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6)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6화
황후 세르나는 더없이 따뜻한 눈으로 부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정말 소중히 안으셨어.’
론이 이사벨을 얼마나 조심스레 안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둘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세상이 풍요로 가득 찬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세르나는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폐하?”
론의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세르나조차 적잖이 놀랐다.
론과 20년이나 함께 했지만, 론이 눈물을 보인 적은 단 두 번밖에 없었다.
‘본인의 눈에 눈물이 고인 걸 전혀 모르시잖아?’
론은 그저 하염없이 자신의 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세르나가 조심스레 론의 옆에 섰다.
그의 팔을 살짝 붙잡았다.
이곳에는 보는 눈이 없었기에 그녀는 황제를 이름으로 불렀다.
“론, 저는 당신의 눈물을 기억해요.”
단둘만 있을 때. 그때는 황제와 황후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 번은 죽은 줄 알았던 비아톤 부관이 살아 돌아왔을 때. 또 다른 한 번은 내가 당신의 청혼을 받아들였을 때였죠.”
그게 검술 제국의 황제가 흘렸던 두 번의 눈물이었다.
“이제는 세 번이 되었네요.”
세르나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론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론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사실 그는 스스로 눈물을 흘렸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자신의 품 안에서 방긋방긋 웃고 있는 작은 생명체에게 온통 정신을 빼앗겼을 뿐이었다.
귓가에 맴돌았다.
‘아빠맘마는 션물이에여.’
그 순간, 이 아이가 햇살 같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눈물이 고였다.
그는 문득 부끄러워졌다.
‘이런.’
하필이면 그 모습을 아내에게 들켜 버리고 말았다.
사실 그는 세르나 앞에서 늘 강인한 사람이고 싶었다.
“눈에 뭐가 들어갔을 뿐.”
세르나가 빙그레 웃었다.
뛰는 론 위에 나는 세르나가 있었다.
“나는 오늘의 당신이 멋있어요.”
론의 몸이 움찔했다.
론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세르나의 칭찬이었다.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그 마음이 제일 강한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
론은 차마 세르나의 눈을 마주 볼 수 없어 은근슬쩍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이사벨은 그 모습을 평온하게 바라보았다.
‘흐응, 나는 낄끼빠빠를 아는 아기니까.’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진다.
지금은 빠질 때였다.
‘쪽쪽이나 빨면서 구경이나 해야겠다.’
쿵! 쿵! 쿵!
론의 심장이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러다가 터지는 거 아냐?’
조금 걱정될 정도였다.
그렇지만 둘의 연애 사업을 방해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럼 두 분은 알콩달콩하시고요, 저는 잠깐 자겠습니다.’
이사벨은 론의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었다.
론은 이후로도 한참 동안이나 이사벨을 안고 있었다.
* * *
그날 새벽.
론은 집무실로 향했다.
새근새근 잠들어 있던 아이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기분이 이상하다.’
빌로티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던 여아라서 그런 것인가. 세르나를 많이 닮은 아이여서 그런 것인가.
혼란스러웠다.
‘그 아이는 빌로티안의 검술을 익히지도 못할 것이다.’
500년 역사상 최초로, ‘나약한 빌로티안’이 태어났다.
나약한 빌로티안은 도태된다.
형제들 간의 후계 경쟁에서 잡아먹히고, 또한 외부 세력과의 전쟁에서 자연스레 낙오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사벨은?
‘검술을 익히지 못하는 빌로티안을 빌로티안이라 할 수 있는가? 내 자식이라 할 수 있는가? 후계자라 할 수 있는가? 황족이라 할 수 있는가?’
그리고.
‘21세에 죽게 되겠지.’
찌릿.
가슴이 조금 아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무슨 비합리적이고 쓸모없는 잡념이란 말인가.’
어차피 운명은 정해져 있다.
론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에 큰 심력을 쏟는 것을 낭비라고 생각했다.
‘머릿속이 복잡하군.’
이럴 때는 검을 휘두르는 게 제일이었다.
황제의 검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폐하, 자는 사람을 이렇게 깨우는 게 어디 있습니까?”
“대련이다.”
“이 새벽에요? 저 오늘도 야근했다고요!”
“20년 전, 네가 매일같이 하던 짓이지.”
20년 전에는 그랬다.
비아톤은 검귀로 잘 알려진 암살자였고, 늘 날카로운 실전 감각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런 식의 대련을 진행했었다.
“암살자는 제 전직이지, 폐하의 전직은 아니잖아요! 폐하는 정의롭고 공명정대한 빌로티안의…… 으악!”
론이 누워 있던 비아톤에게 검을 휘둘렀다.
날이 번뜩이는 진검이었다.
침대가 두 동강 났다.
“혀가 길구나.”
“뭔 놈의 암살자가 이렇게 요란하게 공격합니까!”
론이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으아아악! 이 악마!”
비아톤은 황급히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6층 높이의 방에서 뛰어내렸다.
* * *
시간은 굉장히 빠르게 흘러갔다.
해가 바뀌었다.
