가 말하는 인버터라는 시스템을 활용해서 효율을 극대화했다는 소리지?”
“맞아요!”
엄마가 아빠를 바라보았다.
“상용화할 수만 있다면 대단한 기술인 것 같아요. 폐하 생각은 어떤가요?”
“황후는 황후의 일을 하시오. 나는 황제의 일을 할 테니.”
“알겠어요. 저는 폐하만 믿을게요.”
“나 역시 황후만 믿겠습니다.”
나는 그 당시, 아빠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황제의 일?’
황후의 일과 황제의 일이 어떻게 나누어져 있는지 정확히는 잘 몰랐다.
대략 알기로는 엄마가 재정과 행정. 그리고 외교에 관한 일을 담당했다.
‘근데 그럼 엄마가 다하는 거 아냐?’
근데 또 그렇다고 보기에는 아빠도 맨날 바쁘고, 아빠의 부관인 비아톤 경도 다크써클이 꽤 심했다.
엄마가 말했다.
“예산을 지원해 줄 테니까 한번 실제 이동 관문을 구현해 보렴.”
“알겠어요! 기존 이동 관문을 이용할 거구요, 에르베 산맥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세팅해 볼게요!”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니?”
“한 달 정도면 될 것 같아요.”
“그래, 엄마는 우리 딸을 믿는단다. 분명히 잘해 낼 수 있을 거야.”
나를 향한 저 신뢰에 나는 괜스레 가슴이 뭉클해졌다.
황후로서는 예산과 각종 절차를 지원해 주고, 엄마로서는 든든한 지지와 단단한 신뢰를 제공해 주었다.
“그렇지만 너무 부담 갖지는 말렴. 최선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괜찮아. 엄마한테는 네 모든 과정이 귀하단다.”
엄마는 혹여 내가 잘 못 하더라도 내게 실망하지 않을 거란 확신을 주었다.
잘하면 잘한 대로, 못 하면 못한 대로. 엄마의 따뜻하고 단단한 눈빛은 내게 확신을 전해 주고 있었다.
그저 이사벨인 나를, 존재로서의 나를 사랑해 줄 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말이다.
전생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충만한 감정이 내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엄마를 와락 끌어안았다.
“어머나?”
엄마도 나를 안고 토닥여주었다.
엄마가 없었던 내게, 엄마가 생겼다.
아니. 생긴 지 벌써 7년이나 되었지만, 오늘도 또 새로이 감사했다.
“엄마가 있어서 너무 좋아요.”
오늘도 내게는 엄마가 있었다.
“저는 정말 행복한 아이예요.”
영원히 일곱 살이면 좋겠어.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실제 이동 관문을 구현하여 엄마, 아빠에게 선보이는 그 날.
나는 바보 같은 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말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