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Just Having Fun With The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62)
시한부를 즐겼을 뿐이었는데 62화
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헤헤, 칭찬받았다.”
“…….”
카린은 멋쩍게 웃는 이사벨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겨우 칭찬 한마디에 저렇게 좋아하는 이사벨을 꼭 지켜줘야 했다.
카린에게는 저 미소가 제일 소중했다.
“저는 그 미소를 지킬 생각입니다.”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방금 분명…….”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카린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얼른 마나를 움직여 얼굴에 몰린 피를 전신으로 골고루 분산시켰다.
얼굴이 붉어진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상승의 마법을 사용했다.
황급히 안색을 원래대로 돌린 카린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또 미로텔 마법 연방에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또요?”
이사벨은 카린을 미로텔 마법 연방으로 보내는 것이 그리 탐탁지는 않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최종 흑막으로 각성할지 모르니까.
가장 경비가 삼엄한 황궁에 함께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다.
“왜요?”
“제가 떠나면 싫습니까?”
“싫죠. 제 옆에 있으면 좋겠는걸요.”
“왜죠?”
이사벨은 카린 앞에서 절대로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괜한 거짓말을 했다가는 들킬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이 옆에 있어야 안전한 기분이 든단 말이에요.”
“……저는 그렇게 믿음직스러운 사람은 아닙니다.”
카린의 귓불이 또 붉어지고 말았다.
“아무튼, 저 또한 테이사벨 이동 관문과 관련한 이론들이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사벨이 만들어낸 테이사벨 이동 관문과 그 관련된 이론을 정식으로 등록시키고, 이것이 옳음을 증명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사벨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것이었다.
그것은 곧 마법사들과의 전쟁을 의미하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배신자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
테이슬론도 그와 비슷한 경우였다.
한때 촉망받던 인재였으나 기득권을 위협한 죄로 파면당해 에르베 산맥을 떠돌지 않았던가.
‘아니. 배신자로 낙인찍힐 거다. 미로텔 마법 연방에서 퇴출되겠지.’
그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기득권은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는 권리를 내려놓기를 원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마도 문명의 혜택이 돌아가는 것에 반대한다.
희소해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선민들이기 때문에.
‘갖은 회유와 압박도 들어올 거다. 혹은 황녀님의 기술을 훔쳐서 미로텔 마법 연방에 유리하게 만들거나.’
카린이 눈에 독기를 품었다.
‘절대 그 꼴은 볼 수 없어.’
그녀는 본래 투쟁하고 싸우고 지배하는 것에 특화된 인물로 설정되어 있었다.
소설 속 카린은 남주 아룬과 검술 제국 빌로티안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지만, 지금의 카린은 미로텔 마법 연방의 마법사들과 전쟁을 벌이리라 다짐했다.
최종 흑막으로서의 자연스러운 투지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왼쪽 입가가 꿈틀거리자, 이사벨은 그 모습을 보며 움찔 놀랐다.
‘아니? 이 타이밍에 왜?’
최종 흑막 카린이 누군가와 전쟁을 생각할 때. 사생결단을 내려고 할 때, 카린의 왼쪽 입가가 꿈틀거린다는 설정.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각성했을 때, 주변인들은 그녀의 각성을 자연스레 알아차렸다. 주변의 공기가 바뀌었다. 그녀의 분위기가 달라졌고, 그녀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소설의 내용을 실감할 수 있었다.
분명 같은 카린인데 다른 사람 같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큼, 뭔가가 많이 달라졌다.
이사벨의 뒷목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왜 지금 최종 흑막이 각성하는 건데?’
뒷골이 아파왔다.
* * *
왕합회의.
빌로티안 제국에 ‘왕’의 자리를 부여받은 7명의 왕이 한자리에 모여 진행하는 회의.
짧게는 3일, 길게는 한 달 가까이 이어지기도 하는 이 회의는 3년에 한 번꼴로 열렸고, 황제와 황후를 포함하여 도합 9명이 자리하는 회의였다.
론이 말했다.
“회의는 이쯤에서 마치겠다.”
7명의 왕은 고개를 갸웃했다.
‘벌써?’
‘이상한데.’
사실상 왕합회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은 황제가 아니라 황후였다.
황제는 황후가 맘껏 제 생각을 펼칠 수 있도록, 든든한 무력을 제공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런데 오늘은 황제가 나서서 왕합회의를 종료시켰다.
7명의 왕의 시선이 세르나에게 향했다.
세르나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오늘은 이쯤 하도록 하지요.”
7명의 왕은 직감했다.
‘무슨 커다란 일이 있는 모양이군.’
‘우리에게도 비밀로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인가?’
그들의 머리가 재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황궁과 7왕은 대륙에서 가장 단단한 결속체였고 동맹이었다. 이들 사이에 비밀은 없어야 했다.