‘벌써 세 살.’
그러니까 내게 남은 21년의 시간 중 2년의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었다.
짧다면 짧겠지만, 퍼센트로 치자면 거의 10%의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꽤 알찼던 것 같다.
‘남은 시간도 알차게 써야지.’
빌로티안가의 피를 이은 것답게 내 성장은 상당히 빨랐다.
‘한국으로 치면 다섯 살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아기를 키워본 경험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여전히 발음은 불완전했지만 어른들과의 대화에도 거의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다.
이제는 걷거나 뛰는 것도 가능했다.
가끔 넘어지기는 했으나 육체가 워낙 튼튼해서 다치는 일은 잘 없었다.
아침 식사를 끝내자 엄마가 말했다.
“오늘부터는 비아톤 경이 찾아올 거란다. 첫 선생님이시니 예의를 잃지 말렴.”
이제 황녀로서의 교육을 시작한다나, 뭐라나.
“비아통 경? 부관 아져씨여?”
“이제는 부관이 아니란다.”
어찌 된 일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본래 빌로티안가의 황자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몰리압 경이다.
그는 최고의 문가(文家) 중 하나라 일컬어지는 세르조 가문 출신의 학자였다.
그리고 그는 빌로티안 황가와 20년의 전속계약을 맺은 상태다.
본래대로면 내 선생님도 몰리압 경이 되어야 했다.
“군데요, 엄마마마.”
“응?”
“왜 저는 비아톤 경이에여?”
“글쎄. 그건 우리 딸이 비아톤 경에게 직접 물어보겠니?”
“아라떠여.”
나는 비아톤 경을 무척 좋아했다.
그는 아이를 다룰 줄 아는 정석적인 어른이었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늘 즐거웠다.
게다가 마법사 가문 출신의 검술가여서 몇몇 마법도 구사할 수 있었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비행 마법’을 제일 좋아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비아톤 경이었다.
“오늘부터 황녀님의 교육을 담당한 비아톤입니다.”
“비아통 경!”
나는 치맛단을 잡고 허리를 숙였다.
비아톤은 늘 그렇듯 화사한 미소를 보여주었고, 나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세 살은, 굴러가는 잘생김을 보고서도 웃음을 터뜨릴 나이였다.
엄마도 비아톤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비아톤 경. 황녀를 잘 부탁해요.”
엄마가 밖으로 나간 뒤 내가 물었다.
“왜 비아통 경이 션생님이 대써여?”
“황녀님은 그게 싫으십니까?”
“그치만 원래는 몰리압 경이 션생님이자나여.”
“아항, 알겠다! 황녀님은 몰리압 경만 좋아하는군요!”
비아톤 경은 세상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지은 뒤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훌쩍이며 우는 척을 했는데 그 모습이 새삼 진지해서 가슴이 아파올 정도였다.
“울디 마여.”
“황녀님이 토닥토닥해 주면 안 울게요.”
“뚝!”
나는 비아톤 경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러자 비아톤 경이 대답했다.
“뚝. 이제 안 울게요. 황녀님이 토닥토닥 해줘서 이제 눈물이 안 나요.”
“옳티. 잘해써여. 울디 마여.”
“왜요? 제가 울면 막 속상하고 그런가요?”
“진쨔로 울면 쇽상하디.”
다시 말해 가짜로 운 지금은 별로 안 속상하다는 뜻이었다.
“허허허. 황녀님은 정말 영특하시군요. 제 숙련된 연기를 간파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말입니다.”
나는 허리에 양손을 얹었다.
이제는 중심을 잘 잡게 된 신체로 굳건히 섰다.
“모땐 버릇!”
“예?”
“일부더 어려운 단어 막 썼다, 비아통 경 나빠여.”
“그, 그건…….”
“또 그더면 나뿐 풍뎅이라 그러 꺼야.”
“푸, 풍뎅이라니. 그, 그건 너무 심한 욕설인걸요.”
시험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애매했지만, 아무튼 비아톤은 일부러 ‘영특’, ‘숙련’, ‘간파’ 같은 말들을 사용했다.
내가 그런 단어도 이해하는지 못하는지 은근슬쩍 떠본 것이었다.
나는 방긋 웃었다.
“비아통 경. 나눈 오래 못 살고 죽어여. 구러니깐 떠보고 그러지 마여. 나눈 그런 거 시로.”
“…….”
“바다쓰기로 시험 보께여. 백 점 마즐께여. 사이조케 지내여.”
비아톤 경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황녀님. 설마 죽음을 이해하고 계신 겁니까?”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비아톤 경이 유모 쪽을 돌아보았다.
“도대체 어떤 경솔한 자가…….”
비아톤 경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나는 문득 비아톤 경의 과거 이명이 떠올라 버렸다.
검에 미친 귀신. 검귀였다.
“감히 황녀께 나르비달의 낙인에 대해 발설했단 말입니까?”
어쩐 일인지, 으슬으슬한 한기가 밀려왔다.
유모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무래도 유모를 범인으로 낙인찍은 것 같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