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59)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59화
율리는 깜짝 놀랐다.
얼핏 보아도 10명 이상은 되어 보였다.
‘저 정도 대인원이 한 번에 이동했다고?’
이건 기존 상식을 깨부수는, 아주 위험천만한 행위였다.
이동 관문은 현 마법 기술과 마도 공학의 집약체. 시간 축과 공간 축을 동시에 매만지는 고도의 기술이다.
고도로 발달된 기술인만큼, 복잡하고 위험하다.
그렇기에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인원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례였다.
‘마력을 익힌 사람들인가?’
스스로 마력을 다룰 수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여러 명이 한 번에 움직이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대여섯 명이 한계였다.
그게 상식이었다.
‘아냐.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다.’
행색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마력을 익힌 자들은 대부분 높은 지위를 가진 자들이다.
극소수의 천재들을 제외한다면, 어려서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야만 마력을 다룰 수 있으니까.
저들은 낡은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육체는 단련된 것 같지만 절대 마력을 익힌 무인은 아니었다.
율리는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누구세요?”
그들 중 가장 험상궂게 생기고 덩치가 가장 큰 남자가 대답했다.
“아, 저는 에르베 산맥 제7 경계초소 병장 루카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는 그쪽은 뉘신지?”
“저는 테이사벨 이동 관문과 관련하여 취재를 하고 있는 귓속말의 율리라고 해요.”
“귓속말? 야, 너희들, 귓속말이 뭔지 아냐?”
“모릅니다!”
“모릅니다!”
“모릅니다!”
‘귓속말’은 대륙에서 제일 유명한 소식지지만, 이들은 귓속말에 대해서도 몰랐다.
그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소식지와 같은 문명은 귀족들에게나 익숙한 것이지, 하루하루를 숨 가쁘게 살아가는 평민들에게는 관계없는 얘기였으니까.
율리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대륙에서 규모가 가장 큰 소식지예요. 그나저나, 에르베 산맥에서 오셨다구요?”
그들이 얘기를 시작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율리는 깜짝 놀랐다.
“그러니까, 병사들이 자원해서 이 이동 관문의 안전성을 검증하고 있는 거라구요? 한 번에 한두 명씩으로는 성에 안 차니까, 한 번에 여러 명이 이동하면서요?”
1명이 100번 나눠서 이동하는 것보다, 10명이 1번, 한 번에 이동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
루카인 병장은 거침없이 말했다.
“높으신 나으리들께서 하도 헛소리를 지껄이시길래.”
“예? 헛소리라니요?”
“뭐 새로운 이동 관문이 위험해서 사용하면 안 된다고? 안전상의 이유로 사용할 수 없다면서 헛소리를 지껄이더라구요.”
그는 불량한 태도로 침을 퉤! 뱉었다.
그는 꽤 성이 난 상태였다.
“우리는 어차피 이용 못 했습니다. 안 그러냐, 얘들아?”
“맞습니다!”
“맞습니다!”
그들은 에르베 산맥의 경계초소를 지키는 병사들. 그들 중 대부분은 가난한 평민이었다.
따라서 이동 관문 같은 고도의 문명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율리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병사들은 모두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
비록 투박하기는 했지만 저들의 얼굴에는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저들은 이 이동 관문이 활성화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저게 활성화되면, 저들도 가족들과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겠지.’
저 척박한 북쪽 끝.
에르베 산맥을 불철주야 지키는 저 험상궂은 사내들에게도, 소중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저들은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저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에르베 산맥을 지키고 있다.
저렇게 무겁고 낡은 갑주를 입고서.
저들에게는 마탑과 마법 연방의 저명한 마법사들의 지고한 이론보다는, 지금 당장 이용할 수 있는 새 문물이 더 귀중했다.
미로텔의 수석 마법사들보다, 황궁의 7살짜리 황녀가 더 위대한 마도 공학자였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와 있는가?’
에르베 산맥에서 황궁을 찾아온 병사들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린 날의 나는 왜 기자가 되고 싶었지?’
자신의 숙소로 돌아온 그녀는 취재의 방향과 내용을 완전히 바꾸기 시작했다.
* * *
오늘은 날씨가 무척 좋았다.
창문을 열고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 맞추어 갓!”
척! 척!
요란한 발소리. 이어지는 구령 소리.
“하낫! 둘! 하낫! 둘!”
우렁찬 기합 소리에 깜짝 놀라서 저만치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비록 행색은 낡았지만 군기가 바짝 잡혀 있는 병사들이 보였다.
“걸음 간에 군가 한다, 군가 제목, 멋있는 황녀님! 군가 시작, 하나, 둘, 셋, 넷!”
나는 창문을 꾹 닫았다.
방음이 워낙 완벽한 창문인지라 밖의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왠지 들리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머, 멋있는 황녀님?”