7명의 왕 중 한 명, 라헬라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우리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세르나가 대답했다.
“곧 있을 자정은 폐하께서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거든요.”
“예?”
황제가 손꼽아 기다리는 날? 도대체 그게 뭐지?
검술과 관련한 깨달음을 얻기에 어떤 유리한 마나 흐름이 있는 날인가.
“그리고 제일 피곤해지고 싶어 하는 날이죠.”
“도대체 그게 무엇입니까?”
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만.”
빌로티안 제국의 힘은 대대로 막강했으나, 론이 다스리는 빌로티안은 더욱 강했다.
그렇기에 론의 말에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론이 먼저 신경질적인 태도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세르나가 뒤따라 걸어 나가며 말했다.
“폐하께서 부끄러워서 그래요. 곧 있을 0시는 황녀의 생일이랍니다.”
세르나가 빠져나간 뒤, 7명의 왕은 각자의 생각을 교류했다.
7왕 중 한 명, 라헬라가 입을 열었다.
“황녀의 생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글쎄요. 어쩌면 이는 황후께서 내리는 시험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황녀의 생일.
그것이 키워드일 것이다.
대륙에서 제일가는 전략가이자 지략가이자 외교관인 세르나가 무언가 메시지를 넌지시 남긴 것 같았다.
라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뜻을 해석하여 진의를 파악하라. 그 정도가 되겠군요.”
“그 뜻을 파악하는 자가 추후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아니었다.
황제와 황후는 정말로 황녀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하여 오늘의 왕합회의를 일찍 끝낸 것이었다.
“다음 회의 때 뵙도록 하죠.”
“그러죠.”
라헬라는 숙소로 발걸음을 옮기며 깊은 사색에 잠겼다.
황후의 진의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이, 황궁의 눈에 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한편, 황제와 황후는 활동하기 편한 일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세르나가 호호! 웃음을 터뜨렸다.
“편한 옷을 입었는데, 어떤가?”
“그게 편한 옷인가요?”
아까와 색이 달라졌다 뿐이지, 지금 저 옷은 국무회의 때나 입을 법한 제복이었다.
“아주 편한 옷이지 않은가?”
“그래요. 당신이 편하면 됐어요.”
딸의 생일에 더 멋있어 보이고 싶은가 봐요.
그 말을 하면 너무 부끄러워할까 봐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세르나는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 좀 더 하늘하늘한 소재의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옅은 하늘색의 드레스는 화려하지 않고 단조로웠다.
세르나가 손을 내밀었다.
“그럼, 제 손 좀 잡아주시겠어요, 폐하?”
반지를 하나도 끼지 않아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손은 무척 단아하고 예뻤다.
적어도 론의 눈에는 그랬다.
론은 그 손을 잡았고, 오늘도 옅은 떨림을 경험했다.
아내와 함께하는 모든 날이 설렜다.
“가지.”
딸이 있는 아레나 궁으로 향했다.
아레나 궁에는 비아톤과 루루카, 유리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비아톤은 ‘늦었잖아요, 폐하’라고 투덜거렸고, 유리는 손수 만든 생크림 복숭아 케이크를 들고 서 있었다.
론은 비아톤의 예의 없음을 나무라려고 했지만 이미 자정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딱히 언급하지는 못했다.
루루카가 작게 말했다.
“문 열겠습니다.”
문을 열었다.
세르나가 활짝 웃으며 이사벨의 방에 들어갔다.
“서프라이즈! 생일 축하한단다, 우리 딸, 자고 있었니?”
은은한 취침 등만 켜져 있는 상태. 론은 순간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그의 눈에 김벌꿀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김벌꿀은 이사벨의 품에 안긴 것도 모자라 이사벨에게 뽀뽀를 하던 중이었다.
“네놈은 수컷이 아니더냐?”
벌꿀오소리 김벌꿀은 빌로티안의 황제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김벌꿀은 오늘도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내가 귀여운 걸 어떡함?]사실 김벌꿀은 규칙적인 루틴을 가진 벌꿀오소리여서, 오후 10시가 되면 잠에 빠져드는 타입이었다.
오늘도 김벌꿀은 븅븅- 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이사벨은 그런 김벌꿀이 너무 귀여워서 앙! 하고 깨문 뒤 뽀뽀를 시도하던 중이었다.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김벌꿀은 뽀뽀를 하던 게 아니라 괴롭힘을 당하던 중이었다.
그게 아빠의 눈에는, 발칙한 수컷 야생동물이 뽀뽀를 하려는 것처럼 보였고.
[억울함?]위풍당당한 벌꿀오소리는 두 발로 중심을 잡고 몸을 일으킨 뒤 호흡을 들이마셔 가슴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그래봤자 작았지만 지금 이 순간, 김벌꿀은 세상에서 제일 크고 위대한 벌꿀오소리였다.
[억울하면 너님도 귀엽든지.]오