나는 창문 밑에 몸을 수그리고 숨었다가 이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손만 높이 뻗어서, 아주 조심스레 창문을 살짝 열었다.
도대체 ‘멋있는 황녀님’이라는 군가가 어떻게 생겨먹은 군가인지 궁금해졌다.
‘들으면 안 될 것 같아.’
열면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기분이었다.
마침 디저트를 들고 내 방을 찾은 유리가 나를 발견했다.
“황녀님? 뭐 하세요?”
“언니. 길티 플레저라고 알아?”
“길티 플레저요?”
유리 언니는 역시 똑똑했다.
언니는 시녀가 된 이후로, 황녀에 어울리는 시녀가 되어야겠다면서 여러 가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하나를 입력하면 열이 튀어나오는 대답 자판기였다.
“사전적 의미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즐기는 행동이라고 알고 있어요. 떳떳하지 못한 쾌락을 뜻하기도 하고요. 여기서 죄책감은 도덕적인 의미라기보다 유치하고 황당한 것에 가까워서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맞아, 맞아, 그거.”
창문이 열리고 군가가 들려왔다.
가사를 들어보면 대략 이러했다.
“멋있는! 황녀님! 단 하나뿐인 황녀님!”
나는 또 창문을 닫고 심호흡을 했다.
아, 이걸 내가 들어도 되는 걸까. 뭔가,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데 또 궁금하기는 했다.
저 괴상한 노래가 어디까지 괴상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까지 일었다.
나는 또 살금살금 움직여 창문을 살짝 열었다.
“바로! 내가! 핫! 사나~ 이! 핫! 황녀님을 위한 사나이! 싸움에는 천하무적! 헌신은 뜨겁게! 황녀님을 찬양하라, 멋진! 황녀님!”
“황녀님, 얼굴이 빨개요.”
“언니. 나 부끄러워 죽겠어.”
부끄러운 걸 넘어서 수치스러웠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좌악- 돋았다.
숨을 수 있다면 한 3일 정도 숨어 있고 싶을 정도였다.
“노래 자체도 좀 부끄러운데, 저걸 끝까지 들은 나 자신이 더 수치스러워. 아레나 궁의 다른 사람들도 다 들었겠지?”
아레나 궁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커다란 군가였다.
원래 아레나 궁의 소란을 달가워하지 않는 데일사 시종장님도 어딜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창문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어 아레나 궁으로 진격(?)하고 있는 병사들을 훔쳐봤다.
“저, 저 사람들 너무 진지해서 무서워.”
저 험상궂은 얼굴과 덩치. 칼각을 유지한 걸음걸이로 최선을 다해, 목청이 터져라 부르는 노래가 ‘멋진 황녀님’이라니.
척! 척!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 발걸음 소리는 내 방 앞에서 멈췄다.
“전체, 차렷!”
척!
차렷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유리 언니가 말했다.
“쫓아낼까요?”
“아,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기는 해.”
애초에 위험한 자들이었다면 황궁에 입성조차 하지 못했을 거고, 황궁 내에서 저런 군가를 부르며 당당히 활보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부담스러워서 무서울 뿐, 저들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그냥 생목소리인데 마치 마력을 담은 것처럼 쩌렁쩌렁 울렸다.
“에르베 산맥, 7 경계초소 병장 루카인! 빌로티안의 고귀한 혈통, 빌로티안 유일의 황녀님 알현을 청합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게 말한다고 말한 것 같기는 했는데, 기본적으로 목소리가 무척 커서 다 들렸다.
“얘들아. 알현이 뭐냐? 내가 제대로 읽은 거 맞냐?”
약간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저 대사는 누군가가 써준 모양이었다.
유리 언니가 다시 나를 불렀다.
“황녀님? 어떻게 할까요?”
“일단 열어줘.”
유리 언니가 문을 열자 엄청난 덩치의 남자가 보였다.
워낙 무섭게 생겨서 산적 같았다.
보자마자 코뿔소가 연상될 정도의 덩치였다.
“전체 차렷! 황녀님께 대하여 경례!”
척!
저들은 오른손을 들어 올려 내게 경례했다.
나는 저 어마어마한 기세와 칼각에 놀라 찔끔 놀라고 말았다.
유리 언니가 대신해서 물었다.
“에르베 산맥의 병사분들께서 여긴 어쩐 일이신가요?”
“황녀님께 깊은 은혜와 은총을 입은 자들로서, 황녀님께…… 어…… 그게…… 그러니까.”
자신을 루카인 병장이라 소개한 남자는 손바닥을 슬쩍슬쩍 훔쳐봤다.
손바닥에 커닝 페이퍼 비스름한 걸 만든 모양이었다.
“제가 여러분께 은혜를 입혔다구요?”
“예, 그렇습니다!”
으악, 깜짝이야.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네.
‘근데 내가 은혜를 언제 입혔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적은 없었다. 도대체 루카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일단 들어오세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